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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실존의 미학 12강 발제.(박소원)

박소원 2022.05.29 13:31 조회 수 : 46

2022년 1학기 인사원 발제(박소원)

푸코,「진실의 용기」-자기와 타자의 통치∥

 

 

 

7강(1984.2.22.-첫번째 시간)(138쪽-164쪽)

 

발제를 준비하며.....,

 

‘우리 자식들 앞에서 얼마간 부끄러움을 느끼며, 우리가 젊었을 때 우리를 방치한 아버지들을 비난하기까지 하는 겁니다.’ 아피멜레이아의 주제, 자식들에게 해야 할 ‘돌봄’의 주제를 보게 되며, 그것과 ‘파레지아’가 직접 결합되어 있는 걸 보게 됩니다.(158)

 

이 글을 읽으며 나는 내 아이들의 ‘돌봄’에 왜 그토록 염려(지나친 집중)해 왔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뤼시마쿠스와 멜레시아스처럼 나는 나의 아버지보다 할아버지보다 학식이 부족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부족하다고 여기게 되었는데 이는 아버지가 나를 제대로 ‘교육’ 받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원망의 마음도 포함되었음을)

 

내 아이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인도’해야 하는지 충고할 만큼, 나는 삶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여겨왔기에 스스로에게도 남편에게도 ‘지나친 노력’을 요구했었던 것 같습니다. 나의 무리한 요구를 ‘모성’으로 착각하며 남편과 나와의 사이에 갈등을 만들어왔고 지금껏 둘 사이의 ‘틈’을 만들지 않았을까. 내 삶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에피멜레이아의 어원에 대한 연구

 

푸코는 에피멜레이아의 어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melei moi(I care about. 비인칭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정확히 It concerns me)에서 비인칭 형태로 사용된 melo라는 단어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단어들, 명사형으로 epimeleia, 동사로 epimelein 혹은 epimeleisthai, 형용사형으로 ameles(careless), 부사형으로 amelos, 명사로 epimeletes(돌보는 사람, 보살피는 사람, 그리스 제도들에서 빈번히 명확한 의미를 가지는 단어로, 뭔가를 감독하는 공식적 책임성. 어쨌든 이 단어는 ‘정확한 책임성’을 지시한다고 합니다.

 

*뒤메질의 방법과 확장

 

푸코는 뒤메질에게 인도유럽어족에서 어근 mel이 무슨 뜻인지 문의를 했고 뒤메질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첫 번째 대답에서 melos를 노래, 리드미칼한 노래, 음악을 가리키는 melodia안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두 번째 대답에서 ‘그것이 나에게 호소한다 Ca me chante’ 관심과 의무를 향한 각기 다른 방향을 가지고 즉 자유와 쾌락을 대신하는 의무의 요청. 먼저 ‘그것이 나에게 호소한다. Ca me chante’는 의무의 영역이 아니라 쾌락의 영역, 즉 자유에 속한 것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뒤메질은 라틴어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찾습니다. 카메레(camere)라는 동사, ‘달아오르다 Etrechaud’의 뜻이고 핫셀과 다메스테터(Hatzfeld and Darmesteter)가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다’라는 뜻으로, 부전문과 의문문의 형식으로 특정한 개인저 rrhkstla이 아니라 일반적인 관심으로만 사용된다고 정의한 단어라고 합니다.

 

 

*플라톤의<라케스>를 고른 이유

 

플라톤이 <라케스>를 뽑은 세 가지 이유.

 

*첫 번째 이유.

 

소크라테스의 질실-말하기를 다른 것과 구분시켜 주는 것들이 서로 연관된 형태로 분명하게 정식화되어 있고 푸코가 생각하기에 플라톤의 대화편 중 <라케스>야말로 파레지아 혹은 동사 파레지아제스타이(parrhesthai)가 빈번하게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대화 한 가운데에서 소크라테스는 파레자아를 가진 사람으로서 출현을 합니다.

  • (exetasis)라는 개념, 검증하고 실험하기라는 개념에 대해 푸코는 ‘변론’과 ‘파레지아를 수반하는’ 소크라테스적 진실-말하기의 특징에서, 진실-말하기, 시험, 조사, 검증의 절차 안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답니다. 이 검증의 원리는 소크라테스가 펼치고 소크라테스와 함께 하기를 동의할 때 대화참여자들이 따라야 할 게임의 기본규칙으로 나타납니다.
  • (of care 관심)라는 개념은 대화의 상수로 존재합니다. 이들의 대화는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 교육, 훈련, 견습, 저이에서 필요로 하는 ‘덕’과 ‘자질’에 관한 것입니다. 대화를 관통하여 세 가지 개념들의 연결, 결합, 연루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진실-말하기에 있어서 용감한 솔직함으로서의 파레지아, 영혼 검사 내지 시험의 실천으로서의 이그제타시스(exetasis), 그리고 이 파레지아, 솔직한 검증의 목표와 대상으로서의 돌봄(care). 이것이 <라케스>를 분석하는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

 

<라케스>의 특이한 점은 소크라테스와 젊은이들의 훈련을 논의하는 사람들 본인은 젊지 않다는 점이고 그들이 어른이라는 것입니다. 이 어른들은 대화시점에 이미 정치적 요직에 있는 사람,<라케스>의 어른들은 대화 당시 이미 특정한 역할을 맡고 있는 정치인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정치적 담화, 정치적 진실-말하기가 아닌 형태의 질실-말하기를 제안할 것이고, 정치인들을 정치와는 다른 곳으로 이끌고 갈 것, 이 점이 흥미롭고도 중요한 두 번째 이유입니다.

 

*세 번째 이유

 

이 대화편을 관통하는 ‘용기’의 태마 때문입니다. 이 대화의 주제는 ‘용기’에 관한 진실을 말하는 것, ‘용기’의 본성을 규정하는 것 뿐만 아니라, 대화의 대상이기만 한 게 아니라 또한 각기 다른 인물들의 특성을 들 수 있습니다. 군사지도자인 ‘라케스’, 군사지도자이자 정치지도자인 ‘니키아스’, 도시국가 안에서 그런 중요한 사람들과 마주한 소크라테스의 ‘용기’, 서구철학을 통틀어 매우 드믈게 용기의 문제, 특히 ‘진실의 용기’라는 문제를 제기한 텍스트라는 점입니다.

 

 

 

*솔직함의 협약

 

1.뤼시마쿠스와 멜레시아스는 (니키아스,라케스,소크라테스에게)왜 “무장전투 시범”을 관람해달라고 부탁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솔직’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눈으로 이뤄지는 목격. 할 수 있는 것을 말로 드러내는 영역이 아니라, 검증의 영역, 직접적으로, 눈으로 보는 검증의 장 속에 있음을 알게 합니다.

 

2.라케스와 니키아스에게 왜 그들을 데려왔는지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 검증을 더욱 ‘순수하고 분명하게’만들었습니다.

 

3. 라케스와 니키아스는 “무장전투”에서 정통한 사람들(이 둘은 군사지도자이며 군사적 책임을 실제로 맡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 이유를 모른 채 즉 어떤 선입견도 없이 시범을 봄으로써 어떤 숨김도 없이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있는 사람들입니다. (진실의 출현을 위해 잘 보호된 현장)

 

*자녀교육의 문제

 

뤼시마쿠스와 멜레시아스가 라캐스와 니키아스를 찾은 이유: 자신들의 삶을 돌아봤을 때 자신들의 중요한 가문과 선조의 위대한 명성들, 나라에 중요한 일을 한 것에 비해서 본인들의 영광된 업적이랄 게 전혀 없음을 자각 되었습니다. 이는 그들의 아버지들이 정치적 성공에서 어린 시절의 방치되었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라케스와 니키아스와같은 훌륭한 사람들에게서 자식 교육에 대해 뭔가 말해줄 사람을 찾고자 합니다.

 

 

*라케스와 니키아스의 무술시범에 관한 상반된 판단

 

니키아스: 교사의 가르침이 지닌 유용성을 이야기합니다. 훌륭한 전투능력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유용. 싸움의 기술과 전반적인 전략체계로 젊은이들을 인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훈련. 자기 나라를 지킬 젊은이들에게 용감함과 대담함이라는 도덕적 소양을 키운다는 점에서도 좋은 실행. 힘과 인내력, 중요한 자세와 움직임의 아름다움까지 갖게 된다는 것.

 

라캐스: 훈련에 비판적. 그런 시범은 숙련된 군인들이 없는 도시에서 교관의 능력을 보여줄 뿐. 전투 교관이 전쟁에서 용감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어설펐다는 것.

 

*소크라테스에 따른 기술적 능력의 문제

 

소크라테스는 정치적 논의에서 기술적 논의로의 전환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테크네의 문제라면, 다수결이 아니라 기술이 결정요인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틀어쥐어야 하는 말은 돌봄의 기술자, 치유의 기술자, 영혼의 기술자라고 합니다. 1. 가르친 교사들이 훌륭한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인지? 2.자신의 유능함과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혹은 훌륭하고 가치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선생,업적)

 

*변증게임에서의 소크라테스적 전도

 

소크라라테스는 “이제 문제는 유능함이기 때문에, 니키아스와 라케스가 전문가로서 그들의 유능함의 증거를 보여줘야 합니다.그들에게 의뢰하는 특별한 자질은 어떤 것일까요?. 선생이 누구인지, 어떻게 배웠고, 무엇을 알게 되었으며, 관련된 업적은 어떤 것인지 말해야 합니다.” 그는 정치적 차원에서 기술적 차원으로의 전환뿐만 아니라 절차의 전환도 가져온 것입니다. 정치적 모델로부터 기술적 유능함의 모델로 전환시키고, 이 유능함의 문제와 관련해서 논쟁 속에 있는 두 파트너가 그들의 유능함을 직접 사용하는 게 아니라, 소크라테스가 던진 질문에 답하는 것에 동의할 것을 제안합니다. 두 파트너를 기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그들의 위치와 역할이 선생에 의한 지식 전수의 게임 속에 있음을 확인 시킵니다.(164)

 

8강(1984.2.22.-두번째 시간)(165쪽-182쪽)

 

*소크라테스와 완벽하고 지속적인 자기 검증

 

소크라테스적 검증은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자기 삶의 양태를 조직원리, 구성원칙으로서 반복되고 확장되어야 합니다.그래서 여기에 포함된 것은 특수한 종류의 파레지아적 실천, 특정한 종류의 진실-말하기, 교사로부터 학생으로 전수되는 지식과는 다른 종류의 진실-말하기의 형성과 정의입니다. 이런 진실-말하기는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이뤄지는 삶의 검증과 시험을 떠받치는, 소크라테스와의 특수한 관계수립을 포함합니다.

 

*소크라트스적 파레지아의 목표인 비오스(Bios)

 

소크라테스적 파레지아는 그의 선조에 대해, 지식이 전승될 수 있었던 전통적인 계보에 대해 질문하지 않습니다. 가령 자기에 대해 설명하라고 요구받게 됩니다. 즉 자기와 로고스 사이의 관계를 보여 달라고 요구받는 것입니다. 바로 살아가는 방식(hontinatropon te ze)에 관한 것입니다.소크라테스의 담화와 파레지아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바로 이 실존의 영역, 이 실존의 양태, 삶의 방식(tropos)입니다. 그것은 기술적 가르침 속에서 이뤄지는 일련의 합리성도 아니고, 영혼의 존재양태도 아니고 삶의 스타일, 살아가는 방식, 삶에 부여하는 형식입니다.

 

*담화와 행위의 조화

 

라캐스는 말하는 사람의 삶(bio)이 그의 담화와 조화로울 때, 어떤 이의 담화와 그의 실존이 조화로울 때 그 담화를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즉 살아가는 방식과 말하는 방식 간의 관계가 조화로울 때 담화를 받아들이고 또 담화를 사랑하는 이가 된다는 것입니다.(174)

 

*대화의 결론: 로고스에의 최종 순종

 

로고스: 고대 그리스 철학이나 신학의 기본용어. 사물의 존재를 한정하는 보편적인 법칙, 행위를 따라야 할 준칙, 이 법칙과 준칙을 인식하고 이를 따르는 분별과 이성을 뜻한다. 파토스pathos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본래는 고전 그리스어로 ‘말하다’를 뜻하는 동사legein의 명사형이며 ‘말한 것’을 뜻한다. ‘말한 것’은 말,글,이야기,연설이다. 언론을 중시하는 것은 고대인의 특징으로, 여기서 수사학이 발생하였다.

*

뤼시마쿠스는 소크라테스에게 “우리 집으로 오시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에피멜리이아(돌봄)의 협약입니다. 나의 아이들을 돌봐 주시오. 나도 돌봐 주시오. 사람은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히 질문을 던져야 하고, 늙어서도 전 생애에 걸쳐 해야 한다고 말하 ㄴ대화 첫 부분에서 환기한 원리를 따른 것입니다. 한 사람의 존재, 존재양식의 형태는 끊임없이 바사노스(시금석)에 의한 검중에 놓여져야 한다는 원칙 말이니다. 소크라테서는 이 임무를 받아들입니다. “뤼시마쿠스. 당신과 당신의 아이들을 자기 돌봄과 로고스를 경청하는 길로 안내하기 위해. ‘만야 끄것이 신을 기쁘게 한다면’ 나는 당신의 집에 내일 있게 될 것이오.”라고 말합니다.

 

9강(1984.2.29.-첫번째 시간)(183쪽-205쪽)

 

*진실과 용기의 사이클

 

솔직하게-말하기, 진실-말하기(파레지아),진실을 말하는 용기라는 주제는 용기의 진실이라는 주제, 진실로 용기란 무엇인지 알아내는 문제과 관련됩니다. 한편에는 용기에 대한 진실과 진실의 용기의 결합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파레지아의 실천과 자기의 돌봄이라는 거대한 주제의 결합이 있습니다.(184)

 

*<알키비아데스>와 <라케스>의 비교

 

*대화의 트라마틱한 표현의 본질적 양상에 있어서

 

<알키비아데스>에서 소크라테스는 그의 파레지아, 솔직하게-말하기를 청년들 앞에서 펼쳤습니다. 이 청년들은 아테테를 통치할 야망에 어울리는 ‘자질’을 아직 온전히 갖추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라케스>에서 소크라테스가 솔직한 말하기를 사용하는 대상은 성인, 그것도 나라에서 존경받고 명예를 가진,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용기르 ㄹ증명할 수는 있지만 용기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는 없었습니다.

 

*철학적 결말에서

 

<알키비아데스>는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실재인 영혼의 발견과 입각점으로 끝맺습니다.

<라케스>는 용기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아무도 용기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데 도달합니다.

 

*영혼의 형이상학과 실존의 미학

 

<알키비아데스>와 <라케스>를 비교하면서 서구철학에서 소크라테스적 진실-말하기의 두 가지 발전경로의 출발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에 대해 설명하기(didonailogon)라는 이 공통 주제에서 시작하는 첫 번째 경로는 ‘영혼의 존재’를 향하고<알키비아데스>, 다른 경로는 ‘실존의 형식’으로 향합니다.<라케스> 하나는 ‘영혼의 형이상학’을 지향하고(알키비아데스),다른 하나는 ‘실존의 스타일론’을 향합니다.(라케스)

 

*푸코는 <알키비아데서>와 <라케스>의 대화편에서 볼 수 있는 근접성과 분기점을 강조하며, 실존의 미학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의 역사를 가장 고대적인 원형적인 형태 속에서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진실한 삶과 아름다운 삶

 

푸코가 복원하고자 하는 것은 실존의 기술과 진실한 담론 간의 관계 아름다운 실존과 진실한 삶, 진실 속에 있는 삶, 진실을 위한 삶 간의 관계입니다. 진실-말하기의 원칠과 형식(타인과 자신에게, 자신과 타인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것)속에서, 진실한 삶과 진실-말하기의 게임의 원칙과 현식 속에서 진실한 삶의 출현이 푸코가 연구하고 싶은 것이라고 합니다.(190)

 

*견유주의에서 삶의 양식에 관한 진실 –말하기의 개진

 

*견유주의: 냉소주의 또는 시니시즘은 관습,제도,법률등을 부정하며,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한다.

 

*견유주의적 실천 속의- 아주 특징적이고, 잘 정의된 규칙, 조건, 혹은 양식을 통해-무척이나 특이한 삶의 형식에 대한 요구는 진실-말하기, 두려움 없는 진실-말하기, 용기있는 진실-말하기, 부끄러움이나 두려움 없는 진실-말하기, 무제한적이고 용감한 진실-말하기, 그 용감함과 과감함이 참기 힘든 오만함으로까지 치닫는 그런 진실-말하기와 강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 진실-말하기와 삶의 양식 간의 결합, 견유주의 속에 있는, 살아가는 방식과 진실-말하기에의 헌신 사이의 이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결합은 어떤 이론적 중개 없이, 아주 거친 이론적 틀 안에서 즉각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합니다.

 

*견유주의자의 주된 특성인 파레지아

:에픽테토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 루키아누스의 텍스트들

*<견유주의자 헤라클라이오스에게>의 담화를 보면 ‘지팡이’는 고대사회에서 견유주의자의 징표로 사용된 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들은 지팡이를 짚고, 거지꼴의 배낭과 망토를 걸친 사람, 샌들을 신거나 맨발인 사람, 수염이 긴 사람, 지저분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방랑하는 사람이고, 사회로 통합되지 않는 사람이며, 가정, 가족, 가정의 단란함이나 국가와 관련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구걸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종류의 삶이 전적으로 견유주의 철학과 부합하며 단지 겉치레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증언하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에픽테토스: 노예출신,후기스토아 학파(이론적-논리적 관심보다는 실천 철학에 대한 관심이 더 부각-소크라테스적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질서지어진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주장.), 세네카와 에픽테토스는 대조를 이룬다.(외저긴 부의 축적이나 성공에는 초연, 가르치는 일에만 헌심함으로써 명성을 얻음. ‘자유와 노예’를 자신의 논의 주제로 삼았다. ‘자유’란 원칙적으로 인간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정신적 자유’를 의미한다.‘노예’란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여’해서 만들어진 ‘정신적 부자유’이다. ‘정신적 자유’와 스스로 자초한 노예‘의 대조야말로 일생을 통한 철학적 화두.『담화록』.

 

에픽테토스의 텍스트: 에픽테토스는 견유주의자의 역할이 정탐꾼, 정찰병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kataskopls(카타스코포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는 군사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적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가능한 드러나지 않게 관찰하기 위해 본대에 앞서 보내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메티포를 사용한 것은 견유주의자가 세계 속에 일어나는 일들이 사람에게 좋은 것인지 적대적인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서 인류에 앞서 보내지 정찰병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견유주의자의 기능은 적군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하고, 우리의 투쟁에 이득이 되는 도움이나 후원을 어디서 만나거나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생활과 의견 및 저작 목록』(10권).:탈레스에서 에피쿠로스까지를 다룸.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의 텍스트: 하루는 디오게네스가 인간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이 뭔가 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파레지아(솔직하게-말하기)라고 대답했습니다. 실존의 아름다움이라는 주제, 한 사람의 실존에 부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형식이라는 주제와 파레지아의 실천, 자유롭게 말하기라는 주제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루키아누스:120경-195년경. 로마제정기의 그리스인 저작자. 풍자시80여편을 남김.

 

*루키아누스의 텍스트: 루키아누스는 견유주의자를 거세게 공격하는데 몇몇 경우에는 매우 신랄하게 묘사합니다. 페르기누스에 대한 묘사가 그런 예인데, 여러 텍스트에서 견유주의자들을 풍자합니다. 가령, ’삶을 파는 시장‘에 관한 것으로, 루키아누스는 여러 다른 철학자들이 삶에 대한 각자의 원칙을 팔러 시장에 나오는 모습을 흥미롭게 묘사합니다. 루키아누스가 견유주의자에 대해 호의적인 경우가 있었는데 2세기경 아테네의 견유주의를 대표했던 ’데모낙스‘에 대해서입니다. 견유주의자(좋은 견유주의자, 유효하고 받아들일 만한 견유주의의 형식을 보여준 사람)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파레지아의 사람으로 제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데모낙스가 본성적인 충동에 따라 철학에 이끌렸다고 기술합니다. 루키아누스는 이 파레지아(솔직하게-말하기)와 자유로 인해 ‘데모낙스가, 기원저 ㄴ5세기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받은 것과 같은 증오를 샀음을 회고합니다.

 

*

‘파레지아’는 견유학파만을 위한 단어가 아닙니다. 하지만 다양한 의미와 양가적인 가치(자유롭게 말하기 또는 거만함)속에서 파레지아가 빈번히 견유학파에 적용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파레지아, 솔직하게-말하기는 견유주의자와 견유학파를 묘사라는 데 가장 전면에 부각된 단어입니다.

 

*진실-말하기와 삶의 양식 간의 관계에 대한 규정

:수단의 기능, 축소의 기능, 그리고 검증의 기능

 

푸코는 견유학파에서 진실-말하기와 삶의 방식 사이의 관계는 더 복잡하고 정교하다고 합니다. 견유적 삶의 양식은 소크라테스가 소유했음을 증명했던 절제,용기 그리고 지혜와 같은 덕성들을 실행하고 드러내 보이는 삶이 아니라고 합니다. 견유주의에서 파레지아의 정성당, 지지대, 프레임으로 기능하는 삶의 양식은 지극히 엄밀하고 양식화된 행동양식, 고도로 식별가능한 행동양식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율리아누스 황제가 견유주의자 일반을 공격할 때 “당신은 어떻게 디오게네스의 지팡이와 그의 파레지아를 얻게 된 것이오?” 파레지아와 지팡이는 이렇게 같이 묶입니다. 견유주의자는 파레지아를 사용하며 지팡이를 가지고 다닙니다.

 

*진실극장으로서의 삶

 

삶의 양식(지팡이,거지꼴의 배낭, 가난, 방랑, 구걸)은 이 파레지아, 이 진실-말하기와의 관계 속에 매우 엄밀한 기능을 지닙니다. 첫 번째,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가집니다. 두 번째,가능성의 조건일 뿐만 아니라, 축소의 기능도 지닙니다.

 

10강(1984.2.29.-두번째 시간)(206쪽-220쪽)

 

 

*견유주의의 후예에 대한 가정들

 

 

*종교적 후예: 기독교 금욕주의

 

견유주의적 존재양식이 유럽 기독교 속으로 전수되고 침투하기 위한 첫 번째 지지대는 기독교 문화 자체, 기독교적 금욕의 실천과 제도들입니다. 고대 기독교에서의 금욕적 실천이 진실 자체의 증언으로서 여겨지고 실천되어 왔다는 점, 혹은 기독교 금욕주의가 견유주의적 태도로 금욕을 실천함으로써 진실에 구체적 형태를 부여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 진실의 순교 내지 증언으로서 견유주의적 벌거벗음의 실천과(서로 다른 진실이지만)진실의 증언으로서의 기독교적 금욕이 지극히 근접해 있다는 사실의 사례. 그리고 기독교 금욕주의와 수도원 생활이라는 매개자를 통해 견유주의적 삶의 방식이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왔다는 점입니다. 즉 기독교를 통해서 부활해 왔습니다.(213)

 

*정치적 후예: 실존 스타일로서의 혁명

 

혁명적 활동으로서의 삶, 혹은 삶으로서의 혁명적 활동을 정의하고 묘사하고 조직하고 규제하는 방식을 ‘전투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면, 우리는 혁명적 삶으로서, 전면적이든 부분적이든 혁명에 바쳐진 삶으로서의 전투주의가 19세기와 20세기 유럽에서 세 가지 거대한 형식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회성과 비밀의 형식 속에 있는 혁명적 삶, 비밀조직에서의 혁명적 삶(현존하는 가시적 사회에 대항하는 음모. 연합. 천년왕국의 원칙과 목적에 따라 조직된 비가시적 사회의 구성)을 볼 수 있습니다.

비밀단체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가시적이고 인정되고 확립된 조직의 형태를 취하며,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목적과 동학을 주장하는 ‘전투주의’가 있습니다. 노동조합이나 정당의 형태를 띱니다.

전투주의적 존재방식은 ‘실존의 스타일’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삶에 의해 증거되는 전투성입니다. 혁명적 전투주의에 특유한 이런 실존 스타일은 그의 삶이 관습, 습관, 그리고 사회의 가치들에 균열을 낸다는 것을 보증합니다.

 

*혁명적 삶, 혁명적 활동으로서의 삶은, 비밀조직, 합법적인 조직화, 삶을 통한 증거(삶 자체로 진실한 삶을 증언하기). 혁명적 전투주의의 세 측면 1.사회성 2.조직화 3.실존의 스타일은 19세기 내내 지속되었습니다.

 

*미학적 후예: 근대예술

 

고대사회에는 여러 가지 품행 규칙들과 사회문화적 가치들에 대한 견유주의의 과격한 반대가 있었지만, 또한 그 시기에도 견유주의적 예술과 문학 역시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풍자와 희극에는 자주 견유주의적 주제가 침투했는데, 어떤 점에서 풍자와 희극은 견유주의적 주제의 특권적 표현공간이었습니다.--근대세계에서 예술이 견유주의의 매체가 된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문학이든, 그림이든, 혹은 음악이든 예술은 더 이상 실존의 장식이나 모방이 아니라, 실존의 벌거벗음, 폭로, 발국, 그 근저로의 환원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실존의 벌거벗음, 실존의 근저로의 환원으로서의 예술적 실천은 19세기 중반부터 두드러졌습니다. 예술(보들레르, 플로베르, 모네)은 한 문화 안에서 어떤 권리도 없고 표현가능성도 없는 것, 문화의 지하에, 문화의 바작에 있는 것이 난입하는 장으로 형성됩니다.

 

*근대예술의 반-플라톤주의와 반-아리스토텔레스주의

 

반-플라톤주의 근대예술과 반-아리스토텔레서주의 근대예술은 실존의 근저를 발가벗기는 것이며 제도화된 예술의 모든 형식에 대한 끝없는 거절과 거부입니다. 근대예술은 본질적으로 반-문화의 기능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을 지닙니다. 이에 의해 문화적 통념이 야만적 진실 속에 있는 예술의 용기에 의해 반박됩니다. 근대예술은 문화 속에 있는 견유주의입니다.(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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