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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물론] 판도라의 희망 5-7장 발제

HJ 2022.05.26 17:25 조회 수 : 114

5장 사물의 역사성

 

라투르는 5장에서 인간 뿐만이 아닌 사물들의 역사성을 다루고자 한다. 그 과정은 인간, 비인간, 차이, 명제, 접언의 연결로 가능해지며, 이는 근대성의 산물인 관념론, 주체-객체 이분법적인 접근, 인과관계의 개념, 진리대응론을 넘어서는 시도이다. 여기서 라투르에게 실체는 “행위자들의 다양성을 안정되고 일관된 전체로 함께 모으고 있는 것”이자 “배치의 안정성”(244)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는 파스퇴르의 발효 연구 및 푸셰와의 논쟁을 다루면서, 발효균이나 세균과 같은 존재자에 부여된 역사성을 드러낸다. 이는 곧 연결된 모든 존재자들에게 “활동성과 역사성을 재분배하는 과정”(253)이자 시공간적 외피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즉, 실재성은 한 존재자와 그것과 함께하는 다른 것들과 연합되고, 치환의 과정을 거치며 획득된다. 연합과 치환 사이의 배치로 단일하고 일관된 네트워크가 유지된다면 그 집합체는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라투르는 시간의 흐름을 두 차원의 결과물로 인식한다.

한 차원은 시간의 언제나 앞으로 움직이는 선형적 연속이며, 한 차원은 뒤를 향해 움직이는(회고적인) 시간의 퇴적적 연속을 말한다.(271) 결국 파스퇴르가 해낸 것은 세균에 대한 회고적인 이해이며, 이로써 라투르는 “파스퇴르 이전에 세균이 존재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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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학의 참모습에 대한 이 책의 중간지점인 이 장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 내가 매우 추상적으로 정의한, 명제와 접언 개념을 이용함으로써 역사성의 문제를 다시 설정하는 것이다. (237)

하나로부터 더 많은 활동성이 있으면, 다른 것에도 더 많은 활동성이 있다. 파스퇴르가 그의 실험실에서 일을 더 많이 할수록, 그의 발효균도 더욱 자율적이게 된다. (238)

“파스퇴르가 그들을 만들어내기 전에도 발효균은 존재했다”는 문장은 주체-객체 이분법의 두 극 사이에 잡히느냐 아니면 접언된 인간과 비인간에 적재되는가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것들을 의미하게 된다. (241)

내가 말했듯이, 지시의 정확성은 횡단하는 연쇄의 유동성과 안정성을 나타내는 것이지, 두 안정된 지점 사이의 다리나 하나의 고정된 지점과 이동해가는 다른 하나 사이의 밧줄이 아니다. 어떻게 순환하는 지시체가 사물의 역사성을 정의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인가? 상당히 간단하다. 지시를 만드는 일련의 변형에 있는 모든 변화는 차이를 만들 것이고, 차이들이 활기 넘치는 역사성을 시작하기 위해 우리에게 일단 필요한 전부이다. (242)

인과관계는 사건에 따라오는 것이지, 선행하는 것이 아니다. (246)

 

명제를 위한 시공간적 외피

이러한 푸셰의 일반적인 현상(자연발생)을 시공간으로부터 철수시키는 데 성공하기 위해서 파스퇴르는 그의 반대자들의 각 장소와 각 주장을 향해 실험실 실행을 점진적이고 세심하게 확장해야 했다. (248)

상대적 존재는 우리가 결코 아닌never, 어디에도 없는nowhere, 언제나always, 어디에나everywhere라는 네 개의 부사를 갖고 존재자를 늘리거나 짜맞추거나 짜내거나 자르지 않고 그것을 따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251)

결부된 모든 존재자들의 사이에서 활동성과 역사성을 재분배하는 과정에서 과학학에 의해 배치된 시공간적 외피를 구분 과정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 (254)

 

실체의 제도

왜 누군가가 영원히 거기에 존재하는 실체라는 개념을 넘어 모든 존재자의 상대적 존재에 대한 과학학의 설명을 선호해야 하는가?

1) 발효균, 세균, 또는 막 존재하기 시작한 난자와 같은 특정한 존재자를 동료, 황제, 돈, 기구, 육체적인 숙련 등으로 만들어진 맥락과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것으로 간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263) [자연적인 것 혹은 사회적인 것의 구획화를 피할 수 있게됨]

2) 파스퇴르가 숨바꼭질을 하는 존재자에게 정확히 과녁을 맞추고 있는 동안, 푸셰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자들과 함께 어둠속에서 더듬거리고 있다는 이 외피를 비대칭적으로 다룰 필요가 없었다. (264) [연합과 치환의 용어로 대칭적으로 기술할 수 있게됨]

3) 이러한 유사성은 푸셰가 동일한 네트워크를 세우고, 동일한 역사를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265) [두 이론 사이의 공약불가능성에 대한 설명 -> 패러다임의 변화가 아닌 서로 다른 확장의 방식]

 

역 인과관계의 퍼즐

파스퇴르 ‘이전에’ 세균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69)

과거와 현재의 차이는, 보이지 않는 현상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조종되던 것과 생물의 배양을 정복하게 된 것의 차이이다. (270)

파스퇴르가 했던 것은 1864년에 새로운 버전의 1863년, 1862년, 1861년을 만들 것이었다. (270)

실체는 속성 뒤에 영속적이고 몰역사적인 ‘기반’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퇴적 덕분에 새로운 존재자가 다른 존재자 아래에 누워 있는 것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72)

따라서 실체라는 단어에 이제 두 가지 실제적인 의미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앞서 보았듯이 실제적 장치들의 거대한 정렬을 함께 유지시키는 제도이고, 다른 하나는 더욱 최근의 사건을 예전 것의 ‘뒤에 누워 있는’ 것으로 위치시키는 회고적 일치의 작업이다. (272)

 

질문

1. 라투르는 자신의 이론이 상대주의라는 비판을 어떻게 극복하고있는가?

252p, 268p 참조

이들은 과학학이 모든 논증이 역사적이고, 우연적이고, 국소적이고, 일시적이고, 따라서 구별될 수 없고, 그중 어떤 것도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다른 것을 비존재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단순한 상대주의를 받아들여왔다고 주장한다.(252) 

과학학이 상대주의를 전파한다는 것이 스캔들이 아니라, 과학전쟁에서 진리를 위한 제도를 유지해내는 일이 위험없이 중단될 수 있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도덕성의 본보기로 받아들여진 것이 스캔들이다.(268)

 

2. 라투르는 메이야수의 선조성, 원화석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라투르의 질문 : "파스퇴르 '이전에' 세균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메이야수의 질문 : "45억 6천만년 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메이야수는 선조성[인간 종 전에 출현하는 실재의 전부]의 문제를 다루며 상관주의를 벗어난다. 존재를 사유 바깥으로 상정하여 수학적 사유를 통한 본사실적 접근을 추구한다. 메이야수의 입장에서 라투르의 대답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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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인간과 비인간의 집합체

6장에서 라투르는 과학학이 과학적 사실을 넘어 기술적 인공물을 이해하는 데도 유용함을 강조한다. 비인간인 인공물은 인간의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인간에 의해 완전히 지배당하지도 인식되지도 않는다. 주체 혹은 객체의 본질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테크닉이 수행하는 매개의 역할”(288)에 대한 측정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는 기술적 매개의 의미인 간섭, 복합, 시간과 공간의 포개짐, 기호와 사물의 경계를 넘는 것을 차례로 설명한다.

이로써 라투르는 사회학자와 유물론자들의 이론을 넘어 “포장도로의 몇몇 특징이 경찰관이 되고, 경찰관의 몇몇 특징이 과속방지턱이되는”(302) 접언이라는 지대에 접근하고자 한다. 또한 그는 ‘기술적’이라는 형용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존재자와 함께 교차하는 위임, 이동, 하행이전 등을 나타낸다. 그는 비인간과 인간의 포개짐의 장소를 자연도 사회도 아닌 ‘집합체’로 이해하면서, 고대의 (원시적) 집합체와 근대의 (진보된) 집합체 사이의 차이를 새롭게 이해한다. 즉, 둘의 차이는 사회적 질서와 기술의 혼합 혹은 단절에서 오는 것이 아닌, 얼마나 더 연결되어 있는 많은 요소를 “번역하고 교차하고 등록하고 동원”(309)하는지에서 온다. 라투르는 인공물에는 언제나 사회적 관계들이 통합되어 있으며, 반대로 사회적 구조에는 그것을 지탱하는 비인간들의 거대한 연합이 존재함을 드러낸다. 기술과 사회는 결코 나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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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목표는 내가 공유하지 않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과학이 그간 납치된 채 붙잡혀 있던 은신처를 찾아냄으로써 근대주의에 대항하는 것이다. (332)

인간과 비인간을 서로에게 포개기 

우리에 대한 기술의 지배를 포함해서 비인간과 맺는 우리의 관계에서 그 어떤 종류의 지배도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일 것이다. (283)

[총을 든 사람의 예시]

유물론자 : “총이 사람을 죽인다”(283) -> 선한 시민이 총을 쥠으로써 변화된다(284)

국립총기협회NRA : “총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 -> 도덕주의적인 해석, 문제가 되는 것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이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284) 

1)기술적 매개의 첫째 의미 : 간섭[새로운 행위(자), 목적의 출현]

사람과 총의 혼합에 의한 세 번째 행위자의 출현(286)

완전히 인간의 통제 하에 있는 ‘중립적 도구’라는 신화와 어떤 인간도 제어할 수 없는 ‘자율적 운명’이라는 신화는 대칭적이다. 하지만 셋째 가능성이 더 흔하게 실현되는데, 이는 어느 행위자의 행위 프로그램에도 일치하지 않는 새로운 목표가 생성되는 것이다. 3장에서 나는 이것을 목표의 번역에 대한 불확실성이라 불렀다. (287) 번역-> 치환, 표류, 발명, 매개,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원래의 것을 조금 바꾸는 연결의 생성 

총을 손에 들고 있는 당신은 다른 사람이다.… 본질은 존재이며 존재는 행위다. (287)

살인을 하는 것은 사람도 아니고 총도 아니다. 행위에 대한 책임은 다양한 행위소 사이에서 공유되어야 한다. (289)

2)기술적 매개의 둘째 의미 : 복합 [하위프로그램 수의 증가에 따른 행위의 복합] 

행위의 주요한 동인은 새롭고 분산되고 겹쳐진 일련의 실행인데, 오직 우리가 그 연쇄에 동원된 모든 행위소가 수행하는 매개의 역할을 존중할 때에만 그 총합을 계산할 수 있다. (289)

행위는 단지 인간만의 특성이 아니라 행위소의 연합의 특성이며, 이것이 기술적 매개의 둘째 의미다. (291)

3)기술적 매개의 셋째 의미 : 시간과 공간의 포개짐

우리는 더 이상 하나의 객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하나의 객체 주위에 모여 있는 한 집단의 사람들을 보게 된다. 행위소와 중재자 사이에서 전환이 일어났다. (293)

당신이 책상 앞에서 이 장을 읽는 데 평화롭게 기여하고 있는 그러한 조용한 존재자 모두를 따라가려면, 우리는 시간상 얼마나 뒤로, 공간상 얼마나 멀리 우리의 단계를 추적해야 할까? (295)

4)기술적 매개의 넷째 의미 : 기호와 사물의 경계를 넘는 것[위임]

테크닉은 …기호와 사물 사이의 상식적인 경계를 가로지르는 특별한 종류의 접언을 통해서 의미를 생산하는 것이다. (296)

운전자는 과속방지턱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그의 행동을 변형한다. (296)

이러한 맥락에서 우회로의 개념과 번역의 개념은 목표와 기능의 정의에 있어서의 전환뿐 아니라, 표현의 질료 자체의 변화 또한 포함하는 것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297)

엔지니어의 프로그램은 콘크리트에 위임되며, 이러한 전환을 고려하면서 우리는 언어적 은유의 상대적인 편안함을 떠나서 알려지지 않은 영역으로 들어선다. (298)

한 사물object은 한 행위자를 대신하며, 부재하는 제작자와 일시적인 사용자 사이의 비대칭을 창조한다. (300)

지금 우리 인간의 존재를 공유하는 다른 행위소에게로 우리가 행위를 위임한 것은 여태껏 발전해서, 반물신주의의 프로그램만이 우리를 인공물의 매개가 있기 이전의 세계인 비인간의 세계로, 잃어버린, 환영 같은 세계로 이끌 수 있을 뿐이다. (302)

‘기술적’은 좋은 형용사, ‘테크닉’은 형편없는 명사

기술적이라는 형용사

1) 하나의 하위프로그램 또는 일련의 하위 프로그램에 적용됨(303)

2) ‘기술적’은 존재하며 없어서는 안되지만 보이지 않는 이러한 이차적인 기능을 점유한 사람, 기교, 대상의 종속적인 역할을 나타냄(303)

3) 우리가 “우선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가 있다”고 말할 때와 같이, 이 형용사는 하위프로그램의 순조로운 기능에서 걸림, 장애, 막힘, 문제를 의미함(303)

4) 무엇이 목표이고 무엇이 수단인지에 대한 불확실성 (304)

 

사물창조신화 : 진보의 신화에 대한 대안이 있는가?

근대주의의 합의에서 객체는 자연 안에, 주체는 사회 안에 수용되었다. … 객체와 주체는 오직 서로 맞설 수 있던 반면에, 비인간은 번역, 접언, 위임, 외행 이전과 하행 이전의 핵심 과정을 통해 인간에게 포개질 수 있다. (306) 

이원론을 버리자는 것이 모든 것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집합체 내의 다양한 부분의 상이한 특징을 지워버리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307)

가장 중요한 것은 사물에게로 주체성을 확장하거나, 인간을 사물처럼 다루거나, 기계를 사회적 행위자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며, 인간과 비인간의 포개짐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전적으로 주체-객체 구분을 사용하기를 피하는 것이다. (307)

테크닉은 물신이 아니며, 예측할 수 없으며, 수단이 아니라 매개자이며, 수단인 동시에 결과이며, 바로 이 때문에 사회적 직조와 관련되는 것이다. (312)

과학전쟁의 중심에는, 과학의 객관성과 기술의 효율성을 약화시키는 사람들은 세상을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중세로 퇴보하도록 이끌려고 한다는, 그리고 놀랍게도 과학학의 통찰이 왠지 ‘반동적이라는’ 강력한 고발이 놓여있다. (314)

객관성과 주관성의 관계를 더 분명하게 만드는 대신에, 시간은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에게, 유래 없이 거대한 수준의 친밀함에서, 유래 없이 거대한 규모로 얽혀들게 만든다. (315)

 

사물창조신화(333, 그림)

“우리는 예전보다 더 많이 알고있습니까”에 대한 대답

1)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한편에 놓인 사실과 다른 한편에 놓인 사회 사이의 혼란으로부터 더 멀리 탈출시키는 것을 의미한다면 -> ‘아니다, 우리는 더 많이 알지 못한다’

2) 우리의 집합체가 그것 스스로 더욱 깊고 더우 친밀하게 인간과 비인간을 연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면 -> ‘그렇다, 우리는 더 많이 안다’ (317)

 

질문

1. 외행이전과 하행이전의 차이? (300) <존재와 부재의 차이?>

한 사물은 한 행위자를 대신하며, 부재하는 제작자와 일시적인 사용자 사이의 비대칭을 창조한다. 이러한 우회로와 이러한 하행 이전 없이는, 어떻게 선언자가 부재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선언자가 거기에 있거나, 혹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하행 이전을 통해서 부재와 존재의 다른 조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300) 

 

2. 푸코의 장치?

목적있는 행위와 의도성은 사물의 특성이 아닐 수 있지만, 그것이 인간의 특성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제도의 특성, 기구의 특성, 그리고 푸코가 장치dispositive라고 부르는 것의 특성이다. (305)

 

7장 과학전쟁의 발명

 

이 장에서 라투르는 <고르기아스>에 대한 독해를 통해 ‘힘에 대항한 정의의 투쟁’이라는 구도가 어떻게 연출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소크라테스와 칼리클레스는 다수결의 원칙을 깨는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지만, 군중의 법칙을 깬다는 목적(345)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플라톤의 연출에 의해 칼리클레스는 ‘허수아비 칼리클레스’와 ‘인류학적 칼리클레스’ 두 역할을 맡게 된다. 칼리클레스는 군중에 맞서는 강력한 힘인 자연법을 내세우며 이를 엘리트주의적인 전문지식으로 등장시킨다. 소크라테스는 진리의 우위성을 주장하며 이를 “비인격의, 초월적인 자연법, 힘보다 더 센 힘”(353)으로서 등장시킨다.

소크라테스와 칼리클레스는 서로 다른 종류의 지식을 중 어느것이 최선인지 겨룬다. 소크라테스는 이 대결에서 질 것처럼 보이지만(359) 그는 ‘진리의 맥락’을 내세움으로써 칼리클레스에게서 승리를 쟁취한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지식’과 ‘노하우’에 대한 구분을 제시함으로써 군중들로 하여금 우월한 자연법(362)에 호소하도록 한다. 플라톤에 의해 연출된 고르기아스는 이를 반대하며 수사학 외의 전문 지식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고르기아스는 패배하게 되지만 라투르가 주목하는 것은 군중, 즉 ‘아테네의 사람들’이 패배했다는 사실이다.

  

군중 혐오

소크라테스가 비이성적인 사람에 대항해 이성을 청원한 것은 사실 칼리클레스가 ‘힘의 불평등한 분배’를 요구한 것의 모방이다. (344) 

숫자와 긴급함, 중요성 때문에 공포에 질린 그들은 또 다른 급진적인 해결책, 즉 다수결의 원칙을 깨고 그로부터 탈출하라는 원칙에 동의한다. (346)

 

다수결의 원칙을 깨는 최선의 방법

칼리클레스는 ‘단순한 강제력’으로서의 힘이 아니라, 반대로 힘을 약하게 만들 무언가를 원한다. (348) -> 자연법에 대한 호소 = “비인간성만이 비인간성을 진압할 수 있다”(349) 

힘은 군중의 법칙을 깨부수고 모든 관습적인 재산권에 우선하는 정의를 부과하는 엘리트주의적이고 특화된 전문지식으로 등장한다. (350)

우리는 정의가 없으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불평하지만, 두 인물, 즉 소크라테스와 칼리클레스가 모든 다른 사람들에 대항하는 이 전쟁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352)

목적은 똑같다. 강제적인 지배를 넓게 정의한 칼리클레스마저도 절대로 소크라테스가 그의 지식을 위해 요구하는 지배적이고, 독점적이며, 논의의 여지가 없는 힘의 위치를 꿈꾸진 않는다. (353)

진리가 무대에 나타나면, 그것은 다른 모두에게 맞서는 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비인격의, 초월적인 자연법, 힘보다 더 센 힘으로서다. (353)

플라톤이 고의로 칼리클레스와 고르기아스의 입장을 오도한 반면 소크라테스를 결정적인 말을 하고 진지하게 응대하는 자로 그렸다는 것을 안 지금, 광장 공포증이 있는 미친 과학자와 ‘금발 야수’ 중 누가 더 위험한가? 정의와 힘 중 누가 민주주의에 더 해로운가? (357)

 

소크라테스, 소피스트, 군중의 삼자 논쟁

논쟁에 충분할 만큼 공약 가능하게 남은 것은 두 가지 전문 지식의 상대적인 특질로, 하나는 소크라테스의 손에 있고, 다른 하나는 수사가의 손에 있다. (358)

소크라테스의 해결책은 더욱 강력하다. 그가 손에 쥐고 있는 수학적 증명의 멋진 비밀은 그것이 누군가로 하여금 무조건 동의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단계적인 설득이라는 것이다. (361)

소크라테스는 증명의 위치지어지지 않은 지식을 가지고는 그 스스로 이 실제 장소의 실용적 지식을 대체하지 못한다. (361)

가엾고 무지한 다수의 이등 지식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증명에 관한 지식은 보통 사람들의 기술 및 수법과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 후, 그들은 자신의 전문지식의 형태가 텅 비어있다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 (364)

가장 논리적이지 않은 것이 ‘보편적인’ 논리, 즉 정치체 전체를 동시에 신경쓰고 있는 모두를 상대로 이겼다. 사람을 지배할 능력이 전혀 없다고 스스로 고백한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을 지배한다. (366)

소피스트의 패배는 아테네 보통 사람들의 패배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366)

힘과 이성 사이의 극적인 대립 대신, 우리는 세 가지 종류의 힘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소크라테스의 힘, 칼리클레스의 힘, 그리고 사람들의 힘이다. (368)

 

질문

1. 라투르는 그동안 사회학자들이 다양한 행위소들의 연결망에 관한 문제를 그저 과학자의 일로 치부하고 그들의 행위를 사회라는 실체로서 설명해온 것이 과학의 정치성을 간과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라투르의 주장처럼 근대적 이분법 등 근대적인 것을 모두 폐기하는 사유 혹은 실천은 대안으로서 받아들일만 한가? 혹은 라투르의 사유는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강력한 정치성을 지닐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수많은 행위소들 사이에서 한정된 자원 아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며 책임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등, 우리는 라투르의 이론을 경유하지 않고도 과학과 기술의 객관성, 합리성에 대한 맹신의 위험성을 숙고하고 해소하기 위해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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