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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르케이즘의 정치학 5강 후반부 발제

유택 2021.10.13 19:23 조회 수 : 28

제 5부 폭력과 아나키

 

16. 러시아의 테러리즘과 니힐리즘

 

개량주의에서 테러리즘까지

 

1860년을 기점으로 러시아의 정치투쟁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헤르첸과 네차예프라는 이름은 차르주의에 맞선 투쟁의 두 가지 유형을 의미하며 동시에 두 시대로 나뉘는 투쟁의 역사를 상징한다.

헤르첸은 자유주의적 휴머니스트인데 차르(알렉산드르 2세)의 개혁의 실패로 그의 영향력은 쇠퇴하고 혁명적 급진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온건한 절대자유주의자들은 권력과 결탁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소수의 지식인 집단과 학생 혁명가가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구체적인 행동과 테러리즘이었다.

 

인민주의와 친로파

 

대다수의 인텔리겐치아는 러시아 민중, 특히 농민 (인구80% 이상 차지) 이야말로 사회적 정의의 열쇠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혁명은 어느 날 농민 무리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 점에 대하여 러시아에서는 발전 단계 상에서 다른 서구 국가들처럼 부르주아 단계를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었다.

1870년대의 러시아 인민주의자는 경제보다 인간의 삶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니힐리즘 / 테러리즘

 

크로포트킨은 니힐리즘을 테리러즘과 혼동하지 말 것을 강조하였다.

 

테러리즘은 정치적인 투쟁의 특정한 조건들, 즉 역사적으로 주어진 어떤 순간에 생겨난 것이다. 그것은 존속되다가 이어 종말을 맞이했다. 그것은 다시 나타날 수도,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니힐리즘은 러시아 지식인 계급의 삶 전체에 흔적을 남겼으며 그 흔적은 앞으로 수년 동안 지속될 것이다. / 크로포트킨 《삶의 언저리에서》 304쪽

 

니힐리즘은 종교적 믿음과 금욕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니힐리스트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절대적인 신뢰를 회복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문명의 거짓됨, 허위, 모든 관습적인 위선을 멀리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트카체프

 

러시아에서 마르크스가 알려진 것도 그에 의해서였다. 블랑키와 마찬가지로 혁명을 완수하는데에 민중보다는 소수의 행동을 더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일치했다. 혁명은 ‘보수주의 국가’에서 ‘혁명적 국가’로의 이행을 위하여 권력을 쟁취하는 방식으로 지속된다.

 

17. 네차예프

 

삶의 출발점 / 네차예프와 바쿠닌

 

바쿠닌은 네차예프를 반갑게 맞아들여 그의 후계자로 삼았다. 네차예프가 본질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국제적인 혁명가로서 위대한 명성을 획득하는 것과 더불어 그의 조국을 되찾을 수 있는 힘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인민재판 / 이바노프 살해

 

네차예프는 조직 구성원들에게 오직 그 자신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상부 위원화에서 내려오는 분노를 주입했다.

이바노프가 ‘인민재판’을 탈퇴하여 스스로 새로운 혁명 조직을 세우려고 하자, 네차예프는 그를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바쿠닌과의 결별

 

바쿠닌은 네차예프의 태도에서 의구심을 갖기 시작.

내가 당신에게 그를 칭찬하는 편지를 보냈던 과거의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 그를 멀리하라는 충고가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오 / 《바쿠닌과 네차예프의 관계》

 

생매장 / 혁명가의 교리문답 / ‘네차예프치나’ (네차예프의 반란이란 뜻...?)

 

<혁명가의 교리문답>의 저자를 바쿠닌이 아니라 네차예프로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혁명가의 교리문답>은 네 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스로에 대한 혁명가의 자세, 동지들에 대한 혁명가의 자세, 사회에 대한 혁명가의 자세, 민중에 대한 혁명단의 자세. <교리문답>은 니힐리즘 유형에 속하는 혁명가의 자세를 보여준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철저한 행동주의적 성격이다. 일반적인 혁명가의 관점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18. 프랑스 아나키스트의 테러 행위

 

나는 파리 한 마리 죽이지 못하더라도 사상의 이름으로 사나워질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 줄리앙 방다

 

결별과 주변화 : 중앙회의 / 개별적 재개

 

파리코뮌 (1871년 3월 18일 ~ 1871년 5월 28일) 이후에 잇따랐던 탄압은 프랑스 노동운동에 끔찍한 일격을 가했다.

 

비합법 노선 안에서 정치적 행동이라는 명분으로 경범죄에 해당되는 행동이 행해졌는데, 이는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게다가 권력의 입장에서 볼 때 아나키스트들은 보통 법을 위반하는 자들로 여겨졌다. 이런 와중에 아나키스트들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모든 혁명가가 합법성에 반하는 행동을 보였다.

 

라바숄 / 오귀스트 바이양 / 에밀 앙리 / 특별법

 

정부가 아나키즘을 근절시키기 위한 방침으로 제시한 이러한 법적 조치 (특별법) 는 큰 반발을 샀다.

 

서른 명의 소송 / 보노 일당 / 원자폭탄 시대와 테러리스트의 귀환

 

그들은 아나키스들이었다. 그들이 노동을 증오하는 것은 육체적 노동이 인간을 고귀하게 만들기는커녕 인간을 바보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들이 사유재산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것이 한 개인으로 하여금 다른 개인에게 치유 불가능한 적대감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 베니토 무솔리니, 《파진 리베레》

 

19. 전쟁에 뛰어든 아나키스트들

 

우크라이나의 네스토르 마흐노 : ‘아나키의 기병’

 

1918년 3월, 정부의 중심이 모스크바로 이동하자 페트로그라드의 아나키스트들도 새로운 수도로 자리를 옮겼다. 아나키스트들이 볼셰비키 정권과 연대하지 않는다면 아나키스트의 씨가 말라버릴 상황이었다. 혁명을 등에 업은 새로운 체제는 이들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이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곧 형제이자 적인 이들 사이에서 유혈이 낭자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던 끝에 아니키스트 조직은 숙청당했다.

 

마흐노는 모스크바에서 크로포트킨과 레닌을 만나지만 흡족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스스로 ‘종이 위의 혁명’이라 부른 것에 깊이 실망한 그는 자신만의 고유한 방책, 즉 농민전쟁을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는 조직화에 대한 편견이 깊이 뿌리내려 있었고, 이 때문에 마흐노프쉬치나 (‘마흐노의 반란’이라는 뜻이다) 는 고립을 벗어날 수 없었다.

 

볼셰비키파와 마흐노파 간의 갈등은 절대적으로 화해할 수 없는 두 혁명관을 예시하고 있다. 한쪽은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를 주축으로 보편적 계급 혁명을 목표로 하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이고, 다른 한쪽은 농민의 아나키즘적 인민주의였다. 마흐노프쉬치나의 약점은 대지의 사람들에 의한 운동에 머물렀다는데 있다.

 

두루티, 절대자유주의의 전사

 

스페인 사람. 1931년 공화국의 도래로 두루티의 혁명 활동과 전력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까지 두루티는 개인적으로 또는 아나키스트로서 과격파의 한 활동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는 대중들 한가운데에서 혁명활동을 이끌어야 했다.

두루티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 물음은 마흐노의 경우와 같은 문제에 부딪히게 만든다. 어떻게 한 사람이 아나키스트이면서 동시에 전사일 수 있는가? 이것은 마흐노와 두루티가 내전이라는 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이들의 아나키즘은 전쟁하는 아나키즘이였고, 러시아에는 ‘전쟁하는 공산주의’가 있었다.

두루티는 어쩔 수 없이 전투를 이끌어야만 했는데, 그 전투의 목표는 정치 이데올로기를 동반할 수 밖에 없었다.

스페인에서 공화주의자들 곁에서 아나키스들이 이끈 전쟁은 정치권력의 정복을 위해 무장투쟁을 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스페인의 아나키스트들은 더 멀리, 더 먼 것을 겨냥했다.

 

20. 아나르코생디칼리슴 : 생디칼리스트 혁명가들

 

페르낭 펠루티에

 

페르낭 펠루티에가 짧은 일생 동안 가장 과격한 혁명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폭력에 의지하지 않고 피를 흘리지 않으면서 부르주아 계급의 질서와 자본주의 사유재산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근절시킬 수 있는 것으로, 이는 불법성의 영역으로 나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사상의 힘”이란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펠루티에의 모든 노력은 두 가지의 위험 요소, 즉 의회 중심적인 기회주의와 비합법적인 극단주의를 피하며 진정한 프롤레타리아의 방식을 세우는 것이었다.

펠루티에와 절대자유주의 정신 간에 어떤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분명히 그는 언제나 아나키스트에 반대하였고 노동자들의 계급 행동에 가장 호의적이라는 이유로 공화주의자들과 실질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정한 절대자유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직접행동

 

아나키스트들이 조합에 가입하면서 노동운동은 새로운 비약을 맞이한다. 직접행동의 개념은 펠루티에에 의해 제기된 것으로서 그 논리는 절대자유주의 이론에서 자주 거론되는 주제와 연관이 있다.

 

조르주 소렐, 총파업의 신화

 

프루동 사상의 연장선상에서 펠루티에와 아니키스트 개념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소렐은 프롤레타리아 고유의 ‘문화’와 ‘도덕’의 개념을 고수하였고, 이렇게 해서 생디칼리슴만이 정치인들과의 양도와 타협을 벗어날 수 있는 순수와 역동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조합을 통한 투쟁만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를 위한 투쟁을 진행시킬 수 있도록 하며, 그들 스스로의 언어로 자기 계급의 이익을 수호할 수 있게 한다.

펠루티에에게 깊이 사로잡혀 있었던 소렐에게 총파업의 개념은 그의 혁명적 행동 개념의 근간이 되었다. 소렐에게는 총파업이 실제를 위한 원칙적인 지침으로 변한 것이다. 이는 사상보다 강한 ‘신화’였다.

 

결론을 대신하여 : 아나키즘은 계속될 것인가

 

정치는 항상 필연적으로 권력과의 관계속에서 나타난다. 그러한 유희 속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아나키스들이다.

정치의 경우에 자발성은 권력 조직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절대자유주의를 위한 투쟁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아나키스트들은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권력 조직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새로운 권력의 횡포로 인하여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위험성이 발견되면, 결국 그것을 제거하려고 할 것이다. 아나키스트는 대체 불가능한 역사의 근원처럼 항상 타인을 위해 싸워야 한다. 그들은 씨앗을 뿌리되 수확을 거두어 들이지는 않는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운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꿈꾸는 자유, 투쟁으로 얻으려는 자유는 영원히 인간의 상상속에서 맴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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