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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철학 4강 발제 (2)

노을 2021.10.06 21:31 조회 수 : 61

2. 「수수께끼적 성격∙진리내용∙형이상학」 (T.W. 아도르노, 『미학이론』, 홍승용 옮김, 문학과 지성사, 1984.)

신화의 비판과 구제

미학을 통해 예술 작품을 해석학적 대상으로서 파악할 수는 없다. 예술의 파악 불가능성만을 파악할 수 있다. 예술 작품의 정신은 작품을 통해 외화됨으로써 전율을 만들어낸다. 예술은 현실적인 역사 진행에 관여한다. 정신화로서의 예술의 역사적 과정신화에 대한 비판 과정이자, 신화의 구제 과정이다. 상상을 통해 기억되는 것의 가능성은 이 상상에 의해 강화되기도 한다. 예술에서 정신이 보여주는 이 양면적 운동은 예술의 경험적 역사라기보다 개념 속에 내재하는 예술의 근원적 역사다.

 

미메시스적 요인과 어리석음

미메시스는 정신 이전적이며 정신에 반대되는 것이지만, 정신에 불을 붙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Q : 정신은? 일종의 혼인가?

 

정신은 작품 구성의 원칙으로 되었다. 그러나 정신의 목표는 구성이 되어야 할 미메시스적 충동들로부터 정신이 나타나고, 그러한 충동에 따르는 경우에 달성된다.

예술 작품의 합리성은 그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요인 속에서 소멸하는 한에만 정신으로 된다. 구성적 요인과 미메시스적 요인의 차이는 어떠한 예술 작품을 통해서도 없앨 수 없는, 미적 정신의 원죄와도 같다. 그에는 어리석고 어릿광대와 같은 특성이 상응한다.

 

어리석음은 예술의 미메시스적 잔재이며 예술이 예술로서 독립하게 된 데에 대한 대가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계기들은 작품의 비의도적인 계층에 가장 접근하며, 위대한 작품에서는 작품의 비밀에도 접근한다. 짐승/바보/어릿광대라고 하는 짜임 관계는 예술의 한 가지 기본 계층이다.

 

존재 근거

예술 작품의 수수께끼적 성격은 언제나 역사와 연루되어 있다. 역사를 통해 예술은 한 시대의 수수께끼로 되었으며 또한 역사를 통해 언제나 다시 수수께끼로 되기도 한다. 역으로 예술 작품에 권위를 부여한 역사만이 작품의 존재 근거에 대한 고통스러운 문제를 작품으로부터 멀리해 준다. 예술 작품의 수수께끼적 성격의 조건은 그것의 비합리성보다는 합리성에서 찾을 수 있다. 작품이 계획적으로 만들어지면 만들어질수록 수수께끼적 성격은 부각된다.

 

Q : 수수께끼와 역사의 상관성이 이토록 깊다면, 카프카의 수수께끼 또한 역사적으로 읽어야 하는가?

 

수수께끼적 성격과 이해

예술작품과 예술 전체가 수수께끼다. 무엇인가를 말하면서 감춘다. 이 점이 언어적인 측면에서 본 수수께끼적 성격이다. 수수께끼적 성격은 이해와 다르다. 한 작품을 이해할수록 그것의 수수께끼가 해명되지만, 작품에 본질 구성적인 수수께끼적 성격은 해명되지 않는다. 완전히 해명되는 작품은 예술 작품이 아니다. 예술작품은 수수께끼다. 알아맞히기 그림이다.

 

Q : 예술에서는 정신(말하는 것)과 수수께끼(감추는 것)가 대등하게 중요하다?

 

변용

예술은 판단을 멀리함으로써만 판단을 한다. 예술 작품이 의미적인 언어와 다른 점은, 작품 속에 흡수된 의미가 변화하여 어떤 우연적인 상태로 격하되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운동은 미학적 형상물에 의해 구체적으로 미리 제시되어 있다.

 

수수께끼 문자 해석

예술 작품의 수수께끼적 성격은, 작품에서 체험되는 내용 혹은 미학적인 이해 속에 위치하는 것이라기보다,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나타난다. 이해했다고 여기는 순간 수수께끼는 또 나타난다.

 

: 수수께끼 ↔ 이해

 

미메시스적 능력은 작품의 운동 곡선에 대한 모방으로서의 예술적 재현 과정에서 가장 현격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수수께끼적 성격을 넘어서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이해의 총괄 개념이다. 그러나 예술 작품의 체험은 조금이라도 약화되면 곧 작품의 수수께끼를 이그러진 모습으로 보여주게 된다. 그러한 체험은 부단히 수수께끼적 성격의 위협을 받는다.

 

Q: 앞서 미메시스는 정신에 불을 붙이는 긍정적인 요소로 기능하는데, 미메시스가 모방의 최상위 상태(“비동일자/타자의 본질에 육박하는 모방, 사물화 경계)를 말한다면, 미메시스는 모방과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동일하진 않지만 단순히 재현하는 모방보다 상위에 놓인 개념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Q: 미메시스가 이해의 총괄 개념이라면, 미메시스는 예술이 아니라고 봐야겠지요?

 

Q: 맥락상 “체험”은 미메시스로, 이해로, 경험으로, 재현의 재료로 봐야 할까요?

 

모방으로서의 해석

해석을 하지 않는 재현은 모두 무의미하다. 예술은 해석을 요한다. 예술작품은 동일성의 강박에서 벗어난 자체 동일성이다. 미메시스적인 것은 미메시스적인 반응을 기대한다. 예술 작품이 단지 자체만을 모방한다면, 단지 그것을 모방하는 자만이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

 

Q: 재현은 모방인가? 재현은 연주, 공연인가? 그렇다면 예술은 재현이고 모방인가?

Q: 미메시스적인 것은 ‘예술적 재현’ 혹은 ‘의미 있는 반복’이고, 모방은 ‘복제’인가?

Q: 예술에 의한 인식과 개념적인 인식은 어떻게 다른가?

: 대본 / 악보 ----> 이해 : 개념적인 인식? ----> 응결된 모방 ---> 본질 구성적.

연기자 / 연주자 ------> 이해할 수 없다. ----> 수수께끼. : 예술에 의한 인식?

 

악보는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연주자를 위한 지침의 총괄 개념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체와 동일한, 작품의 응결된 모방이며, 그런 한에 있어서 그것은 의미적인 요인을 지니기는 해도 본질 구성적이다.

작품이 연주되는 일은 작품 자체와 무관하다. 그러나 무언의 내적 체험을 이상으로 하는 작품 체험이 작품을 모방한다는 사실은 작품과 무관한 일이 아니다. 그러한 모방은 예술 작품의 부호들로부터 그 의미의 연관 관계를 간파해 낼 뿐 아니라 그것을 추적하기도 하며, 예술 작품이 그리는 곡선을 따라 움직이기도 한다. 예술 작품의 진리는 내면의 진리로 상상되며, 모방은 이러한 내면에 이르는 길이다.

 

: 이 구절에서는 모방을 아래의 두 가지로 분리하여 읽어야 할까요?

1) 응결된 모방 : 본질 구성적 : 구성적 요인 ----> 악보

2) 후자의 모방(작품을 모방, 그러한 모방, 모방) : 의미적인 요인 : 미메시스적 요인---> 연주

 

<장벽>

칸트의 강령상으로 즉자로부터 인간을 차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장벽을 통해, 그러한 즉자의 고향이면서 또 즉자적인 것과 우리에 대한 것과의 구분이 없는 영역이기도 한 예술 작품 속에서는 즉자가 수수께끼의 형상으로 된다. 예술 작품은 어떤 차단된 것으로서 즉자 존재의 형상을 이룬다.

 

Q: 즉자란 무엇인가? 사물 자체(Ding an Sich)

Q: <장벽>은 무엇인가? 장벽이 아니고, <장벽>인 이유는?

 

단절된 초월성

예술 작품의 수수께끼적인 요인은 그것이 단절된 존재라는 점이다. 만일 예술 작품에 초월성이 존재한다면 작품은 불가사의할 뿐이지 수수께끼는 아닐 것이다. 예술 작품이 수수께끼인 것은 단절된 상태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파손하기 때문이다. 예술 작품은 완결된 듯한 모습을 보여도, 어딘가 잘려 나간 상태로 있게 된다. 예술 작품이 의미하는 바는 작품의 본질적인 요인이 아니다. 그와 같은 사실은, 작품의 의미가 마치 어떤 장벽을 통해 차단되어 있는 듯이, 작품 자체로부터 드러난다.

 

Q: ‘초월성’과 ‘단절된 초월성’은 대립적이고, ‘단절된 초월성’은 초월성과 떨어진 ‘단절된 존재’를 가리키는가?

Q: 중요한 것은 ‘작품의 의미가 아니라, 작품 자체다’라는 것을 말하는가?

 

사람들이 즐겨 말하는 다층성은 수수께끼적 성격에 대한 잘못된 긍정적 명칭이다. 그러나 수수께끼적 성격에는 카프카가 돌이킬 수 없게 펼쳐놓은 반미학적 양상이 따른다. 예술 작품은 신화로부터 겨우 벗어 나왔지만, 자체에 포함된 합리성의 계기 앞에서 파산함으로써 다시 신화로 떨어져 버릴 위기에 처한다. 예술은 미세시스적으로 수수께끼를 만들어냄으로써 그러한 합리성의 계기인 정신과 매개되어 있다. 이는 정신이 수수께끼를 생각해내는 것과 같다.(204)

 

정신은 어떤 의도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수께끼적 성격 속에서 작용하고 있다. 예술의 수수께끼적 형상은 미메시스와 합리성의 짜임 관계이다. 예술이 목적으로서 의미를 부여한 바 있는 그러한 것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예술 자체는 무엇인가? 예술은 극히 무의미한 요인을 형상화함으로써 의미를 획득한다. 이처럼 예술은 수수께끼적 성격으로 인해 내재적으로 명료한 표현을 추구하게 된다. 그런 한에서 작품의 수수께끼적 성격은 작품에서 궁극적인 것이 아니다. 또한 진정한 작품은 언제나 그 해결불가능한 수수께끼의 해답을 제시하기도 한다.

 

Q: 예술의 본질이 수수께끼이기는 하지만, 수수께끼가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말일까요?

 

수수께끼적 성격, 진리 내용, 절대자

예술 작품은 작품의 구성 때문이 아니라, 작품의 진리 내용 때문에 수수께끼적이다. 이는 , 절대자에 대한 의문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예술은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예술은 사라지지 않고 단지 변형되었을 뿐인 태고 시대의 전율과 마찬가지로 수수께끼적이다.

 

진리 내용

예술 작품의 진리 내용은 모든 개별적 작품의 수수께끼를 객관적으로 해결하는 일이다. 각각의 작품들은 해결을 요구함으로써 진리 내용을 가리켜 보이게 된다. 이 진리 내용철학적 반성을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다. 이런 점으로 인해 미학은 정당성을 지닌다.

모든 예술 작품은 수수께끼적 성격의 필요성으로 인해 해석을 수행하는 이성을 지향한다. 최상의 품위를 지니는 작품들은 해석을 기대한다.

진리 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비판이 요구된다. 비판에 의한 작품의 역사적 전개와 그 진리 내용의 철학적인 전개는 상호 작용을 한다.

 

예술과 철학 : 예술의 집합적 사상 내용

철학과 예술은 진리 내용에 있어서 일치한다. 예술 작품의 진리는 철학적 개념의 진리다. 철학과 예술이 일치하는 조건은 보편성의 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보편성집합적이다. 예술 작품 속에 보이는 집합적 기억은 주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주체의 충동 속에는 집합적 반응 형식이 나타난다. 예술 작품은 주관적인 미메시스적, 표현적 계기를 통해 객관적 상황과 합류한다. 예술 작품은 사회적이다.

 

비가상적인 것의 가상으로서의 진리

진리 내용은 결코 만들어진 것일 수 없다. 예술에 있어서 이 만드는 행위는 만들어진 것 자체와는 다른 것, 예술이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유일한 노력이다. 이것이 예술의 정신이다.

 

Q: 진리는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라는 말은, 진리는 가상이 아니라는 것을 뜻하는가? “비가상적인 것의 가상”이란 진리가 ‘가상(모방)이 아닌 가상(미메시스, 예술 정신)’이라는 말로 풀어볼 수 있을까?

 

예술에 있어서 인 것은 어떤 비존재자다. 예술에서는 동일성을 설정하는 이성이 자연이라고 칭하는 타자가 문제시된다. 이 타자는 단일체나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다수이다. 그래서 예술에서의 진리 내용은 예술 작품의 추상적 상위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다수로서 나타난다. 예술의 진리 내용이 예술 작품과 결합하고 있다는 점과 동일시에서 벗어나는 요인의 다수성은 서로 상응한다.

예술을 미적인 가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충분하지 못하다. 예술은 비가상적인 것의 가상으로서 진리를 지닌다.

 

: 예술 작품(소멸, 껍질, 만들어진 것, 미적인 가상)

vs 진리 내용(다수, 자연, 타자, 만들어지지 않은 것, 비가상적인 것의 가상)

 

Q : 비가상적인 것의 가상이란, 달리 말하면 가상(예술작품)에 들어있는 비가상적인 것(진리)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결국 비가상적인 것은 ‘역사적’인 것이고, 아도르노는 역사적인 가상(유토피아, 행복에의 약속)을 담고 있는 것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본 것일까요?

 

예술 작품은 현실을 모방하기보다 오히려 위치를 바꾸어 놓는다. 현실이 예술 작품을 모방해야 한다. 예술 작품에서 비가상적 요인은 작품의 부정성에 대한 한계이다. 진리가 가상을 초월하게 되는 단계에 예술은 자체의 가장 치명적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예술 작품의 현존재에 대한 부정으로서의 진리 내용은 작품에 의해 매개되지만, 작품이 언제나 그 진리 내용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예술 작품의 진리 내용이 작품에 의해 설정된 바를 초월하는 일은 작품이 역사와 접하여 자신의 형태를 통해 역사에 확정적 비판을 가함으로써 가능하다.

 

치명적인 것에 대한 미메시스와 화해

진리 내용은 작품에서 부정적인 것일 뿐이다. 예술은 사회에 반대하면서도 사회의 피안에 위치하는 입장을 취할 수는 없다. 예술은 자체에 반대되는 것과 동화됨으로써만 그것에 반대할 수 있다. 이것이 보들레르의 악마주의가 지니는 의미이며, 이로써 그것은 이미 그 당시의 시민적 도덕에 대한 비판을 훨씬 넘어선다.

예술은 단지 치명적인 면을 통해서만 화해에 관계한다. 예술 작품의 화해적 요인을 그것의 단일성 속에서 찾는 데에도 근거는 있다. 분열을 유발하기도 하는 단일성은 화해로 넘어간다. 예술 작품 속의 정신은 더 이상 자연에 대한 적수가 아니다. 정신은 화해를 꾀하는 것으로 완화된다. 화해는 비동일적인 것을 지각하는 자연 자체의 반응 방식이다.

예술은 비동일적인 것과 동일해진다. 이것이 예술이 지니는 미메시스적 본질의 현 단계이다.

반응 방식으로서의 화해는 예술이 화해의 이념을 거부하는 경우에, 엄밀한 형식을 지니는 예술 작품 속에서 이루어진다. 비화해적인 화해는 예술의 비현실성을 조건으로 한다. 예술은 자체의 진리를 통해서도, 경험적 현실에서 거부되는 화해는 통해서도, 화해가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기만함으로써 이데올로기의 공범자가 된다.

 

Q: 치명적인 것이란? “잔인한 면” “덧없는 것” 죽음을 대가로 하는 것인가? 비동일적인 것인가?

Q: 치명적인 것에 대한 미메시스란, 비동일적인 것과 동일해진다는 것인가?

Q: 화해와 비화해적인 화해는 어떻게 다른가?

 

어둠과의 연관성

예술 작품은 그 자체에 지니지 않는 상태를 형식을 통해 기대하는 점에서 유토피아이다. 그러나 이제 유토피아를 어둠이 대신한다. 그렇지만 예술에는 유토피아가 숙명처럼 따라다닌다. 예술은 가능한 것을 몰아낸 현실에 반대하는, 그 가능한 것에 대한 기억이다. 예술은 파국적인 세계사에 대한 상상 속의 보상이기도 하며, 필요성의 속박 속에서 이루어질지 확실하지 않은 자유이다.

영속적인 파국에 대한 예술의 긴장 관계 속에는 예술의 부정성, 예술이 어둠과 접하는 부분이 함께 들어있다. 예술 작품은 총체적인 부정에까지도 이르는 그 부정성을 통하여 약속으로 된다. 예술은 행복에 대한 약속이지만 이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Q: 행복에 대한 약속이란? 유토피아? 가능한 것에 대한 기억?

Q: 예술은 앞장에서 나온 대로, 행복에의 약속(promesse du bonheur)이지만, 현재의 예술, 전쟁 이후의 예술은 이러한 행복을 약속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아도르노의 의지(부정성, 어둠, 부정의 변증법, 수용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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