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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원 에세이

김지현 2021.06.24 17:16 조회 수 : 38

나는 어떻게 채식주의자가 되었나

‘고기로 태어나서’(한승태)와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이진경)을 읽고

 

한승태는 식용동물농장에서 일하며 겪은 일을 <고기로 태어나서>라는 책에 기록한다.

부화장에서는 20일마다 수십만 마리의 병아리가 부화한다. 병아리들은 알을 깨고 나오자마자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상품과 쓰레기로 분류된다. 수평아리는 알을 못 낳는 데다 성장 속도가 더뎌 상품성이 없기에 쓰레기로 분류된 뒤 산 채로 상자에 발로 꾹꾹 눌려 미어지게 담겼다가 덤프트럭의 컨테이너에 쏟아 부어진다. 상자를 뒤집으면 거대한 살덩어리가 스팸 모양으로 퍽 소리를 내며 컨테이너로 떨어지는데,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병아리가 있어 컨테이너 안을 삐약거리며 돌아다닌다. 그 병아리들 위로 수만 마리의 병아리가 폭격처럼 쏟아지고 다시 그 위로 수십만 마리 분의 알껍질이 쏟아지지만, 그때까지도 컨테이너 깊숙한 곳에서는 삐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한 해 수천만 마리의 수평아리가 태어나자마자 이렇게 죽는다. 그래도 살아남은 암평아리보다는 운이 좋은 셈이다.

상품으로 분류된 암평아리는 산란계 닭으로 자라 가로세로 50센티 크기의 케이지에 네 마리씩 들어가 살게 된다. 세 마리가 들어가면 꽉 차는 공간이라 가장 약한 놈은 바닥에 깔려 지낸다. 서로 뒤엉켜 몸통 하나에 네 개의 머리가 달린 괴물처럼 보이는 닭들은 극도의 스트레스로 서로를 쪼아대 온몸에 깃털이란 게 거의 달려 있지 않다. 닭들은 악취로 숨을 쉴 수 없고 소음으로 미쳐버릴 것 같은 그곳에서 옴짝달싹 못 한 채 알 낳는 기계로 산다.

아주 괴롭고 더없이 참담한 곳을 지옥 같다고 한다. 그런데 축사안은 지옥이다. 나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충격받았다.

 

티브이를 틀면 채널마다 먹방이다. 연예인들이 릴레이로 돼지고기를 굽고, 살찐 개그맨이 주먹만 하게 쌈 싼 고기를 한입에 삼키는 묘기를 부리고, 여자 혼자서 통닭 다섯 마리를 먹어치운다. 골목마다 줄줄이 고깃집이고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고기를 먹는다. 일차로 부족해 이차 삼차 돌아다니면서 먹는다. 이 많은 고기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예전엔 시골집 마당에서 닭 돼지 소를 키웠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농가 마당에서 가축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 뒤로 닭 돼지 소는 고기로만 봤지 살아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사라진 가축들은 대형 축사에서 키운다고 했다. 밖에서는 뭘 하는 곳인지 알 수 없는 창 없는 조립식 건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흉흉한 말들이 떠돌았다. 누군가가 가축들의 참혹한 상황을 말하자 다른 누군가가 고기를 값싸게 먹으려면 어쩔 수 없다면서 값싼 치킨을 포기할 수 있냐고 치킨을 두 번 먹을 걸 한 번만 먹어도 좋냐고 물었다. 다들 고개를 흔들며 화제를 돌렸다. 간혹 그곳 사진을 보게 됐는데 그때마다 나는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다. 알아봐야 달라질 것도 없는데 괜히 입맛을 버릴까 봐 두려웠다.

어쩌자고 그 책을 끝까지 읽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보다 참혹한 곳을 알지 못한다. 거기에 비하면 아우슈비츠조차 견딜만하게 여겨졌다. 나는 잔인한 폭력의 기록을 접할 때면 언제나 나 자신을 피해자 편에 놨다. 그런데 이번에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편이었다. 그 자리에 서니 다른 가해자들이 저절로 이해됐다. 우선 악명 높은 수용소의 일선에서 폭력을 휘둘렀던 이들. 그들도 농장의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가진 게 없어 남들이 꺼리는 일을 하도록 내몰린 처지였을 테고 먹고 살기 위해 그 일을 했을 것이다. 폭력은 일의 일부였으므로 그들은 자신의 선량함을 믿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많은 독일인은 아우슈비츠에 대해 잘 몰랐다고 말했는데, 변명이 아니라 사실일 것이다. 그들도 나처럼 그곳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았을 테고 정말로 잘 몰랐을 것이다. 내가 모르려고 애쓴 건 고기를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생활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였는데, 그들도 그 비슷한 이유로 그랬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동안 배 터지게 먹고 즐긴 일들이 끔찍했다. 쓰던 비누가 사람 지방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게 된 것처럼 끔찍했다.

우리는 어떻게 가축들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걸까?

‘인간은 존엄하고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다.’ 오늘날 당위요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말의 바탕엔 평등사상이 깔려 있다. 인간은 성별 인종 나이 종교에 상관없이 모두가 존엄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인간 아닌 존재를 향하면 인간의 특권을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인간만이 존엄하고, 인간의 생명이 가장 고귀하다. 인간들 간의 구별을 지우는 이 말이 인간과 인간 아닌 것 사이에 선을 긋고 위계를 만드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인 데 반해 인간 아닌 것은 인간을 위한 수단이다. 인간을 위해 자신들의 신체를 바치는 것이 가축들의 운명인 것이다.

나 자신 교과서에서 배운 이런 생각에서 진작에 벗어난 줄 알았다. 나는 인간이 특별하다거나 우월하다는 생각에 줄곧 반대했고 인간은 그저 여러 동물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나는 동물농장을 아우슈비츠에 비교하면서 불경한 짓을 하는 것 같아 주저했다.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동물의 하찮은 그것과 비교하는 게 인간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져서다. 사실 나는 인간과 동물을 동등하게 여기지 않으며 둘 사이에 넘어설 수 없는 위계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창조론자는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일 리가 없다면서 진화론을 인간에 대한 모독으로 여긴다. 그들을 비웃었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것이다.

 

닭 돼지 소는 존엄하고 그들의 생명은 고귀하다. 나는 고기를 안 먹기로 했다. 그러나 고기를 완전히 안 먹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고기는 여러 형태로 거의 모든 음식에 들어간다. 빵과 과자에는 우유와 계란이, 튀김에는 동물성 기름이, 국물 요리에는 소고기다시다가 들어간다. 동물은 음식 재료로만 쓰이는 게 아니다. 나의 샌들과 허리띠는 소가죽이고 내가 겨우내 입는 잠바와 덮고 자는 이불의 충전재는 거위 털이다. 내가 먹는 약은 동물 실험을 거쳤을 것이고 약의 캡슐은 동물의 힘줄로 만든 것이다. 동물에게 나온 것을 전혀 쓰지 않으려면 그 모든 편리와 쾌락을 포기해야 한다. 이번에는 노예제와 가부장제를 끝까지 포기 못 하는 이들이 이해됐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누리는 모든 것들이 노예와 여성의 노동 위에 서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포기하겠는가.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여자로 태어나는 건 죄라고 여자는 불쌍한 동물이라고 했다. 여자로 태어나면 평생 고생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머리가 나빠서 그렇고 무엇보다 여자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우리는 동물, 흑인, 여자의 머리가 나쁘다는 말을 지나치게 자주 한다. 모든 말이 그렇지만 그 말은 상대보다도 자기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면서 마음이 편하기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때때로 꺼림칙한 기분에 사로잡히는데 상대가 그런 대우를 받아 마땅한 열등한 존재라는 믿음은 그 기분을 걷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아버지의 여자 운운은 엄마를 두고 하는 소리였다. 엄마가 고생하는 건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돈도 안 벌면서 집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돈을 벌면서 집안일까지 도맡아 했다. 아버지가 누리는 그 모든 것들은 엄마가 해준 거였다. 아버지는 엄마를 불쌍해 할 게 아니라 엄마에게 고마워했어야 맞다. 그런데 아버지는 엄마를 불쌍한 존재라고 하면서 둘 사이에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가리고 전도시켰다. 나도 마찬가지다. 가축 덕분에 먹고 자고 입으면서도 가축을 불쌍하다고만 했지 고마워해 본 적이 없다.

차별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차별의 메커니즘은 같다. 아버지가 남녀 사이에 그은 선을 나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그었다. 아버지는 남녀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믿었고 나는 인간과 동물이 그렇다고 믿었다. 아버지는 남녀의 생물학적 성차를, 나는 인간과 동물의 생물학적 종차를 그 객관적인 근거로 삼았다. 우리는 그 구별이 자연적이고 자명하므로 거기에 따른 위계와 차별이 당연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성차와 종차는 우리가 믿는 것만큼 자명하지 않다. 생물학적으로도 그렇다. 남녀를 생물학적으로 구분하는 데는 여러 기준이 있겠으나 성염색체에 의한 것이 보편적이다. XX가 여성, XY가 남성이다. 그러나 그 두 가지만 있는 건 아니다. 그 사이엔 X, XXY 등의 여러 조합이 존재한다. 성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종차도 마찬가지다. 종의 기준을 DNA로 삼는다고 하자. 그런데 DNA 결핍으로 태어난 인간은 나머지 인간과 DNA가 같지 않다. 반면에 인간과 영장류의 DNA는 2%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이 경우 영장류는 DNA 결핍의 인간보다 인간에 더 가깝다는 결론이 나온다.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유전자가 뒤섞이고 인간과 기계의 신체가 뒤섞이는 지금 인간이라는 종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지고 있다.

인간의 경계는 유동적이다. 아버지는 여자는 인간이 아니라고 했다. 남녀 사이에 그은 선은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을 가르는 경계였던 것이다. 여기서 인간은 생물학적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권리를 가진 자를 뜻한다. 인간의 권리를 갖기는 쉽지 않다. 여자는 오랫동안 인간이 아니었고 지금도 인간이기 위해 싸우는 중이다. 나는 여자로 태어나 인간의 경계 안팎을 오가면서 경계가 고정불변하는 게 아니라는 걸 경험했다. 인간들 사이에 그어진 모든 선은 인간이 임의적으로 그은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동시에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는 필연적이고 불변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두 가지 생각 사이에 모순이 있다는 걸 까맣게 몰랐다.

<고기로 태어나서>를 읽고 나서 동물권에 관심 가지게 되었다. 처음 동물권이란 말을 들었을 땐 피식 웃었다. 동물에 권리라는 말을 갖다 붙이다니 어이없었다. 처음 여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그랬을 것이다. 동물권이란 동물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고 그것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다. 동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꾸 쓰다 보니 동물권이란 말이 익숙해졌다. 대신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쓰던 말들이 마음 불편해졌다. 이 글에 ‘수평아리가 개죽음당했다’고 썼다가 지우고 ‘수평아리가 죽었다’로 바꿔쓴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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