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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원 「타자성의 자연학」 에세이

로라 2021.06.24.

 

진화의 동력, 동맹

 

진화의 개념은 생물학을 이해하는 것에만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진화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 경이로운 세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 진화는 이 세상을 설명하는 가장 포괄적인 개념이다.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세상에 발표한 시점 전 후로 인류의 사상사는 다윈의 이 전과 이 후로 나누어져야 한다. 진화 개념은 모든 사유의 근거로서 그 바닥에서 작동해야하기 때문이다. 모든 새로운 철학이나 발견이 그렇듯 다윈 역시 그 시대의 흐름 속에 있었고 진화론을 탄생시킨 배아와 같은 사상들의 영향들 속에 있었다. 1831년 비글호에 승선하여 갈라파고스 제도의 자연을 관찰했던 경험과 멜서스의 ‘인구론’을 읽었던 일은 자연계의 생존 경쟁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의 저서를 통하여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의 원리를 도출해내었다. 다윈은 무신론자로 비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여 20여 년간 발표를 미루고 있다가 알프레드 윌리스가 동일한 생각을 적은 편지를 받고 자극을 받아 그 후에야 책을 발간했다. 책의 발간 이후에도 다윈은 ‘종의 기원’이 불러일으킨 과학적, 신학적, 도덕적 논쟁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다윈의 친구이자 생물학자인 토머스 헉슬리가 열정적으로 다윈의 이론을 대중화시키는 것에 앞장섰다. 헉슬리의 대중 강의를 통하여 대중들이 이해하기 시작했던 진화의 개념은 당시의 학자들이 취했던 편향적 태도처럼 진화라는 것이 ‘적자, 생존, 경쟁’이라는 관념이 강하게 뿌리 내리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진화 개념은 다윈의 발표 이 후 80년이 지나도록 자리를 잡지 못하고 연구자들의 철학적 배경에 따라 다양하고도 많은 이론의 저항에 시달리게 된다. 생존경쟁이라는 용어는 유럽의 제1차 세계 대전의 끔찍한 참상에 해명할 만한 구실도 제공했고 독일 나치의 경우 ‘권력 의지’와 ‘생존 경쟁’을 연결 짓고 ‘적자생존’과 ‘초인’을 연결 짓는 조잡하고 통속적인 오해 속에서 남용되기도 했다.

다윈과 동시대를 살았던 러시아의 혁명가이자 아나키스트인 크로포트킨은 당시 다윈주의자들이 신문에 기고하면서 선택한 용어들이 지나치게 경쟁을 강조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이에 반박하는 글을 쓸 것을 결심했는데 그것은 유배생활동안 인접해있던 동물들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를 논문으로 적성한 것이었고 이들을 묶어서 자연 세계의 ‘상호부조’론이란 다른 관점의 진화론을 내놓았었다. 크로포트킨은 유배지에서 지내는 동안 많은 동물과 식물들이 생존을 위하여 서로 협동하는 현상을 많이 목격했다. 그는 당시 유럽 대륙에서 발표되었던 논문을 근거로 자연에서 일어나는 경쟁을 구분하고 싶어 했는데, 첫번째 경쟁은 변화하는 환경에 대하여 종들 간의 경쟁을 말하고 두번째 경쟁은 다윈주의자들이 흔히 자연선택이라고 설명하는 같은 종 내부에서의 경쟁이라고 했다. 환경이 극단적으로 나빠졌을 때는 종 내부의 경쟁이 일어나지만 이 때는 대개의 경우 각 개체가 살아남기 위하여 생존에 모든 에너지를 투여하지 진화적 변이는 오히려 잘 일어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경쟁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진화에 지배적이지는 않다는 주장이다. 다윈이 자신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세상의 해석에 소극적으로 편승하기는 했지만 종의 번영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동물들의 사회성이나 사회적 본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다윈도 인정했던 바이다.

정리되지 못하고 표류하던 진화 개념은 1940년대가 되어 유전학과 자연 선택론을 주요 골조로 하는 “진화의 종합(evolutionary synthesis)”이라는 합의에 이르러 안정적인 개념이 된다. 그렇다고 진화를 모두가 제대로 또는 동일하게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진화에 대한 다양한 가설과 견해들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공생이나 유전자 등의 일부 개념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기도 하다. 과학 자체도 많은 오해를 받고 있지만 생물학을 과학 영역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생물진화론에 대해서는 특히 온갖 혼동과 중상모략이 난무하다. 진화는 하나의 가설이고 이론이라지만 약점이 아니다. 주어진 현상들을 이치에 맞게 설명해내고 포괄적인 일반화를 할 수 있으면 그것은 과학이론이 된다. 칼 포퍼에 의하면 이론은 검증할 수 있고 반증될 가능성도 있으며 예측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 궁극적으로 어떤 이론을 거부할지 수정할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자료이다. 생물학에서는 자료가 아주 풍부하다. 화석의 어떤 지점들을 제회하면 진화를 증거하는 자료들은 대개가 연속상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사이에서는 해석적인 측면에서 많은 오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진화를 피라미드나 선형으로 묘사하는 통속적인 오해는 제쳐두고 진화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오해중의 하나가 다윈이 진화 개념을 설명하면서 보여주었던 계통 발생도에 대한 해석인데 이 계통 발생을 설명하는 ‘생명의 나무’는 분기하는 생명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생명체가 또 다른 생명체 또는 물질들과의 선택적 결합을 통한 창발적 인과 과정이라기 것을 간과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이 진화를 다르게 이해하는 데에도 한몫했다. 분기를 강조하다보니 생명체들의 공생 관계와 상호 의존성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취급되었기 때문에 공생의 관점으로 생명체들의 분기 현상을 보는 시각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최근에는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진화생물학자들이 새로 작성한 생명의 나무가 있다.

 

1. 변이가 일으킨 기원적 사건들

 

진화의 필수 불가결한 선결 조건은 생명체의 변이 가능성이다. 진화는 수많은 요인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변이들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생명체의 변이 발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에는 유전자 변형과 자연선택(적응)의 과정들이 있었는데 다윈과 윌리스는 유전자의 존재를 몰랐지만 이후 신다윈주의자들은 유전적 변이가 주로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한 것으로 여겼고 그런 변이를 일으킨 개체 중에서 외부 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들의 점진적 증가에 따라 개체군 전체가 달라지는 것을 자연선택으로 설명하였다. 또한 다윈의 생전에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던 유성생식 과정 역시 변이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성생식은 감수 분열 과정에서 일어나는 재조합(염색체의 재편성과 재배치)이 자연선택의 재료를 제공하여 더 다양한 표현형의 변이가 일어나게 해주는 것이다. 외부 환경이 급변하고 혹독할수록 생존에 필요한 더 다양한 유전적 변이들이 필요했다.

 

시간을 되돌려 생명체가 탄생한 39억 년 전 돌아가 보자. 그 때부터 진핵생물이 나타난 10~15억 년 전까지는 박테리아들만의 세상이었다. 그 때에도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지속적인 변이가 필요했다. 박테리아들은 환경의 급변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더 많은 유전자들을 받아들여 더 많은 변이를 일으켰다. 박테리아들은 세포분열을 통해 자식에게 유전자를 물려주는 ‘수직 유전자 전달’ 뿐 아니라 새로운 유전자 획득 방법으로 외부에 떠돌아다니던 다른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받아들이는 형질 전환, 다른 박테리아와의 접합, 바이러스를 이용한 형질도입 등의 ‘수평 유전자 전달’도 하였다. 변화하는 외부 환경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외부의 존재들과 소통했던 선택이 유효했는지 박테리아들은 39억년 동안 여전히 세계의 존재자들로 그 영향을 발휘하고 있다.

 

한편 진정세균보다 고세균과 더 가까운 친척인 것으로 밝혀진 진핵생물은 박테리아들의 공생이라는 형태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 린 마굴리스의 가설이 어렵사리 생물학계에 받아들여져 이제는 정설이 되었다. 30억년 가까이 박테리아들만이 지구를 유영하다가 극한 환경에 처한 박테리아들이 서로 먹고 먹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먹이를 소화시켜내는 것에 실패한 결과 어쩔 수 없이 삶을 같이 살아가야하는 상황에서 출현 했다고 보는 입장이다. 자발적이지도 계획적이지도 않았다. 이들은 진화적 사건의 창시자들이 되어 서로를 길들여가며 함께 살기로 했다. 경쟁 관계를 그만두고 상호의존하며 시작된 공생이기에 ‘공생’이라는 단어에 주어진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급변하는 창시자들의 사건(진핵 생물의 출현)에 적용하기에는 어색한 감이 있다. 공생은 매우 친밀하지만 내적으로 역동적이고 서로에 대해 고도의 유연성을 발휘해야하는 아슬아슬한 관계이다. 주어진 처지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일 뿐, 생존을 위한 ‘경쟁’이라는 늬앙스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초기 다윈주의자들이 경쟁만을 강조했다면 공생의 결과라는 진핵생물의 탄생은 낭만으로 치우친 느낌을 준다. 좀 더 균형을 잡아 이 상황을 표현해 보자. 진핵 생물이 계통 발생도에서 거리가 먼 친척인 진정세균계의 남세균 또는 홍색세균과 고세균에 더 가까운 공조상 세균이 공생 관계를 시작하여 발생했다면 남세균과 홍색세균은 고세균은 ‘동맹’을 맺어 이전의 개체는 사라지고 새로운 개체를 탄생 시킨 것이다. (나중에 남세균은 세포 내의 엽록체로 홍색세균은 마토콘드리아가 되어 식물과 동물의 조상이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동맹관계는 또 다른 동맹을 맺고 또 다른 수 많은 동맹들이 이루어낸 창발적 효과들은 원핵세포에서 진핵세포로, 해조에서 육상식물로, 노폐물을 먹는 청소 생물에서 식물을 먹는 곤충으로, 그리고 동물의 정자-난자 수정의 발명 등 생명체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의 기원이 되었다.

 

진핵 생물의 출현 이 후 급격히 종의 다양성이 증가했는데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동맹 관계가 이루어낸 종 발생의 다양성은 폭발적이었다. 이 것은 다윈의 점진론적 진화론으로 설명되지 못했기에 거대하고 불연속적인 비약에 의한 진화 “도약진화”를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주류 다윈주의자들은 새로운 상위 수준의 창발을 허용하는 복잡한 체계의 형성이 전적으로 유전적 변이와 선택의 문제라고 일축했지만 말이다.

진핵생물들은 더 많은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에너지 소모도 많고 더 신경써야하는 일도 많은 유성생식도 출현시켰다. 유성생식은 짝을 만나 짝의 유전자와 자신의 유전자를 각각 반 쪽 씩 자손에게 넘기면서 다채로운 재조합 과정을 거쳐 자손에게 유전자의 수직 전달 즉 혈통에 의한 유전자 전달을 한다. 이 것은 박테리아들의 자유로운 수평 유전자 전달에 비하여 자식에게로 수직적으로 유전자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 것은 혈통이 구성되는 방식이 된다. 인간이 유성생식을 통하여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달하다보니 유전자 연구방식이 이러한 혈연적인 전달 방식이 더 강조되고 두드러졌는지도 모른다.

진화사의 굵직하고도 큰 사건들은 외부 물질과 소통하든 인접한 동료와 교류하든 생명체가 단독으로 이루어 낸 것이 없다. 현존하는 생명체들의 공동 조상도 ‘별을 만드는 물질’로 만들어져 얇은 막을 통해 내부를 이루고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외부를 받아들였다. 외부가 만든 내부, 외부에 의존하고 외부와 상호작용하는 내부였던 것이다. 그렇게 긴 긴 시간동안 생명들은 외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변이의 결과물을 DNA 속에 기억처럼 저장해놓았다.

 

2. 변이의 역사를 간직한 기억, DNA

 

DNA를 설명하거나 비유하는 것에는 “유전 정보의 거대한 책장”이라든가 “유전의 청사진”, “연기 대본”, “요리의 레시피” 등등이 있다. 새로운 생명의 분류법을 제시한 저명한 고생물학자 칼우즈의 경우 “악보”에 비유하며 악보를 읽는다고 음악을 들을 수는 없듯이 DNA만 아는 것으로는 생명을 이해하는 데에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이러한 비유들은 DNA를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어도 책을 해석하는 이에 따라 또는 사진을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고 대본을 보고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인물이 탄생하고 같은 레시피라도 요리하는 사람의 감각에 따라 다른 요리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다가 우리 신체의 DNA는 그 역할이 무엇인지 알려지지 않은 정크 DNA가 98% 가량 차지하고 우리가 유전체(genome)로 알고있는 유전자는 2%가 채 되지 않는다. DNA발견 이 후 분자생물학자들은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와 단백질 자체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생명의 긴 역사 만큼 오래된 기억의 저장 창고 처럼 어둠 속에서 묵묵히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던 정크 DNA들은 최근에야 하나씩 그 역할들이 드러나고 있는데 드러난 사실들이 보여주는 것은 정크가 정크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크라 불리던 DNA들의 역할들은 모르는 것들이 더 많다. 그런데다가 신체의 발생과 발달에 작용하고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는 전체 유전체에 비해 그 비율이 매우 낮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단백질은 세포가 결정한다.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종류는 방향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나 유전자들이 입고 있는 옷들, 즉 유전자와 화학결합하고 있는 다양한 유기 분자들은 자신들이 결합한 유전자의 행동을 바꾸어 유전자의 활성을 더 높이거나 낮출 수도 있다. 동일한 유전자를 나누어가진 일란성 쌍둥이들이 보이는 표현형의 불일치는 수정란 분열 이후의 돌연변이가 생겼을 수도 있지만 이는 아주 확률이 낮다. 일란성 쌍둥이들의 차이는 후성유전학에서 주장하는 유전자 활성의 차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3. 후성유전이라는 희망

 

우리가 물려받은 부모의 유전자는 하나의 정해진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발현하는 과정에 수 많은 것들의 영향을 받고 많은 변이의 가능성을 지닌 과정을 통과해서 결정된다. 마치 산꼭대기의 돌 하나가 산 아래로 펼쳐진 수 많은 골짜기들 중 어느 쪽으로 떨어질 것인지 산 위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굴러가는 도중에 만나는 수 많은 요인들과 결합된 배치 속에서 그 방향을 수시로 바꿔가며 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주: 콘래드 와딩턴 Conrad Waddington의 후성유전학 풍경 그림 참조)

이미 주어진 유전자는 바꿀 수 없듯이 어느 산에서 시작해야하는지 돌이 그 결정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돌이 굴러가는 방향은 주변의 바람이나 방해물의 존재, 그리고 돌을 둘러싼 동맹군들의 협력으로 어느 정도는 조절이 가능하다. 최근의 연구는 이 돌이 골짜기를 어느 정도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를 설명하는 것이 후생유전학의 연구 결과들이다.

최근 유전학계에 희망처럼 집중적 관심을 받고 있는 후성유전 (epigenetic)은 DNA염기 서열 자체를 바꾸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DNA에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을 말하는데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은 DNA는 불변하고 삶 속에서 획득된 인자들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유전자 결정론이 가지는 혈통 중심의 진화론 개념을 크게 흔들고 있다. 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일란성 쌍둥이가 성장하면서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유전자의 발현에는 많은 요소들이 개입되어 있다. 후성유전학에서 유전자 표현형의 변이의 주된 이유로 들고 있는 것은 시토신의 5번째 탄소에 메틸기 (CH3)의 부착으로 발생하는 유전자의 메틸화와 DNA를 둘러싸는 히스톤의 결합력이다.

메틸기가 붙어 있는 유전체에는 mRNA가 접근을 하지 못해 전사를 할 수가 없다. 유전자가 있어도 단백질을 만들지 못하니 발현이 되지 않는다.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이 유전자가 성장 발달에 아주 유리한 유전자라면 그 개체는 불리할 것이고 그것이 암이나 당뇨를 유발하는 유전자라면 아주 다행인 것이다. 이렇게 부모로 부터 주어지지 않은 것이지만 메틸기의 부착 여부로 인해 그 표현형이 달라지는 것이 바로 후성 유전에서 주로 연구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메틸화의 작용에 동맹을 맺고 있는 미생물들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후생유전학 연구는 유전자 결정론에 밀려 유전자로 주어진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인류의 바보같은 선택이 부른 비극적 사건들(전쟁, 인종 청소, 학살, 강간, 계급 제도,그리고 성차별 등등), 인류를 위협하는 수 많은 질병들과 기후 이상의 문제들을 기원으로 부터 다시 한 번 사유할 기회를 준다. 절망에서 낙관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희망까지. “다시 한번” 노력해 볼만한 여지를 마련해준다.

 

4. 동맹의 강화를 위하여

 지금까지 다양성을 향해 매진해온 진화적 과정에서 보았듯이 생명체들은 독자적으로 진화해오지 못했다. 시작부터 외부가 만들어준 내부를 외부의 도움으로 생존해왔고 그 의존은 존재하는 모든 개체가 가지고 있는 자신들 만의 생태계로 설명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힘겨운 일들을 해야 한다면 함께 우리의 생태계를 일구어온 동맹군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식물들의 미생물 연결망 ‘ 우드 와이드 웹’에서 보여주듯 미생물과 식물들은 서로 의존하면서 환경에 함께 대응하고 생존해왔다. 동물들 역시 마찬 가지다. 풀을 먹고 사는 소는 위장에 살고 있는 수많은 박테리아들이 아니면 섭취한 풀들을 소화시킬 수 없다. 곤충들도 미생물에 의존하여 소화하고 산다. 인간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인데 내부이자 외부인 소화기관의 벽 즉, 구강, 식도, 위, 소장, 대장의 점막 벽에 자신의 세포 수보다 많은 숫자의 박테리아들이 살고 있고 면역의 제 1차 경계막인 피부에도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 우리는 정상균(nomal flora)라고 불리는 장내 세균들이 없으면 외부에서 섭취한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결국은 죽는다. 장내 세균없이는 살수 없다는 뜻이다. 거시 세계에서는 진핵생물들이 독자적으로 진화의 길을 걸어온 듯 보이지만 분자생물학의 도움을 받아 더 미시적 세계로 들어간 연구 결과는 진핵생물체들이 여전히 박테리아 사촌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공진화해왔고 서로가 생존을 위하여 의존하는 형태로 살고 있다. 그렇다고 언제나 평화로운 것은 아니다. 미생물의 숙주인 신체들이 약해지거나 환경의 변화에 적응을 못하는 겨우 이 동맹자들은 얼굴을 바꾸어 적이 되어 공격하기도 한다.

최근 논문에 의하면 70킬로그람의 성인의 체세포 수는 30조이고 그 신체 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숫자가 38조개라고 한다. 그리고 인간의 게놈에 비해 인간과 공생하고 있는 미생물의 게놈은 150배 더 다양하다. 인간의 유전자에는 바뀌지 않지만 미생물 생태계(microbiome)의 유전자는 미생군의 교체로 바꿀 수 있다. 미생물 유전체들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장소에 따라 처한 환경에 따라 다 다르다. 그렇다면 바꿀 수 없는 것에 희망을 걸어야할까? 바꿀 수 있는 것에 희망을 걸어야할까? 아무리 돌맹이가 산정상을 향하여 구르고 또 굴러도 산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는 분화 과정에서 스위치가 켜지거나 꺼지는 방법처럼 불필요한 것들은 비활성화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눈 세포 지정 유전자는 눈 세포로 피부 세포 유전자는 피부세포로 또한 위장 세포등등으로 분화되는 길을 통과해왔다.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를 가지고 흑인이 백인으로 바꾸어 태어날 수 없고 여자가 남자로 바뀌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월바키아(wolbachia)는 감염된 생물체 자손의 성을 바꾸어버린다. 그리고 감염된 수컷 생물체(현재 곤충들 중 모기가 가장 많이 감염되어있다.)들은 자손 알이 부화가 되지 않게 됨으로 불임이 된다. 이와같이 가끔 일어나는 예외 종들의 예를 제외하면 유전자의 결정으로 한번 정해진 구조를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존 거든(John Gurdon)은 두꺼비의 체세포에서 채취한 핵을 미수정란에 넣어서 완전한 동물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실험은 세포 속에 세포의 종류에 따라 특정 유전자를 켜거나 끄는 무엇인가가 있기는 하지만 유전 물질이 사라지거나 영구적으로 비활성화되는 것은 아님을 밝히는 것이다. 체세포 핵 자신이 속해있던 신체의 발생 기억을 잊어버리고 미수정란의 배아에서 순진무구한 세포핵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유전 암호와는 별도로 존재하며 유존 암호를 덮고 있던 후성 유전 정보층을 제거하면 그 곳에 항상 존재하던 DNA 염기서열이 드러나는데 1950년대 후반부터 시행했던 거든의 실험은 당시에는 그 실험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지만 후성 유전 가설들 중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어떤?! 노력을 하면 때로는 골짜기 바닥의 세포들을 꼭대기로 다시 올려놓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굴러 떨어진 골짜기로부터 어떻게 산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인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는 변화하지 않는데 다시 올라가야한다면  어떻게 유전적인 다양성을 확보 할 수 있을 것인가?

환경과의 싸움에서 정해진 유전자로 군비 군축을 늘릴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우리가 투병 중에 있다면 질병을 야기하는 유전체(제1 게놈)는 부모로 부터 물려받아서 바꿀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 신체와 공생하고 있는 미생물군의 유전체(제2게놈)는 미생물군의 구성을 바꿈으로 달라질 수가 있다. 그런데 이 미생물군 microbiome(장내 미생물의 유전자들을 총칭하여)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장내 환경에 따라 역동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이 있다. 섭식을 통해서 개체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생물의 수가 아니라 미생물의 다양성이다. 동일한 미생물의 숫자가 많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미생물 생태계의 확보가 중요하다. 즉 제1 게놈과 제2 게놈이 합쳐진 게놈의 수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 답이다.

척추동물의 출현 즈음 동물들은 면역계를 함께 발달시켜 외부 침입자와 내부자를 식별해내는 복잡한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이 시스템은 신체의 내부세포와 경계부위인 점막, 그리고 그 점막에 붙어 살고 있는 미생물들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며 그리고 외부로 부터의 영향 (스트레스, 공기 오염, 흡연의 습관, 과도한 알콜, 섭식 습관)으로 미생물군들이 변화함으로 신체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또한 보여준다. 만약 타고난 면역계가 부실하다면 좋은 동맹군을 확보하는 길 밖에 없다. 선천적으로 불리한 면역력을 가져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에게는 동맹군들이 밀어주는 후생유전의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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