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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예술 3강 쪽글

노을 2021.03.29 19:32 조회 수 : 29

벤야민, <1935년 개요>, 107쪽.

“새로운 것은 상품의 사용가치와는 독립된 질을 갖는다. 그것은 집단 무의식이 만들어낸 이미지들에게는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가상의 근원이다. 패션이 지칠 줄 모르고 대변하려는 허위의식의 정수이다. 이 새로운 것의 가상은 마치 한 거울이 다른 거울에 비치듯이 영원히 동일한 것의 가상으로 비쳐진다. 이러한 가상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문화사’라는 환(등)상으로, 이 속에서 부르주아지는 허위의식을 만끽한다. 스스로의 사명을 의심하기 시작하며, 더 이상 유용성과 분리 불가능한 것’(보들레르)이 되지 않으려는 예술은 새로운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 그러한 예술에서 ‘새로운 것의 판정자’는 속물이 된다. 이러한 속물과 예술의 관계는 패션과 댄디의 관계와 동일하다.

비순응주의자들은 예술을 시장에 넘겨주는 것에 저항한다. 이들은 ‘예술을 위한 예술’의 기치 아래 결집한다. 이로부터 예술을 기술의 발전으로부터 차단하려는 총체적 예술 작품이라는 구상이 탄생한다. 이러한 작품을 칭송하기 위해 마련된 성별식은 상품을 미화하는 기분전환과 대조를 이룬다. 양자 모두 인간의 사회적 존재는 추상화하고 있다.”

 

: 이 구절에서 예술은 ‘유용성과의 결부’(“유용성과 분리 불가능”)와 ‘허위의식/가상/이미지의 형성’(“새로운 것”)’이라는 다소 상충되어 보이는 양면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예술은 허상을 연출하면서도 유용해야 한다? 반대로 예술이 보다 유용해지기 위해서는 허상을 연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인지 궁금합니다.

 

: 일반적으로 속물/스노비즘은 부정적인 늬앙스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이와 별개로 예술을 뒷받침하는 기반으로서 속물을 바라보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댄디를 뒷받침해주는 요소가 남다른 패션에 있는 것처럼.

 

: 비순응주의자들은 댄디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초현실주의자들과 같이 실제로 시대에 저항정신을 보여주는 그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요? 댄디들은 상품 구매를 추종하는 군중들과 달랐지만, 결국에는 귀족클럽과 같은 무대에 속하기를 원했던 속물성을 버리지 못했다고 볼 때. 귀족처럼 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신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편이 남다른 패션의 연출이었고, 패션을 통해서 수립된 댄디의 열기는 겉으로는 자본주의의 시장에 편승하지 않는 외부의 세력처럼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시장의 소비 주체가 될 수 없는 자본력의 한계가 있었기에, 쇼핑이나 소비에 대해서 냉소나 거리두기의 자세를 취했던 것은 아닐까요?

 

: 정작 댄디의 세계에서 예술에 대한 인식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댄디와 예술의 상관성은 평자들에 의해서 해석된 결과물에 지난 것은 아닌지요?

(댄디라는 사람 자체가 예술 작품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삶과 예술이 일치하는 상태를 표상한다. 등 이는 후대의 평가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 순수예술(예술을 위한 예술)과 예술 상품(예술의 상품화)의 대립적인 현상을 벤야민은 둘 다 인간을 추상화한다는 점에서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인간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을 하는 듯 하는데, 여기서 댄디는 후자(상품이 된 예술)에 가까운 것 같은데, 그렇다면 벤야민은 발자크와 보들레르와 같이(“댄디즘은 우아한 삶의 이단(사이비?)이다.”) 댄디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것일까요?

 

 

<2부 일반 원리 / 3부 사람에게서 발현한 사물들>

 

: 품위, 예의, 우아함 등 매너/에티켓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상품성의 지배를 받지 않은 영역(“옷차림은 무엇을 걸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걸치느냐에 달려있다.”)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양식이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면, 댄디는 귀족과 다른 그러나 그들의 눈에 들어오는 ‘특유의 양식으로서 우아함’을 개발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일종의 ‘저항’이나 ‘비순응’으로 보는 것은 과장된 해석이 아닐까요?

: 댄디와 유행은 반비례적인지요? (“모든 유행은 본질적으로 일시적이며 나쁜 취향이다”)

: 댄디와 “도덕”의 상관성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댄디즘은 단순히 신사나 숙녀와 같은 품위있는 완벽한 인간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결점을 이점으로 바꿀 수 있는 능동성이나 능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힙니다. 댄디는 결점을 이점으로 바꿀 수 있는, 도덕적으로 무결한 삶을 표상하는 것인지? “우아한 삶”은 결국 유행을 좇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덕을 만드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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