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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쇼 11강 발제

김서연 2020.12.02 18:18 조회 수 : 41

*질문에 대한 답으로 발제 대신했습니다 :) 

 

물음 1. 그레고르는, 누이는, 어머니는, 아버지는 대체 누구인가?

 

작품 속 상황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중에도 그들의 정체성 찾기에 매몰되었다. 카프카의 작품이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일인데, 명확한 답을 구상하며 책을 덮었다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안온한 독자가 될 뻔했다.

 

21p 작가는 자신 속에 은둔해 있을 수 없고, 그렇지 않다면 글쓰기를 포기해야 한다. … 그가 지닌 가장 개별적이고 이미 드러난 실존과는 가장 동떨어진 것이 공통의 실존 가운데 모습을 드러낼 때에만, 작품은 활기를 띠기 때문이다.

 

활기찬 독서법, 만연한 모호함과 존재의 부재 속에서도 문장을 문장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을 잊고 써야하는 작가의 일만큼 어려운 일이다. 벌레로 바뀌었어도 그레고르는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가족들도 자기자신의 모습을 잘 지키고 있다.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비교적 무리없이 살아 가는 가족의 모습이기에 이미 알고 있는 군상으로 정의 내리고 싶은 것이다. 난해하지 않은 것으로 치환하려는 욕구가 일렁인다. 일상의 언어로 삶을 살아가며, 죽음이나 무를 향해 고뇌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더욱 그렇다. 독서로 심연에 들어서고자 한다면 블랑쇼가 말하는 작가의 의무를 따르는 독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작품 속에서 드러낸 작가의 책임들을 함께 짊어 지는 것이다. 문학을 접하는 순간만이라도 세상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29P 그는 세계를 구해야 하고, 심연이 되어야 하며, 존재를 증명해야 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에 발언권을 주어야 한다. … 그러나 이것은 문학이 되려고 하는 것,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때 문학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문학이 아무것도 아닌가?

 

 

물음 2. 그레고르의 죽음에는 어떤 의미가 남는가?

 

54P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 외현 없는 깊이의 품과도 같은, 어렴풋한 미결정의 붙잡을 수 없는 실존으로서의 단어들의 나타남으로부터, 단어들이 얻는 의미가 다시 나타난다.

 

활기차게 다시 읽는다. 그레고르의 죽음을 쓰는 카프카의 죽음을 전제로 죽은 독자가 되어. 하루 사이에 물리적인 몸을 잃은 그레고르는 빠른 전개로 직장도 잃는다. 한나아렌트는 인간 조건의 요소로 노동, 작업, 행위를 들었는데 금세 인간의 요건을 하나 잃었다. 아직 절망스럽지 않다. 목소리마저 잃어 타인에게 어떤 행위도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소파 아래 자신의 몸을 감춤으로써 비언어적 방식으로 말한다. 가족들이 알아 듣지 못해도 상관없이 희망적이었다. 타인과의 대화에서는 제대로 된 목소리로 말 해도 전달되지 않을 때가 부지기수이다. 방안의 모든 가구가 사라지는 게 반가우면서도, 액자를 지키며 인간으로서의 작업을 해낸다. 스스로를 망각하는 위험에서 구제해내는 것이다. 그레고르의 삶은 그렇게 인간적인 모습으로 지속한다. 죽음을 포함한 그의 여정은 인간의 희망이 남는다. 그의 누이처럼 ‘토실토실한 젊은 육체’로 가질 수 있는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과 같은 부류의 희망은 분명히 아니다. 절박하고 미래 없는 여정 속에서도 잃지 않는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인간이나 희망 아닌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물음 3. 나의 죽음에는 어떤 것이 남을까?

이 존재는 빚고 섞고 변화를 주고 소통케 하는 자요, 또한 자기 인식 영역에 들어서서는 자르고 구부리고 밝히는자, 여기는 얼리고 저기는 데우는 자, 잠기게 하거나 드높이는자, 이름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이는 자, 본인이 원했던 바를 망각하는자, 잠에 들게 하거나 여기저기를 색으로 물들이는 자이려니...

<폴 발레리, 테스트 씨>

 

카프카처럼 유려하고 훌륭하게 죽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블랑쇼를 통해 얻은 죽음의 권리, 삶의 권리, 그리고 공허의 능력이 발휘되는 날을 기대하며 나의 죽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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