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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가이자 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 (255~295쪽)

노을 2020.11.30 18:47 조회 수 : 134

수집가이자 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 (255~295쪽)

  1. 벤야민은 에두아르트 푹스의 저작을 논의하면서 “마르크스주의적 예술이론의 최근사”를 다루고자하는 뜻을 밝힌다. 그는 에두아르트 푹스의 저작을 경유하여 사적유물론의 역사론을 개진하고자 했다. 이 취지는 초기 “에세이가 출간되기 전에 사회연구소의 편집진”에 의해서 좌절된다. 편집진의 요구로 삭제되었다가 1977년 <<전집>>에서 원상 복구된다. 그렇기에 이 에세이의 일부 구절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 그대로 인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글은 벤야민이 유물사관을 그의 독특한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 그 시작으로 봐도 될 것이다. 

‘이 글은 1933~34년에 호르크하이머의 위촉을 받아 <<사회연구지>>에 실릴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이 글은 1937년에 탈고되었다. 그는 역사적 유물론에 관한 성찰을 전개하는데, 역사적 대상이 전통적인 역사주의적 관점에서 형성된 역사적 연속체로부터 풀려나와 독자(역사가) 자신의 지금시간의 경험, 대상의 사후의 삶을 구성하는 경험의 일부가 되는 독해의 과정을 사적 유물론의 방법이자 핵심적 과제로 제시한다.’ (옮긴이의 말, 56쪽)

Q) 푹스는 사회민주주의자인가? (1886년 사회민주당 입당)

Q) 푹스는 공식좌파의 낙관론적 숙명론(낙관주의)을 반대하는가? (결국은 벗어나지 못했는데...)

Q) 벤야민은 ‘수집가이자 역사가’로 호명되는데, 그렇다면 푹스는 벤야민과 동일하게 볼 수 있는가?

(“수집가이자 역사가 벤야민이 읽어낸 19세기 역사의 이미지는 상품물신이자 유토피아라는 이의성을 띈다.” <해제>, 28쪽)

Q) 벤야민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꿈의 역사, 예술의 역사?

Q) 수집가의 영역과 낙천적인 사회민주주의 영역은 대립하는가?

 

2. 프란츠 메링과 에두아르트 푹스는 둘 다 사회민주당원이었다. 하지만 메링이 학자적인 반면에, 푹스는 수집가였다. 메링은 유물론적 비평의 결함을 보였다. 이들은 교류했지만 성향 차이가 극명했다. 푹스는 “유물론적 예술 관찰의 개척자”로서 수집가였다. 이 유물론자를 수집가로 만든 것은 역사적 상황에 대한 감정(?)이었다. 

Q) 이 감정은 무엇일까?

 

3. 역사를 변증법적으로 서술하는 일은 언제나 역사주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관조의 태도를 포기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 (관조의 태도를 버려야 역사를 변증법적으로 서술할 수 있다.)

사적 유물론자는 역사의 서사적 요소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적 유물론자는 역사의 서사적 요소를 포기해야 한다.)

역사는 그(엥겔스)에게 어떤 구성의 대상이 되는데, 그 구성의 장소를 이루는 것은 공허한 시간(→ 역사의 진보 / 진보의 역사)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 특정한 삶 그리고 특정한 작품이다. 그는 그 시대를 사물화된 ‘역사적 연속성’을 폭파하여 거기에서 (무엇을?) 끄집어낸다. 한 시대에서 특정한 삶을, 필생의 업적에서 한 특정한 작품을 캐낸다. 이러한 구성에서 전체 역사의 진행 과정이 지양되는 수확을 얻을 수 있다.

역사주의가 과거에 대한 영원한 이미지를 제시한다면, 역사적 유물론자는 그때그때 과거와의 유일무이한 경험을 제시한다. (역사/비극/하나의 이미지와 드라마/비애극/다양한 성좌의 차이?)

역사주의에 봉인된 서사성을 깨고, 이러한 경험을 작동시키는 것이 사적 유물론의 과제다.

사적유물론은 역사의 연속성을 폭파하는 현재의 의식(→ 현재의 시간, Jetzt zeit)을 향하고 있다.

Q) 이 구절에서 벤야민의 ‘단속적인 역사관’을 볼 수 있다. 이어지면서 끊어지는, 분절시키고, 연속성을 폭파하고, 하나의 역사에 귀속된 다채로운 경험을 되살리는 일. 이것이 벤야민의 역사적 과제이고, 그가 새롭게 주장한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관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관과는 또 다른 듯. 그 차이는 무엇일까?

 

4. 푹스는 예술사에서 성공에 대한 물음이 도외시되는 있는 점을 비판한다. 이 물음의 해결은 사적 유물론의 수준을 가늠할 기준을 제시해 줄 것이다. 이 물음은 예술작품의 역사적 내용이 단지 개별적인 작품에만 국한되어 성공했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한 예술작품에 대한 찬미는 공허하다. 그 작품의 냉철한 역사적인 내용이 변증법적인 인식에 의해 파악되어야 한다. 

Q) 벤야민은 푹스를 통해서 변증법적 인식이 없는, 그저 예술 작품에 대한 찬미를 경계한다. 여기서는 두 가지를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1)한 예술작품. 단독적인/지배적인/대표적인/고전적인 예술 작품 2) 찬미 그 자체. 변증법적 인식이 결여된 감상. 그렇다면, 예술이 아닌 대상, 수집 작품에 대한 긍정만이 가능할까? 아니면 수집 작품을 새로운 예술 작품으로 바라봐야 할까?

 

5. 푹스는 계급이 아니라, 대중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는 의고전주의적 예술관과 전면적으로 결별했다. 그는 1908년 고대의 미보다 우월한 ‘새로운 미’를 예언한다. 그는 캐리커처의 사료적 가치와 권위를 강조했다. 

Q) 하이힐의 역사 등 미시사, 기존에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 소역사에 천착한 푹스의 모습은, 전통적인 권위와 지배 체제, 아울러 진보의 역사를 대변하는 고대의 역사나 비극에 맞서서, 독일 비애극을 발견한 벤야민의 시선과 겹쳐 읽을 수 있을까? 벤야민이 푹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을까?

 

6. 푹스는 수정주의와 거리를 두었지만, 이 영향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에게 진보(의 역사)는 거부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이다. (진보를 빙하에 비유) 그의 견해는 낙관주의와 짝을 이룬다. 그러나 낙관주의는 그것이 계급의 행동력에 적용되느냐 아니면 그 계급이 활동하는 상황에 적용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사회민주당은 후자의 미심쩍은 낙관주의로 기울었다. (사회민주당은 상황에 휩쓸렸다?)

이들은 야만성을 내다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는 “양심 없는 낙천주의”(164쪽)다. 

Q) 야만성을 보지 못한 “세기말의 아류들”은 마르크스주의자와 다른 사회민주주의자들인가?

벤야민은 마르크스주의를 지지하면서, 이와 유사하게 다른 사회민주주의를 철저히 비판한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는 수정주의를 비판하는 전통 맑시즘의 수용자로 볼 수 있는가?)

 

7. 진보이론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푹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예술은 여러 방향에서 르네상스 예술이 도달했던 것을 훨씬 능가하는 많은 것을 실현시켜 주었고, 미래의 예술 또한 필경 보다 더 고차적인 것을 의미할 것이 틀림없다.”

Q) 오늘날의 예술은 ‘지금 시간의 경험’이며, 미래의 예술은 ‘사후의 삶’으로 대응시켜 볼 수 있는가?

둘 다 과거의 고대의 미가 아닌 ‘새로운 미’라는 점에서, 이 구절은 푹스의 변증법적인 사적 유물론의 사유와 동시에 진보이론을 떨치지 못했던 한계를 보여주는가?

 

***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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