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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쇼 세미나 :: 4강 발제자 김홍민

김홍민 2020.10.14 20:47 조회 수 : 43

『블랑쇼 세미나 :: 4강 <문학의 공간 – 이지튀르의 경험〉과 <말라르메 – 소네트 시〉』

 

 

[문학의 공간 - 이지튀르의 경험]

 

“이지튀르가 시를 문제로 삼는 탐구라는 것” (147) 그리고 이 경험은 곧 말라르메 본인에게“시인에게서 살아 있다는 육체적 확신을 빼앗아 마침내 그를 죽음에, 진리의 죽음에, 인격의 죽음에 직면하게 하여 죽음의 비인칭성으로 그를 넘겨준다.”(148)

 

◇ 탐험, 부재의 정화

“이지튀르의 흥미로움은 그 주제가 되는 사유 속에 그대로 담겨 있지 않다. 그 사유는 사유가 질식시킬 수 있는 어떤 사유와 같은 것으로서…”(149)

“언어에 관한 그(말라르메)의 모든 지적은, 말 속에서, 사물들을 부재하게 하고, 이 부재 속에서 사물들을 불러오고, 그리하여 이러한 부재의 가치에 충실하고, 그 가치를 그 종국에 이르기까지 최상의 말없는 사라짐 속에서 이루려고 하는 성향을 확인하려 한다.”(150)

◇죽음을 향한 세 개의 움직임

ⓐ방을 나와서

ⓑ계단을 내려가고

ⓒ독을 마시고 무덤으로 가는 행위

독일 낭만주의, 노발리스와 같은 인물들의 “노발리스에게 있어서는 의지의 응축, 그의 마술적 힘의 긍정이다. 그것은 고양, 에너지의 소비 혹은 먼 것과의 무모한 우정이다.”(153)

 

◇자정

말라르메는 이 죽음으로의 세 움직임을 시, 공간에 따라 혹은 인과적인 단계로 분절하지 않는다. “죽음은 결코 사건이 될 수 없다.” (155)와 같은 말처럼,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는가에 대해서는 결코 말해질 수 없다.

“방의 출구가 쓰여지기 위해서는, 이미 방에는 주인공이 없어야 하며 써야 할 말은 영원히 침묵 속으로 되돌아가 있어야 한다.”(155) “가구들로 가득한, 하지만 어둠으로 뒤덮인 텅 빈 방, 그 이미지는 말라르메에게 있어서 시의 근원적 장소와도 같다.”(154)

낭만주의 작품에서 으레 그러듯 밖으로 뛰쳐나가‘아! 너무 괴로워!’하며 소리지르며 드라마틱하게 죽기 보다는, 말라르메는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이 고통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사유를 하며 침묵한다. (cogito igitur/donc sum) 과연 어느 것이 죽음에 더 가까운 것 같은가? 비탄하는 젊은이와 침묵하는 젊은이중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하면서 존재한다. cogito igitur sum”

(인칭과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밤의 행위

“우리는 먼저 영원한 시작과 종말인 이 자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부동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된다. 「분명 자정의 현전은 남아있다. (이지튀르)(1장)」”(156)

“괘종시계의 똑딱거림, 열려진 무덤 문짝의 왕복운동, 자신으로 들어왔다 나가고, 나뉘어졌다 달아나는 의식의 왕복 운동 사이…”(158)

“나는 내 심장의 박동을 듣는다. 나는 이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159)

“마지막 판본에서 이지튀르가 자신의 것이라 알아차린 심장은 따라서 밤의 심장이다.”(159)

어두운 방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자신의 심장 소리마저 밤에게 빼앗긴다.

◇이지튀르의 파국(catastrophe)

이지튀르는 어떻게 자살로 자신을 이끌어갔는가? 이지튀르의 심장 소리, 개인의 목소리, 인칭적 사유를 빼앗는 자정이란 시간은 밤이주는 마법적인 시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침과 분침이 가리키는 선형적인 차원에서의 시간 집합의 특정한 한 원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제때에 죽어라”(161)의 '제때'

“주사위가 던져져야 하는 것은 자정인가?”(161) 말라르메의 이지튀르에서의 질문은 이것이다.

그리고 ‘주사위 던지기’에서의 말라르메의 대답은 “주사위 던지기는 결코 우연을 폐지하지 않으리라.”(163)다.

“그러나 ‘주사위 던지기’는 한 문장이 다른 문장에 부합하듯, 대답이 질문에 부합하듯 ‘이지튀르’에 부합하지 않는다.”(163)

 


 

《발제문에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감상》

이 짧은 발제문을 쓰면서, 단 한가지 감정이 나를 지배하고 압도했다. 얼마나 더 읽어야 이와 같은 글들에 동요하지 않고 읽을 수 있을까. 표면적으로는 배경지식이 부족한 것에서 힘들다는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가난을 느꼈다. 그러나 이것은 부지런함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 속의 더 근본적인 두려움과 공포는 블랑쇼와 말라르메의 말들이 가리키는 것이 과연 ‘그런 부지런함으로 성취될 수 있는가? (주사위는 자정에 던져저야 하는가?)’라는 말로 끊임없이 머리 속에서 휘몰아치지만, 마찬가지로 거기에 답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블랑쇼는 이지튀르의 경험이 말라르메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말라르메 만큼이나 어려운 말로 엮어낸다. 모두가 공감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블랑쇼의 저작은 풀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또 하나의 작품을 다시 엮어내는 과정이란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어려운 것을 넘어서, 한 문장 한 문장이 새로운 문장으로 논리적인 연결고리를 뛰어넘어 매문장마다 존재론적으로 위험천만한 도약을 한다. 말라르메의 묘지를 방문해서 묘비를 읽는 정도가 아니라 아니라, 블랑쇼가 말라르메를 무덤에서 파내서 등에 업고 등장한 듯하다. 이게 나를 공포스럽고 어지럽게 만들었다. 예전에 니체와 비트겐슈타인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 잠언집에 대한 공포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고 보니, “죽음은 사건이 될 수 없다.”(155)는 비트겐슈타인의 글귀에서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 우연히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을 다시 감상하게 되었는데, 마침 말라르메에 대한 인용이 나와 반가웠다. 영화 중 영화감독으로 나오는 귀도가 오로지 진실한 것만 찍고 싶은 마음에 거액을 들인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찍기를 거부한다. 모든 것이 망했다. 그러자 옆에서 비평가 친구가 말라르메를 인용한다. 그리고는 등장 인물이 모두 무너져 내린 세트장 위에서 귀도와 손을 대열을 만들면서 veil 뒤로 인원들이 서서 준비하기 시작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즉, 영화가 망하자, 영화가 시작된 듯했다. 

◇백조의 소네트와 -yx의 소네트

그러한 맥락에서 백조의 소네트는 진실된 한 마디를 위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백지(白紙)로 남겨진 창작자의 오늘에 대해 가리키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yx의 소네트에서도 마찬가지로 대상들이 비인칭(금속, 결정, 손톱)일 뿐만 아니라 오늘(폐기된 저녁의 순수 범죄)와 스틱스 강(저승, 망각의 강)을 통해 쓰여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노래란 생각이 들었다.

◇주사위 던지기

이제야 나는 ‘한 번의 주사위가 모든 우연들을 폐지하지는 않으리.’란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리는 것 같다. 이 태도야 말로 우리로 하여금 주사위를 던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시라는 집합 안에서 맴도는 것이 아니라 시를 파괴함으로서 시는 쓰여질 수 있는 것이다.  

 


 

정리 1) 에로디아드, 백조, -yx의 소네트에서 백지, 무(無),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주욱 해왔습니다. 이 무(無)라는 것은 부재(不在)라는 존재의 안티테제가 아니라 언어(인간의 사고의 한계) 밖에 있는 무언가에 대한 가능성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정리 1) 에 대한 질문 1) -yx의 소네트에서 “신을 납치한다 믿지만, 거울 위에서 칠중주의 반짝임이 붙박였다.”에서처럼, 말라르메의 각운, 운율, 극한의 인공적인 언어 창작방식은 순수한 결정을 만들어 냈지만, 그 내용은 실패한 것처럼 말하는 듯 합니다. 말라르메의 이미지는 고집불통에 강박적인 완벽주의자와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오히려 말라르메는 자신이 만든 언어라는 감옥 혹은 수정, 결정에서 신 혹은 우연을 관찰하기를 희망한 것인가요? (어려워서 헷갈리네요.)

정리 2) cogito igitur sum. 데카르트가 철학적 용어로 ergo라는 단어를 선택했지만, igitur라는 동시적인 의미를 띠는 접속사가 더 어울린다 생각했습니다. 되려 ergo의 경우가 논리적으로 ‘나’자신을 낭만화 하여 ‘나’의 존재를 지워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지튀르는 현전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자신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백조도, 불사조, 작가도 그렇습니다. 

질문 2) 그런 의미에서 이지튀르와 블랑쇼가 예로 든 노발리스의 자의식은 다른 궤도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과연 비인칭 글쓰기라고 이름 붙여지는 것이 맞을까 싶습니다. 되려 그런 이름이 혼란을 가중하는 느낌이 드는데, 송승환 선생님 혹은 다른 분들은 다른 네이밍에 의견이 없으신가요? 

 

프랑스 시에 대한 지식도 거의 전무하고, 시라면 쥐약이라 머리가 너무 아픕니다. 첫 발제라 긴장되기도 했고요. ㅠ 내일 수업시간에 충족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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