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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꿈』에서의 꿈의 의미와 질문들

노을 2020.09.26 17:40 조회 수 : 65

『인생은 꿈』에서의 꿈의 의미와 질문들

   : 칼데론, 『인생은 꿈입니다』(이하, 『인생은 꿈』), 안영옥 옮김, 지만지드라마, 2019.

 

1. 독일 비애극과 『인생의 꿈』(1627~1629)과의 상관성

 벤야민의 『독일 비애극의 원천』의 후반부에는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바로크 드라마>의 줄거리가 수록되어 있다. 초심자의 입장에서는 바로크 드라마가 독일 비애극의 사례로 간주하게 되는 바, 『인생의 꿈』 또한 독일에서 창작된 비애극이라는 착각을 하기 쉽다.

칼데론의 전체 이름―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에서도 보이듯이, 『인생의 꿈』은 스페인인에 의해서 스페인에서 창작된 희곡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의문이 든다. 왜 벤야민은 독일 비애극을 분석하겠다고 하면서, 스페인의 희곡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을까? (알려지지 않은 독일 비애극과 비교하기 위해서?) 물론 이 희곡이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희곡이라기 때문이겠지만, 유럽 비애극이 아니라, 독일 비애극이라고 본인의 연구 대상이 명시된 이상에, 독일에서 창작된 독일 바로크 시대의 희곡이 주된 대상이어야 하지 않았을까하는 원시적인 의문이 들었다.

 

2. 비극과 비애극의 차이점 : 『오이디푸스 왕』과 『인생은 꿈』의 차이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위대한 비극으로 명시한 바 있다. 현대 모든 문학적 요건들과 분석들의 시작은 『시학』에서 비롯되었고, 『시학』의 주된 내용이 비극의 분석인 바, 비애극을 논하는 일(『독일 비애극의 원천』)은 현대문학의 근간을 이룬 『시학』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인생의 꿈』의 골자는 왕자 세히스문도가 불운한 점술의 결과로 부친에게서 버림을 받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후 본래의 자리를 회복한 이야기다. 에피소드로 왕 바실리오의 충직한 노신하 클로탈도의 딸인 로사우라에게 세히스문도가 반했다는 것, 세히스문도의 성품을 시험하려는 부친의 시도에서 그가 실패했다는 점, 로사우라의 정조를 유린했던 아스톨포가 왕좌를 노리고 왕녀 에스트레야와 결혼하려 했다는 점, 반란이 일어나서 세히스문도가 아버지 바실리오를 제치고 왕권을 쥐게 되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인생의 꿈』의 골자의 전반부, 그 시작을 보면 『오이디푸스 왕』과 여러모로 겹치는 바가 많다. 신탁을 받아보니 너무도 불길한지라 자신의 자식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던 부친 왕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오이디푸스적이다. 오이디푸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고 다른 나라의 왕자로 성장하여 그야말로 그의 예언을 스스로 실현해나가는 대목은 비극이라는 단어를 입체감있게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3대 요소로, 1)고귀한 인물이 2)사소한 실수로 3) 회복이 불가능한 추락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오이디푸스의 무지가 벌이는 일은 공포와 연민을 자아내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궁극의 효과로 지목한 카타르시스를 유발한다. 이것이 비극이라면, 비애극은 어떠할까?

 세히스문도는 고귀한 인물이다. 하지만 무지로 인한 사소한 실수가 없다. 실수 대신에 저지르는 것이 있다면 오만이다. 왕자라는 오만을 부리다가 하인을 죽이고 도로 탑에 유폐된다. 무엇보다 회복이 불가능한 추락이 없다. 세히스문도는 결코 추락하지 않는다. 탑에 유폐되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이 생략된, 깨달음을 얻는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고, 꿈이라 할지라도 올바른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다시 반란군의 도움으로 왕좌를 차지했을 때는, 예전의 광기를 대신한 지혜로움으로 자신의 부친을 포용하고, 모스크바의 공작인 아스톨포의 잘못된 야망을 응징하고, 로사우라의 명예를 회복하는 뜻에서, (실로 이해할 수 없지만) 로사우라와 아스톨포를 맺어주고, 자신은 에스트레야와 결혼한다. 그야말로 해피엔딩이다. 전형적인 비극인 『오이디푸스 왕』과 견주어 볼 때, 『인생은 꿈』은 전형적인 희극이다.

 비극과 버금가는 비애극, 비극스럽지만 무언가 다른 비애극을 상상했을 때는,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광기와 말도 안되는 극적인 상황과 엇갈린 운명을 기대했다. 이러한 처참한 광경을 목도하거나 처절히 부서진 후에야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는 것인가하는 억측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히스문도의 ‘광기’는 미친 왕들의 광기에 미치지 못하고, 턱없이 부족하다. 오랜 세월 탑에 홀로 유폐되었다고 하기에는 비교적 정신이 멀쩡하며, 왕자라는 오만으로 살상을 하기도 하지만 이는 아스톨포(의 편에 선 하인)에게 지지 않기 위한 본능이 과격하게 표출된 ‘단 하나의 살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후의 그의 행보는 한 치의 ‘유혈’도 보이지 않는다. 반란군과 함께 싸울 때에도 그 싸움도 너무도 쉽게 이기면서 끝나고 만다.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찔려서 피가 흘려 내렸던 오이디푸스에서와 같이 세히스문도의 옷자락에는 단 한 차례도 선혈이 흐르지 않는다. 그에게는 비극적인 순간이 없는 셈이다. 이러한 희극성이 벤야민이 비애극을 규정하면서 말하고자 한 “유희”(놀이, Spiel)인 것일까? 익살꾼으로 지정된 클라린을 제외하더라도, 전개되는 상황은 비극적인 요소가 없고, 다분히 희극적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무엇이 “비애”인 것일까? 『인생의 꿈』은 도대체 왜 비애극인가? 비극이 운명의 절대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비애극은 세히스문도의 행보처럼 운명을 이겨내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보여주기 때문인가? 벤야민은 비극이 신화적이고, 비애극이 세속적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

 

3. 너무나 성찰적인, 너무나 세속적인

『인생의 꿈』의 특이성은 꿈이라는 액자 구성인데, 현실을 꿈으로 치환하는 순간, 현실 속의 꿈이라는 이중의 구조가 형성된다. 꿈속에서 세히스문도는 아름다운 로사우라를 만났으며, 자신의 오만을 꾸짖는 신하와 부친을 만났으며, 자신이 상상하지 못했던 궁전을 거닐었다. 세히스문도에게 현실은 전 생애를 보내온 차가운 벽과 작은 창문으로 이뤄진 탑 속의 감옥이다. 세히스문도는 양소유(『구운몽』)와 같이 마음껏 말하고 날아다녔던 순간인 꿈의 무상함을 통해서 득도한다. 갑자기 꿈속에서도 올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은 세히스문도에게 납득할 수 없는  윤리성을 부여한다. (이에 관해서는 벤야민이 강조한다. 『독일 비애극의 원천』, 119쪽. “이 작품에는 윤리성이 권한을 쥐고 있다.”)

 세히스문도는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을 감금한 부친과 시종 클로탈도를 용서한다. 그는 왕인 아버지의 무릎을 꿇리지 않고, 먼저 나아가 아버지 앞에 아들로서 고개를 숙인다. 그의 도덕적인 면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마음에 품었던 로사우라의 사연을 듣고, 그녀의 원한을 풀어주고자, 그녀의 뜻대로(?) 아스톨포를 그녀에게로 돌려보내고, 그는 에스트레야와 결혼하여 왕위를 계승한다. 의아한 결말이다. 기대했던 광기, 패륜, 폭정, 알 수 없는 특유한 비극성이 없더라도, 그것이 허망한 꿈일지라도 그는 분명, 로사우라에 대한 기억만은 생생하게 간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인데, 처음에 육욕을 느꼈던 원초적인 감정은 진정한 정신적인 사랑으로 승화한다.

 그렇다면 세히스문도는 로사우라의 과거를 듣고, 그녀가 처녀가 아니고, 왕족이 아닐지라도, 진정한 사랑과 꿈을 따라서 로사우라와 결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로사우라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칼을 품고 아스톨포에게 살의를 느끼는 분노와 적개심을 지니고, 분명 에스트레야와의 결혼을 훼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아스톨포에 대한 사랑은 스러진지 오래고, 남은 것은 분노와 원한뿐일 텐데, 왜 로사우라는 애정이 없는 아스톨포와 결혼하는가? 단지 처녀성에 대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명예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세히스문도 또한 호감이 있고 끌린 것은 로사우라였으나, 그녀의 사연을 듣고, 에스트레야와 결합한다.

 그냥 아스톨포를 공개적으로 처형하고, 에스트레야는 다른 이웃 왕자나 본인의 뜻에 맞는 사람과 결혼하게 두고, 자신은 로사우라와 결혼하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이러한 의문과 상상이 도달한 것은, 세히스문도는 완전히 도덕적인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너무도 해피하게, 너무도 계몽적으로 그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굳이 이 안에서 짝을 찾아야 할 필요가 없다면, 이렇게 인위적인 조합은 세히스문도가 추후 불화의 씨앗이 될 수도 있는 에스트레야. 에스트레야의 미결정적인 문제성(알 수 없는 미지의 정혼자나 가족)을 미리 차단하고자 했던 것, 그 스스로 오랜 기간 버림받고 유폐되었던 만큼 왕권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계산으로(세속적인 감각?) 이러한 혼사를 결정한 건 아니었을까? 해피엔딩, 계몽성, 윤리성, 착한 군주의 탄생은 현재(스페인 국내)에 찾아볼 수 없는 꿈을 대변하는 또 다른 장치인 것일까?

 현실이 꿈이었다고 할 때, 꿈에 불과할지라도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할 때, 이 시대 관객이 요구한 것은 권선징악, 정의의 실현, 자비의 실현이 될 것이다. (스페인극은 “자비”를 더 강조한다고 하지만) 여기서 정의의 실현이 선악의 분명한 경계를 전제로만 가능하다고 볼 때, 비애극은, 선악이 모호한 비극과 다르게, 선악의 성격이 분명하다고 해야 할까? 선을 지향하는 꿈을 노래한다고 봐야 할까? 그저 “환멸과 속임”인가?

 현실이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꿈은 한 인간의 운명을 바꾸거나, 정체성/세계관을 새롭게 규정하게 하는 유용한 장치인가? 空手來空手去같은 인생의 무상함을 일깨움으로써 그 스스로 선의 길로 가게 하는 유도체인가? 굳이 그렇게 아등바등하게 살 필요가 없다는, 싸워서/누군가를 죽여서 얻는 것도 없으니, 그저 올바르게 살라는? 오히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능동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자 하는, 남장을 하고 모험을 떠나온 로사우라가 아닌지? 아들을 버리고도 그 죄책감과 신탁에 대한 의심으로 갈팡질팡하다가 실험을 하기로 마음을 다잡은/용기를 낸 바실리오가 아닐지? 꿈은 이 작품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인가? 이는 세히스문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이상, 급하게 한 번 읽고 든 생각과 질문입니다.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다시 찬찬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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