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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시간에는 만쿠소의 두 번째 책인 『식물혁명』을 함께 읽었습니다. 『매혹하는 식물의 뇌』와 같은 저자의 책인 만큼 『매혹하는 식물의 뇌』와의 차이점보다는 연속성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매끄러운 다양체로서의 식물과 식물의 민주주의와 관련된 다수와 무리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계속해서 강조되고 있는 식물의 특징은 크게 모듈화와 분할가능성, 그리고 광범위한 동맹능력에 있습니다. 식물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듈화된 신체를 구성하여 생존합니다. 식물의 신체는 모듈화되어 있기에 하나의 기능을 특정 기관이 수행하는 것이 아닌 몸 전체가 거의 모든 기능을 함께 수행합니다. 따라서 식물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습니다. 잎이 외부의 적이나 날씨에 따라 반응하는 것과 뿌리가 땅 속의 상황에 맞춰 반응하는 것은 각기 다르지만 동시에 일어납니다. 이는 식물이 하나의 개체라고 불릴 때에도 그것은 동질적인 유기체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이질성이 하나의 일관성을 형성하는 것으로 개체가 형성됨을 보여줍니다. 식물은 분할되는 부분, 혹은 분할되지 않고도 각각이 이질성을 가진 채 묶여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다양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식물의 모듈화된 신체는 그 자체로 하나의 다양체입니다. 들뢰즈/가타리가 『천의 고원』에서 구별한 것에 따르면 식물의 신체는 매끄러운 다양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매끄러운 다양체란 분할될 때마다 본성이 달라지는 다양체를 뜻합니다. 이러한 다양체는 『식인의 형이상학』을 읽을 때 이미 살펴본 개념이기도 합니다. 식물이 모듈화되어 있다는 것은 모듈화된 각각이 서로 다른 질적 상태로 있음을 의미합니다. 서로 다른 이질적 상태를 유지하고 각각이 끊임없이 다른 상태로 쉽게 변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식물은 ‘매끄러운’ 다양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듈화된 부분들은 개체 전체의 위협에 대응할 때에도 각각의 부분적인 네트워크를 유지합니다. 따라서 식물의 모듈은 일정한 단위로 분할된 표준화된 부분이 아닌 부분들마다 서로 다른 질적인 다양체입니다.

반면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홈 패인 다양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물의 신체는 식물과 달리 모듈화되어 있지 않고 기관화되어 있습니다. 기관은 자신만의 특별한 기능을 수행하고 기관들의 활동은 ‘나’라고 하는 유기체의 형식으로 통합됩니다. 기관들은 유기체라는 통일체로 통접되고, 그 결과 기관은 유기체를 구성하는 도구organon가 됩니다. 유기체라고 하는 중심적 형식 아래서 기관들은 유기체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도구적 기능을 수행합니다. 유기체가 기관들을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 만드는 중심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유기체라는 기준 속에서 기관들은 하나의 기능으로 고정되기 때문에 동물은 홈 패인 다양체입니다. 통접의 결과 형성되는 유기체라는 패인 홈 속으로 기관들이 흘러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매끄러운 다양체와 홈 패인 다양체는 단순히 대립되는 다양체가 아닙니다. 홈 패인 다양체는 매끄러운 다양체를 포섭함으로써 기능합니다. 유기체가 하나의 통일체로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이질적인 상태로 존재하는 여러 기관들이 있어야 합니다. 유기체로의 통접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통합되지 않고 존재하는 기관들이 먼저 존재해야 합니다. 각각의 기관들은 유기체라는 형식으로 통합될 때에만 특정한 기능을 위한 도구가 됩니다.

하지만 기관들이 유기체 안으로 통합되어 특정한 기능으로 고정된다고 여겨질 때에도 실제적인 기관의 활동은 연속적이고 강도적입니다. 가령 걸을 때와 달릴 때 다리라는 기관은 똑같이 움직이고 폐는 똑같이 산소를 공급하지만 그 강도는 다릅니다. 컴퓨터로 타이핑을 할 때와 펜으로 글을 쓸 때 손이라는 기관의 움직임 역시 강도적으로 다릅니다. 펜으로 글을 쓸 때와 비교해서 타이핑하는 손은 속도라는 강도의 비약적인 증가를 경험하게 됩니다. 걸을 때와 달릴 때, 펜으로 글을 쓸 때와 타이핑을 할 때 다리와 손의 강도적 변화는 모두 연속적으로 이뤄집니다. 심지어 똑같이 걷는다고 할 때에도 몸의 강도는 계속해서 변하고 언제나 조금씩 다르게 걷습니다. 더불어 물구나무를 선다고 한다면 다리는 몸을 지탱하고 걷는 자신의 도구적 기능에서 벗어나 다른 상태로 비약하기도 합니다. 걸을 때와 달릴 때 강도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그 과정은 연속적이지만 우리는 흔히 다리라는 기관, 폐라는 기관의 표상에 갇혀 그 강도적 변화를 쉽게 무시하곤 합니다. 기관의 표상 속에서도 연속적인 강도적 변화를 찾고자 할 때 우리는 ‘홈 패인’ 다양체에서 홈 패인 ‘다양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들뢰즈/가타리가 기관 없는 신체를 말할 때 그것은 기관을 부정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기관들을 통합하는 유기체에 반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나아가 유기체의 형식 속에서 하나의 기능으로 고정된 기관이 아니라 연속적인 강도적 변환 속에서 다른 기관이 되는 지점을 포착하려 했습니다. 강도적 변환이 특정한 비약의 문턱을 넘을 때 다른 것-되기가 발생합니다. 이는 기관의 형태를 변형하지 않고도 그 강도의 분포의 변환만으로 다른 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강도의 연속성 속에서 이해할 때 홈 패인 다양체는 매끄러운 다양체로 변환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매끄러운 다양체는 홈 패인 다양체로 포섭되고 홈 패인 다양체는 다시금 매끄러운 다양체로 변환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만쿠소는 벌들의 이사의 예를 들어 중심화된 정치에 대한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보여줍니다. 벌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할 때 여왕벌이나 특정 벌에 의한 중심화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을 탐방한 다수의 벌들의 의견교환을 통해 이사할 최종 지역을 정합니다. 벌들은 다수에 의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벌들의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벌들의 민주적 결정이 단순히 표결의 다수성이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벌들의 민주주의에서 알 수 있는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수의 무리성과 무리의 다수성의 구별에 있습니다.

무리의 다수성은 무리가 다수성을 띠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때 다수성은 흔히 수적인 다수성을 가리킵니다. 수적으로 다수인 이들은 대개 기존의 기준을 따라서 판단합니다. 수적 다수성은 척도를 따르는 이들을 말하고 이 경우 판단은 척도가 하게 됩니다. 바꿔 말하면 척도가 수적 다수들의 입을 통해 표현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수성에서 판단하고 명령하는 중심은 수적 다수이기 이전에 그들이 기대고 있는 척도입니다. 그러나 기존에 존재하던 척도를 따라 판단하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가 힘듭니다. 변화된 조건 속에서도 이전의 기준을 따르기에 무리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무리는 척도적 다수성으로 쉽게 환원되고 늘 하던 것을 다시 반복하게 됩니다.

반면 벌들이 어떤 곳에 터를 잡을지 결정하는 의견의 교환은 수평적인 교환으로 봐야 합니다. 변화된 조건 속에서 적응하기 위해 벌들은 그때그때 새로운 판단을 내리고 판단을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선택을 만들어냅니다. 벌들은 국지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수적 다수가 무리성을 띠게 만듭니다. 수적 다수에서 기준이 되는 척도the one를 빼고 의견들이 수평적으로 자유롭게 교환될 수 있을 때 다수는 무리성을 가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다수성이 아닌 무리성이고 무리성을 구성하는 동맹능력입니다. 어떤 의견도 자유롭게 교환될 수 있고 의견을 내는 자의 자격을 묻지 않는 무리성은(여왕벌인지 일벌인지) 자격 없는 자의 판단을 잘 보여줍니다.

랑싱에르가 지적한 것처럼 민주주의democracy는 몫 없는 자, 자격 없는 자를 가리키는 인민들demos의 지배kratos를 뜻합니다. 랑시에르에게 정치란 주어진 자리를 이탈해 몫이나 자격을 주장하는 것이고, 반대로 치안이란 주어진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는 자격 없는 자인 인민이 자신의 자리를 이탈해 자격을 주장하는 정치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자격이란 특정한 척도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고 일정한 기준을 넘겼을 때 자격 있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격 있는 자들은 대개 자신에게 자격을 부여한 척도를 따르는 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자격 있는 자들은 다른 이의 자격을 묻고 자격이라는 척도 주위를 맴돌게 됩니다.

반면 척도라는 중심을 벗어나 척도가 부여한 자리를 이탈할 때 정치가 발생합니다. 이는 무리성을 획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무리성이란 어떤 자격 없이 행하는 것이고 자격을 따지지 않는 동맹관계의 다수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리의 다수성과 다수의 무리성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중심화된 것인가 아닌 가를 보는 것이고, 나아가 수적 다수가 무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곤충연대기』입니다. 발제는 김나경 선생님과 고재연 선생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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