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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3강에서는  『예술로서의 삶』 벤야민프로젝트서문, 보들레르 텍스트, 발자크텍스트 자료 속  "댄디즘"을 다루었습니다. 

고봉준선생님께서 댄디즘에 대한 해석을 두 가지로 정리해주셨습니다. 하나는 도르비이와 발자크의 글에서 볼 수 있는 영국적 댄디즘, 다른 하나는 보들레르와 벤야민의 글에서 볼 수 있는 프랑스적 댄디즘입니다.

영국적 댄디즘의 댄디는 대중과 동일시되지 않으려는 거리두기, 자기를 가꾸려고 하는 모습으로 대표되는 귀족적 특징을 갖고 있었습니다. 즉, 냉소적이며 귀족적이며 수동적인 성격을 지녔지요.

반면 보들레르의 글에서 나오는 댄디는 거리에서 무언가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사람으로 적극적입니다. 군중 속에 있으나 군중과 거리두며, 거리에서 새롭게 등장한 무언가에 주목하고 의미 부여하고 해석하는 존재이지요. 보들레르는 댄디에게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인이 가지는 포지션을 보았습니다. 넝마주의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휴지를 줍는 것처럼 시인은 거리에서 시가 될만한 것을 찾아 다닌다고 보지요. 자기 스스로를 판매하는 판매자이자 그 스스로 상품이기도 한 매춘부처럼 시인 또한 현대사회에서는 스스로 시를 쓸 뿐만 아니라 판매자로서 어필해야 합니다. 벤야민은 보들레르의 작품 속 이 모습들을 묶어 산책자라 부릅니다. 시인, 매춘부처럼 거리를 쏘다니며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은 산책자라 불리는 캐릭터인데 여기에 댄디가 포함되지요. 산책자들은 귀족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로 편입되는 시기에 속한 사람들로 자본주의에 포섭되기를 거부했던 이들입니다. 발자크의 표현에 따르면, 부지런해야만 하는 시대에 유용성을 거부하는, 게으른 사람들이었던 것이지요. 발자크는 댄디즘이 귀족을 모방하지만 귀족과 구분된다는 점에서 댄디에게서 “우아한 삶”이라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부자로 태어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우아한 태도를 갖는 것이 댄디즘의 중추인 것이지요.

댄디에게서 20세기 예술가의 초상을 본다면 그것은 평준화되지 않음, 자아숭배, 사회적 도덕에 대한 배척, 유용성과의 거리두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보들레르가 댄디즘을 시인의 운명의 알레고리로 보게 한 것이 아닐까요? 도르비이는 댄디즘에서 귀족적인 것을 보았지만, 보들레르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알레고리로 본 것이 댄디즘에 대한 우파적/좌파적 해석의 본질적인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댄디즘이 21세기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요? 평론가 김현이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할 때 “문학은 써먹을 수 없다”고 한 것은 문학이 권력이나 부의 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것 즉, 유용성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유용한 것이 결핍될 때의 불편함을 연상한다면 유용한 것은 유용하다는 바로 그 이유로 다른 것들을 억압할 수 있는 기제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유용하지 않은 문학은 그렇기에 다른 그 무엇도 억압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댄디즘과 유사한 지점이 아닐까요? 대중의 표준적 삶에 섞여 들어가지 않으려 하는 우아한 태도,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괴물을 마주한 상황에서도 유용성을 거부한 댄디. 또 예술을 기능적으로만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예술가가 사회에서 갖는 포지션을 문제삼는 요즘의 예술계를 설명할 수 있는 지점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요?

  다음주 월요일부터는 니체의 예술론을 공부합니다. 『예술로서의 삶』 "3장. 니체의 이상적 유형들" 을 읽어오시면 되세요. 발제는 은정님께서 맡아주시기로 하셨습니다. 텍스트를 읽으시며 논의해보고 싶은 지점들과 의문을 가지시는 지점들을 간략히 쪽글이라는 형식으로 수유너머홈페이지-인사원-인사원자료실 에 써주시면 보다 풍부하고 깊이있는 인사원강좌가 이뤄질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의 쪽글 기대합니다^^ 그럼 다음주 월요일 오후 7시반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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