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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인문사회과학연구원]  슬라보예 지젝과 무의식의 정치학 : 정신분석의 정치철학  강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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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최진석

 

수유너머N 회원이자 문학평론가. 러시아인문학대학교 문화학 박사.

잡다한 세상사에 관심을 가지며, 

문학과 문화, 사회의 역설적 이면을 통찰하기 위해 오늘도 게으른 독서를 실천한다.

지은 책으로 <민중과 그로테스크의 문화정치학>, <다시 돌아보는 러시아혁명 100년 1,2>(공저),

<문화정치학의 영토들>(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누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두려워하는가?>와 <해체와 파괴>,<러시아 문화사 강의>(공역) 등이 있다.


 

Q) 요즘 인문학의 흐름을 보면 정치철학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철학자 중의 한 명인 지젝을 인사원에서 다루게 되어서 기쁩니다. 그런데 왜 그 중에서도 지젝일까요?

 

A) 전통적으로 인문학이란 문학과 역사, 철학의 세 분야를 가리키지만, 지금은 사회과학이나 예술까지도 포함하는 전방위적 영역을 부르는 듯싶어요. 그냥 다양한 분야들을 아우르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 교차시키고 연결짓거나 종합하는 방식으로 사유의 그물을 짜는 활동이 인문학 아닐까 싶네요.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바로 정신분석일 겁니다. 아마 어떤 책을 펴도 프로이트니 라캉이니 상징계니 실재니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마구 쏟아지는 통에 분통을 터뜨린 경험이 있을 거예요. 그 중 핵심은 무의식입니다. ‘있다’고 말하기엔 확인이 안 되고, ‘없다’고 말하기엔 무언가 꿈틀대는 게 분명한 ‘그것’ 말이죠! 이렇게 의식 너머에 존재하는 무의식을 다루는 학문이 정신분석입니다. 프로이트가 창안했고 라캉이 발전시킨 이 학문을 현대 사상의 중요한 도구이자 무기로 만든 사람이 지젝이에요. 그런 만큼 지젝을 공부하면 정신분석 자체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에서 벌어지는 사유의 지형도를 그리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그럼 왜 지젝과 정치철학일까요? 그건 아마 정치철학이 왜 정신분석을 요구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이야기해야 답이 될 것 같군요. 정신분석은 무의식을 지식의 영역으로 끌어오고 무의식을 통해 지식의 구성을 바꾸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문제는 무의식이란 게 눈에 선하게 보이거나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그런 게 아니란 데 있죠. 무의식에 대한 잘 알려진 정의는 ‘억압된 것’입니다. 우리가 의식을 집중하기 위해 자꾸만 떠오르는 잡생각들을 억누르잖아요. 그렇게 억압해서 존재하지 않는 셈 쳐버린 힘을 무의식이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사회에도 무의식적인 것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사회의 여러 가지 이미지들, 교육과 사회생활을 통해 주입된 ‘우리’라는 집단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세요. 교과서나 공익홍보방송에 나오는 사회의 모습은 긍정적이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배제되어야 했던 부분이 있죠. 청년실업이나 세대간 갈등, 여성혐오 같은 게 그렇지 않겠어요? 우리는 똑똑히 체감하고 있지만, 법조문이나 행정적 조치, 공식적인 구호나 이미지에서는 쏙 빠져있는, 다시 말해 억압되어 있는 사회의 차원들. 정신분석이 정치철학에 기여한 것은 사회의 표면에, 공식적인 차원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사유의 대상으로 끌어올려 발화하게 했다는 데 있을 거예요. 이렇게 사회의 무의식에 대한 정치적 사유를 정신분석의 정치철학이라 부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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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정신분석의 정치철학"이라는 부제가 참 재미있게 다가옵니다. 이 둘이 어떻게 함께 엮이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듯한데, 지젝의 작업과 관련해서 간단히 설명해 주실래요? 겸해서 지젝에 관해서도 간단히 소개해 주시면 좋구요.

 

A) 지젝이 태어난 슬로베니아는 동유럽의 작은 나라에요. 냉전시대에는 공산주의 국가였고, 1949년생인 지젝도 당연히 유소년기에는 맑스와 레닌에 대해 공부해야 했을 겁니다. 나중에 프랑스로 건너가서 라캉의 사위이자 라캉주의 정신분석의 호위무사 격인 자크-알랭 밀레로부터 정신분석을 배웁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지젝은 1980년대 쯤엔 유럽에서 이미 비주류로 흘러가버린 독일 관념론 철학에 대해 관심을 가졌나봐요. 그래서 박사학위 논문을 라캉과 헤겔, 맑스를 결합해서 내놓게 되요. 그걸 간추린 책이 저 유명한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1989)이랍니다.

처음 지젝이 서구에, 그리고 한국에 소개될 때는 영화나 문학 등을 정신분석적 통찰로 풀어낸 ‘문화철학자’로 알려졌어요. 작품의 줄거리나 구성과 같이 눈에 훤히 보이는 측면들 이면에서 작동하는 욕망의 문제를 거론했고, 그걸 프로이트와 라캉의 이론으로 재미나게 풀어냈던 게 인기를 끌었죠. 그런데 사실 이 사람은 철학자거든요. 한국엔 그의 책 거의 모두가 번역된 상황인데, 어떤 책들은 칸트나 헤겔, 셸링 등에 대한 전문가적 식견이 없으면 몇 페이지 넘기기도 힘들 정도로 깊이 있게 연구했어요. 아무튼 2000년을 전후해서는 지젝의 저술 방향이 정치철학으로 급격히 전환합니다. 그것도 레닌에 초점을 맞추면서 말이죠. 지젝의 입장은 이런 구호에요. “레닌을 반복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 소련이 망한지 십년도 더 흐른 시점에서 갑자기 러시아 혁명의 주역을 다시 되풀이 하라고 하니 다들 기가 막혀 했죠.

그런데 이 점이 정신분석의 정치철학, 지젝의 정치철학에 관해 이야기할 때 흥미로운 부분이에요. 상식적으로, 레닌은 이제 그만 망각되어야 할 인물입니다. 죽은 지 100년 가까이 됐고, 그가 살던 세계와 우리가 사는 세계는 현격히 달라졌지요. 게다가 그가 일으켜 세운 소련은 어쨌든 자본주의 체제와의 경쟁에서 패배했습니다. 그런데 레닌을 다시 해보라니? 중요한 건 레닌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아니에요. 오히려 레닌이 차지하는 사유의 지위입니다. 무의식으로서의 레닌에 대한 이야기랄까... 좀 어렵게 들리나요? 소련이 해체된 이후 레닌은 ‘죽은 개’가 되었습니다. 레닌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게 지성인의 마땅한 교양이 된 것이죠. 그에 대해 말할라치면 “망한 나라의 망한 지도자를 왜 이야기하나?”라며 당장 말을 제지당할 게 뻔합니다. 또 레닌의 글을 읽을라치면 “21세기에 왠 레닌이냐? 집어치워라!”라고 욕이나 먹을 게 분명해요. 그렇게 금지된 사유, 억압된 사유가 바로 레닌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요점은 레닌이 1917년에 실제로 한 것뿐만 아니라 그가 할 수 없었던 것, 억압된 채 현실화되지 않은 것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레닌이 실제로 무얼 했는지가 아니라, 그가 하지 못한 것을 해볼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있어요. 반복해보고 실패해보란 말은 아마 그런 의미에서 억압된 것을 되돌리고, 현실 속에서 작동시켜 보라는 작업주문서로 봐도 무방할 거예요. 지젝의 정치철학은 현재의 정치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 하는 요구가 아닙니다. 철학자 ‘따위가’ 그런 요구를 한다고 사람들이 들어나 줄까요? 오히려 지금 정치로부터 배제된, 억압된, 그리하여 잠재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그걸 가동시킬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보라는 뜻으로 읽어야 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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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요즘 정치철학을 이야기할 때 꼭 언급되는 철학자가 랑시에르이지요. 이번 수업 계획서에도 랑시에르에 대한 언급을 해 주셨는데요, 지젝의 정치철학적 기획이 랑시에르적 의미에서의 정치와 어떻게 연관될 수 있을까요?

 

A) 내로라하는 철학자들끼리는 잘 겹쳐지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엇비슷하게 공유하는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랑시에르의 경우 정치와 정치적인 것을 구분한 것으로 유명한데, 지젝과 어느 정도 통하는 면이 없지 않습니다.

정치(politics)란 삼권분립이나 대의제도, 헌법과 정부, 법조문과 각종 시행규칙 등을 포괄하는 현실 질서를 가리켜요. 그냥 우리가 정치학이라고 부르는 것, 혹은 시사뉴스를 볼 때 정치코너에서 마주치는 게 바로 정치라는 거죠. 하지만 이런 정치는 현실을 고정시키고 유지시키는 보수적인 권력이 되기 쉽습니다. 정치는 곧 치안(police)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구요. 치안으로서의 정치는 현재 눈에 보이는 것만을 인정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있어서는 곤란한 것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여성혐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강변은, 그것이 이전까지는 정치의 정당한 의제로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걸 반증하죠. 치안의 관점에서는 새로운 인식과 성찰, 행동이 나올 수 없습니다.

정치적인 것(the politics)은 정치가 포착하지 못한 영역들을 다루려 합니다. 아직 명확하게 개념화되지 않고 제도나 체제로 포획되지 않은 영역들이 그렇죠. 규범이나 법, 제도와 체계 사이의 빈 공간들, 무의식처럼 무엇인가 분명히 움직이고 있는 데 현행의 언어나 개념으로는 도무지 잡아낼 수 없는 것들의 장소가 정치적인 것의 영역입니다. 사회를 통시적으로 바라보면 이전에는 없던 관념이나 생각, 감각이 생겨나는 양상을 목격하는데, 그건 정치적인 것이 사건으로서 생겨나기 때문에 그래요. 가령 불과 십여 년 전만해도 ‘헬조선’은 한낱 유언비어에 지나지 않았잖아요? 정부에서는 그런 건 실체 없는 소리라고 딱 잘라 부인했고, 각종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으면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말일 뿐이었죠. 모두가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헬조선을 헛소리라고 치부하지 못합니다. 우리 시대의 전형적인 증상이란 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죠. 헬조선이란 단어가 담아내는 온갖 의미들, 현상들은 예전의 정치로는 규명할 수 없는 사태에요. 그렇게 억압되어 있던 현상을 언어로 옮기고, 개념적으로 명확히 하고, 현실을 바꾸는 계기로 삼는 사유활동이 바로 정치적인 것의 정치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무의식을 분석하고 현실의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사유의 노동이란 겁니다. ‘무의식의 정치철학’이란 제목이 좀 설명이 되었을까요?​

 

Q) 이전에 사이먼 크리츨리와 지젝이 벌였던 논쟁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때 사이먼 크리츨리는 아나키즘적 저항운동을 옹호했던 반면 지젝은 그를 적극 비판하면서 조직화된 운동으로 중앙 권력을 장악하려는 방식을 고수하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근 십년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아랍의 봄, 월가를 점령하라, 촛불시위 등 민중의 저항 운동은 아나키즘적 성격이 강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시대에 레닌의 방식을 다시 불러오려는 지젝의 구상이 어떤 점에서 유효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A) 요즘 저도 흥미롭게 지켜보는 철학자가 크리츨리입니다. 레비나스와 데리다를 전공으로 삼는 영국 철학자인데, 두 사람은 예전의 제 강의목록에도 포함되어 있던 철학자들이죠. 질문한 것은 그의 2007년 작 <무한하게 요구하기>(Infinitely Demanding)에 대해 지젝이 ‘자유주의적 아나키즘’이라 불렀던 점을 가리키는 듯하군요. 지금 이 자리에서 크리츨리에 관해 장황하게 떠들 수는 없으니, 간략히 요점만 말해 볼까요.

아마도 지젝의 비판은 크리츨리의 ‘무한한 요구’가 20세기 후반 서구의 지식인들을 화석화했던 ‘초연함의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 때문에 나온 걸 거예요. 현실에 대해 이론적으로만 개입하고, 당장 거리로 나가 혁명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고 단언하는 주장 말입니다. 내일이라도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린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주장은, 멋지기는 한데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론이 빠져있고, 내심으로는 결국 혁명은 일어나지 않으리란 강한 믿음을 깔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하는 말 아니냐는 비판이죠. 사실 20세기 후반 지식계의 고질적인 현상을 꼬집은 건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분석을 해볼 수 있을 겁니다.

흥미롭게도 지젝에 대한 크리츨리의 비판을 보면 그가 ‘레닌의 반복’이란 테제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을 알 수 있어요. 철학적 통찰로서 반복은 ‘레닌이 하지 않은 것’의 반복이란 사실은 앞서 설명해 드렸습니다. 정치적 실천으로서 반복은 일상의 무슨 일이든 해 보는 것을 뜻해요. 혁명처럼 역사의 물줄기를 뒤바꾸는 엄청난 대사건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연구도 하고 운도 좋아야 벌어지는 일이죠. 그렇다고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도 없고, 음모론적 공상에 몰두할 수도 없지요. 오히려 무엇이든 작은 실천이라도 해보면서 자본주의나 국가주의와는 다른 방향의 실험을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신자유주의에 대해 스터디라도 열어보지 그래? 공동체라도 한번 구성해 보는 건 어떻고? 그런 뜻입니다. 촛불이 아나키즘적 성격이 강했다는 데는 동의해요. 십수년간 벌어졌던 세계 도처의 민중운동도 그랬을 게고. 중요한 건 그런 운동들이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해서 분출한 것만은 아니란 겁니다. 사람들의 작은 행위들, 정동의 교환, 사유와 활동의 집합과 분산 등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정치적인 것의 운동들이 쌓이고 쌓인 결과일 거예요. 아마 이런 점들에 주의하면서 크리츨리와 지젝의 논쟁을 다시 살펴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울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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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난 겨울 학기에 "지젝과 함께 레닌을!" 강좌를 진행하셨죠. 이전 강의를 듣지 않은 사람도 이번 수업을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을까요? 또 지난 번에 강좌를 들은 수강생들은 이번 강의에서 어떤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을까요?

 

A) 한 학기 동안 지젝에 관해 강의한다니까 관심을 갖고 문의하는 분들 중에, 그런 걱정을 하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아요. 다들 물어보더군요. 겨울학기 수업을 안 들었는데, 못 따라 가는 것 아니냐고... 걱정 안 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왜냐면 어차피 어렵기 때문에... 하핳;;;; 새로운 수강생들과 새롭게 시작하는 자리이니 ‘안다는 가정하에’ 마구 진도를 나가지는 않을 거예요. 서로 이해의 폭을 균등히 하고, 유사한 문제의식의 울타리 안에서 공부의 강도를 높이려면 발걸음을 맞춰주는 게 중요하거든요. 똑같지는 않더라도, 어떤 개념이나 구도에 관해 모두가 공유할 만한 개념 정의나 이해를 나누면서, 무의식과 정치적인 것에 관해 천천히 나가볼까 합니다.

인사원의 목표는 각자 자기만의 질문을 만들어 보는 데 있죠. 지젝과 정치철학에 대해서는 제가 얼마든지 모범답안을 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걸로 자신이 처한 입장과 환경,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끌어낼 수 있는 문제상황은 모두 다를 겁니다. 다같이 읽고, 토론하고, 문제의식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학기말에는 어느 정도 ‘나 자신의 질문’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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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젝은 다작을 하는 작가로 유명하죠. 이번 수업에서도 지젝의 저서를 여러 권 다룰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읽어볼 만한 입문서 몇 권 추천 부탁드릴게요. 



A) 이번 학기 수업에는 입문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젝 자신이 쓴 <라캉>이 그 책인데요, 이 책을 읽으며 속성으로나마 기본기를 닦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라캉의 정신분석에 대해서는, 제가 늘 추천하는 책인데 만화로 된 입문서가 하나 있어요. ‘하룻밤의 지식여행’이라는 시리즈로 나온 책인데 한번 훑어봐도 좋은 책입니다. 또, 누군가의 사상에 입문하려면 인터뷰나 대담집이 좋은 관문이 된다고 생각해요.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이 그런 책입니다. 이번 학기에는 얇고 쉬운 책부터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가며 공부할 테니 잘 따라 오시는 게 요점이랍니다!

하나 더 조언해 드린다면, 읽다가 어려우면 그냥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너무 큰 산들이 있죠. 지금 이해가 안 가면 지금은 때가 아니란 뜻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언젠가 올 기회를 기다리면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도 괜찮아요.^^

검색해 보면 알겠지만, 지젝의 대표작은 훨씬 많습니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까다로운 주체>, <시차적 관점>, <헤겔 레스토랑, 라캉 카페> 등등. 그런데 입문자가 이런 책들을 죄다 사놓고 읽으려고 하면, 아마 개강 전에 다 포기하고 말 겁니다. 지금 열거한 책들은 지젝이 자기 철학을 펼치려고 쓴 대작들입니다. 그냥 이런 책들이 있는가 보다, 구경만 해두는 걸 권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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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의일정:  2018년 3월 8일부터, 목요일 저녁 7:30 (총 15주)

2. 수강정원 : 35명

3. 수강료

  - 1과목 개별 신청: 35만원

  - 1학기(2과목) 신청: 60만원

4. 입금 계좌: 신한 110-328-009409 김효영

5. 수강신청 방법: 수유너머104 홈페이지- [인문사회과학연구원] 게시판 - [인사원 신청] 게시판에서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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