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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르케이즘의 정치학> 강사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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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 문학평론가, 문화학 박사. 계간 <문화/과학> <뉴래디컬리뷰> 편집위원. 세상의 온갖 잡스러운 일들에 관심을 가지며, 문학과 문화, 사회의 역설적 이면을 통찰하기 위해 오늘도 게으른 독서를 실천한다. 지은 책으로 『불가능성의 인문학: 휴머니즘 이후의 문화와 정치』, 『감응의 정치학: 코뮨주의와 혁명』, 『민중과 그로테스크의 문화정치학: 미하일 바흐친과 생성의 사유』, 『다시 돌아보는 러시아혁명 100년 1, 2』(공저), 『문화정치학의 영토들』(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다시, 마르크스를 읽는다』, 『누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두려워하는가?』, 『해체와 파괴』, 『러시아 문화사 강의』(공역) 등이 있다.

 

아나키즘이 최근에는 비교적 낯설게 느껴지는데요, 현대 사상사나 철학사에서 아나키즘은 어떻게 이해되고 사용되고 있을까요?

모든 사상이 그렇듯 아나키즘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플라톤 시대부터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왜냐면 플라톤이 민주주의 즉 ‘데모크라시’를 ‘원리 없는 대중들의 난동’ 정도로 비난했기 때문이지요. 이때 ‘원리가 없다’는 게 바로 아나키의 어원입니다. ‘원리’라는 의미의 ‘arche’와 ‘없음’을 뜻하는 ‘an’이 합성된 단어, ‘안아르케’가 바로 아나키즘의 어원이지요. 하지만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 없이, 아나키즘이 정말 사회적 실천철학과 운동의 문제로 부각된 것은 19세기 근대의 일입니다. 알다시피, 19세기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등이 막 부상하던 시대잖아요? 아나키즘도 그 사상들과 경쟁하며 나타났는데, 앞의 두 사상이 국가와 같은 거대 집단의 문제를 고민하는데 집중했다면 아나키즘은 국가처럼 거대한 규모의 집단주의 자체를 배격하는 사상이었다는 점이 차별적입니다. 흔히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라고도 번역하는데, 정부/국가에 대한 반대가 강조된 번역이지요.

아무튼 20세기를 전후하여 소련이 성립하고, 세계는 좌/우의 진영논리로 대립하게 되는데, 사실 두 국가주의의 대결이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의 차이가 이데올로기적 대립의 큰 틀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국가주의로서 사회주의, 즉 소련이 정말 맑스의 혁명사상이 녹아든 사회구성체였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내려집니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에 대해 맑스가 생각했던 것은 ‘코뮨’ 즉 소단위로 구성된 자율적인 개인들의 정치적 집합체였기 때문이에요. 불행하게도, 전쟁이나 기근 등의 이유로 말미암아 1917년 이후 러시아에 들어선 볼셰비키 정부는 코뮨 대신 국가를 택했고, 그것이 소련이라는 거대한 사회주의 제국의 기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련은 미국의 일종의 거울상이라고나 할까, 이념을 달리했을 뿐 근대 국민국가로서는 비슷한 구조를 띄었던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현실사회주의' 국가 소련은 처음부터 맑스의 사상과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코뮨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맑스의 코뮨주의(공산주의)는 사실 아나키즘의 지향점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거대 단위의 국가공동체를 벗어나,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유로운 집합체(맑스)로서 코뮨은 아무 원리도 없이 되는 대로 생기는 카오스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필요할 때마다 원리를 바꾸어 나가고, 그 원리를 통해 당면한 삶의 문제들을 풀어가면서 새로운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거든요. 절대화된 원리는 없다, 다만 항상 변화하는 원리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아나키즘의 실천철학적 강령이지요. 문제는 우리는 원리라는 게 무슨 대단한 사상이나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에 바꾸어서는 안 된다거나, 바꾸는 걸 두려워한다는 데 있습니다. 실험정신이 부족한 게지요. 또 바뀌는 원리는 원리가 아니라는 편견도 있고요. 아나키즘의 철학적 과제는 이 같은 변화의 원리를 보다 급진적으로 되새겨 개인과 공동체를 구성하는 상대적 생성의 원리로 다듬어 내는 데 있습니다. 크로포트킨은 그런 과제를 떠맡았던 사람이었고요.

 

지금 우리 시대에 다시 아나키즘을 사유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21세기의 현재, 국가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보면 국경선들로 세계가 조밀하게 나누어져 있지요. 지구 전체가 마치 국가라는 개별자들로 이루어진 행성 같다는 느낌입니다. 더구나 국가가 크든 작든 그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행정적 절차나 규범 등은 날로 복잡해지고, 그럴수록 국가의 지배력은 더욱 강화되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만일 국가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거나, 억압적으로 작동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국가가 ‘정상적’ 기능을 한다는 게 뭔지 답하기도 어렵지만, 무엇보다도 국가가 비대해질수록 국민 개개인들과 직접 소통하고 만나기는 더욱 어렵지요. 우리의 시대는 개인의 역량과 능력, 판단 등이 중요한 삶의 원칙으로 부각되는 시대입니다. 누구의 지시를 받기보다, 개인이 스스로의 사고와 행동을 통해 자기 삶을 개척해 가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국가라는 거대한 단위체의 명령이나 지시, 법 등을 받으며 살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혼자서 살아가는 게 가능한 시대도 아닙니다. 혼자 방구석에 틀어박혀 살아도 멀리 산 속에 움막짓고 사는 게 아닌 이상, 사회에 얽혀 살 수밖에 없죠. 그런 한에서, 우리는 타인들과 만나고 교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은 단위의 공동체, 소규모 사회를 구성해야 살아가는 구체적 삶이 국가보다 가까운 게죠. 당장 국가를 벗어나 살아라! 이런 강령은 조금 비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없는 듯, 국가적 지배와는 독립적인 삶의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는 있죠. 일종의 ‘내재하는 외부’로서 코뮨이 그런 것입니다. 아나키즘은 무질서나 혼란의 사상이 아니라, 개인과 집단, 삶을 단 하나의 법칙으로 관통시키려는 원리 즉 아르케를 넘어서 삶에 부합하는 가변의 원리를 찾으려는 시도입니다. 하지만 사상사 공부에 국한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네요. 우리가 텍스트와 토론을 통해 찾아내려는 것은 고문서 취미 같은 게 아니라 지금-여기서 발동시킬 수 있는 실험의 실마리들이니까요. 진정한 실천철학으로서 아나키즘의 탐구, 그것이 이번 학기의 주제입니다.

 

Q 아나키즘이 아닌, 안아르케이즘을 지향점으로 가지고 오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앞에서 많이 이야기한 듯하니 짧게 다시 요약할게요. 아나키즘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무정부주의니 폭력사상이니, 혼란과 무질서의 선동주의니... 아나키는 말 그대로 절대적 원리의 지배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진리로 모든 사람들을 묶어내고, 그 진리를 따르지 않을 때는 폭도로 몰고 압살하려는 여하한의 시도에 대해서도 반기를 드는 게죠. 아르케를 넘어서고 아르케를 벗어나며, 나아가 삶에 부합하는 아르케 즉 억압하지 않는 아르케를 찾아나설 것. 이것이 안아르케이즘의 실천적 강령입니다. 우리는 행동을 통해 삶을 살지만, 동시에 인식을 통해 삶을 찾지요.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것은 그러한 인식과 행동을 실험해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Q 크로포트킨은 아나키즘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인가요?

A 그는 노령에 러시아혁명에 참여했지만, 혁명이 자기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데 실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습니다. 대개 공산주의 사상에서는 아나키즘을 백안시하고 공격하는 경우가 많은데(맑스가 아나키스트 바쿠닌과 매우 불편한 관계였거든요),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크로포트킨은 인정해 준 케이스이기도 했어요. 워낙 존경받던 인물이고, 실제로 혁명에서도 그 공로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관심사는 그가 남긴 저술들에서 안아르케이즘의 인식과 행위가 드러나는 측면들을 찾고, 세심하게 뜯어보는 것입니다. 무작정 폭력을 옹호하거나 공동체를 전복시켜라, 가 그의 생각은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소멸하는 국가의 운명 앞에 어떤 새로운 공동의 삶을 구성할 것인가야말로 그가 던진 초미의 질문이었어요. 코뮨의 문제가 크로포트킨의 아나키즘에서 중요한 요소인 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다만, 20세기까지는 아나키즘이 반국가주의 사상으로 낙인찍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유행이 지난’ 사상 취급을 받았지요. 어쩌면 우리 시대에 이르러 아나키즘은 안아르케이즘의 조명 아래 더욱 진가를 발휘할 실천철학으로 드러날 듯싶습니다. 크로포트킨이라는 인물에 대한 조명은, 그의 인품이나 사상을 파고들자는 게 아니라 그를 통해 안아르케이즘의 현재적 근거를 재구성하고 작동시켜보자는 뜻입니다.

 

Q 이번 강의에서 총 7권의 책을 읽어 나가는데, 강의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읽어야 할 책이 많아 강독강좌식인지 아니면 세미나 형태로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A 한국어로 번역된 크로포트킨의 저술들을 읽어갈 참인데, 조금 많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이데거나 데리다, 들뢰즈... 이런 철학책하고는 좀 성격이 달라서 그렇게 골치아프지는 않을 거에요. 하하하... 주로 아나키즘의 실천적 강령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있어서 읽고 토론하는 데 역점을 두려고 합니다. 발췌해서 읽을 것도 꽤 있어서 전체를 다 읽고 공부한다는 ‘망상’은 이번 학기에는 좀 자제하려고 해요.^^;;;;; 인사원 자체가 집중강독형 세미나 수업입니다. 같이 책을 읽고 발제도 하고, 발표도 하는 식으로 진행할 생각입니다만, 따분하게 텍스트만 내리 붙잡고 시간을 보내는 건 그리 안아르케적이지 않아 보이네요. 텍스트는 적절히 읽고, 대신 안아르케적 실천이란 무엇인지, 관련 사례들을 찾아보고 발표하거나 구상하는 데 역점을 두고픈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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