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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이진경 선생님

철학자,  본명은 박태호인데, 1987년 출판한 첫 책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이 뜻하지 않게 허명을 얻으면서 본명은 잃어버렸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이고 지식공동체 <수유너머104>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박사학위논문은 서구 주거공간의 역사와 주체생산방식에 대한 것인데, 나중에 『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으로 출판되었다. 『철학과 굴뚝청소부』, 『노마디즘』, 『자본을 넘어선 자본』, 『코뮨주의』,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삶을 위한 철학수업』, 『파격의 고전』, 『불교를 철학하다』, 『김시종, 어긋남의 존재론』, 『예술, 존재에 휘말리다』 등의 책을 썼다. 스피노자의 눈에 니체의 수염과 입, 들뢰즈의 턱을 한 '어떤' 철학자의 초상을 꽤나 오랫동안 그리고 있다.

 

Q: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번 2021년도 1학기 인사원 강의를 맡아주셔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 

먼저 첫 번째 질문인데요. 이번 인사원 강의 제목이 '타자성의 자연학'인데, 이제는 익숙한 것처럼 보이는 타자에 비해 자연학은 또 그만큼 낯선 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번 강의의 제목인 '타자성의 자연학'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A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을 적절히 섞어서 제목을 잘 지었다는 말로 들리네요. 이전에 레비나스가 '타자'란 개념을 철학적으로 제시한 이후에 타자성의 사유는 여러 영역에서 확대되고 영향력을 얻고 많이 익숙해졌죠. 하지만 레비나스는 타자를 '고통 받는 얼굴'로 요약되는 인간으로 제한을 했었고, 그 외에도 타자성의 사유는 인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사실 고통 받는 얼굴보다 더 끔찍한 것은 고통 받는 얼굴조차 인지되지 않는 그런 것들 아닌가, 피터싱어 같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동물이나 표정조차 짓지 않는 식물들은 어떤가? 고통 받는 동물에 관심을 가진 피터싱어조차 식물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는데 정말 그럴까? 하는 것이죠. 살아 있는데, 더구나 고통 받지 않는다면 그들에 대해서는 무감해도 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심지어 생명사상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식물가지고 실험하거나 혹은 박테리아를 가지고 실험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럼 그들은 생명이 아닌가하면 그렇지 않다는 거죠. 이들은 생명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조차 잊히고 있다고 봐야 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타자성에 대한 사유는 인간을 넘어서 자연학으로, 인간을 넘어선 모든 것들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죠. 사물도 마찬가지지요.

 

 

Q: 네. 다음으로 이번 강의 소개를 살펴보면 여기서의 타자란 단순히 주체에 대해 저항하거나 그 밖에 있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주체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어떤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을 주체로부터 타자가 아닌 타자로부터 주체로 향하는 사유의 방향전환으로 볼 수 있을까요?

 

 

A: 사실 타자의 윤리학이라고 이야기를 하든, 타자의 사유,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할 때, 보통 주어는 주체고 타자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통상 타자는 대상이었던 것 같아요. 이런 점에서 타자에 '대한' 윤리학, 타자에 '대한' 존재론 이런 식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것이야말로 타자가 여전히 타자인 채 남아있는 거죠. 사실 타자가 타자가 아니게 되면 타자성의 윤리학 자체가 붕괴되는 아이러니 같은 게 있죠. 말할 수 없는 주체, 서발턴으로 남아있을 때도 그런 거죠. 왜 그럼 타자들의 윤리학을 말할 때에도 타자는 대상으로만 남아있는가? 저는 반대로 타자가 주어가 된 의미에서 타자성의 윤리학, 존재론을 시도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의미에서 타자는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당혹스러울 정도로 밀고 들어가서 주체로 하여금 물에 빠져버리게 만드는 게 되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이런 점에서 주체와 타자의 분할을 와해시키는 게 진정한 타자인 거죠. 주체와 타자의 게임에서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만 남는 타자야말로 타자를 타자화하는 방식일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이런 문제의식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죠.

 

 

Q: 이렇게 봤을 때, 제목에서도 쓰신 것처럼 외부라는 개념이 굉장히 중요해 보이는데 외부라는 개념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A:  외부라는 말은 이미 푸코, 블랑쇼, 들뢰즈가 오래전에 사용했던 개념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들이 썼던 개념을 제 나름대로 받아서 사용한 셈인데, 예전에 『철학의 외부』라는 책을 내면서 서문에다가 '유물론은 외부에 의한 사유다'라는 정의를 제시한 적이 있었고, 그런 관점에서 유물론, ‘외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천착을 했었어요. 이후 『외부, 사유의 정치학』이란 책을 냈는데 거기서 다룬 것을 외부성의 유물론으로 명명할 수 있어요. 유물론적인 의미에서 외부 혹은 유물론을 정의해주는 외부란 일차적으로 사유 바깥에 있는 것, 혹은 감각 바깥에 있는 것이에요. 쉽게 얘기하면 뜻하지 않는 것, 그래서 뜻대로 되지 않기에 뜻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뜻 자체가, 사유 자체가 달라지게 만드는 방식으로 의식과 감각에 밀고 들어오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타자성이 중요한 것은 그러한 외부성을 가동시키는 것, 외부를 나에게 들이미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중요해요. 또 외부라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양상으로 펼쳐질 수 있는 것이죠. 그럼 ‘이것이 왜 유물론이냐?’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는데, 관념론은 의식이 가진 힘의 전능성, 주동성에 근본적인 지위를 부여한 것이죠. 그런데 그러한 의식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바깥이라는 점에서, 관념론과 대결하는 지점을 표시하는 의미에서 유물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유물론하면 물질성을 떠올리는 19세기적인 낡은 습관을 벗어나서 유물론을 사유하는 데도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Q: 사실 탈인간중심주의, 주체를 넘어서 사유하려는 시도는 말씀해주신 것처럼 푸코나 블랑쇼, 들뢰즈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명시적으로 추구된 것이기도 한데, 타자성의 자연학은 그런 이전의 사유들과는 얼마나 같고 또 다를까요?

 

 

A: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푸코, 블랑쇼, 들뢰즈를 좋아하고 많이 배웠고, 외부라는 개념도 그 사람들에게서 따다 쓴 거죠. 그런 점에서 그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저는 한때 레닌주의자였고 맑스주의, 레닌 사상의 영향 속에서 생각하고 활동했던 과거의 경험들이 있어요. 그러다가 들뢰즈식으로 표현한다면 사회주의 붕괴라는 초험적 경험을 했는데,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사유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불가능한 경험 속으로 침몰해버린 맑스주의는 제게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저는 그 지점, 아주 다른 벡터를 가진 두 사유의 흐름들이 합류하고 부딪치는 지점에서 저를 위치 지으려고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외부라는 개념과 맑스주의의 중요한 개념이었던 유물론이라는 개념을 재정의 하려고 하면서 외부와 유물론이 합류하는 지점을 만들고자 했던 셈이고, 그 지점에서 양자의 사유가 섞여드는 것들을 통해 양자로 환원되지 않는 무언가가 생성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지점이 외부라는 개념을 통해 푸코, 들뢰즈의 사유를 다른 방향으로 밀고 나갈 수 있고, 또 그런 방식으로 외부라는 개념을 그들에게 다시 되돌려줄 수 있는 요소가 되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고 있습니다.

 

 

Q: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까 정리가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럼 이번엔 반대로 현재 철학의 흐름을 형성하는 사변적 실재론이나 신유물론 역시 휴머니즘의 외부라는 것을 그들 사유의 중심에 두고 있는데, 타자성의 자연학은 이들과는 어떻게 이어지고 또 갈라지나요?

 

 

A: 사실 저는 유행 따라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또 유행하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많이들 하는 건데 나까지 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있어서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에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사변적 실재론, 신유물론이 이야기 될 때에도 일삼아 들여다 볼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어요. 저는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제 나름의 문제의식을 밀고 나가려고 했던 셈인데, 특히 신유물론에서는 들뢰지앵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그들과 만나게 된 거 같아요. 그래서 이제 조금 읽어 봤어요. 저는 그 사람들 책을 보면서 두 가지 의미에서 과거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가령 사변적 실재론의 경우에는 메이야수 책을 읽어봤는데, 의식으로 해소되지 않는 물질성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 같은 게 느껴졌어요. 사실 그건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을 읽어보면 훨씬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어요. 그건 엥겔스가 쓴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이란 책에서 연원하는 것이고, 포이어바흐라는 19세기 철학자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에요. 그런 점에서 냉정하게 말하면 저에게는 낡은 얘기를 더욱 더 강박적인 형태로 주장하는 거 같아서, 이건 제가 ‘대학 1학년 때 유물론 세미나하면서 하던 얘기를 저명한 철학자의 책에서 다시 보는 구나’하고 웃으면서 읽은 씁쓸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뭐 이런 것을 새로운 이야기인 것 마냥 하고 있나’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신유물론이라고도 하는, 데란다의 최근 책들을 보면 배치에 관한 책이고, 제인 베넷이 쓴 책에도 주로 보면 배치를 라투르의 연결망과 이어서 얘기하고 있어요. 저는 2002년에 『노마디즘』이란 책을 썼는데, 그 책 처음 서장인 0장에서 강조하면서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 중에 하나로 삼았던 게 배치라는 개념이었고, 그래서 제목을 ‘배치의 역사유물론’이라고 지었어요. 배치라는 개념을 통해서 들뢰즈적 사유와 맑스적 사유의 합류지점을 찾았던 셈이에요. 그것도 저에겐 꽤 옛날인 18년 전으로 거슬러 가게 만들더라고요. 그리고 그 사람들과는 약간 다르게 카스트루 같은 사람들이 말하는 존재론적 전회 역시 들뢰즈-가타리적 맥락이 있는 셈인데, 그걸 보니까 이런 책과 굉장히 가까이 있는 책이란 느낌이 들었어요. 저는 사실 김시종 선생의 시를 읽고서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은 여전히 존재자의 존재론이었고, 이제 그걸 떠나서 존재의 존재론, 존재의 심연 속으로 다시 들어가겠다라고 생각을 해서 떠난다고 떠났는데, 이걸 보니 아직 떠날 때가 안 됐구나. 오히려 되돌아가야 되는 건가 보구나. 그런 의미에서 이건 과거로 되돌아가게 만든 책이었어요. 책들을 보면서 기꺼이 되돌아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맥락 속에서 예전에 했던 작업들, 『노마디즘』에서 『코뮨주의』,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들, 가령 『코뮨주의』 역시 「공동성과 평등성의 존재론」이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데 이렇게 존재론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뤘던 것들이 존재론적 전회랑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런 맥락에서 연결해서 내 책을 다시 읽어봐도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서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을 프로그램의 마지막에 넣게 되었습니다.

 

 

Q: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휴머니즘의 밖, 인간 밖이라고 하는 것이 철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한테도 관심사가 된 것 같아요. 말씀해주신 피터싱어의 『동물해방』 같은 책들이 많이 읽히는 것을 보면 이런 문제의식이 시의성을 가진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러한 시대적 관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좋은 일이죠. 어떤 존재자들도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또 그것을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되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보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라는 것 때문에 자기중심적으로 보는 것으로는 오히려 자기중심적으로 볼 수 없다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자기중심적으로 제대로 보기 위해서도 자기를 벗어나서 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가령 니체적 투시주의, 제가 작년 니체 관련 책에서 썼던 것이기도 한데, 퍼스펙티비즘perspectivism이라고 하는 것을 흔히 자기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라고 해서 일종의 상대주의로 해석을 합니다. 그것은 퍼스펙티비즘이라는 것을 니체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귀속시키는 방식으로 읽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것은 어떤 포지션이라도 잘 보는 것이 있다라는 겁니다. 개구리는 개구리대로 잘 보는 게 있듯이, 인간은 인간대로 잘 보는 게 있고 다 다른 겁니다. 노동자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자본가는 자본가의 입장이기 때문에 잘 보이는 것이 있는 것이죠. 자기 입장을 고수하려고 할 때에도 마키아벨리식으로 말하면 ‘훌륭한 군주는 인민의 입장에 서서 세상을 볼 줄 아는 군주고, 훌륭한 인민은 군주의 편에 서서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게 퍼스펙티브를 넘나들고 횡단하면서 세상을 볼 수 있어야만 훌륭한 군주, 인민,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세상을 잘 보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이 되는 것이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러 퍼스펙티브를 오가는 이행 능력이에요. 니체적인 방식으로 얘기하자면 건강은 이행 능력이거든요. 우리는 언제나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가라앉을 때도 있는데 어느 한 상태에 머물러서는 그게 아무리 좋은 상태라도 거기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맛이 간 겁니다. 이런 것들을 넘나들면서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면 아무리 좋은 상태라도 지속된다면 견디기 힘든 것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 퍼스펙티브들을 오가는 이행능력이 굉장히 중요하고, 휴머니즘을 벗어나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경우에조차도 휴머니즘의 보충물로써 비-인간의 관점에 서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비-인간의 관점에서 인간을 도저히 이럴수가!하는 지점까지 밀어붙이면서 보려고 하는 것인가에서 저는 중요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래서 어느 지점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를 같이 생각하면서 보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네. 감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선생님의 강의에서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인터뷰가 강의를 준비하시는 분들이나 강의를 고민하시는 분들에게도 좋은 답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개강날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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