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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라캉의 『에크리』 읽기

정신분석 혁명의 진앙을 찾아서

 

최진석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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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문학대학교 문화학 박사. 세상의 온갖 잡스러운 일들에 관심을 가지며, 문학과 문화, 사회의 역설적 이면을 통찰하기 위해 오늘도 게으른 독서를 실천한다. 지은 책으로 『감응의 정치학』, 『민중과 그로테스크의 문화정치학』, 『다시 돌아보는 러시아혁명 100년 1, 2』(공저), 『문화정치학의 영토들』(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누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두려워하는가?』와 『해체와 파괴』, 『러시아 문화사 강의』(공역) 등이 있다.

 


 

Q. 라캉의 『에크리』는 오랫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책 중 하나였습니다. 조만간 번역돼서 나온다, 나온다, … 그러길 이십 년은 족히 넘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에크리』가 마침내 올 초에 한국어로 번역되었어요. 막상 책이 정말로 나오니 문득 궁금해집니다. 원서가 나온지 벌써 반세기가 훌쩍 넘은 이 책을 지금 우리가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국에서 『에크리』의 현재성은 어떤 걸까요?

A. 정말 그렇습니다. 제가 수유너머에 ‘입사’한지 근 이십 년 정도가 되는데, 그때부터 『에크리』는 ‘출간 예정’ 딱지를 붙인 채 광고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번역이 다 끝났다더라, 역자들 사이에서 싸움이 났다더라, 도저히 한국어로 옮길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더라 … 정말 ‘카더라’ 통신만 무성했더랬습니다. 저도 놀랐어요. 올 초에 책이 나온 걸 보고요. 사실 직접 안 것은 아니고(기대도 안 했으니까!), 누가 이 책을 책꽂이에 꽂아둔 걸 보고 알았답니다. 야아~ 드디어 나왔구나!

  정신분석에 흥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라캉의 『에크리』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물론 라캉에게는 『세미나』 시리즈가 아주 중요한 위상을 갖고, 또 『세미나』야말로 얼른 번역되어야 할 저술이라고들 하죠. 하지만 『에크리』는 바로 그 『세미나』의 모태가 되는 저서라 할 만해요. 『세미나』가 녹음해 둔 라캉의 강의를 풀어서 출간했기에 라캉 자신의 감수나 교열을 거치지 않은 반면, 『에크리』는 그가 자기의 저작을 염두에 두고 오랫동안 수정하고 다듬어서 낸 책이거든요. 그러니 라캉주의 정신분석에 도전하려는 누구에게든 꽤나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지요. 그건 라캉도 정신분석도 아니라, 바로 무의식에 대한 거에요. 20세기 이후의 인문학은 무의식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해 버렸습니다. 19세기까지도 무의식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되거나, 혹은 존재하더라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으니까요. 하지만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하고 그것을 연구하는 방법으로서 정신분석을 ‘발명’하고부터는 사정이 달라졌지요. 무의식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 누구도 인문학의 범주에서 사고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정신분석이라는 관문을 무시할 수는 없게 된 것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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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프로이트야말로 발견자요 발명자이기 때문에 그의 사상과 학문이 중요한 건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라캉 자신이 강조했듯이 모든 출발점은 프로이트에게 있단 말이지요. 라캉은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사람이라기보다 ‘재발견’하고 ‘재발명’한 사람이란 게 중요합니다. 19세기의 유럽인으로서 프로이트가 갖고 있던 지식과 생각, 관습과 행동의 회로는 그 시대에 제약될 수밖에 없었는데, 라캉은 그것을 돌파하고 재구조화하려고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라캉 본인은 ‘프로이트로 돌아가자’고 외쳤건만, 실제로 그의 이론을 따져보면 프로이트와 사뭇 다르게 여겨지는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사실 상당히 달라 보이기까지 하죠. 그렇지만 이 차이는 다른 것을 같다고 우기는 것과는 달라요.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보이지 않던 이면을 남이 봐준 셈이에요. 즉 프로이트 자신도 직접 볼 수 없던 자기 뒷모습을 라캉이 보고 적어준 것이지요. 달리 말해, 라캉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읽은 사람이란 것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번지니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끝을 맺을게요. 『에크리』의 중요성은 라캉의 중요성이자, 20세기 이후의 인문학에서 무의식이 차지하는 비중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인문학에 입문하는 분들이 가장 아리송해 하는 말 중 하나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는 것이잖아요?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고 작동하는 것. 정답은 무의식입니다. 바로 무의식에 대한 탐구가 정신분석적 연구이고, 라캉이 (프로이트를 이어서) 하려던 바입니다. 포스트모던이나 탈근대에 대한 이야기가 오래 논의되곤 했으나, 우리는 아직 근대인으로 살고 있고 근대의 끝을 자기도 모르는 새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지요. 그런 점에서 무의식에 기댄 인간과 세계에 대한 탐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라캉을 우리가 지금 다시 주목하고, 『에크리』를 지금 읽어야 할 이유는 그걸로도 이미 충분한 셈입니다.

 

Q. 선생님께는 라캉 또는 『에크리』가 어떤 의미인가요? 개인적인 문제의식 같은 것이 있다면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A. 제 개인의 문제의식이라 … 어렵군요. 조금 고백해 볼까요? 수유너머에서 오래 공부하고 강의하고 글도 써온 저로서는 감히 들뢰즈의 사도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네요. 여기 오자마자 들뢰즈부터 공부했고, 그 공부는 제가 들뢰즈를 주제로 글도 쓰고 강의도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중간에 프로이트나 라캉, 지젝 등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마음도 급하고, 또 들뢰즈와 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 계획에 끌려들면서는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이 좀 시시해 보이기도 했더랬습니다. 들뢰즈 말마따나 아버지나 남근을 강조하는 정신분석은 어딘지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사상, 사람을 병들게 만드는 학문 아닌가 싶은 의구심도 피어났구요. 그래서 오래 공부하다가 어느 순간 집어던져 버렸던 것도 사실이에요 … 하지만~!

  들뢰즈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무의식이라는 (정신분석적) 주제는 비중이 감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어나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안티 오이디푸스』나 『천의 고원』처럼 들뢰즈와 가타리의 대표적 저작을 읽을 때도 문제가 되는 것은 무의식입니다. 왜냐면 그들이 강력히 밀어붙이는 개념 이상의 개념인 욕망이란 너나 나, 누군가의 욕망이 아니라 무의식의 욕망이기 때문이에요. 욕망을 근대적 인간 주체의 관점에서 고정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욕망과 무의식의 관계에 대해 철저히 캐물어야 하고 그것이 저로 하여금 정신분석에 대한 관심으로 되돌아가게 만들어 주었지요. 

  그게 대략 2009년 정도의 일이고요, 그때부터 세미나 팀을 결성해서 프로이트 저작집을 한권한권 독파해 갔습니다. 그게 끝나고서는 라캉과 지젝까지 읽게 되었고요. 마침 번역환경이 예전에 비해 훨씬 좋아져서 번역의 질이나 양이 동료들과 세미나하기에 충분할 정도가 되었지요. 그러면서 생각이 차차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물론 어떤 ‘결정적인 지점’에서 정신분석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분열분석과 갈라지게 됩니다. 서로 마주보고 따귀를 치며 대격투를 벌이는 게죠. 그렇지만 공통의 근원이랄까, 공유하는 밑바탕이랄까 그런 게 양자에게 모두 있습니다. 무의식에 대한 감각과 그것을 캐올리는 힘이 그래요. 프로이트 역시 무의식에 주목하여 그것을 언어와 사상 속에 끌어당기려 했고, 라캉도 들뢰즈도 그 결과를 ‘한치의 양보도 없이’ 취하고자 했던 겁니다. 단언컨대, 실로 무의식이 없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들뢰즈도 결코 있을 수 없다고 할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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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개개의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그들만의 자기 주장이 무엇인가에 있지 않아요. 누구든 자기 주장을 내세울 때는 정연한 논리를 갖게 마련이지요. 그 논리를 빠져나가는 것, 벗어나는 것, 사실 무의식의 정의는 이런 것이기도 한데, 아무튼 타인의 질서정연한 논리적 주장을 따라가다가 그것이 이탈하는 장면을 발견하고 거기서 무언가 자기만의 해석을 내놓을 때, 그때부터 우리는 자기 사상이란 걸 갖게 마련입니다. 프로이트에 대해 라캉이 그랬고, 라캉에 대해 들뢰즈와 가타리가 그랬거든요. 무의식이란 원래 그런 겁니다. 빗겨나가고 이탈하는 것. 그런데 들뢰즈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정답이랍시고 외우고 받아쓰는 공부를 하면 들뢰즈처럼 사유할 수 있겠어요? 아닐 겁니다. 들뢰즈가 어떻게 라캉으로부터 탈주했는지, 또 라캉은 어떻게 프로이트로부터 탈주했는지 그걸 목격하고 음미하는 게 필요하지 않겠어요?

  지난 여름에도 분열분석에 대해 강의를 했는데, 제가 좀 더 호의를 갖고 몰두하고 싶은 주제가 분열분석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때의 분열분석이란 들뢰즈든 들뢰즈 할아버지든 누군가의 모델을 제 머릿속에 담아두는 게 아닙니다. 어떤 모델이든 그것의 외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힘을 찾아내려는 충동적 힘이 분열분석의 내용이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정신분석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첫째, 무의식을 개념화하는 방법과 과정으로서. 둘째, 분열분석적 운동의 사례이자 증거로서. 누가 라캉의 『에크리』를 감히 읽지 말라고 하는가? 저로서는 참 궁금하고 답답할 뿐입니다. 

 

Q. 『에크리』는 난해하다고 워낙 악명이 높은 데다, 천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라서요. 과연 제가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는데요. 

A. 네, 저도 그런 이야기를 꽤 듣고 있습니다. 근데 설마, 이번 학기에 『에크리』를 한번 읽으면 다 알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니겠죠? ㅎㅎㅎ 제가 강의할 때마다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운이 좋은 천재라면 어떤 책을 한번 읽고서 그 책의 요지와 내용을 완벽히 꿰뚫어 이해할 테지만, 아쉽게도 제 주변에서 그런 사례를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두 번은 읽어야 읽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요. 그런데 이 ‘알 수 있다’는 것 자체의 본성이 반복을 요구하고 있지요. 안다는 것은 그게 무엇인지 파악한다는 뜻인데, 난생처음 보는 것을 알 방도는 없는 것이거든요. 안다는 것은 반복 속에서 내가 읽은 것이 다른 것과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를 식별한다는 말 아니겠어요? 그러니 이번에 처음 『에크리』를 읽는 경험은 완전히 놀랍고 힘겨운 싸움이 될 겁니다. 처음 보는 데 당연한 노릇이죠! 하지만 이 첫 번째의 경험은 앞으로 인문학을 파고들 때마다 마주치는 라캉의 이름과 그의 난수표 같은 개념들을 다시 만날 때, 하나의 ‘식별표’ 같은 역할을 해줄 거에요. 이미 한번 본 거다, 이거죠!

  그냥 탁 터놓고 말해, 처음 읽을 때 아무리 힘겹고 어려워도 줄이라도 한번 긋고 더 잘 아는 사람의 해설이라도 귀동냥으로 듣게 되면 나중에 다시 읽는 데는 한결 나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의미는 바로 그 두 번째 독서에서 생겨나는 법이니, 이번 학기에는 미래에 다가올 두 번째 독서를 위해 두뇌의 근육을 다지는 작업을 해보자구요.
  아, 하나 더 덧붙이면, 들뢰즈가 라캉보다 더 쉽진 않습니다. 다 아는 사실 아닌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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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과정을 신청할까 말까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에크리』를 꼭 읽어보고 싶긴 하지만 정신분석이나 라캉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과연 따라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분도 있고, 완독하기에 벅찬 분량인데 과연 시간이 허락할지 고민하는 분도 있고요.

A. 『에크리』 한 학기 완독은 어느 모로 보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분야를 ‘전공’으로 한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냉큼 ‘헛소리 고만 하라’고 외칠 겁니다. 그만큼 어렵고, 그러니 그냥 한번 읽어보는 거에요. 

  눈이 휘둥그레지는군요. 그럼 왜 읽느냐고요? 아니 한번 읽어봐야 어디가 어려운지 쉬운지 알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 어려운 내용 중에도 무언가 내 머리를, 마음을 탁 치는 부분이 나오고, 그게 정신분석이든 분열분석이든, 라캉이든 지젝이든 들뢰즈든 누군가를 다시 불러주지 않겠어요? 그러니 ‘어려울 거 같아 참여 못하겠다’는 체념은 ‘어차피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읽고 멋대로 한번 해석해보자’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게 출발점이죠!

 

Q. 강의 시작 전에 미리 읽어보면 도움이 될 책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A. 정신분석에 대해, 특히 라캉에 대해 입문하기가 쉽진 않은데요. 이번 강의에서는 어느 정도 기초개념을 다져가면서, 또 학우들 사이에서 공유해 가면서 요지를 뽑아가며 공부할 생각입니다. 당연히 세세한 부분들을 다 다루진 못하겠으나, 라캉 정신분석의 대의 정도는 취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추천하고 싶은 책은 … 다리안 리더가 쓴 『라캉』이라는 만화책입니다. 이미지로 설명한 라캉 정신분석인데, 저는 나름대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고 봐요. 지젝도 『How to Read 라캉』이라는 책을 썼는데, 다소 난이도가 있습니다만 지젝이라는 대가가 라캉(의 이면)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참고할 만해요. 

  다른 책은 수업 시간에 조금 더 이야기해 볼게요. 이제 곧 개강이니 예습을 서두르기보다 진행된 진도에 충실히 임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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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지막으로 수강하실 분들께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A. 라캉이든 정신분석이든 공부 안 해도 살아가는 데 큰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이런 거 모른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인생 불이익이랄 것도 없죠. 뭘 알아야 이익인지 불이익인지 알 거 아니에요?! 하지만 좋은 동학들과 어울려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기회는 드물게 옵니다. 누구라도 이야기할 거에요. 지금은 때가 아직 아니니 준비가 되면 함께 하겠다. 그 마음을 누가 모르겠어요. 하지만 단언컨대, 그런 시간은 오지 않습니다. 아직 준비가 너무나 미비하고 가진 것 하나 없다고 느껴지는 지금이, 바로 그 충실함을 낳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에요. 책이 있고 시간이 있고 능력이 있고, 모든 조건이 갖춰질 때를 기다리는 것도 중요할 테지만, 역시 가장 중한 것은 함께 할 동료가 있는 때입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바라요.

 



• 개강: 2019년 9월 5일 목요일
• 시간: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 장소: 수유너머104 2층 대강의실
• 수강료: 35만 원 (두 과목 수강시 60만 원)
  입금계좌: 신한은행 110-477-295184 양정진
• 강좌문의: 김효영 010-8911-9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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