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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설법] 종강 후기

해돌 2023.11.17 11:02 조회 수 : 78

10년간 절친이었던 친구와 절교했다.

서로에게 싫어진게 많아서 일것이다. 10년전엔 재미있고 좋은게 많아서 친구가 됐는데 이리 된건 시절인연의 흐름이니 쿨해지자 했지만 마음이 아렸다.

나이가 들수록 좋아하는 것 보다 싫어지는게 많았다. 사람들은 이걸 취향이자 스타일이라고 불렀다. 내가 인정한 몇 가지를 제외하면 다 별로이고 부질 없다는 듯.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차를 타고 어떤 의자가 놓여진 집에 사는지로 나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시장안에 살다보니 자연스레 멋지지 않은 별로인 아이템들도 늘어나는 것이다. 

레드카펫 위에서 찍힌 연예인들 사진을 띄워놓고 옷이 멋지다 아니다를 논하는 TV쇼를 만들었다. 메이크업을 이상하게 한 사람들을 고쳐주는 쇼로 신상 화장품을 팔아치우기도 했다. 모델쇼에서는 날씬하고 아름다운 각선미가 시대의 워너비임을 설파했다. 그러다 갑자기 이런것들은 다 미만잡으로 채식을 하며 요가를 즐기는 삶이 훨씬 멋지다는 탑스타의 삶을 조명하는 리얼리티까지 제작했다. 

절교한 친구는 소위 비평이란 글을 쓴다. 그는 좋은 것보다 구린 것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도 그랬다. 우리는 누가 옷을 촌스럽게 입는지, 어떤 가수의 신곡이 왜 망했는지,흥행에 실패한 영화의 감독이나 배우들 이야기를 하며 오랜 우정을 쌓았다. 

대중들이 환호하는 멋진 스타일과 취향.

이것에 맞춰진 내 머리 속 오랜 프레임안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나이에 걸맞는 스타일을 뽐낼 소장품이 많이 쌓여갈 무렵에도 우리는 여전히 만족할 수 없었다.  왜냐면 더 비싼 신상 시계와 가방을 사야 하고 첨담동에 살아야만 진짜 멋쟁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사이 내 친구는 우울증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병원 입원을 들락날락 했다. 우리는 점점 불안해져 가고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가까운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니 안보이던 세계가 눈에 띠었다. 멀쩡히 잘 살고 있는줄만 알았던 지인들이 나도 그렇다며 고백을 하기 시작했다. 

단란한 가족의 가장으로 늘 자부심 넘치던 친구도, 부유한 집안의 고명딸로 우아한 디자이너 사업을 하는 언니도, 잘나가는 수십만 팔로워 인플루언서 선배도, 회사에서 나를 지지하고 이끌어주던 임원상사도 갑자기 우울증 환자로 변신했다. 고백은 결국 나 힘들다는 하소연의 시작이다. 반짝이는 조명 아래 나를 뽐내던  세상은 갑자기 우울하기 짝이 없는 곳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런 하소연들에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 왜이렇게 엄살이야? 남들도 다 그 정도 스트레스는 받고 사는데? 게다가 다들 나보다 더 잘벌고 잘사는 주제에 말이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우울하다는 사람들이 여전히 잘난 자기의 취향과 스타일을 인스타그램에 뽐내는 것만은 끊지못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밥벌이의 시작임을 가장 잘 알지만 우울함의 근원이기도 하지 않나? 우울하다는 말조차 사치처럼 생각되어 이해보단 짜증이 깊어졌다. 

친구에게 소모적인 잘난척과 따봉병에서 벗어나라는 투로 틱틱거리는 날이 늘어났다. 그 친구는 잘난척 하며 자길 재단하고 무시하는 나를 비난 했다. 그랬다. 우린 서로를 평가하고 폄하하다 헤어졌다. 

정화스님의 책 ‘그냥 좋아하기’ 을 읽으며 가끔 그 친구의 페이스북을 들여다 보았다. 역시 아직도 화가 난다.스님의 말씀대로 나는 아직도 그 친구는 물론 나 스스로에 대한 화가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친구는 나의 거울과 같은 사람이었다. 너그럽지 못한 나, 치졸한 나, 그래봤자 어차피 그와 다를바 없이 살고 있는 ‘불안한 나’에 대한 분노와 짜증이다. 

나에게 너그러워 지는것이 시작이다. 정화스님의 마지막 말씀이다. 

차담중 진경선생님께서 누구든 쉽게 떠나보내야 다시 쉽게 만난다 조언해 주셨다. 

올 겨울, 아니 남은 생의 어려운 숙제이다. 

쉽게 떠나보내기 이전에 일단 그냥 나를 좋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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