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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설법] 뒤늦은 후기

hhyunahh 2023.11.15 10:50 조회 수 : 56

불교 강의 실습주간인가 싶을 정도로 한 주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마음이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몸도 많이 아프게 되었다. 몸이 아프자 모든것을 멈추고 글을 쓰며 몸과 마음, 그리고 상황을 바라보고있다.

지난주 수요일 아침에 화재가 날 뻔했다. 빠르게 진화해서 다행히도 큰 사고로 번지진 않았다. 오후 병원검진에선 수술소견을 들었다. 추적검사기간을 한 달 정도 확보할 수 있어서 여기까지도 괜찮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앞의 두 상황은 별게 아니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함께 지내던 고양이 산호가 집을 나갔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도망간 상황이라 우선 산호가 다치진 않았을지가 가장 걱정이었다. 점점 추워지는 한파도 걱정이었다. 골든타임 3일내에 구조하지 못하면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희박해진다고 한다. 걱정, 염려, 자책의 마음으로 신우와 함께 3일간 주변을 수색했다. 고양이 탐정까지 의뢰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왜 힘든일은 한꺼번에 들이닥치는건지 하소연 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독감증세가 나타났고 주말엔 코로나 양성진단을 받았다. 거의 처음 겪어보는 통증의 시간들을 느리게 지나가면서 이 일련의 힘든 상황과 그 위에서의 나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내 마음은 아픈 중에도 내내 사라진 고양이 산호를 향하고 있다. 

마음의 중심에는 ‘산호가 이 안락한 곳으로 하루빨리 돌아오길, 혹은 구조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을 바라보는 또 다른 마음은 이렇다. ‘고양이는 인간과 다르다. 인간의 연민으로 고양이의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다. 고양이의 본성을 구속해온 시간 위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산호가 집을 나간 것에 대한 자책의 마음은 고양이를 사람의 필터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걸 생각해본다. 사노요코의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이야기처럼 산호는 누군가에게 소유된 채 안락한 실내에서 사는 삶이 아닌, 누구의 고양이도 아닐 때 비로소 자신의 무위로 살아가는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인 나로서는 왜 하필 이 추운날 나간건지에 대한 야속한 마음은 끊이지 않는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시비하지 않는 것. 간단하지만 결코 간단치 않은 문장이다. 계속해서 고양이 탐정을 수소문해보고, 이곳저곳에 올려둔 실종글에 대한 댓글에 깜짝깜짝 반응한다. 몸이 아파도 집착의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산호는 어디에 있든 자신의 무위로 고양이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것을 믿으며 올 겨울은 주변 고양이들을 조금 더 살피며 지내야겠다. 그게 인간인 내가 산호를 향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헤어짐은 늘 난데없다. 그저 연이 닿은 시절에 서로 마음을 잘 살피고 주고받는 것, 그것이면 그 시절인연의 기억은 충만할 것 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 기억이 그 다음의 인연장에 씨앗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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