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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설법 6강] 후기

최영미 2023.11.10 16:51 조회 수 : 84

“띠이이!” 차의 엔진소리가 멈추고 불이 꺼진다. 깜깜해진 버스 바깥의 국회의사당역 주위 네온사인만이 빛을 밝히고 있다. “드르륵, 드르륵, 삐이이” 시동이 걸린다. 리셋된 버스의 스피커에서 “안전운전하세요!” 멘트가 흘러나온다. ‘안전운전은 글른 것 같은데.’ 버스를 꽉 채운 승객들의 표정이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버스는 다시 출발한다. 시속 20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는 버스는 서강대교 위 줄줄이 이어진 차들의 행렬에 느린 표가 나지 않는다. 창문을 살짝 연다. 차가운 바람이 쏟아져 들어와 나의 콧잔등을 스치고 앞머리를 흐뜨린다. 버스가 ‘광흥창역’ 정류장에 서자마자 다시 시동이 꺼지고 불도 꺼진다. 

“여기서 모두 내리세요!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입니다. 다른 차로 갈아타세요!” 

앞쪽에 앉고 서 있던 승객이 모두 내리고 나서도 뒤의 승객들은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처음보는 옆 사람들의 얼굴을 향해 “지금 무슨 상황인 거죠?” 하는 표정을 하며 두리번거리고 서 있다. 

“모두 내리시라고요!!” 

결국 모두 내린다. 그리고 난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 다른 정류장에서 ‘수유너머’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정화스님의 마지막 강연을 듣기 위해서.

 

보시. 그 중에 가장 큰 의미를 가지는 무외보시. 두렵지 않은 삶을 만들어가는 보시이다.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삶터의 조건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큰 수레가 잘 굴러가려면 수레를 타는 모두가 평온해야 한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이 함께 타고 있고, 우리는 서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탐진치’는 인류가 오랜시간 동안 공동으로 만들어온 것이고 ‘불안’이라는 요소도 상호의존적이다. 탐진치의 마음이 올라올 때 자기를 비난하지 말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보시를 하고(애어), 그 마음이 잠시 머물렀다 가도록 온전히 그대로 받아들이면(이행) 나의 ‘불안’이 평온해지고, 결국 우리 모두의 불안도 없어지는 것이다. 시속 20킬로미터로 덜덜거리며 굴러가는 버스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함께인 것이다. 누군가가 두려움의 눈동자를 하면 그 불안함이 전달이 될 수 밖에 없다. 다행히 내가 탄 버스 승객들은 그런 눈빛을 한 사람이 없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무수한 ‘정류장’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버스가 멈추는 재난의 상황에서도 구조해 줄 도움의 손길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버스 안에 함께 있는 사람도, 여기저기 많은 정류장도, 도우러 올 구조의 손길도 ‘상호의존적인 삶’의 한 예인 것이다. 

 

날씨가 추워진 아침, 아들은 긴 바지가 없다며—새로 주문한 바지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반바지를 입고 가방을 메고 나간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올라오는 나의 마음을 바라본다. 나의 얼굴은 찡그려지지 않는다. 겨울에도 반바지는 입을 수 있고, 법으로 금하거나 사회적으로 금기시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자유로운 사회에 감사하는 마음마저 든다. 그렇게 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마음은 잠시 머물다가 사라진다. 이전에는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사고의 방식'을 좀 터득한 듯하다. 이것이 나에게 이롭고, 아들에게 이롭고, “반바지를 입고 바람부는 겨울 날씨에 밖으로 나가는 것에 아무런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잔소리 하지 않는 엄마의 평온한 모습을 바라본 아들”과 함께 할 아들의 반 친구들, 담임선생님에게 이롭고, 내가 오늘 하루 마주칠 사람들에게 이로운 것이다. 무외시. 두려움이 없는 마음. 이것이 나를 ‘지금 여기’에 살아가도록, 이왕이면 더 평온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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