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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전라남도 구례에서 연극을 하는 선배님댁에 잠시 얹혀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지내던 집 근처에 화엄사가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화엄사 입구에 있는 전통찻집에서 알바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사장님이 내일 새벽 화엄사 남암에서 새벽 기도를 드릴 건데 같이 가겠냐고 하셨습니다. 네시 몇분까지 법당에 도착해야 해서 세시 반에는 일어나야 한다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일어날 수 있을지 좀 망설여졌지만 절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따라가겠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해도 뜨지 않은 새벽 법당에 들어가니까 20대로 보이는 스님 한 분과 남암의 주지스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주지스님도 4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분이었습니다. (남암에는 큰스님 한 분과 젊은 스님들 몇 분이 소규모로 지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들이 번갈아 가며 염불을 외우기 시작하셨고 저도 공양간 보살님이 갖다주신 책을 펼쳐 따라하기 시작했는데요. 어떤 정해진 리듬이 있어서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하는 규칙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따라가기가 무척 어색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너무 춥고 졸리고 눈치껏 따라하느라고 괴로운 와중, 주지스님이 혼자 염불을 외우시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따라하지 않아도 돼서 살짝 눈을 감고 쉬고 있었는데 스님이 갑자기 기침을 하더니 염불을 멈추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적이 흘렀습니다.

 

잠시 뒤, 스님이 조그맣게 “그 다음 뭐지?”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도 깜짝 놀라서 눈을 번쩍 떴습니다. 방금 전까지 아주 멋진 목소리로 유려하게 염불을 외우고 계셨기 때문에 무슨 일이 난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 주지스님 옆에 있던 스님 눈에 동공 지진이 일어나더니 더듬더듬 다음 구절을 스님에게 알려드렸습니다. 상황 파악이 된 다음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이를 깍 깨물고 참았습니다. 옆에 계시던 사장님 얼굴을 보니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지만 콧구멍이 벌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즐거웠던 새벽기도 시간이 끝나고 공양간에서 다 같이 아침 식사를 한 뒤 주지스님이 차 한잔 하자고 방으로 초대를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법당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스님 방에 모여 앉게 되었는데, 그제서야 다들 깔깔 웃으면서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스님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라며 근엄한 척하셨는데 눈에 장난기가 가득하더군요. 20대로 보였던 스님은 “절에 들어오고 나서 스님이 실수하시는 거 처음 본다”며 열심히 주지스님을 변호했는데 이미 저에게 스님은 ‘웃긴 스님’이 되어버려 소용없었습니다. 그날 스님 방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갔고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즐거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후로도 종종 사장님을 따라서 스님 방에 놀러갔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굳이 뭔가를 가르치지 않으시는데도 배우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진경 선생님의 <선불교를 철학하다> 1강을 들으면서 오랜만에 화엄사 남암의 스님을 떠올린 이유는 사실 따로 있습니다. 스님을 만나고 시간이 좀 흐른 뒤 어느 날 스님 방에 차를 마시러 갔는데, 그날 스님이 갑자기 탕수육을 시켜주셨습니다. 절에서 웬 탕수육? 저는 탕수육을 먹고 싶다고 한 적 없었고, 스님이 단순히 맛있는 게 먹고 싶어서 드실 분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알 수 없어서 그냥 잠자코 먹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지내고 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스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때 저는 하수구 냄새 나는 골목길을 걷고 있었는데, 스님 전화를 받으니 구례 화엄사의 향기가 나는 듯했습니다. 스님은 저에게 다짜고짜 “넌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네? 저 방금 연습실에서 나왔는데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스님은 바로, “네 부모가 태어나기 전 너는 어디 있었냐”고 물었습니다. 당시 저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스님이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조차 지금까지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요. 스님의 질문이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에 대한 것이었음을 어리석게도 저번 주 강의 시간에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과격한’ 선사들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혹시 3년 전 스님도 ‘탕수육’을 통해 제게 문답을 시도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탕수육이 고기가 아니라 질문이라는 것을 눈치챘다면 저도 다른 질문으로 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선사들의 이야기 중 스승인 마조의 다리 위로 등은봉이 수레를 그대로 밀고 간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수레를 밀고 간 것부터 도끼 아래로 목을 들이미는 행위들이 모두 ‘질문을 알아차린 자가 다음 질문으로 답하는’ 퍼포먼스의 일종으로 보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맥락이 사라져 알 수 없지만 당시 그들의 옆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는 섬세하고 탁월한 행위예술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로부터 유고슬라비아의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가 떠올랐습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그녀는 「토마스의 입술 Lips of Tomas, 1974」 퍼포먼스에서 자신의 몸을 채찍질하고, 면도날로 몸에 공산당을 표시하는 별을 그렸으며 30분 동안 맨몸으로 얼음 십자가 위에 매달려있는 등 자신의 몸을 자해하고 학대했습니다. 「리듬 0(Rhythm 0, 1974)」에서는 탁자 위에 장미, 깃털, 꿀, 회초리, 가위, 장전된 총 등 72가지 물건을 놓고 6시간 동안 관객이 아브라모비치의 몸을 건드릴 수 있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관객들은 역겨워하며 피하거나, 장난으로 그녀에게 해를 입히거나, 혹은 퍼포머가 실제로 위험에 빠졌다고 생각하여 구출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연극학자 에리카 피셔-리히테는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에서 어떤 변환(Transformation)을 감지했고, 그녀가 ‘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아브라모비치는 자해하는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의 몸에 손상을 가했고, 관객이 어떤 행위를 하도록 촉발시킨 것인데요. 그는 하나의 사건에 휘말린 관객은 ‘지금-여기’에 함께 존재하는 ‘공동 주체’가 되었다고 봤습니다. 기존의 예술작품에서 예술가와 관객은 주체-객체의 이분법적인 관계였지만, 관객이 사건에 휘말려 작품 내에서 아브라모비치와 상호작용을 시도한 순간, 주체와 객체의 구분은 흐려진다는 것입니다. 에리카 피셔-리히테는 이것이 예술의 혁명적 전환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앞으로 무엇이 올 것인가를 질문했습니다.

 

선사들이 “강한 응답을 통해 학인이 어느새 전제하고 있는 모든 관념, 옳다고 믿는 모든 생각”을 깨주는 것처럼 아브라모비치는 관객들을 향해 질문의 칼을 들이밀었습니다. 퍼포먼스에서 피를 흘린 것은 그녀의 신체였지만 동시에 예술의 전제에도 균열을 낸 것입니다. 1960년대 “수행적 전환”의 흐름에 따라 많은 예술가들이 관객과의 경계를 흐리는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리처드 셰크너(Richard Schechner)의 퍼포먼스 그룹 등 60년대의 여러 실험적 예술 집단은 관객을 사건에 말려들게 하기 위하여 사회적 논란이 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선사들이 학인에게 고함을 지르고 뺨을 때리고, ‘할’ 한방으로 사흘동안 귀가 멀게 하고 코를 비틀어 놓는 등 폭력적인 행위를 하는 맥락과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아무리 강력하고 신선한 ‘할’도 여러번 반복되면 패턴화되고 힘을 잃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2023년에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를 따라한다고 해도 그 어떤 효과도 없을 것입니다. 그냥 ‘뒷북’일 뿐이겠지요. 그녀가 살던 시대와는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고, 그녀가 시도했던 방식은 지금에 맞는 질문의 방식이 아니기에 사람들에게 새로운 의정을 불러일으킬 수 없을 것입니다. 현대의 예술가들은 “지금의 연기적 조건에 맞는” 질문의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떠오른 사람은 티노 세갈(Tino Sehgal)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작품을 2010 서울미디어아트 비엔날레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본 것이 아니라 만났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가 현대미술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음에도 물질적인 작품이나 기록을 남기지 않고 무형의 행위를 재료로만 작업하기 때문입니다. 2010년 당시 미술관에 입장에서 매표소에 들어갔는데, 매표소 직원이 표를 건네주며 저에게 이상한 질문을 했습니다. 직원은 당황해서 멀뚱멀뚱 서 있는 저를 잠시 보더니 “Tino Sehgal, <This is new(2002)>.”라고 작품명을 읊었습니다. 알고보니 제가 겪은 ‘상황’ 자체가 티노 세갈의 작품이었습니다.

 

작년 10월 옵신 페스티벌에 티노 세갈의 전시가 왔다고 해서 12년만에 그의 작품을 만나러 갔습니다. 전시는 녹사평역에 있는 에스더 쉬퍼 서울이라는 조그만 전시장에서 열렸습니다. 미술관 문이 열려 있었고, 계단으로 한 층 올라가는 중에 이미 오른쪽에 열려 있는 전시장 내부가 보였는데, 제일 먼저 본 것은 전시장 가운데 서 있던 여자아이였습니다. 열세살에서 열네살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몇몇 관객들이 쭈그려 앉아서 아이가 말하는 것을 보고 있었고 제가 도착하자 아이는 저를 보면서 자기가 앤 리(Ann Lee)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 어디까지 말했죠?”라고 하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는데, 마치 로봇처럼 움직이면서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했습니다. 로봇이라기보다는 무용 같기도 하고, 철저하게 디자인되어 훈련된 간결한 움직임처럼 보였습니다. 분명 한국어를 하는 여자아인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처럼 이질적이었습니다.

 

말하던 중 앤 리는 관객들 쪽으로 한발짝 가까이 오더니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앤 리는 저를 똑바로 응시했습니다. 그 눈빛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앤 리가 나를 지목했고 나는 저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상황이 분명해지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앤 리는 “당신은 너무 바쁜 것과 너무 바쁘지 않은 것 둘 중에 어떤 것이 낫다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물었습니다(물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횡설수설 생각나는 대로 답했고, 앤 리는 “알겠어요. 감사해요.”라고 천천히(여전히 똑바로 응시하며) 대답했습니다. 그런 뒤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관객들에게 마지막 질문을 했습니다.

 

“기호와 멜랑콜리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엄청난 정적 뒤에 앤 리가 나가고 전면의 스크린에서 영상이 나왔습니다. 앤 리라는 캐릭터가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영상이었습니다. 앤 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 이름은 앤 리예요. 앤 리. 철자는 마음대로 쓰셔도 돼요. 상관 없어요. 상관 없어요.”

 

앤 리는 자신이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인데 버려졌다고 했습니다. 필립 파레노와 피에르 위그라는 사람이 버려진 자신을 사서 2000년 필립 파레노의 영상 <세상 밖 어디든>에 아바타로 등장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앤 리는 실제로 존재하는 일본 만화 캐릭터인데, 현대미술가들이 저작권을 싼값에 구매하여 이곳에 등장시킨 것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프로덕트’이며, 코믹북에 버려져서 죽었던 것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앤 리는 자신에게 입혀진 목소리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이건 한번도 제 목소리였던 적이 없어요. 저는 목소리가 없어요. 저는 이미지예요.” 영상이 끝나고 나서 다시 전시장으로 누군가 천천히 들어왔습니다. 이번에는 아홉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고, 아까와는 다른 앤 리였습니다. 아이가 말하기 시작하자 모든 앤 리들이 같은 대사를 공유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작은 앤 리는 작은 손을 꼬물꼬물 움직이며 이렇게 질문했습니다.(기억에 의존하여 정확하지 않음)

 

“나는 그렇게 변하고 싶지 않아요.

기호가 아니라

체화된

합병된

저는 이 말을 좋아하는데

어떠신가요?”

 

역시 엄청난 정적이 질문 앞에 이어졌습니다. 저는 이질감과 비현실감에 휩싸여서 전시장을 나왔고 며칠간 앤 리의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껍데기로 존재하는 앤 리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선사들의 깊이에 감히 견줄 수는 없겠지만, 저에게는 티노 세갈의 앤 리가 ‘의정에 휩싸이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진경 선생님의 이번 강의에서 선(禪)이 갖는 매혹의 힘을 따라가며, 제가 만난 질문을 알아차리고 다음 질문으로 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Philippe Parreno - Anywhere out of the world - 2000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2&v=AD270HZABUI&embeds_euri=https%3A%2F%2Fwww.notion.so%2F&feature=emb_l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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