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시가 겨냥하는 것은 당신의 삶입니다
며칠 전,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전을 봤다.
사진의 인상은 섬뜩했다. 이런 충격에 빠지는 것은 거대한 사진 가까이에 갈수록 맞닿는 순간에 그것이 지금 여기, 현실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불편한 마음이 사진의 조작된 이미지 때문만은 아님을 안다. 사진 한 장 한 장 이미지로부터 받은 충격은 그날 나를 무척 힘들게 했다.
강의에서 ‘시인은 직업이 아니라 상태’라고 말한다. 시인이라는 상태에 얼마나 오래 있는가 하는. 다른 사람의 다른 사물의 몸이 되는 것이겠다. 나는 그날 안드레아스 거스키가 보내는 메시지의 상태에 있은 것이다. 또 고대 시인 침연의 시 구절을 인용한 김경주의 시 ‘드라이아이스’에서 “사실 나는 귀신이다 산목숨으로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라는 구절에서 침연의 고독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낭독으로 들은 ‘털 난 꼬막’이나 ‘쌀이 울 때’, ‘삼립 소보루빵’, ‘아배 생각’, ‘간장’ 등 어느 시를 제외하지 않고 모두 화자의 마음 상태에 있게 했다.
요즘 피로하고 글쓰기의 두려움에 있던 나는 사실 이 강좌에서 힐링한다. 내가 너무 무거운 돌을 안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옥타비오 파스의 말처럼 ‘시는 엄숙한 명령과 계시를 태워버리는 미소’인 것을. 시가 겨냥하는 것은 내 삶인데.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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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ldls1000
요즘 피로하고 글쓰기의 두려움에 있던 나는 사실 이 강좌에서 힐링한다. 내가 너무 무거운 돌을 안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이 구절에 밑줄을 긋습니다.
시원찮은 강의에 힐링이 되고 있다니 감사한 일이고요.^^
무거운 돌을 제가 같이 들어드릴 수는 없겠지요.
대신, 이성복의 시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의 마지막 구절이 위안이 될지요.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풀섶 아래 돌쩌귀를 들치면 얼마나 많은 불개미들이
꼬물거리며 죽은 지렁이를 갉아먹고 얼마나 많은 하얀 개미알들이
꿈꾸며 흙 한 점 묻히지 않고 가지런히 놓여 있는지
필아샘, 들고 있는 돌을 옆에 살짝 내려놓으시고
돌을 들어낸 자리에서 꼬물거리고 있는 것들에 눈길을 주세요.
신기하다, 신기해, 하면서요.
필아샘, 시인으로서의 고뇌가 느껴지네요..자연인으로서가 아니라 시적 화자로 어떤 마음 상태가 되어야할지 삶에서 늘 질문해야겠지요. 좋은 후기 덕분에 전시도 찾아보게 됩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