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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물론] 6강 후기

재연 2022.02.26 05:41 조회 수 : 146

흥미진진한 마지막 강의를 들으며 떠오르는 것이 있어 후기를 남긴다. 

사회복지계에서는 사실 반응이 뜨뜻미지근한 아이디어로 취급된다.

그러나 나는 이 아이디어에 희망을 조금 가져봐도 되지 않을까하고 지지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현대 돌봄과 기존 복지제도가 지닌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출현한 ‘복지계의 이단아’ 를 여기서 나눠보고자 한다.

 

<래디컬 헬프>는 2018년에 런던 써클 사회활동가에 의해 쓰였고 2020년 11월에 교육복지 연구자 박경현과 이태인이 번역해 한국에 소개된 책이다. 이 책은 "사람들을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수혜자로 만드는 한편 행정적 칸막이와 중복, 사각지대로 애를 먹는 관리 중심의 사회복지 체제에서 벗어나 개인들과 지역사회로 권한을 옮겨서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사회 돌봄 복지 체제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이태수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꿈꾸는 자들의 성찰이 담긴 미래, 그 속에서 어떻게 시민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제도와 정책만이 아니라 실천과 행동 속에서 고뇌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 영국에서 스스로를 사회활동가라고 자임하는 저자 힐러리코텀이 내민 지도”라 소개했다.

 

저자는 사회복지 전공도 아니며 사회복지사도 아니다. 그저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고민 속에서 실험한 것들을 생생하게 전하였는데,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사회복지 실천 영역에도 꼭 필요한 것이다.

 

사회복지 실천에서 꾸준히 지적되는 성찰의 지점은 사람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 복지의 목적이며, 이를 위해 관계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상자의 문제에 집중하여 위기 관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능성을 탐구하여 역량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공식적 자원과 비공식적 자원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 힐러리 코텀 팀은 사회복지행정에서 허용하는 자원들뿐만 아니라 제도에 저항하면서까지 확장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그들의 선택지에 거침없이 올려놓는다. 당파적이지 않은 것들과 관계 맺기, 전문성 또는 자격증 따위와 멀어지기, 정부가 지정한 서비스나 자원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고용, 주거, 건강과 보건,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여전히 산업주의 시대에 정착된 사회복지 제도들이 얽혀있다. 그 복잡함 안에서도 수급조건을 철저하게 따지고 수혜자격으로 대상자의 기를 팍 꺾어놓고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고는 재빨리 시혜가 아닌 권리라고 포장한다. 이와 같은 면에서 복지시스템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샘교육복지연구소 윤찬영 센터장은 “그동안 산업주의적 관료주의의 병폐가 케케묵은 녹처럼 자리잡은 사회복지 제도와 실천에 대안의 가능성”으로 <래디컬 헬프> 아이디어를 소개하기도 한다.

 

저자의 팀에서 고안한 실험 아이디어는 프로그램개입자가 한 사람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사람을 맞춘다거나 자원을 연결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 사회복지 현장에서 “사례관리”라고 지칭하며 지역사회 자원(의료, 상담, 후원, 기술, 복지 프로그램, 현금 및 현물 서비스 등) 발굴과 연계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의 한계를 정확히 지적한다. 

 

기존 방식인 사례관리는 보통 일방적 자원 발굴과 연계에서 끝이 난다. 사실 사례관리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담당하는 서비스들은 대게 그렇다. 의사선생님과 대화는 2분이면 끝난다. 1분인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정신상담서비스 전문가들이 클라이언트에게 냉담한 어조를 유지하는 장면들이 재현되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복지나 공공 영역을 넘어 다양한 사회서비스는 기본적으로 사회관계가 상실된 채 진행되고 일방적 정보와 해결책이 시장이 설정한 가치로 가격 매겨진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교환되면 끝이다. 게다가 사례관리에서 연계된 각종 분야(의료, 상담, 복지, 교육 등)의 전문가들이 한 대상자가 필요한 서비스와 기관들을 선정하여 지원해주고는 클라이언트의 ‘자기선택(결정)권’으로 진행된 양 결과보고서를 작성하고 변화를 기대한다. 물론 성가진 문제가 해결되었거나 없던 서비스가 연계되면 서비스 만족도는 보통 좋은 편으로 기록되겠지만, 서비스 만족도의 수치만을 보고 클라이언트가 변화되었다고 단정 짓거나 서비스 질에 대해서 논하기는 난감하다.

 

저자가 제안하는 래디컬 헬프(근본적 돌봄 또는 복지)는 한 사람이 가진 문제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당사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발견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그 사람의 주위 관계 확장을 도모한다. 가령, 서비스 대상자를 진단하기 위해 대상자와 관계 맺는 상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대상자 집에 찾아가 같이 살자며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이는 제도가 보장하는 영역을 넘어서는 실천이다). 미리 정해놓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정말 삶에서 변화하길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직접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 답할 수 있을 때까지 지지하거나 또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기다리며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 질문은 행정가들이 양식 채우기 위해 하는 질문과는 격이 달라야 한다. 이 때 개입자-클라이언트 관계는 수평적 소통을 원칙으로 한다.

 

또한 래디컬 헬프는 21세기에 맞게 디지털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기술자원은 곧 돈이다. 사회 관계를 용이하게 연결해주는 플랫폼과 같은 기술은 방문 비용, 배달 비용, 시간, 체력, 정신적 에너지 등 많은 자원을 절약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포드주의식으로 디자인된 기술들을 사례마다 일률적으로 적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중앙집권화된 서비스나 정책을 새로이 기획하자는 것이 아니다. 각 사례의 맥락에 맞게 대상자의 개별성에 기대어 기술과 서비스를 연결하고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힐러리 코텀의 팀은 대상자의 삶에 직접 참여하여 그의 삶을 지도로 그려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대상자가 정말 원하는 것에 대해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기존 복지서비스의 일방적 진단과 자원 연계에만 얽매이는 것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기준이나 절차에서 벗어나 대상자들이 관계맺는 것들에 곧바로 집중하는 환경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의 삶 속에서 각각의 관계들이 대상자의 역량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파악하여 역량을 강화시킬 배치들을 찾아내는 것이 주된 업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배치들의 구성은 항상 지도의 주인이 주도하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대상자를 만날 때 ‘청사진을 들고 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아무것도 미리 디자인하지 않고 대상자를 대면하라고 말한다. 이는 대상자에게 수평적 관계로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본자세로 보는 것이다. 전문가-대상자의 관계가 아니다. 사회복지사가 당신보다 뛰어난 전문가라서 도우려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사는 이웃들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지는 것을 알기 때문에 행동할 뿐이다. 그렇게 불안정한 행동들을 실험해본다는 것이 가진 전략에는 '우리는 누구도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이 전제를 대상자와 인식하고 결과보다는 실험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대상자의 개별적 사안에 우선 직면하고, 질문하고, 고민 나눈 것들 중 몇가지를 행동으로 직접 실천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며 행동할 뿐이라고 말한다.

 

공동번역자인 학교사회복지사 박경현은 한국 사회복지사는 여기서 보다 더 래디컬해지자고 제안한다. 개입자-대상자의 인간-관계에서 나아가 분자적 관계(사실 이런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에 집중하자고 제안한다. 사회복지사 또는 서비스수행가들은 행정노동에 치여 대상자와 인사를 처음 나눌 때조차 곁눈질로 대상자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의 역량에 맞는 자원들을 떠올리는 것에 혈안이 되어, 대상자와 라포 형성은 커녕 기본적인 관계를 맺을 시간도 확보하지 못한다. 급진주의 사회복지사는 대상자와 눈을 마주치며 대화 속에 몰입해야 한다. 가령 그의 거주지에 대해 질문할 때 자산가치나 연계할 복지서비스들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집은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집 앞 텃밭은 그에게 무슨 의미인지 그 텃밭에서 마주치는 식물에게서는 어떤 것을 느끼는지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상자가 관계 맺고 있는 물질들의 자취가 담긴 그만의 지도를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몇몇 적극적인 사회복지사들은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래디컬 헬프>를 직장에서 상사와 함께 읽었어요. 제가 기관에서 <래디컬 헬프>가 대상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으로 해보자고 요청해도 상사가 허락하지 않을거에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라는 질문에 저자의 대답은 "네가 그 기관을 떠나 실천할 수 있는 다른 활동가들을 결집하고 너희에게 맞는 리더를 찾아내어 계획을 수행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 기관의 상사에게 대들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상사에게 대들다니. 한국에서 가능할까?

 

한편, 한국 사회복지사들은 대상자에게 개입할 때 어떤 전략으로 관계맺냐는 질문에 보통 '해결중심접근방법'이라던가 '역량강화기법', '관계중심전략', '강점관점' 등 설명할 도구들을 나열한다. 반면에 복지국가 중 가장 잘 설계되었다고 평가되는 북유럽의 사회복지사에게도 똑같이 대상자와 어떤 전략으로 관계맺냐고 물어보면 그 질문이 무슨 말이냐고 되묻는다고 한다. 한국 사회복지사는 당신들이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는 사회복지 실천기법을 묻는 질문이 무슨 질문이냐고 묻는 것은 무슨 질문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들은 웃으며 대답한다. "우리는 그냥 대상자를 만나고 대화를 해요. 그런 기법 같은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아요."

 

이런 지점들이 신유물론적 수행성과도 연관이 있을까? 신유물론적 재해석이 가능할까?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그러면서도 이미 제도에 편승한 사회적 기업들의 활동일뿐일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복지국가의 성찰도 경계를 허무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일에 참여할 수 있을까? 

 

혹시 흥미가 있는 분들을 위해 <래디컬 헬프> 저자 힐러리 코텀과 번역자들이 나눈 인터뷰를 첨부해요. 영국 서클 활동가의 도전과 실패한 이야기, 그리고 여전히 건재한 HMR(heywood, middleton&Rochdalecircle) 서클 운영에 대한 내용이 1부, 2부로 나옵니다.

 

https://youtu.be/r8rmG3YhQrQ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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