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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와 현대 1강 후기

리사 2021.10.12 16:45 조회 수 : 38

 

랭보, 매혹과 절망 사이에서

 

  휴일 오후다. 휴일 오후라는 걸 나는 달력으로 확인할 뿐이다. 지금 이 시간까지 사람 그림자 하나 보지 못했으나, 곳곳에 설치된 CCTV에 의해 나는 누군가의 시선을 끊임없이 느낀다. 그 시선을 통해서 나를 인식한다. 가끔은 내가 무대 위의 배우 같다. 어둠 저편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제가 잠시 머물고 있는 공간에는 CCTV가 곳곳에 있습니다.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타인의 삶>이 떠오를 때면, 잠깐 분노한다. 이건 사찰 아닌가? 안전을 위해서인가, 감시인가? 누구의 안전인가? 그러나 분노는 발화되지 못한다. 나의 분노를 귀담아들을 사람도 없고, 오히려 역공당하거나 내가 설득당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 귀찮으니까.

  이 글에서 나는 나른한 휴일 오후에 기대어 내가 만난 랭보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형식에 얽매임 없이, 랭보스럽게 쓰고자 한다. 형식에 얽매임 없는 것이 랭보스러운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강의 한 번으로 랭보의 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시에 관한 한 어쩌면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슬픈 예감마저 든다. 그리하여 이 글은, 나의 밑천의 미천함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서 미처 이해하지 못했거나 오독하고 있는 지점에 대한 지적을 바람과 동시에 질문이 될 것 같다. 다만, 랭보의 거침없음과 자유를 이 글쓰기에서 누려보고 싶다. 그럼에도 내시경처럼 뻗어있는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겠지.

 

  평소, 작가와 작품의 상관관계에 대한 나의 생각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보자. 어떤 작가를 직접 만났는데 작품과의 간극이 너무 클 때, (삶이나 태도, 인격 등등의 여러 면에서) ‘작가와 작품은 별개지, 암, 그렇고 말고’ 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런 작가가 어떻게 저런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의문을 품곤 했다.

  그런 면에서 랭보는 자신의 시를 ‘살아버린’ 사람처럼 느껴졌다. 감각을 극단으로 밀어 붙이고자 했던 그의 시론의 ‘실천’인가. 파리에서 자신의 시집이 출간되었다고 했을 때 완전히 탈속한 사람처럼 무시해버리는 태도는, 이전에 온전히 시에 몰입해있던 그의 삶과는 너무 다르지 않은가. 초기의 랭보는 노동은 할 수 없다고, 자신을 오직 ‘시’만 쓰는 존재로 단정하지 않았던가. 그랬던 그가 이후 아프리카 등지에서 보여준 행적은 너무나 세속적이지 않은가?

  세속적이라고 하면 오독인가? 데카당이며, 절대적 비순응, 질서의 바깥이라고 해야 할까? 미지의 다른 삶인가? 감각의 세계로의 육박이라고 이해해야 하나?

  그 사이에 무엇이 놓여있었을까, 궁금하다. 비약일까, 추락일까. 그것에 대한 랭보의 직접적인 진술이 있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그토록 거대한 심연을 가뿐하게 넘어버린 랭보가 경이롭다. 작가와 작품의 완벽한 일치로 인해 경이는 더욱 증폭된다. 지금, 내가 랭보를 이해하는 수준에서는 그렇게 생각된다. 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는, 그의 생애, 삶이 먼저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랭보가 말한 ‘다른 삶’일까? 랭보가 말한 것이 물리적인 ‘다른 삶’은 아닐 거라고 나름대로 짐작해보는데, 그렇다고 정신적, 관념적 차원의 ‘다른 삶’도 아니었을 것 같다. 육체성을 초과하는 ‘다른 삶’은 어떤 것일까.

  랭보는 ‘다른 삶’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을까? 궁금하다.

 

  ‘투시자’에 대한 감각은 그의 시를 이해하지 못하니, 잘 모르겠다. 아마 다음 시간에 그것에 대한 강의가 이어질 것 같은데...... (일뤼미나시옹을 검색하다가, 영국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이 랭보의 시에 영감을 받아 쓴 곡이 있다는 걸 발견했으나, 아쉽게도 음원은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강의 도입에서, 보들레르와 말라르메가 출현하게 된 시대적 배경과 랭보의 전사를 듣고 난 후, 랭보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의 시대와 삶을 알고 난 후, 랭보의 시는 이전과는 달리 다가왔다. 결국, 작가와 작품을 분리하기 어렵다는 말일까?

  하지만, 작가가 어항 속의 금붕어가 아닌 바에야 그의 언어가 어떻게 시대와 자신의 생애와 분리될 수 있겠는가.

 

* 랭보,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는, 벤야민의 책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의 해제 부분에 황현산 선생이 쓴 글을 발췌해서 정리합니다.

“유럽전역에서 혁명이 발생한 해이자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자 선언>을 집필한 해인 1948년 이후 변화의 양상은 급격해지고, 자본주의는 식민지의 존재를 발전의 필수불가결한 구성요인으로 만들게 된다. 1948년의 혁명은 단기간의 폭발 끝에 실패로 돌아갔고 본격적으로 진행된 경제활황은 자본주의의 세계적 팽창을 가져왔던 것이다. 당시 자유주의자들은 노동빈민 계급의 급진화가 사회혁명을 촉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체제의 지배계급들과 타협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한다. 이로써 ‘자본의 시대’는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가 확대되었지만 정치체제 자체는 보수화해가는 모순을 나타내게 된다. 보들레르 시학의 정치적 배경을 이루는 프랑스에서는 루이 보나파르트, 즉 나폴레옹 3세가 등장해 제국주의적 복고주의 반동정치를 진행했으며, 자본주의적 대도시 형성과 함께 도시빈민, 노동빈민, 농촌빈민의 수가 늘어나는 모순이 확대되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보들레르가 자신의 시 <악의 꽃>을 헌정한 고티에의 ‘예술지상주의’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예술지상주의’를, 나는 시대적 요청에 발 담그지 않은 예술이라고 생각했다.(지적, 비판해주시기를요.)

 랭보 시의 맛을 조금이나마 본 지금, 나는 랭보의 시가 그 어느 시보다 비판적이라고 생각한다(된다). 시대에 대해, 질서에 대해, 고정관념이나 속물적 가치에 대해.

 ‘질서의 바깥’은 현재의 질서에 대한 예민한 감각으로부터 출발해서 저항하고 비판할 때 다다를 수 있는 곳 아닌가? (보들레르로부터 고티에의 ‘예술지상주의’가 랭보에 와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달라진 것인지요?)

 

  “나는 하나의 타자”로서, 끊임없이 다른 감각을 받아들여 현실을 초월하여 현실 그 너머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투시자”가 되어 내가 모르는 미지의 시간과 장소에 다다르고자 하는 존재, 그것이 시인이다.

  이것은 문학의 자장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가닿고자 하는 곳일테다. 그것을 자신의 전 존재로 증명한 시인, 랭보.

 

(*다 쓰고나서 보니, 몹시 주관적이고 우물쭈물 두서없는 글이 되었습니다. 덜컥 쓰겠다고 해놓고, 이해가 부족함을 절감하며 후회했습니다. 그리하여 거의 질문지가 되어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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