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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연민의 정(동정)이 깊은 자

  먼저 깨달은 자와 수치심에 대해 살펴보자.

  '깨달음에 이른 자에게는 사람 자체가 빨간 뺨을 갖고 있는 짐승이다. (중략) 그것은 그가 그토록 자주 수치를 느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깨달음에 이른 자는 말한다. 수치심, 수치심, 수치심. 그것이 바로 인류의 역사!라고.'(p.145)

  수치심은 우리에게 긍정과 부정의 두 효과를 동시에 준다.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문제점을 성찰해야하기 때문에 잘못하고 있는 일에 대한 수치심이 동반되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과도하게 수치심을 느끼게 압박받거나 성찰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이는 창피함, 되갚음 등 감정적 대응을 불러일으킨다. 차라의 말처럼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대신 복수심에 불타도록 만'(p.146)들며 그것을 마음에 담고 있게 한다. 그래서 고결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를 주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쓴다.'(p.145)

 

Q1. 우리가 고통받는 자를 동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연민하다'라는 말은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다'라는 말이다. 동정이란 '남의 불행을 가엽게 여기어 따뜻한 마음을 쓴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민을 정'을 느낀다는 것은 타인에게 동정심이 든다는 것과 같다.

왜 우리가 고통받는 자를 동정하는가? 그의 아픔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와의 최소한의 연대, 그것이 동정이다. 차라는 자비롭다는 자들의 동정을 비난한다. 그들은 '연민의 정이란 것을 베풂으로써 복을 느끼'는 자들로서, '너무나 수치심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도 그러할까? 대가를 바라는 이기심의 덕을 베푸는 자는 그러하겠지만, 타인의 어려운 처지에 대한 공감에서 동정하는 자들도 있다.

 Q2. 차라투스트라는 왜 고통받는 자에 대한 동정을 그만 두었나?

그가 고통받는 자에 대한 동정을 그만 둔 이유는 깨달음의 과정에서 내적 변화를 겪었었던 원인과, 동정이 받는 자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문제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차라는 자신이 보다 기뻐할 줄 알게 되면서 고뇌하는 자에 대한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

사람이 존재한 이래, 사람은 너무나도 적게 기쁨을 맛보았다. (중략) 우리가 보다 기뻐할 줄 알게 된다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거나 다른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할 궁리를 어느 때보다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나 고뇌하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온 나의 손을 씻는다. (p.146)

 차라는 자신이 깨달아가면서 더 즐거움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고뇌하고 있는 자들에 동정을 줄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연민의 정'이 왜 문제인가. 그를 동정함이 그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내기 때문이다.

 크나큰 마음의 빛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대신 복수심에 불타도록 만든다. 사소한 마음의 빛의 경우, 그것이 잊혀지지 않으면 거기에서 쐐기가 생겨나게 된다.(146)

 모든 동정이 수치심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어느 누군가로 부터 받은 동정에 수치심을 크게 느꼈다면 내가 느낀 창피함을 되갚아 줄 생각이 마음에 가득할 수 있다. 가령, 선거철이 다가오면 지역구 내 가난한 사람들에게 생필품 지원 등 선행을 하는 정치인이 많다. 만일 내가 그가 베푼 연민의 정의 시혜자였다면, 그의 행동에 즐거움을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그의 행동에 대한 냉소와 더불어 그런 동정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나 자신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내 마음은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쌓아놓게 되고, 그런 위선적인 자들에게 복수할 날을 꿈꾸게 될 확률이 높다. 차라는 자신의 도움이 고뇌하고 있는 자들에게 수치심을 유발했음을 자각하고 그만 둔다.

 

Q3. 차라투스트라의 베푸는 방식은 대상에 따라 어떻게 다른가? (벗에게, 가난한 자에게, 거렁뱅이에게)

'베푸는 자'인 차라는 상대방이 최대한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방법으로 그의 깨달음을 베푼다.

벗에게는 내 친구이기 때문에 베푼다는 생각으로 벗이 베품을 받는데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한다. 낯선 사람들과 가난한 자에게는 그들 스스로가 와서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 그렇지만 거렁뱅이에게는 베풀지 않는다. 그들은 동정받는데에 대한 수치심도 없이 늘 누군가에 기대여 살아가기 때문이다.

 

  Q4. 고통받는 벗에게 딱딱한 야전침상이 되어주라!?

고뇌하고 있는 벗은 그 고통을 겪고 극복해야만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 깨달음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된다. 내가 그런데 고통받는 벗에게 푹신한 침대가 된다면 그건 그에게 자기극복의 과정을 그만두라는 행동과 마찬가지이다. 내가 그에게 딱딱한 야전침상이 되라는 말은 자기극복과정에서 잠시 쉴 수 있는 정도의 도움만 주라는 것이다. 몸에 불편해 다시 일어나 깨달음의 길로 가고자하는 스스로의 의욕을 일으켜 세워 그가 스스로를 해방할 수 있게 도우라는 말이다.

 

Q5. 속 좁게 생각하기보다는 악행을 저지르는 편이 낫다!?

악행은 외면으로 들어나고 속 좁은 생각은 내 안에서 숨어서 작용한다. 악행은 외부로 들어나기 때문에 악행을 하는 내 자신과 수치심을 유발한 타인이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게 된다. 그러나 속 좁은 생각은 그런 기회를 차단한다. 타인은 자신의 문제를 교정할 수 없고, 내 속 좁은 생각은 내 내면을 수치와 복수의 생각으로 가득한 채워 나의 건전하고 정상적인 활동까지 가로막은 채 앙갚음의 칼날만이 번득이게 한다.

Q6. 창조하는 자는 왜 가혹한가?

창조하는 자신 자신을 파괴하여 극복해야한다. 창조하는 자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고뇌가 있어야 하며 많은 변신이 있어야 하며,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해산의 고통을 각오해야하기 때문이다.

Q7. 고통받는 자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동정 vs 위대한 사랑)

고통받고 있는 자가 자기를 파괴하고 극복하여 자기 스스로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동정보다는 그가 창조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위대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자기 극복을 위해 고통받는 자의 아픔을 공감하거나, 그에게 도움을 주는 나 자신에 만족하고 있는 정도로는 위대한 사랑이라고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를 돕는 것. 그것이 바로 위대한 사랑이 아닐까?

 

Q8. 위대한 사랑은 모든 동정을 극복한다. 위대한 사랑은 사랑을 할 상대까지 창조한다!?

결국 그런 위대한 사랑의 결실은 내가 사랑할 상대까지 창조하게 한 것이다. 그건 동정의 마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동정은 위로만이 가장 큰 효과이기 때문이다.

 

 

2-4. 사제들

 

Q1. 차라투스트라는 사제들과 어떤 점에서 가깝고 어떤 점에서 대척적인가?

  □ 닮은점

차라와 사제들은 '고뇌하고 있는 자'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 차이점

(차라)감옥을 부수고 나온 자 vs (사제)은 '거짓가치와 황당한 언설의 질곡' 속에 갇혀있는 자들이요. 낙인찍혀 있는 자들이다.

저들이 구세주라고 부르고 있는 바로 그가 저들을 질곡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거짓가치와 황당한 언설의 질곡 속으로 말이다. (p.151)

(차라) 구세주를 믿지 않음 vs (사제) 구세주를 믿음

'자유에 이르는 길을 찾아내고자 한다'면 구세주보다도 더 위대한 자가 구원할 수 있게 해야한다. 그는 위버멘쉬이다. 그는 스스로를 창조했다.

 (차라) 피는 진리에 대한 최악의 증인 vs (사제) 피로써 진리를 증명

피는 더없이 순수한 가르침조차 더렵혀 마음을 미망과 증오로 바꿔 놓는다.

 

Q2. 사제들의 ‘거짓 가치와 황당한 언설’에는 어떤 것이 있나?

o 교회: 날조된 곳이며 영혼이 그 자신의 높이로 비상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곳(151)

o 잘못된 수치심과 경건을 강요:

저들의 신앙은 되레 이렇게 명한다. '죄인들이여, 무릎으로 층계를 기어오르도록 하라! (중략) 이 같은 동굴들과 참회의 계단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몸을 숨기려했던, 맑은 하늘을 우러러보기가 부끄러웠던 자들 아닌가?(p.151) 

o 구세주가 자유와 자유의 제7천국(하나님과 천사가 산다는 곳)에서 온 것이라 믿고 있다.

미래로 이어지는 길이 하나뿐인 것처럼 저들의 양 떼를 저들의 좁은 길로 내몬다. 더 없이 위대하다는 자나 더 없이 왜소하다는 자 모두 '인간적'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즉, 그들 모두는 인간이거나 인간이 창조한 것이라는 의미아닐까?

 

 

2-5. 도덕군자

  Q1. 덕의 대가는 보상ㆍ복수가 아니라, 덕 자체이다!?

차라는 도덕군자가 댓가를 바라는 행위를 하고 있으며, 그 댓가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너희는 아직도 금전상의 대가를 바라고 있구나! 너희는 덕에 대한 대가로 보수를, 지상에서의 삶에 대한 대가로 천국을, 그리고 오늘에 대한 대가로 영원한 것을 소망하고 있는가? (중략) 사람들이 사물의 바탕에다, 심지어는 너희의 바탕에까지 있지도 않은 보수와 형벌이라는 것을 심어놓았으니! 아, 도덕군자들이여, 그것을 보는 나의 서글픔이란! (p.155)

  사물 그 자체는 아무것도 없는데 판단의 개념(선악, 천국과 지옥)을 집어넣고 따르면 보수를 따르지 않으면 형벌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음을 비판하고 있다. 도덕군자의 진실의 모습은 '너무나도 깨끗하다'는 것, 그런 판단의 개념은 애초에 없다는 것이다. 차라는 덕을 베풀면 다른 대가가 아닌 덕 자체를 대가로 받게 된다고 말한다. 스스로 자기 자신의 존재가치가 고양되기 때문이다.


Q2. 너희의 덕은 너희의 자기이다!?

누군가가 존재만으로도 타인에게 가치를 베풀고 있다면 그는 '베푸는 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나로 눈을 돌려보면 '나(자기)'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생존의 가치를 베푼다. 그러므로 나(자기)는 '베푸는 덕을 가지고 있고, 또한 내가 가진 덕은 '나(자기)'이다. 나에게 덕은 나(자기)이며 '덕이 덕 자체의 보수'(155)인 것이다.

 

Q3. 너희의 자기라는 것이 너희의 행위 안에 있다!?

아, 벗들이여! 어머니가 아이 안에 있듯이 너희의 자기라는 것이 너희의 행위 안에 있다는 것. 이것이 덕에 대한 너희의 언설이 되게 하라!(p.159)

  아이는 어머니와 유사한 신체를 가지게 되며 성품을 닮게 된다. 즉, 아이를 바라보면 어머니의 모습과 행동을 찾아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존재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자기'의 베푸는 덕이 나의 행위에도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그게 나의 덕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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