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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 1강 후기 -김진완

에이허브 2021.04.11 22:19 조회 수 : 150

짜라투스트라와의 재회

 

니체는 저에게 불우했던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복해서 중얼거리다보면 가슴이 퉁 꺼지면서 한숨이 나오는 단어가 있으신지요. 저에게는 삼중당이란 단어가 그렇습니다. 삼중당삼중당삼중당 하다보면 사춘기를 보낸 세탁소 다락방이 떠오르고 책장에 빼곡히 꽂혀있던 삼중당문고의 매캐한 책먼지 냄새가 피어나지요.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을 짝사랑했는데요. 그분의 입술에서 발음되어 나오는 책들 대부분은 삼중당문고에 있었습니다. 가장 쌌지만 세로 활자본이라 읽은 줄을 또 읽게 되던 삼중당문고. 어린왕자, 헤밍웨이, 데미안, 말테의 수기, 도끼 살인마 라스콜리니코프......

 

삼중당 패거리들이 책장에 빼곡히 꽂히고 다락방 천장까지 닿았을 때, 전 제 인생이 꼬여버렸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허니께, 나가말여 밥도 돈도 벌지 못하는 한심한 문청이 되야부렀소. 젠장맞을!”

첫사랑이 나를 망치고 삼중당문고가 저를 패대기쳤던 거지요. 어디에? 문학이라는 진창에!

 

삼중당 왈패들 중에 최고 짜증유발자가 바로 짜라투스트라였습니다. 입만 떼면 나 너희에게 이르노니로 시작해서 말끝마다 -하노라 -하리라로 끝내는 거만한 말투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무슨 소릴 하는지 알아먹을 수도 없어서

“어이, 코털아저씨 관둡시다. 앞으로 우연히 만나도 서로 아는 체 맙시다.” 하고,

스무살 무렵 인연을 끊었던 건데요.

 

서른 해가 훌쩍 지나 세파에 후려 맞고 휩쓸려 당도한 곳이 수유너머였는데요. 여기는 뭐 니체가 핏대를 세워 노래를 하고 짜라투스트라가 막춤을 추는 니판짜판이더라고요. 게다가 이웃한 동네라 귀가 버스를 같이 타는 재숙샘은 더더구나 니체전문연구자라서 니체에 대해 한마디 툭, 던지면 백 마디가 좔좔 쏟아져 나오는 건데요.

‘월래? 이 냥반이 니체의 환생이여? 짜라투스트라 어록 자판기여?’하고,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습니다.

 

3년여 시간동안 수유너머에서 들은 풍월과 재숙샘의 버스 안 강의가 이어져서 저와 니체선생 사이에 세워졌던 벽이 허물어지던 것입니다. 그리고 급기야 저는 짜라투스트라 강의 수강생이 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30여년 만에 다시 만난 짜라투스트라는 명징하고 힘이 넘쳤습니다. 거기다 수유너머 강의 중에 수강자가 제일 많았지요. ‘니체에 매혹된 영혼들이 이렇게 많다니!’ 속으로 놀라기도 하고, 과연 니체의 내공은 딴딴하구나 감탄도 했고요.

 

재숙샘의 강의가 훌륭하다는 거야 소문으로 익히 알고 있었지만 들어보니, 과연 그랬습니다. 철저한 강의 준비와 현란한 파워포인트 스킬에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튀어나왔지요. 수강생들의 열기도 뜨거웠고 무겁고 날카로운 질문과 여유 있는 답변이 이어지고..... 뒤풀이 시간의 대화는 유쾌했고 술은 달았습니다.

-진정, 사람은 더러운 강물이렷다. 더럽히지 않고 더러운 강물을 모두 받아들이려면 사람은 먼저 바다가 되어야 하리라.

소설가 이병주씨가 읽고는 충격을 받아 한참을 멍하게 허공을 쳐다보게 한 문장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공부를 하면서 짜라투스트라에게 얼마나 많은 뒤통수를 맞을지 사뭇 기대(?)가 됩니다. 훗날, 저에게 니체선생은 행복한 시절을 소환하는 영혼이 되리라는 예감에 사로잡힌 고맙고도 귀한 첫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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