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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은 이정우 선생님 번역본과 영어본이 차이를 드러낸다고 판단되는 부분, 혹은 누락된 부분에 표시했습니다. 저의 판단이 틀릴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르토와 캐럴

표면만큼 부서지기 쉬운 fragile 것은 없다. 표면에 대한 위협은 처음에 지각되지 않을지라도 한 걸음만 물러서면 커다란 균열로 드러난다. 이차적인 조직, 다시 말해 표면의 전체 조직은 끔찍한 태고의 질서 속에서 이미 사라졌고 전복되었다. 무의미는 모든 것을 소진시켰기에 for it has consumed everything, 더 이상 의미를 전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더 이상 소녀들과 아이들 곁이 아닌, 치유 불가능한 광기 an irreversible madness 속에 있다. 즉, 언어와 말의 창안을 통해 도달했던 문학적인 탐구의 정점이 아닌, 발작적인 삶의 소용돌이 the agitation of a convulsive life 속에, 신체를 침범하는 병리학적 창조의 밤 속에 in the night of a pathological creation affecting bodies 있다.

어린아이, 광인, 시인이 이루는 기괴한 삼위일체 the grotesque trinity의 조야한 유사성 아래에서 underlying these crude similarities 드러나는 심오한 차이의 미끄러짐에 주의하자. 아마도 진지한 태도로 바바르(1931년에 소개된 동화책의 주인공, 코끼리)의 노래와 아르토의 울부짖음-호흡 (cris-souffles)을 혼동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One could not seriously confuse Babar's song with Artaud's howls-breaths, 또한 대부분의 논리학자들이 펼치는 무의미에 대한 빈약한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삼위일체는 성립될 수 없다. 오히려 문제는 임상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문제는 하나의 조직에서 다른 조직으로의 미끄러짐, 또는 점진적이며 창조적인 탈조직화에 관한 것이다. 또한 문제는 비평적인 것 a problem of criticism이다. 다시 말해 무의미가 형태를 바꾸고 혼성어가 본성을 바꾸고 언어가 전적으로 차원을 바꾸는 미분적인/변별적인 수준들을 결정하는 것이다.

조야한 유사성 crude similarities에 의해 함정이 만들어진다. 때때로 아르토는 캐롤과 맞선다. 로데즈의 정신병원에서 쓴, 아르토의 편지에 담긴 재버워키의 번역에서는, 다른 일반적인 불어판 번역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던 시작 부분이 전개된 뒤, 곧 미끄러짐과 더불어, 우리를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전적으로 다른 언어로 쓰인, 창조적이며 핵심적인 함몰이 발생한다. 엄습하는 공포와 더불어 우리는, 이들이 분열증의 언어임을 깨닫는다. 어중음소실에 휩싸이고 후두음이 남발되는 가운데, 혼성어는 다르게 기능하는 듯 보인다. 이 때 우리는, 표면에서 방출되는 캐럴의 언어와 신체의 심층에서 조형화되는 carved into the depth of bodies 아르토의 언어를 떨어뜨려놓는 거리를 간파한다.

 

나는 이 시를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시에서는 언제나 가장된 유아증의 느낌이 전해지죠, ... 나는 행복한 여가와 지성의 성취의 냄새를 풍기는 시나 언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성은 항문에 의지함에도 영혼이나 심장이 결여된 시나 언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 항문은 언제나 두려움 terror이죠. 나는 찢김 없이, 따라서 영혼의 상실 losing one's soul 없이, 배설물을 상실한다는(방출한다는) loses an excrement 것을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 재버워키에는 영혼이 없습니다. ... 우리는 자신만의 언어를 발명할 수 있고 비문법적이거나 탈문법적인 의미로 with an extra-grammatical or a-grammatical meaning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이 때 의미는 자체적으로 값(참뜻) value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 고통(고문)으로부터 나와야만 하는 것이죠 it must issue from torment. ... 누군가 존재의 똥과 언어를 파헤칠 때, 그 누군가의 시는 반드시 나쁜 냄새가 납니다. 하지만 재버워키는, 모든 위대한 시인들이 빠져 들어가는, 또한 태어나기도 하는 자궁 속 고통의 존재 the uterine being of suffering로부터 뒤로 물러선 작가의 시이면서도 나쁜 냄새가 납니다. (영국 속물의 배설물에서 비롯된 나쁜 냄새)

 

먹기-말하기와 분열증적 언어

스스로를 환자나 랑그를 공부하는 분열증적 학생 "the schizophrenic student of languages"이라고 일컫는 이들은, 구강성에 대한 두 계열의 존재와 선언 disjunction을 체험한다. 사물들-말들, 소비들-표현들, ‘소비 가능한 대상들’-‘표현 가능한 대상들’이 이원성이 그것이다. 먹기와 말하기의 이러한 이원성은 보다 난폭하게 표현한다면, 지불하기-말하기, 똥싸기-말하기이다. 이는 섭취적이고 배설적인 모국어와 환자가 습득하고자 열중하는 표현적인 외국어로 이전되어 복구된다. 어머니는 먹을 수 없는 캔에 든 음식을 흔들어대며 환자(자식)를 유혹하는 동시에, 그가 귀 막을 시간을 갖지 못하도록 갑작스레 영어로 말하며 급습한다. 반면 그는 끊임없이 어떤 외국어를 반복하는 동시에, 캔을 짓밟아버리고 음식을 한입가득 마구 먹어대는 식으로 위협을 물리친다. 보다 심층에서 그는 자음 중심의 음성적 요소들을 활용하여 영어를 외국어로 번역한다.

1) "tree" - "arbre"(프) - "derevo"(러) - "tree"/"tere"

2) "early" - "surR-Le-champ", "de bonne heuRe", "matinaLement", "a la paRole", "devoRer L'espace"(연합된 프랑스 어구) - "urlich"(독)

3) “ladies" - "leutte"(독/사람들, 인류) - "loudi"(러/인류?)

캐럴의 경우에도 먹기-말하기라는 기초적인 구강의 이원성은 종종 두 종류의, 혹은 두 차원의 명제들 사이로 대체되어 통용되며, 어떤 때는 “지불하기-말하기”, 또는 “배설-언어”로 강화된다. 그리고 아르토도 “존재하기와 복종하기, 살기와 실존하기, 행위하기와 사고하기, 물질과 영혼, 몸과 마음의 이율배반적 계열을 발전시키며 캐럴과의 놀라울 만큼 닮은 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아르토는 자신의 저작이 캐럴의 저작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덧붙였을까? 왜 그토록 놀라울 만한 친밀성이 동시에 근본적인 차원에서 철저한 이질성일 수 있을까? 캐럴의 두 계열은 표면 위에서 분기된다. 두 계열 사이의 경계면을 이루는 어떤 선을 따라 의미는 명제에 의해 표현되는 것으로서, 또한 사물들의 속성으로서 정교하게 구축된다. 두 계열은 차이에 의해 분기되며 의미는 스스로의 선 line에 머물면서도 전체의 표면을 가로지른다. 물체들의 능동과 수동에 의한 결과이자, 하나의 효과로서의 의미는, 언제나 표면에 머물며 물체적 원인과는 전혀 다르기에, 하나의 비물체적인 유사 원인으로 일컬어진다. 비밀스러운 말들과 혼성어로 표현되며 양쪽으로(두 계열로) 동시에 의미를 분배하는 것은 언제나 이동하는 무의미이다. 이 모든 것들은 거울 같은 효과를 상연하는, 캐럴의 작품이 갖는 표면의 조직을 형성한다.

 

분열증과 표면의 좌절

반면 아르토에게 어떠한 표면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심층적인 문제로부터 벗어나 어린 소녀를 가장하는 캐럴이 아르토에게 충격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첫 번째 분열증적 징표는 표면이 벌어져 열려있다는 점이다. 사물과 명제 사이의 경계도 없고, 신체의 표면도 없다. 체 seive처럼 수없이 구멍 난 분열증적 신체는 심층(깊이)만이 남게 되고 그 근본적인 함입 a fundamental involution을 표상하는 이 벌어진 심층으로 모든 것이 쓸려 들어간다. 모든 것은 신체이자 물체이다. 모든 것은 신체의 뒤섞임이고 신체 속에서 맞물리거나 또한 관통한다. 표면이 없기에 내부와 외부, 용기와 내용물은 엄밀한 한계를 갖지 않으며 그들은 보편적인 심층 속에 빨려 들어가거나 (물질로, 신체로) 가득 찼기에 더욱 수축하게 되는 현재의 원환 속에서 회전한다. 신체-체 body-seive, 조각난 신체, 분리된 신체 dissociated body는 분열증적 신체의 세 차원이다.

 

수동적 말과 능동적 말

이러한 표면의 붕괴로 in this collapse of the surface, 전체 세계는 의미()를 상실한다 the entire world loses its meaning. 이 (분열증적) 세계에서 아마도 어떤 종류의 지시작용의 힘이 유지될 수는 있겠지만 지시작용은 텅 빈 것으로 경험될 것이다. 어떤 종류의 현시작용의 힘도 유지되겠지만 현시작용은 무관한 indifferent 것으로 경험될 것이다. 어떤 종류의 의미작용의 힘이 유지되겠지만 의미작용은 “그릇된” “false" 것으로 경험될 것이다. 결국 말은 물체와 구별되어 비물체적 효과를 표현하는 힘, 즉 의미 sense를, 또한 (사건의) 현재적 실현 its present realization과 구별되는 하나의 이념화된 사건 an ideational event을 상실한다. 모든 말은 물질적이며 physical 신체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글자를 얼어붙게 하고 글자에서 의미를 벗겨버리는 콜라주의 경우처럼 as in a collage which freezes it and strips it of its sense 인쇄된, 대문자로 표현된 단어들은 압정에 꽂혀지는 순간, 의미를 잃어버리는 동시에 갈기갈기 찢겨진다. 그리고 이들은 음절들로, 문자들로, 무엇보다 자음들로 분해되어 신체를 직접 관통하고 상처를 남긴다. 말은 더 이상 사태의 속성을 표현하지 않는다. 말의 조각들은 참을 수 없는, 쩌렁쩌렁한 소리의 성질과 구분할 수 없게 된 채, 신체에 침투한다. 이러한 수난(수용) 속에서 In this passion, 언어의 효과는 순수 언어-정동 a pure language affect으로 대체된다.

분열증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심층에서, 말을 파괴하고 정동을 상기하며 conjuring up the affect 신체의 고통스러운 수난(수동) passion을 승리의 행위(능동) action로, 복종을 명령으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승리는 문자적, 음절적, 음운적 값들이 강세적 값으로 대체되는 호흡-말들 breath-words (mots-souffles)과 울부짖음-말들 howl-words (mots-cris)의 창조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가치들에 분열증적 신체의 새로운 차원인 영광스러운 신체가, 전적으로 흡수 insufflation, 호흡 respiration, 발산 evaporation, 유체적 이동 fluid transmission에 의해 작동하는 operates 부분들 없는 유기체(아르토의 상위 신체 또는 기관들 없는 신체 body without organs)가 상응한다.

 

심층의 무의미와 표면의 무의미

분열증적 말의 이중성

수동(수용)-말

상처를 주는 음성적 값

조각난 신체

농동(행위)-말

뜻 모를 강세적 값

기관 없는 신체


두 가지 유형의 무의미

수동

의미가 떠난 말의 무의미

the nonsense of the word dovoid sense

조각난 신체

농동

더 이상 의미가 떠나지 않는, 또는 떠날 수 없는 (하지만 애초부터 의미에서 벗어난) 무의미

no less devoid of sense

기관 없는 신체

 

여기서 모든 것은 표면을 멀리 떠나 의미의 밑에서 이루어진다. 하위 의미 sub-sense, a-sense, Untersinn

분열증적 언어에서 기표와 기의의 두 계열은 사라진다. 무의미는 더 이상 표면에 의미를 전하지 않는다. 아르토에게 존재는 무의미하며 이빨을 가졌다. 분열증적 언어에는 의미뿐만 아니라, 더 이상 문법이나 구문론도 없다. 그 극한에서는 음절적, 문자적, 음성적 요소들의 분절도 없다. 아르토의 시론은 “루이스 캐럴에 반하는 반 문법적인 시도”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먹기-말하기’같은 유형의 표면 계열들은 심층의 극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표면의 절단은 심층의 분열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우리는 언제라도 캐럴의 저작을 분열증적으로 읽을 수 있지만 이러한 읽기의 시도는 정신분석학자들의 잘못된 믿음 탓에서 비롯되고 있다.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동일한 질료를 발견했다는, 그릇된 차이를 낳는 유비적 형상을 발견했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캐럴과 아르토는 만나지 않는다. 스스로의 차원을 갖지 못한 주석가들만이 차원을 바꾸려 한다. 아르토는 문학에서 절대적인 깊이를 이뤄냈다. 고통을 통해 살아있는 신체와 이 신체의 경이적인 언어를 발견했다. 그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하위 의미 the infra sense를 탐구했다. 그러나 캐럴은 표면의 대가로, 측량사로 남았다.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어 탐색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졌던 표면. 하지만 모든 의미의 논리가 자리한 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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