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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공간에서 불변성과 가변성 : 르네상스와 바로크

 

 이번시간에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건축에 대한 강의였습니다. 르네상스란 부활, 재생이란 뜻의 프랑스 어로 그리스·로마의 문화적 전통이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에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그렇다면, 르네상스 시대에 고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이 당시, 국제적인 도시교역의 발전으로 비잔틴과의 교역을 통해 그리스 문화의 수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스, 로마에 대한 관심은 그들의 근원적인 기원을 찾는 것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기독교적 세계의 외부에 대한 관심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눈을 돌린 곳에는 비트루비우스의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에서 건축가는 단지 장인이어서는 안되고 모든 영역에 해박해야 한다고 합니다.(르네상스의 이상인 만능인으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가장 큰 결점은 라틴어를 몰랐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건축은 건출물에 요구되는 기술적인 해답이 아니라, ‘기본원칙’에 근거한 이론적인 학문이라고 합니다. 이에 따라 기하학도 전에는 기술적인 이유에서만 이용되었지만, 르네상스시대에는 기본원칙을 이루는 근본적인 학문이 됩니다. 이 당시 기하학을 비롯해 수학이 발달한 이유는 도시의 발달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르네상스 예술이 근본주의적 성격을 갖게 됩니다.

 

 여기서, 이진경선생님이 르네상스를 평가하는 관점들을 비판하며 해체하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대개 르네상스 투시법에서 소실점에 있는 시선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소실점은 평행선이 모이는 점이라는 말인데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즉, 데자르그의 사영기하학과 평행선의 정리(모든 평행선은 하나의 중심으로 모인다.)이 있어야만 소실점을 말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당시는 무한한 공간은 하나의 중심으로 통합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유클리드 기하학만이 받아들여졌던 시대) 소실점이란 말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또, 고대 로마를 휴머니즘 시대라고 하는 생각의 근거가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 신전(여기서 고대를 지칭할 때 그리스와 로마는 구별되지 않습니다.)이 인간적인 스케일이라면 세계의 거의 모든 건축물은 인간적인 스케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비트루비우스조차 코린트 식 기둥에 대해선 식물의 상징으로 했다는 점을 보면 오히려 식물중심주의라고 말할 수 있고, 기둥을 지붕을 떠받치는 노예라고 말했다는 점에서 인간중심주의라고 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하셨습니다.

 

 이 외에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근거가 되는 것은 인간을 원과 정사각형 안에 집어넣으면서 신전건축과 인체비례를 연관지었던 비트루비우스의 문장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진경선생님은 이것도 외계인을 원에 집어넣은 그림을 통해 이러한 생각의 근거를 우습게 만드셨습니다.ㅋㅋ 여하튼 이 당시에는 인간이 치수체계의 중심에서 있고, 비례를 통한 건축이 중요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에 건축가들은 원과 정방형으로 비례에 맞춰 건물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방형으로 교회를 짓게 될 경우 예배공간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기능적인 이유로 장방형으로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축가들은 어떻게 원과 정방형 평면의 중심화된 건물을 지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민을 건축가들은 장방형을 정방형의 연장으로 짓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했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르네상스 중심형 교회에서는 교차부의 중앙이 공간의 중심점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 중심에 서게 되면 주위의 형태들은 어디를 보아도 동일한 모습을 갖도록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 것은 시선을 끄는 중심이 아니라 시선이 발원하는 중심이라고 합니다. 데카르트의 좌표계에 대응한다면 원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점마다 보이는 형상의 차이는 양적인 차이일 뿐입니다.

 

 이 당시 비례에 대해 강한 집착을 한 이유는 완전성을 건축의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례에 맞춰 평면의 윤곽과 교차부의 크기와 형태가 정해지면 모든 평면은 이에 맞게 저절로 정해져 더 이상 다른 형태로 바꿀 수 없게 됩니다. 알베르티는 완전성을 “모든 부분의 조화나 통일이 더 나빠지지 않고선, 더해지거나 감해질 수 없고 변경될 수 없는 상태”라고 정의합니다. 이러한 정의를 보면, 이 당시의 시대정신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바로크 건축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기 전에 르네상스-바로크의 이행이라고 할 수 있는 마니에리스모(매너리즘) 건축에 대한 얘기가 있었습니다. 매너리즘이란, 형태적 요소, 양식적 요소들이 확립된 이후, 애초에 그것을 사용하게 했던 기본적인 ‘정신’이나 ‘원칙’, ‘원리’에서 벗어나 그 요소들이 사용되게 될 때, 출현하는 태도라고 합니다. 즉, 르네상스 시대의 원리, 원칙에 벗어나 그 요소들을 사용한 건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출현의 역사적 이유는 종교적 갈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1517년 루터는 면죄부에 반대한 95개조 논제에 담긴 서한 발표 후, 교황에 대해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루터파 신자였던 칼 5세의 군대와 용병이 로마를 침공하여 많은 예술가를 포함한 사람들이 베네치아로 망명을 갔다고 합니다. 여기서 반 종교개혁자(줄리오 로마노, 미켈란젤로)들에 의해 새로운 예술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종교적 대립의 악화로 시작되었지만, 근본적으로 르네상스적 이상주의에 억눌려있던 욕망들이 현실적 사건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미켈란젤로는 건축의 관념과 공간개념 자체의 혁신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놀라운 천재라고 합니다. 첫 강의 때도 얘기가 나왔었는데, 미켈란젤로의 캄피돌리오 광장을 보면 세 채의 건물이 오므라들어 있습니다. 그는 투시법에서 벗어난 눈으로 역동적인 공간을 이루어냈던 겁니다.

 

 다음으로 바로크 시대의 건축에 대한 얘기가 있었습니다. 바로크는 그 정의와 시원이 애매모호합니다. 오랜시간 숱한 논쟁 끝에 지금은 ‘이상하고 충격적인’, ‘해괴한’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바로크는 용어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 건축가들에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뵐플린에 의해 독자적인 하나의 양식의 자리를 얻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는 바로크를 하나의 틀 안에서 양식화 함으로써, 바로크의 가장 중요한 괴물적인 성격을 거세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들뢰즈는 <주름>에서 바로크를 역사적 규정에서 떼내어 ‘일반적’인 개념으로 재정의하고자 합니다. 이진경선생님은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을 거의 모든 역사적 지층에서 발견되는, 이런 ‘기괴함’과 과장을 야기하는 미친 열정으로서 정의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즉, 바로크가 어떠한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양식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동의하시는 겁니다.

 

 또, 바로크는 그 시원이 애매합니다. 바로크의 선을 구부러뜨리는 투영의 기술과 이론적 관계를 밝힌 책 구아르노 구아리니의 <Architectura civile>는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습니다. 하지만, 출판보다 그 영향력이 앞서 있었기 때문에 시작이 모호합니다. 데자르그는 반대방식으로 시작을 모호하게 합니다. 절석법(돌을 자르는 법)을 위한 ‘자생적’ 기하학인 투영법을 일반화한 것은 데자르그의 사영기하학입니다. 하지만, 이 기하학을 이해한 사람은 19세기에나 나타난다고 합니다.

 

 여기서 절석법과 사영기하학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사영기하학은 이전에 비정규곡선(타원 : 원의 변형)이라 불리던 것들을 원의 연속으로 보게 한 중요한 학문입니다. 사영기하학을 통해 원뿔의 자르는 단면에 따라 원, 타원, 포물선, 쌍곡선을 모두 나타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건축가이기도 했던 데자르그의 절석법에 관한 논문이 이러한 기하학이 탄생하게 된 단서가 되었다는 겁니다. 절석법에 대해서 가장 일찍 출판된 것은 필리베르 드 로름의 <건축론>이었다는데, 새로운 생각을 열었다는 점에서 절석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크의 공간은 다양한 곡률을 갖는 곡선으로 결합된 벽체를 통해, 다양한 양상으로 변화하는 연속적 전체를 이룹니다.

 

 다음으로 바로크 건축의 동선과 시선에 대한 얘기가 있었습니다. 바로크 건축이 만들어내는 공간형태의 다양성과 기하학적 ‘모호성’은 시선을 다양한 방향으로 끌어당깁니다. 하지만 다양하게 흘러가는 시선들 속에서 그것을 통일시키고 통합하는 특정한 점을 설정합니다. 이 특이점은 르네상스 건축의 중심(원점)이 아니라, 다양한 상을 종합하는 통합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이 특이점은 다른 시선(보통점)들을 통해 특이점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다른 시선을 통해 변형된 형태를 보아야 특이점에서 본 시선의 차이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바로크의 공간적 배치에서의 두 가지 경향에 대한 얘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동선과 시선을 모두 탈영토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강력한 초점(특이점)을 통해 다양함과 개방성을 통합적 힘의 확장성으로 변환시키려는 것입니다. 특히, 후자에 대한 언급이 많았습니다. 특이점이 갖는 특권적인 지점을 중심으로 다른 시선들을 배치하는 권력의 배치는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있습니다. 오늘날 각 나라의 도시의 배치 또한 대개 이렇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광화문 광장이나 학교의 넓은 잔디는 사람들이 사용하기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철저히 시선을 위한 공간입니다. 광화문에 배치된 경찰과 ‘들어가지마시오’라는 푯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르네상스 건축과 바로크 건축에 대해 비교하는 많은 얘기가 있었고, 많은 건축들의 이미지를 통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의 강의를 연관지어 생각할 때, 각각의 시대의 건축에 담긴 시선과 동선에 대한 생각과 방법이 인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첫 강의에 있었던 말처럼, 건축(물리적인 공간)이 어떠한 실천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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