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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 공지입니다. 마지막 시간이네요..
참 어렵네요 ㅎㅎ 역설, 무의미, 캐롤, 부조리, 아이온 많은 것들이 지난 시간들과 겹치고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어렵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계열11(무의미), 계열12(역설), 계열13(분열증과 어린소녀)를 읽었습니다. 첫시간부터 쉴틈없이 강의가 진행되었는데요. 너무 고생하신 변성찬 선생님과 의미의 논리 함께하신 선생님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계열 11(무의미)와 계열 12(역설)은 여러번 이야기했던 역설적 요소(무의미) 및 역설에 대해 반복하고 있다. 
들뢰즈는 순수 함축의 질서에 따르고 있는 명제의 의미작용의 한계를 돌파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물론적 관점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게 들뢰즈의 기획이다.    
의미 또는 사건은 집합들과 속성들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양상들로부터 독립적이며 중성적이다. 사건은 속성들, 그리고 집합들과 본성상 다르다. 
 
들뢰즈가 말하는 역설, 명제가 성립하려면 먼저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어떤 명제든 자기 자신의 의미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이것은 러셀의 자기지시의 역설과 유사한 구조이다. 하지만 캐롤의 형상, 혼성어는 자기 자신의 의미를 스스로가 지시하는 형상이다. 명제 안에만 존재할 수 있는 의미의 차원을 겉으로 형상화시켜놨다는 것이다.
무의미는 의미작용을 규정하는 역할을 하고, 언어(명제)에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무의미의 이 두 역할들 또는 역능들을 해명함에 있어 러셀의 논리학이 캐럴의 논리학에 비해 탁월하지 못하다는 것이 들뢰즈의 핵심 논지이다. 러셀 부조리의 두 형식은 정상적인 두 법칙을 전제하고 그런 한에서 의미작용을 박탈당한 지위, 부조리로 떨어지지만, 캐럴의 무의미의 두 형상은 그 법칙들에 선행하는 것이자 그 법칙들을 위배하는 것으로서 무의미의 진정한 역능들을 드러내고 있다.
 
계열 12에서 들뢰즈는 재현 철학의 바탕에 있는 ‘양식과 상식이라는 두 힘의 상보성’ 그리고 ‘양식과 상식을 동시에 전복시키는’ 역설의 역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역설의 역능에는 두 측면이 있는데, 역설은 양식이나 상식에 존재론적으로 앞서 있다는 것.  바로 이 영역에서 의미 발생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역설은(역설의 존재를 배제적 선언의 논리로 길들이거나 배제하려고 하는 양식과 상식의 힘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포함적 선언’의 힘을 잃지 않는다.
 
부조리의 두 형식은 기호작용을 박탈당한 역설들을 구성하는 형식으로 정의된다. 러셀의 유형이론을 예로 들면서 자기 자신을 원소로 포함한 집합이 빚어낸 역설. 크레타 섬의 거짓말쟁이 이야기, 즉 자신도 포함되어 있으면서 모든 크레타인들은 거짓말쟁이다 라고 말하는 것.  논리적인 형식적 추론을 해보면 그는 거짓말쟁이 일 수도 없고 거짓말쟁이가 아닐수도 없는 아포리아에 빠진다. 이것을 피하려면 섞이지 않도록 분류 해야 하고, 섞으면 부조리가 생긴다. 역설이 생기는 원인이 자기지시성에서 생긴다는 것을 날카롭게 포착한 것이다.  논리학은 결국 무의미를 소급적 종합에서의 형식적 층의들의 혼동과 선언적 종합에서의 악순환으로 즉 부조리로 자신의 영역에서 배제한다. 따라서 논리학의 부조리는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지만, 캐럴의 무의미는 그 역할을 수행한다. 
 
언어의 1차적 질서는 심층(무질서가 아닌 잠재적 질서) 속에 있다. 언어의 2차적 조직화는 표면(형이상학적 표면)에서 발생하는 언어의 조직화이다. 사물이자 말인 역설적 대상(근본적인 이질성의 수렴 및 분기의 요소, 그래서 그 동일성-정체성을 근본적으로 확정할 수 없는 사물-x이자 말-x), 아이온, 동-외연적 동성과 에너지가 그 표면의 구축과 유지의 원천이다. 만일 역설적 대상이 미친 생성을 한 순간이라도 정지시켜 버린다면 표면은 붕괴될 것이다. 표면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은 역설적 대상의 역할 때문이다.
 
 
들뢰즈가 의미의 논리학 구성에서 캐럴, 그리고 아르토와 함께 하려는 이유는 그들이 보통의 도착증자, 분열증자가 아니라 또한 예술가였기 때문이다. 캐럴이 창조한 ‘무의미의 두 형상’은 러셀의 논리학처럼 단지 논리적일 뿐인 ‘순수 함축의 질서’ 안에 머물지 않는다(아르토의 수난에 비한다면 유쾌한 놀이처럼 보일 수 있는 캐럴의 실험은 심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심층의 힘의 긍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형이상학적 표면을 구성하지 않았거나/못했거나 그것의 붕괴 속에서 살아간 아르토는 단지 한명의 임상적 분열증자일 뿐 아니라, 그러한 조건에서도 새로운 작품을 창조할 줄 알았던 예술가이기도 하다(섬세한 감성론적/미학적 비평의 대상). “아르토는 문학에서 절대적인 깊이를 달성한, 살아있는 신체와 이 신체의 놀라운 언어를 발견한 유일한 작가이다.”(179)
아르토야 말로 그의 고통스러운 수난의 과정을 통해 “신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스피노자의 물음에 응답하고 있는 예술가일 것이다. 더불어 아르토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표면으로 올라오거나 그것을 정복하기도 전에 이미 분열증적 ‘위치’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177)
 
 
 
11월 20일 금요일 7시 30분
의미의 논리 6강
수유너머 104. 2층 대강의실
 
계열14_이중 인과
계열15_특이성
 
발제는 이수정 선생님, 김지수 선생님, 이경란 선생님, 조현준 선생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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