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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겨울] 선불교를 철학하다

 

1. 두 권의 불교책 출간을 비롯해서 다양한 불교 매체를 통해 강의와 기고를 하고 계신데 불교와 깊은 연을 맺게 된 계기나 불교철학이 갖는 의미가 궁금합니다.

저는 아시다시피 공동체라는 것을 만들고 실험하고 하는 활동을 오래해 왔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차이의 철학이라고 하는 문제의식에 천착해 왔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서울사회과학연구소 시절 알기에 후배들과 큰 갈등을 경험하면서, 제 자신이 갖고 있는 아상이 모든 것들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그 기준을 버리지 않으면 그 아상을 버리지 않으면 공동체는 불가능하고 차이의 철학은 쓸모없다는  깨달음 같은 것을 얻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때 이후에 불교 철학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갖게 됐고, 진지하게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철학은  저한테는 공동체나 차이의 철학 같은 현대철학이 합류하는 어떤 지대를 형성한다고 하겠습니다.                   

2. 현대철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불교철학과 현대철학이 이어지는 가장 근본적인 지점을 하나의 개념으로 말해 달라 하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마디로 말하면 외부성의 사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는 유물론을 규정하는 제 생각이기도 합니다. 저는 유물론이라고 하는 것이 물질의 실재성에 대한 애착이 나 집착 혹은 그런 가정들의 공유 이런 것으로 설정하는 것에 대해서 부적절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면서도 관념론과 다르게 유물론을 규정해주는 요체가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라고 하는 물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2000년대 초반에 낸 <철학의 외부>라는 책 서문을 쓰면서, 유물론이란 외부에 의한 사유라고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보니까 그  외부에 의한 사유라는 점에서 어떤 것도 사회적 관계에 따라 본성이 달라진다는  마르크스의 사고, 그리고 계열화되는 양상에 의해서 사실들은 다른 사건이 된다고 하는 들뢰즈의 사건의 철학이 모든 것을 연기적 조건이라는  외부를 통해서 사유하려는 불교적 사유가 만나는 지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외부성의 사유라고 하는게 저로서는 마르크스와 들뢰즈와 불교철학 그리고 그 밖의 유물론적인 사유들이 서로 만나고 소통하고 섞이며 서로에게서 새로운 것이 발아하여 생성하게 해주는 그런 가능지대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3. 아무래도 선생님의 생각은 들뢰즈 철학과 가까이 있을 텐데 들뢰즈의 철학과 지금 강의하시려는 선불교와의 관계에서 양자를 하나로 묶어주는 게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들뢰즈가 <의미의 논리>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사실 의미가 아니라 무의미입니다. 언어나 기호의 의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의미가 사라지는 무의미로 밀고 올라가는 것이란 겁니다. 달리 말하면, 통념과 양식을 그것이 무력화되는 역설로 밀고 올라가면서 의미를 산출하는 지반을 깨고 거기서 벗어나 사유하게 하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는 어떤 것 어떤 언행을 할 때, 자신만의 전제나 가정을 떠나서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할 때조차도 사실상은 자기 나름대로의 강한 전제와 가정을 갖고 하게 마련이죠. 선불교에 선승들이 공안이라고 불리는 기록에서 보여 주는 것은, 고함을 지르고 때로는 몽둥이질을 하면서까지 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그런 가정과 전제들을 깨부수어 아무것도 없는 무의미로 밀어붙이는 것이고, 거기서 다시 시작하게 하려는 것이었어요. 들뢰즈 식으로 말하면 이는 초험적 경험이라고 부르는 어떤 사태로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사유 불가능한 것과의 만남을 피할 수 없도록 밀어붙이고, 더할 수 없는 의문의 강도로 근본적인 가정 모두를 다시 사유하도록 강제하는 거죠. 들뢰즈라면 사유의 폭력이라고 불렀을 이런 힘을 가동시키려는 겁니다. 백척간두진일보, 아니 백척간두에 한 걸음 더 나가도록 밀어 주는 것이고, 아무런 의미도 손잡을 수 있는 어떤 것도 사라져버린 은산철벽 앞에서 기어오르라고 밀어붙이는 게 그겁니다. 이런 것이 사실상 사유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하라고 하는 것, 그처럼 사유 불가능한 것을 통해서 사유가 비로소 시작된다는 이런 그 발상, 이런 것이 선불교와 들뢰즈를 하나로 묶어주는 끈 아닌가 생각합니다.

4. 이번 선불교 강의에서 선생님께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강조하고 싶은 거 얘기를 하면은 강의가 별 거 없고 아주  단순하다는 걸 고백하는 셈이 되니, 그건 있어도 감추어야 할 거 같은데요(^^). 사실 아무리 옳고 좋은 말이라 해도, 오직 그거 하나만 말한다면, 그건 지루한 강의가 되고 말 겁니다. 이번 강의는 결코 그런 강의가 아닐 거라고, 이 강사,  힘주어 강조하고 싶습니다(^^).사실 선가에서는 모든 공안이 오직 하나의 맛이라고 얘기를 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맛이라면 1,800공안을 오직 하나로 환원시키게 되고 맙니다. 오직 하나의 의미, 실은 그런 게 없다는 것, 어쩌면 그게 선사들의 공안에서 읽어야 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오직 하나의 의미라면, 그렇게 많은 언행을  일하는 것도, 기록해 전하는 것도 쓸데없는 일이겠지요. 저는 하나하나의 공안마다, 선사들의 언행 하나하나마다 다른 무언가가 번뜩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몰론 그 모두가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라고 하는 것이지만, 그 하나가 특정한 의미로 규정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해야 합니다. 존재의 일의성에 대해 아시는 분이라면, 존재는 오직 하나라는 말이 뜻하는 건, 그 하나가 사실은 역으로 모든 술어들을 가질 수 있음을, 그 점에서 모든 의미를 향해 열린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실 겁니다. 하나란 그런 것이죠.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라는 물음에 조주 스님은 “내가 청주에 있을 때 옷을 하나 지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더군."이라 대답했던 걸 저는 이런 의미로 이해합니다.

5. 그 밖에 이번 강의를 수강하시는 분들에게 말씀하시고 싶은 것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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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강의는 선불교에 대한 것인데, 사실 순서를 생각하면 <불교를 철학하다>라는 책에서 썼던 얘기들을 먼저 강의를 하고,  그 다음에  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이 강의 이후에 저는 불교 미술과 내재성의 미학이란 주제로 강의를 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세 학기에 걸쳐서 너무 긴 강의가 되어버릴 거 같지요? 그래서 그냥 선불교에 대한 강의로 직접 치고 들어가려는 것이니, 가능하다면 <불교를 철학하다>라는 책을 미리 읽어주시고 오시면 이번 강의를 듣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강의는 이미 출판된 책 <설법하는 고양이와 부처가 된 로봇>을 기본 텍스트로 하니, 강의진행에 따라 그 책을 같이 읽어 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음번에 하려고 하는 불교미술과 내재성의 미학이라고 하는 강의에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시다, 포스터 나오면 얼른 신청해주시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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