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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먼저 개인적으로 무척 기다리던 강좌여서 준비하신 강사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들뢰즈의 영원회귀>는 강좌 소개에서 알 수 있듯 니체의 영원회귀에 대한 들뢰즈의 물음과 응답을 살펴보는 것으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각 강의마다 강사님이 제기한 물음을 가지고 강의를 들으면 도움이 되겠는데 문제는 그 물음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낮으면 따라가기가 힘들겠다는 것입니다. 주요 참조 텍스트가 공지되어 있지만 미리 읽고 갈 수준은 아닌 듯하고 읽고 갈만한 분량의 텍스트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혹은 참조 텍스트 중 일부 페이지를 알려주시거나 강의안을 조금 일찍 받아 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어요^^)

A1. 혜진샘 말씀대로 주요 참조 텍스트가 공지되어 있습니다만, 그다지 친절한 안내는 못되지요?^^;  강마다 따라가려는 문제에 따라서 해당 텍스트의 여러 부분이 주제적으로 선별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추려본다면 

1강의 경우 <니체와 철학> 2장, 5절 영원회귀의 첫 번째 측면: 우주론 그리고 물리 이론으로서,(98-102쪽), 14절 영원회귀의 두 번째 측면: 윤리적으로 선택적인 사유로서(132-137쪽)

2강의 경우 <차이와 반복> 1장 3절 (101-115쪽)

3강의 경우 <의미의 논리> 계열 1 순수 생성, 계열 2 표면효과들, 계열 10 탈물질적 놀이, 계열 23 아이온, 계열 25 일의성  

4강의 경우 <천의 고원> 1장 리좀, 10장 되기 등이 중심적으로 이야기될 것 같습니다. 

5강의 경우 그간 집었던 문제들을 최종적으로 풀어가는 장이라 다시 <니체와 철학>으로 돌아와 <니체와 철학>의 ‘결론’ 부분 그리고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에 실려 있는 ‘잠재성과 현실성’, ‘내재성: 삶...’ 등 을 주로 볼 것 같습니다. 

그 외에 니체 관련해서는 <차라투스트라는..> 전체, <즐거운 학문> 341절, <이 사람을 보라>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부분, <권력에의 의지> 1053-1067절 등을 참고하고요. 

해당 부분을 미리 보고 오셔도 좋겠습니다. 어렵긴 하지만 붙잡고 씨름해볼만한 중요한 구절들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강의안도 미리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가능한 강의 전에 여유있게 읽고 오실 수 있도록 미리 공유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들뢰즈 텍스트나 강의안이나 어느 쪽도 영 익숙하지 않다 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관계없습니다. 수유너머의 계절강좌는 인사원이나 다른 기획세미나와 달리 참여하는 분들이 텍스트를 미리 읽어온다고 가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강사가 열심히 준비합니다. 가능한 들뢰즈의 개념어들을 소개할 때 하나씩 천천히 집으면서 블록을 쌓아가는 방식으로 준비하겠습니다.    

 

Q2. 이번 강의를 비롯해 강사님이 쓰신 주요 논문을 보면  들뢰즈의 시간에 대한 사유가 일관되게 탐구 중심에 있는 것 같습니다. 들뢰즈 철학 어떤 면에 매혹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답이 삶에도 영향을 주었을까요?  (강사님은 대학 졸업 후 좋은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시고 대학원에서 철학을 새롭게 공부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A2. 가장 처음 읽었던 들뢰즈의 책은 <안티 오이디푸스>였어요. 그 때 스피노자의 <에티카>와 프로이트 전집 읽기 세미나를 함께 하면서 공부를 시작했었는데요. 아무래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대결하는 들뢰즈/가타리의 책을 가장 먼저 읽었어서였는지, 처음 제 관심은 욕망쪽이었습니다. 연구실의 어떤 선생님은 무의식을 경제학적 모델로 설명하기도 하고 한정된 충동이라는 자원을 투자/회수하는 문제에 골몰하는 프로이트가 소상공인같다고도 하셨는데요. 유사한 느낌인데요. 저는 프로이트를 읽을 때 아주 가난한 가정에서 악과 기만, 위험을 배워야 한다고 협박받는 우울한 어린이의 형상을 보았던 것 같아요(우리는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 그리고 들뢰즈/가타리의 욕망 개념은 그와는 아주 다른 방향을 알려주었어요. 이것은 아마도 고전적인 서양철학의 덕성과 관련된 문제일 거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대개 철학자들은 인간이라는 가문의 풍요로움 속에서 사유하지요? 인간이 얼마나 큰 덕성을 소유할 수 있는지, 그 영성을 탐구하니까요. 저는 그런 점에서 들뢰즈/가타리도 욕망이 갖는 풍요로움을 일견 전통적인 생산적 속성 속에서 재발견하려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전혀 가난하지 않아요. 대단히 풍요롭습니다. 다만 내 작은 신체가 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 그 잠재력이라는 것은 커다란 힘을 갖기에 고통스러울 경험을 하기도 하고요. 들뢰즈는 그렇게 나를 넘어서는 압도적인 힘의 강요로 도달한 최대의 변신, 그것을 비인칭적 죽음이라고 말하잖아요? 그렇게 제 관심도 죽음 쪽으로 이어졌어요. 그 죽음은 들뢰즈가 말하는 세 번째 시간속에서 일어나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욕망과 죽음을 잇는 비인칭성 내지 비인칭적 죽음을 가리키는 시간에 관심이 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여전히 인간의 유한성과 불멸의 무한성 같은 구도 속에서 삶과 죽음, 시간과 영원, 생성과 존재를 이분법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작은 인간이 가진, 그보다 더 작은 저의 머리로는 거기로밖에 못 갔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한참을 죽음과 욕망 속에서 허덕이다 문제는 죽음이 아니라 삶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점차 바뀌었던 것 같아요. 그것은 제가 처음 들뢰즈, 프로이트와 함께 읽었던 스피노자의 문제의식이기도 했고요. 그렇게 욕망과 죽음, 시간에 대한 주제는 점차 삶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번 강좌의 주제도 표면적으로 영원회귀입니다만, 결과적으로 제가 도달하고자 하는 문제는 이 삶의 문제입니다. 제가 주제화하려고 하는 것은 ‘삶’과 관련된 ‘내재성’ 그리고 ‘잠재성’이라는 두 축의 문제입니다. 

들뢰즈에게 존재론의 핵심이 초월성에 대비되는 내재성에 있다면, 윤리학 내지 실천학의 핵심은 현행화에 대비되는 잠재성에 있을 텐데요. 여기서 내재성과 잠재성을 묶어주는 것은, 그가 말년에 남긴 텍스트가 지시하듯 ‘삶/생명’입니다. 들뢰즈에게 “삶/생명이란 내재성”이고, “내재성이란 잠재적인 것과 현행적인 것의 지속적인 교환”입니다. 저는 여기에 도달하려고 이 긴 여정을 택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이것이 한 편으로 영원회귀의 존재론과 결부된 내재성, 다른 한편으로 영원회귀의 윤리학과 결부된 잠재성의 층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살펴보려고 해요. 그것이 우리의 이번 강의의 결과적인 도달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Q3. 강좌 소개에서 “동일한 것이 영원히 되돌아온다”라는 의미의 니체의 영원회귀를 고대의 원환적 사유와 비교했는데 이때 쟁점화되는 것은 과연 동일한 것이 무엇이냐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보르헤스는 자신의 소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서 ‘무한한 존재’로 응답했고, 들뢰즈는 영원회귀에 대한 사유를 펼치면서 그 소설의 일부를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강좌의 부제목, <적과 친구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시간>도 그 인용문에서 정해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들뢰즈에게 동일한 것은 ‘차이나는 존재’일 것도 같은데 과연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강의에서 충분히 다루어지겠지만 미리 조금만 귀뜀해 주세요^^)

A3. 맞습니다. 영원회귀에서 쟁점화되는 것은 ‘과연 동일한 것이 무엇이냐’라고 저도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가할 때 들뢰즈의 대답은 ‘차이나는 존재’(차이 그 자체)라고 하는 것도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동일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니체 텍스트에 입각한 ‘일반적인’ 해석은 ‘목적도 방향도 없는 생성과 소멸의 끝없는 운동 자체’를 지시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니체 당대, 19세 현대인이 마주한 극단적인 니힐리즘의 극복이라는 과제에 부합한 해석일 것입니다. 니힐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극단적인 니힐리즘의 형식-‘모든 것’이 ‘똑같이’ 되돌아온다는 저주와 같은 전언-을 제안함으로써, 세계의 진상이 이런데도 과연 그것을 견딜 수 있는가 묻는 거라고요. 물론 그런 해석도 가능하겠습니다. 그러나 들뢰즈의 관심은 부정에의 테제에 있지 않지요? 

들뢰즈는 영원회귀 자체를 순수한 긍정의 대상으로 사유하고자 합니다. 부정의 부정과 긍정 자체가 다른 것처럼 두 사유는 아주 다른 것일 텐데요. 그 점에서 들뢰즈는 이를 완전 바꾸어 동일한 것이 아니라 ‘차이나는 것’만이 되돌아온다는 외견상 반대되는 해석을 제안합니다.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영원회귀를 자신의 차이의 존재론을 최종적으로 언명하는 가장 완결된 형태의 선언이라고 말하는데요. 들뢰즈에 따르면 세상에는 두 장의 똑같은 나뭇잎은 없듯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차이나는 것들이고, 그것들을 차이나게 하는 원리 역시 차이 그 자체로부터 발생합니다. 그래서 ‘차이나는 존재자들’ 뿐 아니라 그러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차이 그 자체’가 존재론의 기저에 놓입니다. 이로써 차이가 들뢰즈의 존재론에서는 ‘존재’ 그 자체의 위상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니체 영원회귀의 ‘동일한 것= 존재= 차이 그 자체’이라는 등식이 성립됩니다. 이 문제에 대해 2강에서 집중적으로 보도록 해요. 

 

Q4. 위 질문에 이어서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영원회귀를 바탕으로 존재의 일의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차이 나지만 존재한다는 것은 반복한다는 존재의 평등성을 긍정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적과 친구를 구분하게 되고 존재의 싫고 좋음을 끊임없이 구별합니다. 그래서 되기를 통해 존재를 횡단하는 영원회귀에 대한 강의가 특히 기대됩니다. 강의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다른 삶을 그려 볼 수 있을지가 궁금합니다. (묻고 보니 이 질문은 2번 질문과 더 가깝네요^^)

A4. 들뢰즈가 영원회귀를 존재론의 층위에서 사유한다는 것은, 말씀하신 듯이 “모든 존재는 차이 나지만 존재한다는 것은 반복한다는 존재의 평등성‘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존재론적 평등성이지요.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또한 말씀하신 듯이 현실적으로는 존재론적 평등이 무화된 듯, 무수한 경계와 판단의 선이 생겨납니다.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분명 들뢰즈가 영원회귀를 통해 완성하고자 하는 일의성의 존재론, 혹은 존재론적 평등성이란 모든 존재하는 것들 ‘간’의 평등이 아니라 존재자들과 존재 ‘간’ 사이의 평등성이라는 것입니다. 존재와 존재자들 간의 관계는 평등합니다. 반면 존재자와 존재자들 간의 관계는 비동등하고 불균등합니다. 이 부분이 들뢰즈 일의성의 존재론의 중핵일 겁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존재론의 층위에서 잠재적인 것이 어떻게/무엇으로 현행화될 것인가 하는 문제이겠지요? 알려져 있듯, 들뢰즈는 잠재성-현행성의 사유를 아리스토텔레스식의 가능성-현실성의 구분과 혼동하지 말 것을 각별히 요청합니다. 그것은 도토리가 도토리나무가 됨으로써 도토리의 가능성이 모조리 소진되는 목적론적인 것과는 전연 다른 사유를 예고합니다. 잠재성은 언제나 현실성의 다른 한 편에 끈질기게 존속, 내속, 공속하니까요. 이런 점에서 적과 친구의 구분, 존재의 싫고 좋음의 구별은 어떤 면에서는 매번 불확정적인 준안정적인 변화와 동요 속에 놓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한편으로 이 문제가 윤리학의 층위로 나아가는 지점이 되기도 합니다. 들뢰즈가 영원회귀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윤리학은 칸트식의 정언명령도 아니고, 스토아적인 금욕의 모델도 아닙니다. 알려져있듯, 니체의 주사위놀이를 하는 어린이의 형상이지요. 그것은 어떤 자기명령과 금욕, 인내 등에 지고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과는 대단히 다른 방향에서 그 사태 자체를 유희할 줄 아는 윤리적 인간의 형상을 그립니다. ‘놀 줄 아는’ 인간이요. 그것은 적과 친구의 모든 구분이 무화되는 순수한 잠재성의 지대로 올라섰을 때 그려지는 장이기도 하고요. 우리는 이 부분을 3강에서 집중적으로 생각해보게 될 것입니다.

 

Q5. 마지막으로 강의는 궁금한데 낯선 철학 용어에 부담스러워하는 수강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A5. 앞서 보았듯, 수유너머의 계절강좌는 인사원이나 다른 기획세미나와 달리 참여하는 분들이 텍스트를 미리 읽어온다고 가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강사가 열심히 준비합니다. 가능한 들뢰즈의 개념어들을 소개할 때 하나씩 천천히 집으면서 블록을 쌓아가는 방식으로 준비하겠습니다. 다만 왜 내가 이 강의를 선택했는가 하는 문제는 한 번 나에게 묻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신이 지금 갖고 있는 물음들을 확인해보는 것만으로도 들뢰즈의 이야기가 그저 지나가는 말들이 아닌 것으로 와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금 들뢰즈가 만들어 놓은 사유의 장, 그 어떤 지점과 공명할 것인가? 그것이 언제나 문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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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님께서 성의껏 답변해 주신 내용이 수강을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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