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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가을강좌] 강사인터뷰

 

 

천 개의 유물론2

 

강사 : 이진경, 박창근,

황정화, 이혜진,

김주원, 손기태.

 

리듬의 공동체, 시간의 유물론 (이진경)

Q. 1강 소개 문구를 읽으면서, 어떤 생활 리듬에 발맞춰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사람만이 리듬적 종합으로 하나 되는 것도, 그 리듬이 생활 리듬만 있는 것도 아닐 것 같습니다. 동조되는 요소들은 어떤 것들이고, “하나처럼 움직이게 해주는 리듬적 종합”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리듬적 종합과 리듬적 종합을 통해 탄생하는 시간 속에서 요소들은 어떤 휘말림을 겪게 될까요?

 

A. 생활리듬, 중요하지요. 그게 안 맞으면 싸우거나 헤어지게 됩니다. 가족을 이룬 경우에도 그렇죠. 좀더  이해하기 쉬운  사례는 음악회 뒤 커튼 콜 할 때, 사람들이 누가 지휘하는 게 아닌데도 서로에 맞춰 박수를 치는 경우일 겁니다. 반딧불 떼들이 리듬을 맞추어 빛을 반짝이는 것도 그래요.

개체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산에 오를 때, 근육은 강화된 운동을 위해 산소와 영양소를 좀더 많이 필요로 하지요. 심장이 거기에 맞추어 피를 좀더 빨리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신체 기관이나 세포들은 이렇듯 서로 리듬을 맞추어 주어 움직입니다. 이게 안 맞으면, 신체의 해체를 경험하게 됩니다. 컴퓨터 같은 기계도 그래요. 중앙처리장치와 램, 저장장치 등이 리듬을 맞추지 못하면, 우리는 기계가 고장났다고 판단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몸에는 SCN이란 기관이 있고, 컴퓨터는 박자를 맞추도록 클럭신호를 계속 발신합니다.

시간이란 애초부터 있는 수학적 형식 같은 게 아닙니다. 동기화synchronization에 의해 시간은 발생하는 겁니다. 강하게 말하면 시간이란 없습니다. 리듬적 동기화가 시간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우리 몸이 하나의 개체가 되려면 개체에 참여한 부분들이 '하나처럼' 움직이게 해주는 그런 리듬적 동기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니 개체마다 각자의 시간이 있다고 해도 좋을 겁니다.

이는 역으로 모든 개체가, 상이한 부분들의 공동체라는 것, 그 부분들이 리듬을 맞추어 하나처럼 움직일 수 있을 때, 공동체는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프랑스어에서 시간을 표현하는 말은 temps이고 이탈리아어에선 tempo죠. 템포를 맞추는 것에서 시간이 탄생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좋은 말이란 생각입니다.

 

 

타자성의 유물론, 타자에 의한 사유 (박창근)

Q. 고통 받는 타자, 항상 ‘내’가 원하는 타자의 모습이 아니었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대상성이라는 틀에서 벗어날 때 타자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요? “타자에 대한 사유”에서 “타자에 의한 사유”로 바뀌는 분기점에서 ‘나’와 ‘타자’는 어떤 관계로 재탄생할까요?

 

A. 네. 우리가 타자를 고통 속에서 떠올린다고 할 때 그것은 우리가 고통이라는 표상 속에서 타자를 떠올린다는 말과 같을 거예요. 이때 고통의 표상이란 타자 그 자체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우리가 타자를 포착하는 방식이고 동시에 그것은 우리가 타자를 대하는 방식을 결정해줍니다. 결국 타자가 고통의 표상에 갇혀 있을 때 타자는 언제나 고통 받는 타자에 머물게 될 뿐인 거죠. 이는 뒤집어 말하면 타자를 대하는 주체 역시 고통이라는 표상에 갇혀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 경우 사유되는 타자란 주체의 표상에 갇힌 채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대상’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타자의 사유는 대상의 사유와 다를 게 하나 없는 거죠. 이처럼 타자를 대상처럼 다루는 사유를 타자에 대한 사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타자에 의한 사유는 대상의 자리에 있는 타자를 주어의 자리로 옮겨 놓는 사유입니다. 주체가 부과한 표상이 아니라 그것에서 벗어나는 미규정적인 힘으로 타자를 정의하고 그것이 거꾸로 주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는 사유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타자는 주체에 침입하여 그 사유를 변환하는 구성적 외부가 됩니다. 타자가 주체를 구성하는 외부가 된다고 할 때 주체와 타자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내재적 관계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재적 관계 속에서 모든 존재자들을 하나의 평면위에 세우는 것이 타자에 의한 사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바람, 대기의 유물론 (황정화)

Q. 프란츠 카프카의 장편소설 『소송』에서 요제프 K는 법원 사무실의 대기에 짓눌려 어지럼증을 느끼지요. 한 공간에서 가장 예민할 때 감각되는 것이 대기의 흐름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대기를, 파먹어 들어오는 대기를 감각하는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요? 그때 대기는 얼굴 주위에서 어떻게 흐르고 있을까요?

 

A. 제가 이번 강의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대기atmosphere의 구체적인 모습이 질문하신 바로 그 요제프 케이가 느꼈던 분위기일 것입니다. 때로 어지럼증으로 나타나기도 하도, 때로 그 자리에 서성거리며 맴도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겠지요. 다만 우리가 대기를 통해 감각할 수 있는 것은 ‘대기’ 그 자체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강의는 그 대기의 경험을 문학에 한정하여 살펴보게 됩니다. 우리가 문학 작품을 만났을 때, 알 수 없는 무엇,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 의미를 규정할 수 없는 사유불가능한 어떤 것에 이끌리게 될 때 우리는 대기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주로부터 불어오는 낯선 바람일 것입니다. 바로 그 바람은 우리에게 익숙한 사유와 감각을 무너뜨리게 합니다. 이제 더이상 대기를 감각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겠지요. 그때 대기와 함께 밀려 들어오는 물음이나 문제의 강력한 힘은 우리의 얼굴은 일그러뜨리고, 이전의 사유와 감각은 대기 속에서 죽음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블랑쇼의 <알 수 없는 자, 토마>를 통해서 대기의 존재로서의 토마를 읽어내고, 카프카의 인물들을 통해서 소설 속의 대기에 휩싸여 그 ‘알 수 없음’의 강렬한 이끌림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포식의 유물론, 식탁의 정치학 (이혜진)

Q. 먹히는 것이 행동의 주어가 되고, 또 다른 포식자가 있고… 그 관계가 꽤 복잡해 보입니다. 평생 먹는 행위를 중단할 수 없는 만큼 “포식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매일 우리 식탁으로 돌아올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이 물음으로 시작되는 포식의 유물론은 과연 무엇인지, 이 유물론적 사유가 우리의 식탁을 어떻게 다르게 보게 할지 궁금합니다.

 

A. 맞아요. 포식이라 하면 대부분 포식자의 행위가 중심이 되는 동물의 약육강식을 떠올릴 겁니다. “내가 먹는 것이 내가 누구인가를 결정한다.”라고 말했던 포이어바흐도 인간 중심의 사유를 벗어나지는 못했어요. 먹는 것을 보면 개인의 의식과 정서를 알 수 있다는 의미인 거죠. 그러나 이 말을 곱씹어 보면 먹히는 것이 행동의 주어가 됩니다. 먹히는 것이 포식자를 정의하는 행위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포식자의 행위가 없다는 말은 아니에요.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자는 거죠. 여하튼, 포식은 어떤 상태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움직임이라 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단순히 신체의 소화 작용은 아니겠죠. 이렇게 포식이 무엇인지, 물음을 가지고 식탁에 앉아 보면 그동안 단순히 음식으로만 보이던 것이 다르게 보일 겁니다. 자, 식탁에 밥, 버섯 된장찌개, 고등어구이, 계란찜, 시금치나물, 김치가 차려져 있어요. 이 음식들은 애초에 식물, 동물, 균류로 분류할 수 있는 생명체였죠. 식탁에 오르면서 먹이가 되는 겁니다. 하지만 포식자가 먹이를 삼키는 것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듯이 먹고, 먹히는 생물학적 상호 작용으로 포식은 충족됩니다. 다시 말해, 포식은 삼키고, 섞이는 연속 운동이라 할 수 있어요. 이때 섞인다는 것은 진핵생물의 기원이 되는 삼켰지만 섞이지 않은 데서 가능한 ‘세포 내 공생설’에서 빌린 표현입니다. 이처럼 미시적으로 보면, 포식은 포식자의 신체 세포와 또 다른 포식자인 장내미생물의 세포 그리고 먹이가 되었던 물질이 섞이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포식을 물질의 운동이며 다양체의 흐름으로 봅니다. 그리고 먹히는 것의 행위로 포식자의 신체가 달라진다는 것은 포식의 효과로 구분할 수 있죠. 결국, 포식의 효과는 다양한 물질이 섞이면서 생성되는 새로운 물질이 신체를 바꾸는 것이죠. 생존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물질의 행위가 만드는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 중심의 사유에서 벗어나 외부에 의해 포식을 생각해 보는 것이 포식의 유물론이 되겠지요. 그리고 이 유물론적 사유가 우리의 식탁을 어떻게 다르게 볼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은 강의 시간, 다섯 개의 식탁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가족의 관념론, 연인의 유물론 (김주원)

Q. “피를 달리하는 이질적 수평선”, “혈연의 확실한 수직선”이라는 말은 가계도를 생각나게 합니다. 가족이 되기 전의 연인은 가계도에 포함되지 않지요. 이 연인이 형성하는 동맹의 사유가, 혈연적 권력에 포획되기 전의 동맹의 사유가 혈연의 수직선을 어떻게 무너뜨리게 될까요? 그 동맹의 사유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A. 가족이 되기 전에 연인은 가계도에 포함되지 않죠. 더 정확히 말하면 가족이 되려면 연인이 먼저 있어야 해요. 나와 다른 타인과 만남, 즉 결연이 동맹의 시작이죠. 동맹은 가족의 조건이지만 혈연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가치라고 할 수 있어요. 가족은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제도이자 혈연의 수직선을 만드는 단위입니다. 가족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가족이 편안하면서도 답답한 관계가 되기 쉽다는 것도 사실이죠. 혈연의 동일성 안에 묶이게 되거든요. 특히 가부장제는 여성을 재생산의 도구로 이용하고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걸 각인시키는데, 이런 사고방식은 아주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혈연중심적 사고가 동맹의 흔적을 지우게 되는 거죠. 핏줄을 타고 내려가는 혈연의 수직선과 달리 동맹은 나와 이질적인 대상을 받아들이고 열려 있어야 가능한 수평적 관계에요. 훨씬 다양하고 폭이 넓죠. 혈연과 동맹은 대결하는 개념입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가족의 혈연을 중시하는 바람에 동맹이 거기 같이 있었음에도 보지 못했다고 말해요. 우리에게 혈연은 너무나 당연시되고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렸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려지고 지워진 바깥, 혹은 외부와의 마주침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존재의 실상, 양태의 유물론 (손기태)

Q. “나무는 나무다. 이웃과의 관계에 따라 그것은 다른 양태가 된다.” 장작이 되거나 도낏자루가 되거나 도마가 되는, 변형된 나무의 모습이 상상되는데요, 하지만 어떤 것의 실상을 알기 위해서는 그것과 관계 맺는 이웃들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말로도 들리기 때문에, 다른 양태가 된다는 말 속에는 단순히 변형만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어떤 양태로 달라지는 것일까요? 또한 “오직 양태만이 실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A. 철학자들은 오랫동안 ‘존재’의 실상이 무엇인지 물어왔습니다. 변화 속에서도 변하는 않는, 늘 한결같이 유지되는 존재의 본질이 무엇인지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양태의 유물론에서는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란 없습니다. 오히려 무상하게 늘 변화하는 것(양태)이야말로 존재의 진면목, 실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양태들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합니까? 양태들은 언제나 다른 양태들과의 관계 속에 놓여 있으며, 그들과의 무작위적인 마주침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어떤 양태로 변할 것인지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위적인 마주침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양태들은 이러한 마주침 속에서 특정한 연쇄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를테면, 병사와 마주치게 된 말(馬)은 전쟁용 군마가 되며, 창과 칼, 기병, 전투 등의 관계 속에서 다양하게 변용됩니다. 반면, 승마선수와 마주친 말은 경주마가 되면서 반복적인 훈련, 도박사, 승률 등의 관계 속에서 변용되겠지요. 경주마가 갑자기 군마가 되는 일은 아주 드문 경우일 것입니다. 이처럼 양태들은 다른 양태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본질이 결정되는 존재들입니다. 세계의 배후에 양태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어떤 초월적 원리나 전능한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양태들 간의 관계만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유일한 원리라는 것입니다. 양태만이 실존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천 개의 유물론2 2021.10.16 ~ 11.20 (6강) / 매주 토요일 p.m.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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