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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소개 문구를 바탕으로 질문합니다. 수업에 대한 스포일러 부탁드려요 :)

 

7.03(토) - 1강 천 개의 유물론 서설 (이진경) :: 유물론이란 무엇인가? 실재성에 대한 순진한 애착을 벗어나서, 유물론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유물론자가 되려는 것인가? 이 물음들 속에서 우리는 유물론에 대한 사유를 펼치고자 한다. 유물론의 평면 위에서 펼쳐질 천 개의 유물론을 상상해보자.

일곱번의 외부와의 만남으로 힘을 얻어 유물론의 평면으로 한 발짝 들어가는 저의 모습이 기다려 집니다. 2달의 강의로 끝나는 것이 아닌 천개의 외부와 만나는 추진력을 얻기 위해선 어떤 자세로 강의들을 들어야 할까요? 더불어 천이라는 수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먼저, 천 개의 유물론이란 수천, 수만의 유물론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수많은 유물론들이란 뜻이지요. 다만 천 이라는 말을 쓴 것은, <천 개의 고원>이라는 들뢰즈/가타리 책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습 니다. 우리가 이런 유물론을 사유하는데 가장 큰 자원이 되어 준 것이 맑스와 들뢰즈/가타리인지라, 두 사람에 대한 오 마주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유물론이란 외부에 의한 사유라고 했는데, 그것은 유물론 자체도 외부에 의해 사유되어 한다는 것, 외부에 열 려 있으며, 그 외부에 따라 달라져야 함을 뜻합니다. 따라서 일곱 번이 아니라 70번 유물론에 대해 말했다고 해도, 우 는 또 다시 다른 유물론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여기서 강의하는 유물론 하나라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처럼 외부에 대해 열린 사유방식으로 외부와 만나려는 태도가 아닐까 싶어요. 강의로 인해 그런 사유방식을 공유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7.10(토) - 2강 이념적 사건과 사건의 유물론 (김효영) :: 사건은 영혼에 덮쳐오는 외부다. 사건의 유물론은 이 외부성에 대한 사유이다. 하이데거, 바디우. 들뢰즈를 통해 사건의 유물론의 핵심계기들을 살펴본다.

사건의 유물론의 ‘핵심계기’라는 말을 곱씹어 보고 있습니다. 무엇이 사건을 핵심으로 만드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더불어 ‘이념적 사건’이라는 것이 역사적인 어떠한 시점의 사건인 것인지 궁금합니다. 하나의 이념적 사건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아무래도 천개의 유물론이라는 이 강좌 전체의 논지와 같은 맥락에서, 주체와 정신의 바깥에서 그들의 의지와 사유를 뒤흔들면서 출현한다는 점이 사건 개념이 핵심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사건은 영혼에 덮쳐오는 외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건이 하이데거가 말하는 불안이라는 근본기분처럼 한 사람에게 엄습해오는 경악스러운 형상으로 사유되는 것도 그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사건의 급습과 같은 현행적 사건만 있는 것은 아닐 것 입니다. 들뢰즈의 존재론처럼 언제나 현행성의 이면에서 잠재성을 보고자 하는 이라면, 사건에서도 잠재성의 측면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 같은데요, 들뢰즈가 ‘이념적 사건’이라고 칭할 때의 중요성은 여기에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떤 특이성의 현행화와도 구분되는 지점, 무수한 특이점의 분배와 할당 이전의 무수한 우발점들만이 존재하는 일종의 다양체와 같은 지점을 지시합니다. 때문에 역사적인 어떠한 시점의 사건이 현행적 사건이라면 이념적 사건은 그것과 구분되는 잠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사례라기보다는, 그러한 개념으로 들뢰즈가 지시하고자 하는 바는, 이미 벌어진 현행적 사태로서의 사건은 왜 대단히 이례적이고 유일회적이기보다 반복가능한 힘을 그 안에 잠재적으로 내포하고 있는가하는 문제를 보이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건의 반복 가능성 같은 것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왜 매번 시대와 조건을 달리하면서 혁명과 같은 동일한 의지를 담은 저항의 사태를 반복하는가?와 같은 물음은 그것의 한 예가 될 것 같고요. 매번의 실패 속에서도 내가 무언가 계속 거듭해서 시도하길 주저하지 않고 감행하는 어떤 것이 있다면, 우리는 모두 이미 이러한 반복가능한 사건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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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토) - 3강 오이콜로지의 유물론, 오이코폴리틱스 (최유미) :: 생태학ecology은 정치바깥의 자연을 당연시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비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닐까? 오이콜로지oikology의 유물론은 당연시되는 이 전제를 의문시하면서 자격 없는 자들, 데모스로서 비인간의 정치를 주장한다.

‘비인간의 정치를 주장한다.’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저는 여성의 정치, 장애인의 정치, 어린이의 정치 등의 소수자 정치에서 ‘당사자성’으로 언급되곤 하는 ‘그들의 언어 듣기’가 주요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인간의 정치, 비인간들의 이야기와는 어떻게 만나게 될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가 비인간의 정치를 상상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그들은 말이 없다는 점일 것입니다. 여성의 정치, 장애인의 정치에 여성이 아닌 자, 혹은 장애인이 아닌 자가 결합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말이 유일한 기호일까요? 2006년 4월에 50여명의 장애인들이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면서 한강다리를 기어가는 시위를 벌였지요. 이들의 오체투지는 말인가요? 있어도 보이지 않던 그들의 존재는 땀으로 뒤범벅된 느리게 기어가는 그들의 몸이 다리 위를 질주하던 자동차들을 막아 세운 후에야 비로소 보이게 된 것입니다.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법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지요. 비인간의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동물권 운동에 말려들어간 이들 대부분은 고통에 찬 동물들의 모습을 대면한다거나 했던 어떤 사건을 겪은 경우가 많지요. 그들의 모습이 강력한 기호작용을 한 것이지요. 말은 대개 해석주체가 미리 정해져 있지요. 그래서 말을 통한 인터뷰조차 말 바깥의 기호에 집중하지 않으면 ‘그들의 언어 듣기’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기호는 언제나 나름의 번역을 거쳐서 소통되는 것이기에 오해와 오인을 수반하기 마련이죠. 말인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비인간의 정치와 동맹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번역이 언제나 부분적임을 잊지 말아야 하고, 그것이야 말로 윤리가 요청되는 지점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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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4(토) - 4강 언어의 유물론, 기표와 담론의 틈새로 파고들다 (조현준) :: 기표의 물질성, 담론은 사유의 '언어적 전회'를 이끄는 깃발이었다. 그러나 이는 과거의 선험적 형식을 대신하는 관념론의 메신저가 아닐까? 언어의 유물론은 이 메신저와 어떻게 대결하려 하는가?

‘언어’는 철학을 다루는 책에서 자주 만나게 되지만 항상 어려운 부분입니다.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결을 언어를 중심으로, 그리고 언어를 통해 본다는 것이 기대되는 한편 잘 상상되지 않습니다. 대결에 앞서 각자가 언어에 대한 입장을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언어를 관념론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변치 않는 선험적 상수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언어의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의미의 지평, 구조, 담론 모두 상수에 해당합니다. 모국어라는 틀이 사고를 결정하고 틀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는 훔볼트식의 언어결정론이 가장 대표적인 관념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반면에 언어를 유물론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선험성이 외부 요소들로 인해 깨져나가는 과정에 주목하게 됩니다. 가령 보편적인 문법 체계 내에서 비속어로 간주되는 말이 친근감의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문법 체계보다 우선적으로 비속어의 의미를 채우는 것은 발화자와 청자의 관계를 비롯한 수많은 요소들일 것입니다. 이는 의미가 다른 요소들에 의해 채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며, 언어를 변환과 생성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어의 유물론은 이렇게 통상 언어의 외부라고 간주되는 요소들을 통해 언어의 의미에 접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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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토) - 5강 시간의 발생학, 혹은 미-래의 유물론 (최진석) :: 물질은 관념 밖의 사물이 아니라 변화 자체를 가리킨다. 물질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무엇이 아니라 인과율 바깥에서 창안되는 시간의 구성물이다. 우리는 물질이 아니라 그 원인으로서 시간의 발생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이 미-래의 유물론이다.

인과율 바깥에서 창안되는 시간과 미-래와의 연결이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문장을 이루고 있는 단어들이 저에겐 초면인 개념들이라 강의에서 만나게 될 순간이 기대됩니다. 수많은 질문이 있지만, 강의 전 하나의 질문! “창안되는 시간이라는 말에서 ‘창안한다’의 말의 주체, 객체는 모두 시간인가요?”


 오랫동안 물질은 머릿속 관념 바깥에 실재하는 사물로 정의되어 왔습니다. 사물을 최소 단위로 쪼개고 또 쪼개서 절대 불변하는 실체를 찾으려 했던 시도들은 이 같은 입장을 대변해 주지요. 이런 정의에 따른다면 물질은 절대적인 대상으로서, 변화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정한 특성을 갖는 사물이 항상 분자적 구조를 갖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죠.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로 구성된 물(H2O)이 수소나 산소로 환원되지 않으면서 물만의 고유한 특성을 갖는 것처럼요. 따지고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 즉 이 세계를 구성하는 사물은 불변하는 최소 단위에서 찾아질 만한 게 아닙니다. 사건들로 가득 찬 이 세계에서 물질은 변화와 관계되어 있지 않을 리 없어요. 그 변화는 물질 자체의 본성에 새겨진 동력일 겁니다.

시간은 그렇게 물질적 대상 전체를 관통하는 힘이라 할 만해요. 그 자체로는 물질적 대상처럼 보이지 않지만, 다른 모든 물질적 대상들이 물질적 대상으로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작용하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힘인 셈이죠. 문제는 물질에 대한 고전적 관념에 결박된 우리가 시간조차 그런 방식으로 정의내리기 십상이란 겁니다. 즉 시간을 고정불변하는 대상처럼 간주하고, 시간을 쪼개거나 이어붙여서 마음대로 조작가능한 대상으로 간주하는 태도가 그렇지요. ‘탐구생활’의 시간표 짜듯이 시간을 관리할 수 있다는 근대적 관점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베르그손이 이야기했듯, 시간은 지속으로서만 존재합니다. 똑 같은 시간이더라도 화장실 갈 때와 올 때 시간은 다른 감응을 갖지요. 사건(?)의 앞과 뒤에 놓인 시간과 그에 대한 태도는 같을 수 없습니다. 물질성은 이러한 시간적 사건의 변화 가운데서 벌어지는 사물에 대한 감응을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시간의 창안이란, 무슨 마법처럼 시간을 만들어낸다는 뜻은 아니에요. 거꾸로 시간의 원리에 충실하게 따른다는 것, 즉 조작가능한 대상이 아니라 이 세계 속에서 지속하고 그로써 변화를 산출하는 시간의 힘을 긍정한다는 것에 해당됩니다. 사건은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돌발적’이고 ‘우연’에 가까운 것이지만, 지속으로서의 시간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변화들일 테니까요. ‘창안’은 그런 변화의 과정들을 관찰하고 수용하는 새로운 유물론의 터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간은 변화의 배경이 아니라 주도적 힘이 된다는 점에서 사건의 주체이자 대상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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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7(토) - 6강 그래, 우리는 모두 괴물이다! 괴물의 유물론자들이다 (김도희) :: 동물은 괴물이 아니다. 식물은 괴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심하고 산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틀에서 벗어날 때, 모든 것은 괴물이 된다. 모든 것은 사실 괴물이다. 차라리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괴물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동물은, 식물은 언제 괴물이 되는가?

동물이, 식물이 괴물이 되어 저에게 온다니! 궁금하고 무서운 사건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모든 것이 괴물이라니! 마음에서 쿵하는 소리가 납니다. 그들이 괴물이 된다는 것은 저에게 어떠한 사건으로 다가올까요?


홉스가 시민 국가의 주권자를 전설 속 괴물 ‘리바이어던’이라고 칭하고, 니체가 괴물과 싸우는 자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괴물의 형상이 떠오르시나요? 지수샘과 저만 해도 다를 수 있겠지만 사전적으로 괴물에서 ‘괴(怪)’는 ‘괴이할 괴’자를 써요. 그리고 ‘괴이’는 ‘이상하여 알 수 없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저 험상궂고 무시무시한 외형을 한 것이 ‘괴물’이라면 ‘정의할 수 없는, 규정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괴-물’이라 부르자고 하는 거에요. 여기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은 분류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규정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류하고 있으니까요. 여성과 남성,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동물과 식물, 유기체과 비유기체 같은 식으로요. 하지만 세상은 그토록 명쾌하게 나뉘지 않죠. 여성이자 남성인, 동물이자 식물인, 유기물이자 무기물인, 파동이자 입자인 중첩의 존재들, 그러니까 비규정적 존재들이 넘쳐나거든요. 영화 ‘판의 미로’에서 ‘판’은 얼핏 ‘괴물’이기도 하지만 양과 나무의 형상을 한 ‘괴-물’이기도 하지요. ‘나’라는 존재를 생각해보아도 그렇지 않나요? 무엇이면서 무엇인, 무엇이 아니면서 무엇도 아닌. 이질적이라고 생각하던 것과 계속해서 접속하고 결합하는 순간들을 문득문득 발견하는 거죠. 그렇다면 괴-물이 아닌 것이 괴-물로 변신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그것은 왜, 또 어떻게 괴-물이 되는 걸까요?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지수샘에게도 저절로 ‘사건’으로 덮쳐오지 않을까요? 괴물적 세계가 아닌 누구나, 나조차 괴-물인 세계를 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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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작가

8.14(토) - 7강 감각의 유물론, 혹은 영혼의 4가지 외부 (권용선) :: 감각은 미숙한 지성인가? 이성의 앞-잡이인가? 감각은 영혼에 대해 외부를 표현한다. 대상, 신체, 사회적 관계, 배치는 영혼을 바깥으로 인도하는 감각의 동맹자다.

‘영혼’이라는 단어를 감각과 함께 만나게 되니 저에게 익숙한 문장들을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다. 죽은 자의 영혼이 떠다닌다. 영혼을 갉아먹는다.) 다시 생각하게 끔 합니다. 선생님께서 소개해 주실 영혼에 대한 문장들을 예고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제 강의에서 어쩌면 ‘영혼’에 대한 얘기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 영혼이나 정신, 이성, 마음 등과 같은 말에 포함되어 있는 관념론적 사유가 우리의 ‘물질적 신체성’을 부차화시키고, 존재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영혼’을 이야기했던 것이고요. 이 강의에서는 ‘감각’처럼 관념론의 외부에 있던 여러 개념과 조건 혹은 관계들을 통해인간에 대한 유물론적 존재론을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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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토) - 8강 잃어버린 정령들을 찾아서, 정령들의 유물론 (이진경) :: 사물에 깃든 정령들, 그저 미개한 미신적 상상의 산물일까? 신화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동물의 결연, 공허한 허구에 지나지 않을까? 표현적 사유는 이러한 말들로 무엇이 표현된 것인가를 묻는다. 통상적이지 않은 신체적 변이를 강도의 유물론이 찾아가 본다.

‘신체적 변이’라는 말이 흥미롭게 들립니다. 어린시절 읽었던 동화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강의에서 소개해 주실 신화중 한 편을 미리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강의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좀 더 펼쳐보고 싶습니다.


만주나 시베리아, 몽골의 신화에는 사람이 동물이 되고 동물과 결연을 맺는 신화가 많아요. 한국의 단군신화에서도 그렇지요. 동물이 되는 이야기는 단지 상상이라기보다는 그런 상상을 야기한 어떤 경험의 표현일 겁니다. 신체 상에 발생한 어떤 변이의 체험을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하기 위한 표현이지요. 정령들도 그래요. 사물이나 동물이 주는 어 떤 특이한 감응의 표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령들에 대한 이야기나 신화에서의 그런 이야기에서 무엇이, 어떤 체험이 표현되고 있는 것일까를 물어야 합니다.
물론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무언가를 재현하기 위해, 그 표현적 기호들 사이에 끼워넣은 것들이 있습니다. 특 히 건국신화에서 흔히 보이는 것인데, 왕이 된 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탁월한 자임을, 지배할 자격을 갖춘 자임을 주 장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자로 표상하는 이야기들이 끼어듭니다.
많은 신화들에는 이런 상이한 요소들이 섞여 있습니다. 구별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하늘과의 수직적 연결을 말하는 것은 대개 재현적 목적으로 끼워넣은 겁니다. 그런데 동물과의 수평적 동맹과 하늘과의 수직적 연결이 혼합된 경우에 도 어떤 차이를 보아야 합니다.
가령 주몽 신화도 알이라는 동물적 기원과 천신의 자식이라는 수직적 기원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백조나 사슴 이 연못에 목욕하러 왔다가 옷을 감추는 바람에 사람과 결혼하는 이야기 아시죠? 나뭇군 이야기로 흔히 한국에선 알 려져 있지요. 그런데 이런 신화는 몽골인들 사이에는 광범하게 퍼져 있습니다. 하늘과의 수직적 연결과 동물과의 수 평적 동맹이 섞여 있는데, 주몽을 비롯한 건국신화와 달리 선녀 신화에서 선녀들은 모두 나중에 옷을 찾으면 하늘로 올라갑니다. 천신의 자식이어도 남자들은 남아서 왕이 되는데, 여자들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겁니다. 이 차이는 대 체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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