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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철학의 절단면들’ 강사 인터뷰

 

인터뷰어: 원석환 선생님(반장)

인터뷰이: 이진경, 김효영, 김충한, 김민혁, 조현준

정리/편집: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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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감응과 예술-이진경 선생님

 

Q. 감응이란 개념이 요즘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예술과 관련해서 그런 듯한데, 무엇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A. 알다시피 감응은 스피노자의 개념입니다. 신체적 능력의 증감에 따라 발생하는 현상을 지칭하는데, 우리가 쾌감을 주는 것을 하고자 하고 불쾌감을 피하려는 성향이 보여줏듯이, 이는 일단 우리 사고나 언행이 '지향성'을 형성하지요. 그러나 현상학에서 말하는 것과 다른, 신체적 지향성이고, 그런 점에서 지향성에 대한 유물론적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 내게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게 바로 그 지향성이지요.

그런데 이 지향성은 명료하고 뚜렷하지만은 않아요. 철학자의 바람과 달리 많은 경우 애매모호하지요. 하고자 하지만 망설임과 동요가 있고 좋다고 하지만 거리감이나 위화감이 있고 등등. 그런 점에서 지향성 속에는 상이한 방향을 향한 힘과 의지가, 분열적으로 존재하며, 그런 점에서 그 자체가 들뢰즈/가타리 말대로 다양체인 것입니다. 그렇게 분열적인 이유는 우리의 신체가 복합체이고, 개체화가 여러 층으로 중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혀에선 좋은데, 위에선 불편하고, 간에선 부담스럽지만 근육에선 필요로 하고 등등.

감응은 이렇게 복합적인 신체의 반응이어서 언제나 애매모호합니다. 이중에 지배적인 어떤 정서를 표상할 때, 감응은 감정이 됩니다. 단순화되는 것이지요. 감응의 개념은 감정으로 단순화되곤 하는 신체적-정신적 반응을 다양체로서 다룰 수 있게 해줍니다. 예술은 하나의 감정이 지배적일 때조차 그 속에 숨어 있는 '모순적' 내지 '분열적' 감정의 공존함을 포착하며, 하나의 사건이 야기하는 복합성을, 한 인격 안에 존재하는 상충되는 모습을 다루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흔히 알고 있던 것을 와해시키는 지점을 드러내며, 익숙해진 감각이나 사유를 궁지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이를 초험적 경험이라 하는데, 감응은 어떤 사건을 초험적 경험으로 밀고 가도록 해줍니다. 이것이 예술이 갖는 진정한 힘이고 매력 아닐까 싶어요. 이것이 예술과 관련해 감응이란 개념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이유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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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강도와 개체화-김충한 선생님

 

Q. 들뢰즈의 ‘강도와 개체화’ 란 제목을 달고 있는데 각각이 어떤 건지, 또 들뢰즈 철학에서 왜 중요한지 설명 부탁드려요.

A. 강도량(intensive quantity)은 물리학에서 외연량(extensive quantity)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이예요. 열역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개념인데, 자연에는 외연(extension)에 따라 변하는 양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양도 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어떤 계(system)의 외연을 넓게 설정하면 그 계의 부피, 질량, 에너지 같은 물리량들은 덩달아 증가합니다. 그런데 밀도, 온도, 압력, 물질의 강성도 같은 양들은 외연의 크기를 바꾼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증가하거나 하진 않아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 따르면 양과 질이라는 두 범주가 존재하지만, 양에도 사실은 강도량과 외연량이라는 상이한 종류의 양이 있는 셈입니다. 강도량이 외연량과 다른 중요한 특징은 단지 외연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질적인 것과 관련된 양이란 점이예요. 예를 들어 얼음의 온도를 높이면 물이 되고, 물의 온도를 높이면 수증기가 되는데 얼음, 물, 수증기는 그저 양적 차이라고만 하기엔 어려운, 질적으로 다른 물체들이지요. 이런 질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일까요. 온도라는 양이예요. 무작정 에너지만 가해준다고 위와 같은 질적 차이가 발생하지 않아요. 동해의 바다는 저의 따끈한 욕조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만 들어가면 몸이 나른해지는게 아니라 움츠려 들게 되잖아요. 차갑다, 뜨겁다라는 질적인 차이는 온도라는 양과 관련있고, 이 양은 에너지,부피 같은 양과는 다른 양이예요. 이런 이유로 외연량과 다른 강도량이란 개념이 필요하죠. ‘질적인 차이를 만드는 어떤 양’이란 점을 들뢰즈가 자신의 철학적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 5장에서 강도 개념을 집중적으로 다루지만, 초기작인 [베르그송주의]부터 [철학이란 무엇인가]까지 강도 개념은 지속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런 점에서 들뢰즈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강도 개념은 꽤 중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번엔 [차이와 반복], [스피노자와 표현 문제], [스피노자의 철학]. [천의 고원]의 강도 개념을 중점적으로 다룰려고 합니다. [차이와 반복]에서는 물리학(physics)의 강도량 개념에서 시작해서 이를 넘어서는(meta-) 형이상학(meta-physics)적 개념으로서의 강도량으로 나아가요. ‘20c의 형이상학자’라고 불리는 들뢰즈가 어떻게 자연학(physics)을 넘어서는 영역을 펼치고 전개하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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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차 욕망과 기계-김효영 선생님

 

Q. 들뢰즈/가타리가 사용하는 ‘기계’라는 말은 통상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접하는 기계와 같은 의미인지? 기계 개념이 욕망과 관련지어 중요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일상적 용법의 기계 역시 포함됩니다. 기계는 어떤 외부의 항들과 접속하는가에 따라 매번 상이한 생성의 운동을 벌입니다. 다만 생명과 대비되는 의미에서의 기계에 대한 근대적 고찰을 ‘메카니즘(mechanism)’이라고 불렀다면, 들뢰즈/가타리는 이런 관점과 변별점을 제시하기 위해 자신들의 입장을 ‘머시니즘(machinism)’이라고 칭합니다. 전자가 비-인간 내지 비-생물 등 생명이 없는 것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는 19세기 생물학의 관점이라면, 후자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외부항과의 접속에 따른 절단과 채취를 수행하는 것들로 간주합니다. 전자가 심지어 생명의 반대쪽으로서의 ‘비’생물을 지칭한다고 하더라도 여러 부품과 기관들로 이뤄진 단일한 유기체를 상정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그러한 유기체적 관점에서 벗어나는 반유기체적 입장을 사유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계 개념을 들뢰즈/가타리는 욕망과 결부시켜, ‘욕망하는 기계’라는 개념을 창안합니다. 통상 욕망은 결핍과 짝하여 사유됩니다. 대상의 부재에 따라 그것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 욕망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대상을 향한 욕망이 상호 대립되거나 충돌을 겪음으로서(프로이트가 제시하는 현실원칙과 쾌락원칙, 혹은 에로스와 타나토스 등이 그러한 이항적 대립축을 잘 보여줍니다) 중간의 매개자(에고)가 그 대립과 갈등을 중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결핍 내지 대립과 갈등으로서의 욕망을 다루는 것과는 정반대로 들뢰즈/가타리는 욕망은 생산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욕망은 결코 결핍에 의해 추동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의 산물입니다. 마치 니체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배후에서 힘에의 의지를 발견한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욕망을 생산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더이상 대상은 결핍된 것으로 사유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하고자 의지하는 가운데, 그와 결부된 대상들이 만들어지기조차 합니다. 그렇기에 들뢰즈/가타리가 제안하는 욕망의 생산성은 결핍과 짝하는 욕망과 전혀 다른 방향을 우리에게 지시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산성을 자신의 본질로 삼는 것이 바로 들뢰즈/가타리가 ‘욕망하는 기계’라는 말로 칭하는 새로운 욕망에 대한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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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 운동이미지, 시간이미지-조현준 선생님

 

Q. 운동-이미지와 시간-이미지는 낯선 개념인데 간단한 소개와 의의를 설명 부탁드립니다.

A. 두 개념은 다른 개념들에 비해 다소 생소할 수 있습니다. 사전적으로는 들뢰즈의 『시네마』 1권과 2권의 부제들입니다. 우선 운동-이미지는 베르그손의 운동이라는 개념을 가져오면서 운동이 영화라는 매체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베르그손의 맥락에서 운동은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분할 불가능 하거나 분할할 경우 성질이 달라집니다. 100m를 달려가는데 20초가 걸렸다고 가정한다면 ‘1초에 5m씩 달렸구나’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100m를 주파하는 운동의 매 순간순간은 등질적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입니다. 5m를 달리는 운동을 20번 반복 한다고 해서 100m를 주파한 운동을 재구성할 수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시간-이미지는 베르그손의 감각-운동도식이 무너졌을 때 등장합니다. 감각-운동도식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패턴을 가리킵니다. 기존의 사고체계로 바꿔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포스트 아포칼립스 상황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들뢰즈가 시간-이미지에 대해 말하기 전에 2차 세계대전을 언급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입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을 때 우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유의 무능력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부터 진짜 사유가 시작됩니다. 이 사유는 기존의 세계관 내에서가 아니라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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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차 시간과 죽음-김효영 선생님

 

Q. 들뢰즈에게 죽음은 왜 중요한 개념이 되나요? 그는 삶 내지 생명의 사상가라고 불리지 않나요?

A. 맞습니다! 들뢰즈를 생성과 변화, 차이와 긍정의 철학자로 기술하는 것을 넘어, ‘삶 내지 생명의 사상가’라고 칭하는 것은 복수의 저자들에게서 발견됩니다. 그렇다면 그가 의미하는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위치한 통상적인 의미의 죽음과는 다른 것일수 있겠다는 상상을 우리는 해볼 수 있습니다. 들뢰즈가 의미하는 죽음이란,  생물학적 소멸로서의 인칭적 죽음과 구별되는 ‘비인칭적 죽음’ 개념입니다.

 ‘비인칭적 죽음’ 개념은 <차이와 반복>과  <의미의 논리>에서 각각 제시되는 “텅빈 시간의 형식”과 “사건”과 결부됩니다. 비인칭적 죽음은 인칭적 죽음과 어떤 의미에서 구별되며, 그 죽음 개념이 들뢰즈에게 어떤 가치를 갖는가 하는 문제는 그래서 시간과 더불어 사건 개념의 고찰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5주차에서 이 내용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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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차 잠재성과 이념-김민혁 선생님
 
Q. '이념', '잠재성' 두 개념 모두 생소하다. 간단한 설명을 해 주세요. 

A. 이념이라 하면 흔히 사회나 사유의 모델 같은 걸 떠올립니다.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미리 만들어진 체계적 답 같은 걸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들뢰즈는 뜻밖에도 이념이란 문제요 문제설정이라고 말합니다. 문제나 질문들을 일정한 방향으로 인도하고 포섭하는 어떤 단일하고 체계적인 장을 전제하는 것이지요. 참된 문제들이 바로 이념들이며, 또한 이런 이념들은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제거되는 것도 아닙니다. 경험적 대상과는 달리 경험 바깥의 대상은 이렇게 문제설정적인 형식을 통해서만 재현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념의 현실적 대상인 것이에요. 이념은 미분적 요소와 비율적 관계들, 그리고 이것들에 상응하는 특이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념은 실재적이면서도 현행적이지 않은 것으로 정의됩니다. 이것이 '이념은 잠재적이다'라는 것의 의미입니다. 대상은 이렇게 잠재적인 부분이 있고 또한 현행화에 의해 규정되는 다른 한 부분이 있어요. 대상은 이중적인 것이지요. 한쪽은 잠재적 이미지이고, 다른 한쪽은 현행적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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