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돌아온 병사들의 트라우마 속에서의 생존

 

가게모토 츠요시

 

(나카무라 에리, 「전쟁과 토라우마 – 불가시화된 일본군 병사의 전쟁신경증」, 요시카와 고분칸, 2018. 원저정보: 中村江里, 『戦争とトラウマ - 不可視化された日本兵の戦争神経症』, 吉川弘文館, 2018, 336쪽, 4600엔+세금 http://www.yoshikawa-k.co.jp/book/b325811.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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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구 일본군 병사들의 정신질환에 대해 역사학적으로 다가간 것이다. 진료기록의 독해와 의사들에 대한 인터뷰로 구성된 연구서이다. 물론 말할 것도 없이 병원에서 의사의 진찰을 받지 못했던 병사가 수적으로는 훨씬 많지만 저자는 남겨진 기록물에서 ‘전쟁신경증’의 모습의 재구성을 시도했다. 서장에서 저자가 말하듯 “왜 일본사회에서는 전후 50년 이상 전쟁 신경증은 ‘보이지 않는 문제’가 되었는가. 이 책의 목표는 그 역사적 배경을 찾는 데에 있다.”(2-3쪽) 이러한 과제는 이라크 등에서 활동하는 자위대원들의 문제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묻는 현재적 문제의식(6쪽)에서 촉발된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러한 과제에 역사적으로 다가간다. 그러기 위해 전쟁 당시의 엘리트 집단이자 나중에 일본 정신의학을 견인하는 고우노다이(国府台) 병원의 의사들의 논문이나 정신의료에 종사한 니가타 지역의 의사들의 기록물을 통해 전쟁과 정신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책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한국에 대한 논의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한국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을 겪은 한국에서도 읽어야 할/논의해야 할 내용을 제공하고 있다.

또 전쟁연구의 중심은 전장 혹은 후방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렇게 보면 이 책은 그간 본격적으로 연구대상이 되지 못했던 그 중간에 있는 ‘이동’이나 ‘병원’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다(113쪽). 일본본토에 병자로 이송되는 일은 긍정적으로 파악하든 부정적으로 파악하든 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113쪽).

책은 당대 군의들의 정신의학 인식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한다. 고우노다이 육군병원은 육군의 정신병원이었으나 회고에 따르면 학술적 분위기가 있던 병원이었다. 연구 모임이 잇달아 개최되었다(55쪽). 거기에 동원된 군의들은 엘리트 중에 엘리트이기 때문에 통상 군대 속에 있는 위계관계를 넘어선 논의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병원의 분위기는 당연히 당시 일본의 일반적 분위기와 충돌된다. 특히 1931년의 만주사변 이후 일본에서는 ‘일본정신’이 강조되는 가운데 정신병 연구를 계속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일본정신’이란 ‘정신병이 될 리가 없는 일본군 병사’라는 말도 안 되는 전제를 깔고서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운데 의사들은 실제로 발생하며, 게다가 시대가 감에 따라 증가하는 정신질환 병사들에 대해 대응했다.

 

 

2.

전장에서 다친 이들은 상이군인(傷痍軍人)이다. 그러나 전쟁신경증 환자들은 곧바로 ‘상이군인’으로 인정되지 못했다. 당시 ‘일본정신’을 호소는 이데올로기가 강했기 때문에 전쟁신경증으로 상이군인의 은급을 받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신체적인 문제가 없는 전쟁신경증 환자가 ‘상이군인’인지, 또한 은급을 받을 만하는 대상이지를 판단하는 행정적 서류의 작성 또한 의사들에게 부여된 책무였다. 은급도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어떠한 은급을 받을 것인지는 병사에게도 중요한 문제였다. 이때 전쟁신경증환자는 전쟁신경증을 ‘연기’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는 죽음을 최고의 가치로 인식하는 일본군병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인식을 가져왔다. 즉 살아남았다는 부채감에 더해 전쟁신경증환자와 그 외의 환자들 사이에 선을 긋는 인식을 만들었다. 즉 상이군인으로 군의 병원에 입원한 자들을 다치게 만든 국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전쟁신경증 환자들을 비판하게 만든 것이다. 즉 저들은 ‘연기’해서 일부로 입원하고 있다고 규정하면서. 그것은 신체적인 상이군인들과 전쟁신경증을 앓게 된 군인들 사이의 선긋기인 것과 동시에 그들과 동일시되는 일을 피하고 자기야말로 일본정신의 수행자라고 인식하는 효과를 가져온 것이기도 했다(97쪽 전후 논의를 평자가 나름의 재구성을 했다).

일본 본토의 육군병원은 한없이 ‘후방’에 가까웠으며 전장에서 돌아온 병사들에게는 다양한 감정을 가지게 만들었다. 본토에 있기 때문에 여성들의 위문활동도 있었다. 그런데 의사들은 이러한 상황이야말로 ‘히스테리를 조장하고 있다’(129쪽)고 보았다. 군 병원의 목표는 다시 전장에 갈 수 있도록 치료하는 일이기 때문에 병사들에게 후방을 경험하게 하는 것을 꺼린 것이다. 게다가 일본 본토에 있는 군 병원은 전장의 병원에서 치유되지 못했던 이들이 이송되는 장소이고 치료의 최종지점이기도 하다. 즉 군 병원은 전선에서 멀어질수록 그 사명에 계속 실패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더해 전장에 반복적으로 가는 것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병사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듯, 당시 일본에서도 어느 정도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언제 다시 전장에 파병될지 모른다’는 의식은 정신적 부담을 계속 주었을 것이다(277쪽). 또 전쟁신경증환자들에게 전기요법 등을 사용하며 병원에 있고 싶지 않도록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219-220쪽). 이러한 의사의 시선은 “환자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치유되지 않기를 바랄 정도로 처참한 전장 및 병영에서의 폭력이 어떠한 토라우마를 그들에게 부여했는가라는 문제를 보이지 못하게 만들었다.”(220쪽)

의사도 이런 상태였다면 환자인 병사들은 더욱 정신병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현재와 같은 트라우마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커녕 개념조차 아예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 병사들 스스로가 자신의 갈등에 대해 설명할 ‘말’을 가지지 못했다(218쪽). 그런 관계도 있겠지만 환자들은 정신병환자로 취급되는 것을 거절하는 경우도 많았다. 고우노다이 육군병원의 환자들의 경우, 같은 병실을 쓰는 신체적인 상이군인이나 군의들에게 자신들 또한 명예로운 ‘백의의 용사’임을 주장했다(218-9쪽).

 

 

3.

병사들의 트라우마는 결코 일본패전과 함께 끝난 것이 아니다. 패전과 함께 사람들의 가치관은 어떤 부분은 달라지며 어떤 부분은 달라지지 않았다. 즉 정신병이라는 ‘창피’를 숨기기 위해 은급을 신청하지 않고 몰래 산 사람들도 있던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병사로서는 필요한 것이며 병사가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시민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쉬울 리가 없다. 그 적응과정에서 폭력이 일어나지만 그 폭력의 대상은 가족, 그 중에서 특히 아내에 향했다. 남편은 전쟁신경증으로 치료되는 가능성이 있는 편이지만 폭력을 당한 아내가 치료되는 경우는 드물었다(282쪽).

이러한 가운데 일본이 패전한지 28년 만에 괌 섬에 숨어 있던 잔류 일본군병사가 귀환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때만 해도 미국이라면 정신과 의사가 나가야 하는 상황인데, 일본정부는 정신과 의사는 파견하지 않았다(270쪽). 이러한 인식 가운데 잘 이해받지 못하면서도 살아남은 자들의 하나의 모습으로 정신장애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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