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과 근면의 관계를 스스로 분배하는 노동을 위해

 

가게모토 츠요시

 

와다나베 다쿠야 <함바로 – 삶과 일을 기록한다>, 라쿠호쿠 출판, 2017, 512쪽, 2600엔+세금

(원서 정보:渡辺拓也, 『飯場へ ─ 暮らしと仕事を記録する』, 洛北出版,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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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바로

 

우리가 사는 생활기반을 만든 사람은 건설노동자들이다. 병원이나 회사 건물은 그 집단의 장이 만든 것은 결코 아니며, 대학 건물 또한 건립자나 총장이 만든 것은 아니다. 노가다를 하는 건설노동자가 없었다면 우리 생활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데 건설노동자라고 할 때 그 속에는 다양한 존재들이 있다. 전문적인 기술자도 있지만 일용직노동자나 외국인노동자도 있다. 전문직을 비롯해 노동자의 보조원 역할을 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모습이 그 속에 있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하루’마다 고용되어 노동할 경우도 있지만 며칠 동안 함바에 머물고 일터에 나가는 경우도 있다. 건설노동 현장에서는 일본어에서 온 말이 많은데 ‘함바’ 또한 그렇다. 건설이나 광산 등에서 노동자들이 일시적으로 머물면서 생활하는 곳이 함바이다. 이 책은 바로 함바를 대상으로 한 책이다. 저자에 의하면 “인력시장 속에 함바가 있는 게 아니라 함바 제도 아래에서 노동력 조달 수단의 하나로 인력시장이 활용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18쪽) 혹은 인력시장은 도시에 가시적으로 존재하지만 “함바는 어디에 얼마나 존재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인력시장 연구에서 함바의 중요성은 계속 지적되면서도 그 해명이 빨라질 수 없었다”(327쪽)는 것이다. 인력시장의 노동력이 공급되는 곳에 대한 분석인 셈이다. 건설현장은 날마다 필요로 하는 인원수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항상 인력시장이나 구인광고를 필요로 한다. 정규직노동자를 확보하기보다는 그때 마다 필요한 만큼 모집할 수 있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력시장과 구인광고를 통해 직접 함바에 들어간 연구자의 참여조사에 의해 쓰였다(23쪽).

(그리고 책의 모양이 매우 재미있다. 출판사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한번 사진으로 구경해보세요. http://www.rakuhoku-pub.jp/book/272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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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함바 속에 말려들어가는 것

저자는 실제로 현장에 들어가 조사를 했다. 그것은 현장에 말려들어갈 일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학술방법과 거리를 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말려들어갔기 때문에 “노동현장에서 교섭되는 관계성”(328쪽)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현장에서의 관계성이 그것이다. “자기 외에 꾸지람당하고 있는 인간 혹은 자기보다 많이 꾸지람당하고 있는 인간이 있으면 자기만이 꾸지람당하고 있는 경우보다 활씬 일하기 쉬어진다.”(425쪽) 단지 고된 노동이라든가 하는 식의 평가가 아니라 그 현장에서 나누어지는 인간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며, 그것을 통해 함바를 연구한다는 것이다.

건설현장이 어느 정도 기계화되었다 하더라도 그곳엔 기계보다 융통성 있는 인간의 신체가 필요하다. 즉 단순작업을 하는 도움이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들은 “높은 수준의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혹은 항상 필요하다는 것도 아니지만, 필요할 때에는 꼭 필요한 존재”이다(66쪽). “도우미는 노동자들의 또 하나의 손, 또 하나의 눈, 또 하나의 다리”(110쪽)같은 것이다. 저자는 처음에는 각종 건설노동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으나 그러한 아마추어라도 현장에서 필요한 노동력이 되는 이유에 대해 위처럼 설명한다. 그것은 마치 다음과 같은 ‘도구’에 대한 정의에서도 엿볼 수 있다. 즉 어떤 쓸모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어떠한 쓸모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도구인 것이다(82쪽). 현장에서는 작업을 편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방법이 쓰이며 그때마다 도구는 만들어지는 셈이다.

함바에 들어가면 회사 쪽에서 배정된 일터에 나가게 된다. 그런데 그 일터에 확실히 나가기 위해(즉 배정받기 위해) 노동자는 “가불”을 한다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즉 가불을 신청하지 않을 경우 그 노동자는 아직 금전적 여유가 있다는 의미가 되어, 사무실에서 일을 분배해주지 않은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193쪽).

또한 함바에서의 인간관계는 과잉이라고 할 정도로 세세하게 신경을 쓴다고 한다(212쪽). 함바에서의 서열관계는 경험 연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함바에 먼저 들어간 순으로 정해진다. 왜냐하면 그 함바에서 다니는 현장에는 그 현장에서만의 세세한 배려 사항들이 있기 때문이다(298쪽). 사용자 쪽에서 바라볼 때에도 기계를 다루는 기술을 가지는 자보다 현장마다 존재하는 구체적 상황을 아는 자가 유용하다(300쪽).

세세하게 인간관계를 만드는 이유는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예방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나중에 어디에선가 만날 수 있는 “너그러운 동료 의식”의 산물이라고도 한다. 다시 만날 곳은 다른 현장일 수도 있고 인력시장일 수도 있다. 함바에서는 장기적으로 사는 사람들보다 중단기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세세하게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간다(306쪽). 흥미로운 것은 장기적으로 하나의 함바에 있는 사람은 어차피 금방 없어지는 단기 노동자와 잘 어울리려 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단기적으로 머물기 때문에 서로 배려하게 된다는 지적은 집단에 외부자가 들어오는 효과이기 때문에 흥미롭다. 그러한 세세한 인간관계 형성은 처음으로 현장에 오는 초보자들에게 대한 조언이나 도와줌에서도 보인다.(->초보자들에게 조언이나 도움을 주는 것에서도 보인다.) 저자는 이를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유능함을 보여주려는 행위’로 풀이한다. 즉 고정된 정규직이 아닌 노동자들은 정규직처럼 확고한 지위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의 유능함을 발휘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지위는 유능함을 보여줄 지표가 되겠지만 지위가 없는 함바 노동자는 현장에서 유능함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318-9쪽). 유능함의 발휘가 현장의 리듬과 잘 어울린다면 현장은 보다 일하기 쉬어지지만 그것이 잘 안되면 독단적 행동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의미로 함바 노동자들은 근면함을 가진다. 따라서 사용자도 굳이 노동자들을 훈련시키는 시간을 마련할 필요가 없다. 바꾸어 말하면 노동자들은 항상 신경을 써서 사용자가 원하는 바를 미리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의 유능함의 발휘는 공식적인 대응밖에 할 수 없던 사용자보다 좋은 판단을 하는 조건이 될 경우가 있다. ‘유능함’의 발휘는 때로는 미리 부여된 사용자/노동자라는 상하관계를 역전시킬 효과를 만드는 것이다(354쪽).

그러나 초보자에 대한 조언이 지나치게 될 경우 현장의 분위기를 망가트리고 만다. 이 경우는 노동자 집단에 균열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321쪽). 또한 노동자가 지나지게 사용자의 규범을 내면화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구체적으로는 작업 속도가 늦은 자를 ‘게으름뱅이’로 규정하는 등이다. 그런데 이러한 규정은 노동자 스스로를 심리적으로 ‘근면함’에 얽매이게 만든다(366쪽). 왜냐하면 함바에서 다니는 노동현장에서의 ‘게으름’이란 노동자에게는 원인이 없기 때문이다. ‘게으름’은 사용자가 노동력을 모집할 때마다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노동자의 능력 차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게으름’이란 노동자 개인의 근면/게으름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며,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노동자 개인에게 넘기기 위한 용어이기 때문이다(397쪽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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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떤 인간관계 아래에서 노동할 것인가

이러한 구체적인 여러 분석을 통해 저자는 ‘노동’ 그것 자체에 대한 논의로 나아간다. 그리고 ‘게으름’이 일을 성립시키기 위해 불가결한 것이라고까지 논의한다. “간이적인 ‘근면함’은 사용자의 부정적 규정에서 벗어날 일이 됨과 동시에 실질적으로 게으름을 실천하는 일에 연결한다.”(396쪽) 저자는 현장의 게으름이란 근면함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근면함과 얽히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399쪽). 함바에서 다니는 노동현장이란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요구에 의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사용자의 지시가 없을 경우 노동자가 아무것도 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셈이다. 그러니까 노동자의 게으름이 비판될 때에는 거꾸로 노동자에게 할 일 없는 빈 시간을 주고 있는 사용자 쪽의 게으름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게으름을 예찬하는 등의 논의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의 근면함은 노동자 스스로의 실천에 속한다. 어떻게 하든지 간에 고된 노동이라면 그 고됨을 최소한의 무게로 억제하려는 노력이야말로 노동자들의 근면함이 가지는 의미이다. 노동이란 이 근면함과 게으름의 배분을 스스로 만드는 일이다. 즉 ‘바람직한 노동’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관계의 방식’을 통해 노동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399쪽).

특히 건설노동자들은 협동하면서 일한다. 노동자 집단은 집단의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서로 배려한다.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란 공동성이 가지고 있는 잠재성을 실현시키는 것이다(450쪽). 현장에서의 공동성을 만드는 계기가 인력시장 지역의 관계성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력시장은 공동성을 함양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유가 없는 현장에서는 서로 돕는 것이 어렵고, 적응하지 못한 노동자는 곧바로 배제된다. 여유 없는 현장은 노동자들 서로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 신뢰관계를 붕괴시키고 만다. 공동성을 통한 학습은 높은 공동성이 유지되는 한 잘 되는 것이지만 기업들은 거꾸로 공동성이 가지는 잠재성 양성(인재육성)을 비용효과에 맞지 않다고 버리거나 외부위탁을 하게 된다. 노동현장에서 요구되는 생산성 향상은 이러한 공동성이 있어야 가능한데 기업들 스스로가 그것을 없애버리고 있는 것이다. 생산성이란 협동하는 자들의 관계성을 바탕으로 하는데 생산성 제일주의가 관계성을 삼켜버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455쪽). 저자는 공동체에서 잠재성을 발휘하는 관계를 만들며, 그것을 통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극복하는 것이야 말로 ‘자유’라고 주장한다(458-9쪽).

이렇게 볼 때 저자가 여러 함바 노동에서 얻게 된 경험들은 노동자들 서로가 도우면서 서로의 힘을 향상시키는 관계성이 만들어질 때 생산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성이 만들어지면 노동은 단지 고됨만이 있는 자리가 아니게 된다. 이 의미에서 저자가 말하는 ‘자유’란 관계성 속에서 서로의 힘을 최대한 발휘할 때 즐길 수 있는 것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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