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위안부’ 담론에 대한 내재적 비판의 시도

 

가게모토 츠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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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시타 나오코 <‘위안부’문제의 담론공간 - 일본인‘위안부’의 불가시화와 현전>, 벤세이출판, 2017.

(木下直子, 『「慰安婦」問題の言説空間 日本人「慰安婦」の不可視化と現前』, 勉成出版, 2017.)

 

1

2015년12월의 충격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는 마치 지금까지의 정의 회복을 위한 다양한 운동을 묵살하듯, 한국과 일본의 외상이 ‘불가결적 해결’이 되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한국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일어나며 위안부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다. 그러한 와중에 나온 책이기는 하나, 연구서인 만큼 이 책이 바라보는 시야는 매우 넓으며, 넓은 관점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태를 다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본서에서는 1990년대 초두에 ‘종군위안부문제’의 담론공간이 확대해 가는 단계에서 일본인 ‘위안부’의 피해자성이 후경에 물러선 것을 ‘위안부’문제 구축의 특징으로 본다.”(4쪽) 이러한 지적에서 보이듯 이 책이 가지는 시각은 위안부문제 ‘담론’이자, 그것의 ‘담론 공간’이다. 시간적으로 하나의 기축을 만드는 선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담론공간을 착목한다는 것은 담론형성의 복잡성을 보여준다는 것이겠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제목에서 있듯 일본인 ‘위안부’를 둘러 싼 논의이다. 특히 책의 후반부는 힘이 있는 문체로 논의가 진행된다. 저자의 분석은 90년대에 위안부문제가 ‘문제화’되기 전부터 시작한다. 이 책은 70년대 일본의 우먼 리브(Woman Liberation)운동, <침략-차별과 투쟁하는 아시아 부인회의>등의 운동 속에서 삽입된 ‘위안부’에 관련된 논의, 그리고 일본인 ‘위안부’ 피해자로 알려지고 있는 시로타 스즈코의 수기 분석 등을 통해 ‘위안부’담론 중에서의 일본인 ‘위안부’ 담론이라는 주름을 파고들어간다. 리브운동에서 ‘위안부’라는 말이 수사적으로 쓰였다는 점이나 일본인 위안부 피해자의 존재는 이미 알려진 바 있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제출되었다는 점 등,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지식’이야말로 담론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그 담론에 파고들어가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지식’이라는 단계를 넘어설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일본인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야 할 의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저자의 말에서 들어보자. 책의 결론부분에 있는 말이다.

 

“일본인 ‘위안부’를 ‘피해자’로 이야기함과 동시에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전후 보상의 대상으로 일본인 ‘위안부’를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이 때 ‘국민’이 국가의 폭력을 당했다는 주장은 내셔널리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폭력성을 명확하게 하며 피해자의 아픔이 들리게 될 담론 상(上)의 장소를 창조한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실천이 되는 것이 아닐까.”(253쪽)

 

그러면 책 내용으로 들어가자. 1장 <‘종군위안부문제’의 구축>에서는 전후 일본에서 위안부 담론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개론적으로 논의된다. 거기에서는 일본 국회 의사록이나 센다 가코(千田夏光)의 르포 등이 분석 대상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김학순의 증언을 계기로 ‘위안부’문제가 ‘문제화’된 이후 시기의 일본 여려 신문에서의 독자투고를 분석한 부분이다. 당시는 전쟁 경험자가 많이 생존했었기 때문에 ‘문제’에 접한 전장 체험자들이 ‘위안부’들에 대한 회상을 투고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성의 성이 희생이 된다는 문제가 내셔널한 타자에 대한 가해가 아니면 보이지 않다는 상황이 ‘종군위안부문제’의 담론공간에서 생기고 있었다. 이는 ‘일본인’내부에서의 가해와 피해라는 관점에 입각해 일본인 ‘위안부’의 경험을 인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인 ‘위안부’가 최초의 피해자 집단이 된 ‘위안부’제도의 성립과정이 별로 의식되지 않는 채, 한반도 등에서 폭력적으로 여성이 연행된 이미지가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었다는 것이다. 식민지나 점령지의 여성을 연행하며 ‘위안부’를 강요한 문제로 ‘종군위안부문제’의 상이 형성되는 이유는, 냉전종연 후에 아시아 여러 외국인들이 일본의 과거를 따지는 내셔널한 집단으로 가시화되어 ‘일본’의 전후를 재심할 필요가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내성적인 시점이나 분노, 아픔에 공감하는 정동이 ‘종군위안부문제’의 담론생성을 부추겼다.”(84쪽)

 

즉 ‘위안부’문제를 문제로 만든 운동에 접하기 전에는 일본사회는 ‘위안부’문제는 문제라기보다 개인적 불행에 속한 것이며, 국가범죄로서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제화는 ‘조선인’ 종군 ‘위안부’를 통해 가시화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정부는 ‘강제연행’이 있었는지를 문제 삼아 담론에 개입했다. 여기에서 구성된 ‘강제연행’이었는지에 대한 논의는 피해자의 국적에 의해 피해 정도를 분배하는 식의 효과를 만들었다(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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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는 70년대 이후의 일본 여성해방운동에서의 ‘위안부’ 담론이 서술된다. 이 운동은 기본적으로 신좌익운동 속에서 나타난 것들이다. 신좌익 운동은 기존의 공산당에서 벗어난 것이지만 특이 일본에서는 68년을 전후하는 학생운동과, 그 이후에 생긴 여러 운동에 주목해야 한다. 거기에서는 ‘가해자로서의 일본인’이라는 운동 속의 주체화가 있었다. ‘일본인’이라는 것은 가해자로서의 입장에 서는 것이고(그 이전의 ‘일본인’이라는 호소는 거의 피해자로서의 그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운동에 관여할 주체적 의식이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신좌익운동 속에서도 여전히 중심에 있는 것은 남성들이었으며, 그 흐름에서 빠져나온 다양한 운동이 70년대 이후 잇달아 나타났다. 이 책에는 다양한 운동의 기관지나 삐라에서 언급된 ‘위안부’ 담론을 모아서 만든 표가 실려 있다. 그 중에서는 일본인 여성이라는 스스로의 입장을 성찰하기 위해 ‘위안부로 강요된 조선인 여성’이라는 수사가 빈출하게 된다. 거기에는 전후 일본인 남성들이 ‘기업전사’로서 한국에서는 기생투어를, 동남아시아에서는 매춘투어를 공공연히 하고 있는 모습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제시되어 있다. 혹은 역사적 시점에서 보아 일본인 여성이 ‘야스쿠니의 어머니, 군국의 어머니’라는 역할을 했다면 조선인이나 중국인 여성은 ‘황군의 위안부’를 강요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이는 일본인 여성들이 자신의 남편이나 아들의 정액으로 조선이나 중국의 여성들의 성기를 더럽혔다는 강력한 자기비판으로 연결된다. 물론 이러한 수사는 삐라 특유의 선동적인 문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반성해야 할 일본인 여성, 그 반성된 자리에서 스스로의 해방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당위가 이러한 수사를 강화시켜 나갔다는 점은 말할 수 있겠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희생적 글쓰기이며, ‘범죄적’인 일본인병사와 동일한 ‘민족’, ‘국민’이면 ‘위안부’가 되는 일을 받아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히기도 하는 글도 있다. 물론 리브가 추구한 여성으로서의 해방은 이러한 글들을 근거로 부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반면 <침략=차별과 싸우는 아시아 부인회의>의 일련의 텍스트에서는 ‘본국 최하층의 여성도 ‘위안부’가 되었다고 인식’된 자료가 있다(152쪽). 또한 <아시아 여성들의 모임>은 기생관광반대나 재일외국인을 억압하는 입국관리법에 대한 반대 운동에 관여해온 여성들이 더욱 아시아에 대해 배우자고 만든 집단이다. 그들은 일본인 피해여성을 방문하는 등,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에 사는 피해자와 만나려고 했다. 이러한 운동은 ‘위안부’문제가 문제화되기 이전에 모색된 움직임이다. 이러한 운동들을 통해 보이는 것은 “문제의 핵심에 ‘침략’이 있다고 해서, 조선인 ‘위안부’피해자의 슬픔에 대면할 일을 중시하는 심성이 ‘위안부’문제 출현 전야에 이미 성장하고 있었다”(168쪽)는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김학순의 증언에 따른 ‘위안부’문제의 문제화가 급속히 부상한다. 위에 서술한 여러 운동에 관여한 바 없는 다수파 일본인에게 그 문제화의 과정은 ‘가해자’로 지목받게 될 경험이며, 이를 통해 ‘종군위안부문제’와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91년 이후 일본에서 잇달아 열린 ‘증언집회’에서는 ‘일본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반응이 보인다. 거기에는 일본인이 전체가 가해자로서 이미지되는 사고회로가 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심리는 ‘일본인 위안부는 어느 정도 자신의 의지에 의해 갔기 때문에 문제 없다’는 주장과 맞물리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내재적 비판을 시도한다.

 

“‘일정 정도 본인의 의지로 벌려고 갔기’ 때문에 사죄나 보상이 필요 없다고 당사자도 아닌 입장에서 단언해버리는 일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당사자의 상황이나 심리에 대한 무관심에서부터 이러한 판단이 가능해지는 게 아닐까. 이는 성차별, 창부차별을 하는 남성특유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페미니즘 또한 한국에서의 고발을 받기 전까지 ‘위안부’ 피해자를 구제할 구체적 행동을 취해오지 않던 것이다.”(185-6쪽)

 

기생관광 반대운동이 한국 여성운동의 문제제기로 인해 일본에서도 가능해졌듯 ‘위안부’ 운동에 차원에서도 항의하는 한국의 운동, 이에 호응하는 일본의 운동이라는 구조가 있다. 그것은 ‘현재’의 문제로서의 ‘위안부’문제로까지 나아가기 힘들었던 일본의 운동을 관통하는 구조였다. 한국 운동의 ‘고발’에 응답하려는 일본의 ‘양심’적인 사람들이 만들어낸 일본시민으로 전후책임을 다하려는 담론은 매우 성실한 것이었다. 그러나 국가의 가해책임은 국민이 평등하게 지고 있다는 인식이 우세가 되어 가해자 국민인 일본인 ‘위안부’의 피해는 불문이 되기 쉬었다. 이러한 주변화와 부가시화가 일본인 ‘위안부’에 대한 담론의 시선이 미치지 못했던 원인이다. “사회문제화 이전에 클로즈업된 일이 있던 일본인 ‘위안부’의 피해는 아이러니하게도 사회문제의 배후에서 이야기되기 어려워진 것이다.”(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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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여성

 

3

제3부에서는 일본인 ‘위안부’들이 자신을 어떻게 표현했는가가 분석된다. 90년대 이후 일본 담론에서 ‘위안부’ 문제가 ‘조선인종군위안부’ 문제로 인식되어 가는 시기, 일본의 ‘위안부’ 운동 단체들에게 송부된 여러 증언이나 정보제공 중, 일본인 ‘위안부’로 국가 피해를 호소하고 싶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211쪽). 일본인 ‘위안부’가 침묵했었다고 논의될 경우도 있지만 담론화 되지는 못했으나 운동관계자와의 접촉은 있던 것이다.

3부 중에서 중요한 것은 일본인 ‘위안부’였다고 일찍 수기를 쓴 시로타 스즈코의 노트 등의 자료를 조사한 제5장이다. 213쪽에 제시된 시로타가 스스로 쓴 자료 일람표를 보면 90권에 이루는 막대한 노토를 남긴 것을 확인할 수 있다(시로타가 그린 그림도 수록되어 있다, 214쪽). 이 자료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인데, 이는 선행연구에서 아예 없던 것이다. 시로타의 특칭에 대해 필자는 ‘위안부’제도를 국가범죄로 보지 않았다는 점(225쪽), 가족과 관계를 가지는 일이 힘들었다는 점(229쪽)등을 지적한다. 시로타는 살아 있을 때에는 국가보상을 받아야 할 ‘피해자’로 간주되지 않았으며, 한 번도 국가범죄의 ‘피해자’로서 ‘주체화’(237쪽)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시로타를 피해자로 바라볼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234쪽).

일본의 양심적인 사람들이 호소한 일본인의 가해성이라는 논의는 스스로의 입장을 내셔널한 것에 매기려는 사고였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경직된 인식을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단순히 민족주의라고 넘어가지 않고, 그 입장에 머물면서 비판적 논의를 내재적으로 진전해 나간다. 다음과 같은 지적은 힘이 있다. “‘위안부’문제에 관계하려는 사람들이 당사자의 경험을 통해 내셔널티의 작용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내셔널한 수준을 통해 당사자의 경험을 이해했다는 것이다.”(243쪽) “일본인 ‘위안부’를 둘러싸고는 역설적이지만 ‘위안부’제도를 문제시하는 사람들의 성실함이나 양심 때문에 담론공간에서의 비가시화가 생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244쪽) 그런데 필자는 결코 단숨에 내셔널한 논의를 넘어서지는 않는다. 즉 필자는 버틀러의 행위수행성의 논의를 빌면서 구축적인 것은 항상 어긋남을 만든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먼 리브와 같은 운동이 ‘일본인의 가해성’을 통해 논의하려던 것은 스스로 침략체제에 가담해버리고 있는 자신에서 벗어나려는 투쟁의 모색이었다고 논의한다. 내셔널한 수사로 표현되는 자신의 입장에 대한 자각은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임을 직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입장은 인식되면서 동시에 ‘우리’의 공동성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 속에서도 피해자가 있음을 가시화하며, 이를 통해 국가가 맨얼굴로 가지고 있는 폭력 장치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인 ‘위안부’는 피해자이다, 라는 논리는 국가 폭력을 중단하게 만들 가능성을 품고 있”(252쪽)는 셈이다. 피해자들은 일반화나 서열화할 수 없으며, 그 각자가 피해자인 것이다.

 

“침략자 쪽의 피해를 여실히 부각시키려는 시도가, 침략당한 쪽의 사람들의 피해를 재조명하고, 민족차별 인종차별과 함께 그녀들이 얼마나 가혹한 상황에 놓여졌는지를 명백히 하려는 행동이 되는 것. 일본인 ‘위안부’의 다수는 ‘위안부’제도의 배경이 된 공창제도라는 원초적 수탈 시스템의 피해자이며, 일본사회가 그녀들을 희생시키는 사회이었기 때문에 내셔널리즘을 통해 타자화되는 타민족 타국의 여성들에 대해 보다 가열하면서 폭력이 행사된 양상을 연속적으로 제시해 나갈 일. 이러한 과제를 우리는 짊어 있다.”(253쪽)

 

이어서 이 글의 처음에 인용한 결론 부분이 쓰인다. 이 책은 ‘담론 공간’의 공시적인 다양성을 보여주고, 일견 부정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언어의 다른 문맥을 제시해준다. 일본의 ‘양심’적인 사람들의 내셔널한 이야기는 얕은 연구자라면 ‘민족주의’라든가 ‘새로운 억압 장치’라든가 해서 일소해 버릴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제시한 여성해방운동에서의 맥락은 자신에 주어진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입장 인식’이라는 과제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러한 과제와 일본인 ‘위안부’ 피해자들이 만날 조건이 성립이 안 되었다 하더라도 거기에 포함되던 가능성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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