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유튜브를 뒤적거리다 우연찮게 <영웅본색1, 2>의 주제곡을 듣게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향수에 빠져들었습니다. 저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감수성 예민한 고딩 시절 숱하게 비디오 가게를 드나들며 윤발이 오빠와 국영이 오빠의 영화들을 섭렵했거든요.

https://www.youtube.com/watch?v=ncd4b5d_cM0 (클릭하시면 향수에 빠져들지 모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_0DqdLJi9Y (이건 2입니다. 국영이 오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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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유튜브에서 <영웅본색>의 주제가인 당년정을 듣다가 자동추천된 다른 음악들까지 연달아서 듣게 되었습니다. 국영이 오빠가 <아비정전>에서 추던 맘보춤이며 <첨밀밀>의 주제곡인 월량대표아적심까지 비오는 어느 날 오후 전 향수에 푹 적어 한나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자동추천된 다른 음악 중에 일본 대중가요가 한 곡 있더군요. 바로 오자키 유타카(尾崎豊)의 'I Love You'라는 곡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hSRZwhx3Ro (영상을 따라가시면 음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영웅본색2가 만들어졌던 1987년 콘서트 영상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습니다. 그때 홍콩과 일본의 오빠들은 왜 그렇게 비장했을까요? 우연의 일치일 수 있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수많은 대중문화 콘텐츠 중의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 왠지 그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80년대 후반이 지나고 90년에 들어서면 아시아 각국에서 갑자기 약속이나 한듯 뉴웨이브 영화들이 폭발하듯 나타나거든요. 홍콩에선 왕가위, 관금붕 등이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대만에서 허우 샤우시엔과 에드워드 양이, 일본에선 비트 다케시, 이와이 슌지, 아오야마 신지, 쓰카모토 신야 등이 나타나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듭니다. 한국은 비교적 늦게 98년도에 <쉬리>가 등장하면서 그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영화적 국면이 도래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새로운 영화들에 대한 고찰과 글들은 비교적 많습니다. 하지만 그 직전에 80년대 후반 영화들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습니다. 특히 80년~90년대 홍콩영화들은 싸구려영화 취급을 받았습니다. 경배하거나 경시하거나. 홍콩영화를 대하는 당시 우리들의 태도였습니다. 저요? 전 경시를 가장한 경배를 했습니다. 고딩 땐 솔직히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영웅본색 시리즈를 거쳐 첩혈쌍웅, 첩혈가두까지는 그 비장미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는데, 그 이후에 마구잡이로 양산되는 영화들엔 쉽게 동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대딩이 되어 왕가위의 영화로 뒤늦게 온 사춘기를 달렸죠.

아무튼 80년대 우리가 사랑했던 홍콩영화들, 특히 오우삼이 만든 홍콩느와르 영화들은 왜 그렇게 비장했을까요? 곧 다가올 90년대는 자기들의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예감했던 것일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 비장미에 왜 그렇게나 공명했을까요? 당시 변두리 재개봉관에서 개봉했던 영웅본색은 정말 대히트를 쳐서 듣보잡 윤발이 오빠가 전국민적 스타가 되고, 소녀들은 국영이 오빠가 선전한 투유초콜릿을 사는 걸로 그에 대한 사랑을 다짐했습니다.

물론 당시 인기있던 홍콩영화가 홍콩느와르만은 아니었습니다. 사극판타지 <천녀유혼>, 코미디인 <최가박당> 시리즈, 무협액션 <황비홍> 시리즈 등등, 장르도 유형도 다양했고, 인기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하지만 전 <영웅본색>이 80년대 후반에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엄청나게 인기가 있었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대체  그들의 무엇이 우리를 부른 것일까요?

 

홍콩은 영국 식민지가 되기 전엔 중국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작은 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아편전쟁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아시아 무역의 중심지가 됩니다. 사실 중국에서 영화의 시작과 발전은 당시 국제도시였던 상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정치적 이유로 상해의 영화인들이 홍콩으로 대거 이동하는 일이 세 번 일어납니다. 이걸 남래(南來)라고 합니다. 1차 남래는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로 인해 이뤄졌고, 40년대 중반에 2차 남래가 있습니다. 국공내전으로 공산당을 피해 내려온 영화인들이었습니다. (음...죄송합니다. 3차 남래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가 없어서 ㅠㅠ)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중국은 언어가 다양합니다. 홍콩은 광둥어를 쓰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남래한 상해의 영화인들은 북경어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한참 동안 홍콩에서는 북경어 영화와 광둥어 영화로 나뉘어졌습니다. 광둥어 영화는 서민영화, 북경어 영화는 중산층 이상. 서양 영화는 상류층으로 나뉘어졌다고 합니다. 그 이후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해가던 홍콩영화계는 1970년대 뉴웨이브가 탄생합니다. 이 시기 많은 신인감독들이 데뷔합니다. 해외유학파나 TV 드라마 연출가 출신들이었죠. 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 바로 서극 감독입니다. 그는 미국에서 영상을 공부했고 TV 방송국에서 일했던 영화인이었습니다. <황비홍>을 비롯해 홍콩영화를 대표하는 수많은 걸작을 연출했고, 제작한 사람입니다. 왜 갑자기 서극이냐고요? 그가 바로 <영웅본색>의 제작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유학한 사람이 만든 총격영화라는 점에서 이 <영웅본색>을 보고 싶습니다. 홍콩은 예전부터 무술영화, 쿵푸영화가 한 축을 차지해 왔습니다. 당시에도 <황비홍>등 훌륭한 쿵푸영화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뜬금없이 영웅들이 등장해 엄청나게 총을 쏘는 영화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80년대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레이건의 시대였습니다. 70년대 베트남전에서 창피를 당한 미국은 자존심을 세우고 싶었고 레이건을 소환했습니다. 경제 발전, 강한 미국. 남자의 미국. 이 시기의 할리우드 영화에 대해 수잔 제퍼드는 <하드바디>란 책에서 이렇게 분석합니다. 단단한 근육질의 람보, 기계화된 몸체와 그 강인함을 자랑하는 터미네이터와 로보캅. 이 강인한 남성성의 이미지를 이용해서 레이건 정권은 냉전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요. 강한 남자들이 강하고 기계적인 몸으로 총을 들고 '악'을 응징해 나갑니다. 저는 이 구조가 아무래도 <영웅본색>의 구조와 닮은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안에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다릅니다. 미국의 영웅들은 '정의'를 위해 싸우지만 홍콩의 영웅들은 '의리'와 '우정'을 위해 총을 듭니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그러나 반드시 지켜야 하는 유교적 질서. 그것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비장해진 것이 아닐까요? 지켜야 하나 지키지 못하는 절대 윤리.

 그리고 <영웅본색2>가 나온 87년은 1997년 홍콩반환 정확히 10년 전입니다. 유교적 질서를 일부러 없애버린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근본적인 공포를 준 것은 아니었을까요?

 한국이 이 영화들에 그토록 공명했던 것은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모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80년대를 보내던 한국인에게 총을 들고 의리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형과 오빠들의 모습에서 한국에서도 사라져가는 어떤 윤리의식이 보였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아무튼 이건 제가 혼자 생각해 본 질문이었습니다. 어쩌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의견도 같이 들어보고 싶습니다. 자유롭게 댓글 달아주세요.

홍콩영화 이야기를 이번 회 한 번으로 끝내려고 했으나 쓰다보니 언급하지 못한 영화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남자들의 세계에서 단단한 화법으로 여성을 비롯한 사회의 타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허안화 감독, 그리고 관금붕, 진가신 등등 그저 향수가 아닌 현재진행형인 이 감독들의 이야기도 같이 해보고 싶습니다. 그럼 홍콩영화2탄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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