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저편 _ 서문, 1장 발제

 

2019. 10. 21. 사피엔스

 

 

서문

 

진리가 여성이라고 가정한다면, 철학자가 독단주의자였을 경우, 그들의 소름끼칠 정도의 진지함과 서툴고 주제넘은 자신감이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졸렬하고 부적당 했다는 혐의는 근거 있는 것이 아닐까.

 

철학에서 독단화는 결정적이며 최종적인 것처럼 태도를 취해왔다. 그들의 철학은 과거의 점성술이 그랬던 것처럼, 수천 년을 뛰어넘은 약속일뿐이었다.

 

독단주의자들이 저지른 오류 중 가장 나쁘고 위험한 것은 플라톤의 순수정신과 선 자체의 고안이었다. 그러나 이 오류를 극복하고, 유럽이 건강한 숙면을 즐길 수 있게 된 지금부터 우리의 과제는 깨어있음 그 자체이며, 우리는 이러한 오류와 투쟁함으로써 엄청나게 단련된 힘을 상속받은 것이다.

 

플라톤에 대한 투쟁, 그리스도교 교회의 억압에 맞선 투쟁 (그리스도교는 대중을 위한 플라톤주의)은 유럽내에서 아직까지 없었던 정신적 긴강을 만들어 내었다.

 

유럽인은 이 긴장을 위기로 느끼고 활의 시위를 풀고자 하는 대규모 시도가 두 번 있었다. 예수회 정신과 민주적 계몽주의에 의해서다. (독일인은 화약을 발명하고, 그 업적을 지울 신문을 발행했다)

 

그러나, 예수회원도 민주주의자도 아니고 충분한 독일인도 아닌, 대단히 자유로운 정신인 우리는 정신의 온갖 곤경과 정신적 활의 긴장 전체를 가지고 있다. 아마 화살도 과제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목표도 있는지.......

 

 

 

제1장 철학자의 편견에 관하여

 

1.

진리에의 의지, 이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모험을 하도록 유혹할 것이다.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 안에서 무엇이 ‘진리를 향해’ 의욕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좀 더 근원적인 물음에 직면하여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우리는 이 의지가 가지는 가치에 관해 묻게 되었다. 우리는 진리를 원한다고 가정 했는데, 왜 오히려 진리가 아닌 것을 원하지 않는가? 왜 불확실성을 원하지 않는가? 왜 무지를 원하지 않는가?

2.

‘어떤 것이 어떻게 그와 반대되는 것에서 생겨날 수 있을 것인가.’ 진리가 오류에서 생겨날 수 있는가? 사심 없는 행위가 이기심에서 생겨날 수 있는가? .....

 

형이상학자들의 논리적인 추론과정의 배후에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은 다른 독자적인 기원을 가져야만 한다.’ 가 있다. 그들의 근본적인 믿음은 가치들의 대립에 관한 믿음이다.

도대체 대립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형이상학자들의 대중적인 가치평가와 가치 대립은 표면적인 평가가 아닌지, 일시적인 관점이 아닌지 개구리의 관점 같은 것은 아닌지.

 

모든 생명을 위한 더 높고 근본적인 가치는 가상에, 기만에의 의지에, 이기심에, 욕망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 지금까지의 철학자와는 무엇인가 다른 반대의 취미와 성향을 지니고 있는 그러한 철학자가 도래하기를 기다려야만 한다. 나는 그러한 새로운 철학자가 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3.

우리는 의식적인 사유의 대부분도 본능의 활동으로 간주해야 한다. ‘의식’은 어떤 하나의 중요한 의미에서 본능적인 것에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4.

판단의 오류는 우리에게 아직은 판단에 대한 반론은 아니다. 그 판단이 생명을 촉진시키고 유지하며, 종을 보존하고 심지어 종을 육성할 지도 모른다.

삶의 조건으로 비진리를 용인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위험한 방식으로 습관화된 가치 감정에 저항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일을 감행하는 철학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선과 악의 저편에 서 있게 된다.

 

5.

늙은 칸트는 경직되고 점잖은 위선으로 우리를 변증법의 샛길로 유인했는데, 이 샛길이 우리를 그의 정언명법으로 이끌며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고리타분한 도덕가의 노회한 간계를 파헤치는 것에서 즐거움을 발견한다.

 

6.

학자는 모든 다른 충동이 본질적으로 그에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가 어떤 일을 하든 그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철학자의 도덕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다시 말해 그의 본성이 가장 내면적인 충동들이 어떤 위계질서 속에 상호 정렬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9.

그대들은 자연에 따라 살기를 원하는가? 자연은 한없이 낭비하고 냉담하며 의도와 배려가 없고, 자비와 공정함도 없고 풍요로움과 동시에 황량하고 불확실하다.

삶- 이것은 바로 이러한 자연과 다르게 존재하려는 것이 아닌가? 삶이란 평가하는 것, 선택하는 것, 부당한 것, 제한되어 있는 것, 다르게 존재하고자 함이 아닌가?

오늘날 단하나의 철학이 자기 자신을 믿기 시작하면 바로 생겨난다. 이 철학은 항상 자신의 모습에 따라 세계를 창조하며, 달리 할 수는 없다. 철학은 폭군 같은 충동 자체이며, 힘에 대한 가장 정신적인 의지이고, ‘세계를 창조하려는’ 제 1원인을 지향하는 가장 정신적인 의지이다.

 

10.

형이상학자는 가능성보다 궁극적으로 한줌의 확실성을 선호한다. 그러나 좀 더 강건하고 생동하는 생명을 갈망하는 사상가는 가상에 반대 입장을 취하며, 관점적인 이라는 말에 자부심이 있다.

 

11.

칸트는 인간에게 존재하는 새로운 능력, 선험적 종합판단의 능력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긍지를 가지고 있다. 그가 인간 안에 있는 새로운 도덕적인 능력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의 환호성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제 어떻게 선험적 종합판단이 가능한가? 라는 칸트의 물음을 ‘왜 그러한 판단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가’ 라는 다른 물음으로 바꿔야한다. 우리 종의 존재를 보존하기 우해 그러한 판단이 참이라고 믿어야만 한다는 사실, 그리고 왜 그 판단이 당연히 잘못된 판단이 될 수있는지를 파악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선험적 종합 판단은 전혀 가능한 것이 될 수 없다.

삶의 관점주의적 시각에 속하는 하나의 표면적인 믿음이나 외관으로 단지 그 판단의 진리에 대한 믿음은 필요하다.

 

13.

생리학자들은 자기 보존의 본능을 유기체의 기본적인 본능으로 설정하는 것에 대해 심사숙고 해야만 한다. 생명 그 자체는 힘에의 의지이다.

 

14.

물리학도 단지 하나의 세계 해석이며 세계정리이지, 세계 설명이 아니라는 것.

 

15.

양심적으로 생리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감각 기관이 관념론적 철학이 의미하는 현상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17.

하나의 사상은 ‘그 사상’이 원할 때 오는 것이지, ‘내’가 원할 때 오는 것이 아니다.

 

19.

의지작용이란 어떤 복합적인 것이며, 단지 말로 표현 했을 때만 통일성이 있는 그 무엇처럼 보인다.

모든 의지작용에는 ①감정의 다양함이 있다. ②모든 의지의 행위 속에는 하나의 지배하는 사상이 있다. ③의지의 자유라고 불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명령에 순종해야 만 하는 자에 대한 우월의 정서이다.

‘의지의 자유’ 이것은 명령하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명령을 수행하는 자와 일치시키는, 의지하는 자의 저 복잡다단한 쾌의 상태를 나타내기 위한 말이다.

 

지배계급은 자신과 사회 공동체의 성취를 동일 시 한다. 모든 의지 작용에서 중요한 문제는 오로지 많은 영혼의 집합체를 바탕으로 한 명령과 복종이다. 철학자는 의지 그 자체도 도덕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즉 도덕이란 생명의 현상이 발생하는 지배관계에 관한 학설로 이해된다.

 

20.

개개의 철학적인 개념은 상호 간의 관계와 유사성 속에서 성장한다. 동물 군이 전체의 계통에 속하는 것처럼.

특정한 문법적 기능에 속박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생리학적 가치판단과 종족적 조건에 속박되는 것이다.

 

21.

자기 원인은 심한 자기 모순이며, 일종의 논리적인 강요이며 부자연스러움이다. 형이상학적 최고 지성이 가진 의지의 자유를 향한 열망, 스스로 자신의 행위에 대해 궁극적으로 완전히 책임지고, 신, 세계, 조상, 우연, 사회를 그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열망은 말하자면 자기 원인이고자 하는 것일 뿐이며 무모함으로 자신을 허무의 수렁에서 끌어내어 생존으로 이끌려는 것이다.

‘자유의지’ 라는 기이한 개념을 자신의 머리에서 지워버리도록 간청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의 오용에서 생기게 된 ‘부자유의 의지’이다. 우리는 원인과 결과를 그릇되게 사물화해서는 안 된다.

원인과 결과 그 자체에는 인과의 연합도 필연성도 심리적 부자유도 없다. 결과는 원인에 뒤따른다는 것이 없으며, 이는 어떤 법칙이 지배하는 것도 아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강한 의지와 약한 의지의 문제뿐이다.

 

23.

심리학 전체가 지금가지 도덕적인 편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도덕적인 편견이 가하는 폭력은 가장 정신적인 것으로, 언뜻 보기에 가장 냉담하고 아무런 전제가 없는 세계로 깊숙이 침입했다.

좋은 충동과 나쁜 충동이 상호 제약받고 있다는 학설은 진실한 양심에게는 고난과 혐오를 주게 된다. 모든 선한 충동을 나쁜 충동에서 이끌어 낼 수 있다는 학설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증오, 질투, 소유욕, 지배욕이라는 정서를 삶을 조건 짓는 정서라고 보고 생명의 전체 운영에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존재해야만 하고, 더욱 고양되어야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마치 뱃멀미에 시달리듯 괴로워할 것이다.

 

일단 사람들이 자신의 배를 타고 이쪽에 이르게 된다면 이제 이를 강하게 악물자 손으로 키를 단단히 부여잡자 - 우리는 바로 도덕을 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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