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_발제] 아침놀 서문, 1권 #1~35

수봉 2019.06.10 13:17 조회 수 : 74

“There are many dawns which have yet to shed their light. .—RIG-VEDA”

니체의 《아침놀》은 1881년에 출간되었고 그는 5년 후에 이 책의 서문을 쓴다.

(Underground) 1886년에 니체는 이미 출간된 책들에 몇 개의 서문을 새로 덧붙였다. 비극의 탄생-자기비판의 시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침놀과 즐거운 학문. 이 서문들은 새로 단 조명처럼 벽에 걸린 작품 전체의 색조를 변화시키고 있다. ‘긍정’이 니체에게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부정’의 전투가 남긴 얼룩들이 거의 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 ‘시대적인 것’에 대한 그의 구토는 실제 건강과도 관련이 있었다. 《서광》은 해빙기이며 최소한 이른 봄의 향기를 담고 있다. 《방랑과 그의 그림자-1879》,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다음해 겨울 어떤 안락함과 명철함, 명랑성으로 《서광》을 기술했다고 했다. 하지만 밝은 기운은 극도의 고통과 양립한 것이었다고 했다

서 문

1. 이 책에서 사람들은 ‘지하에서 작업하고 있는 한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이 결국 무엇에 도달하게 될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즉 자신의 아침, 자신의 구원, 자신의 아침놀에 도달하게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긴 암흑과 이해하기 어렵고 은폐되어 있으며 수수께끼 같은 일을 감수하는 것은 아닐까?

2. 참을성 많은 친구들이여, 내가 저 지하에서 무엇을 하려 했는지 이 뒤늦은 서문에서 그대들에게 말하겠다. 나는 깊은 곳으로 내려갔고 바닥에 구멍을 뚫었으며, 우리 철학자들이 수천년 동안 신봉해 온 낡은 신념을 조사하고 파고들기 시작했다. 철학자들은 이 낡은 신념이 가장 확실한 지반인 것처럼 그 위에 철학을 세우곤 했다. 그러나 그 위에 세워진 모든 건축물은 거듭 붕괴되었다. 나는 도덕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3. 선과 악에 대한 지금까지의 고찰은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모든 권위와 마찬가지로 도덕 앞에서도 따져서는 안 되고 여기서는 복종만이 허용된다. 도덕이 비판의 손길과 고문도구를 물리치기 위해 위협적인 수단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도덕의 공고함은 오히려 일종의 마술에 근거한다. 도덕은 아주 옛날부터 모든 종류의 사악한 설득기술에 정통했다. 우리 철학자들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도덕은 철학자들을 유혹하는 키르케로 입증되어왔다.

왜 플라톤 이후 유럽의 모든 철학적 건축가들의 작업이 헛수고에 불과했는가? 모든 철학자들이 도덕의 유혹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자신들의 철학 체계를 세웠다는 것일 것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확실성과 진리를 지향했지만 칸트의 순진한 말을 다시 한번 사용하면 사실 존엄한 도덕적 건축물을 지향했다. 그는 자신의 ’도덕적 왕국’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이 증명할 수 없는 세계, 즉 논리적인 ‘피안’을 상정한다. 그는 사물들의 도덕적 질서가 이성에게 공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강하게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4. 논리적인 가치판단들이 우리의 용감한 의심이 내려갈 수 있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근본적인 것은 아니다. 이러한 판단들의 타당성은 이성에 대한 신뢰에 의존하는데, 이러한 신뢰는 하나의 도덕적 현상이다. 도덕에 대한 신뢰를 넘어 도덕에까지 비관주의적이라면 독일적인 것이다. 이 책은 도덕에 대한 신뢰를 철회한다. 왜냐하면 도덕에 충실하기 위해서.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은 우리에게조차 ‘너는 해야 한다’는 당위가 말을 걸어오며, 우리조차 우리 위에 존재하는 엄격한 법칙에 복종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조차 들을 수 있고 직접 수행할 수 있는 최후의 도덕이다. 신이든 진리든 정의든 이웃 사랑이든 무언가 믿지 못할 것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양심의 인간이다.

이렇게 양심적 인간으로서만, 오늘날 도덕을 부정하는 사람이자 신을 상실한 사람들인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수천 년에 걸쳐 내려온 독일적인 진실성과 경건에 가까운 사람들로 느끼게 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들의 상속자이자 그것들의 가장 내적인 의지, 즉 기쁘게 부정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비관주의적인 의지의 집행자로 느낀다. 우리의 내면에서는 도덕의 자기지양이 수행된다.

5. 우리가 무엇이고,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를 우리가 그렇게 소리 높여 열심히 말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은밀하게 말하자. 무엇보다도 우리는 천천히 말하자.

이 서문은 늦게 씌어졌다. 그러나 너무 늦지는 않았다. 우리 둘, 나와 나의 책은 느린 가락Lento의 친구들이다. 아마 나는 여전히 문헌학자다. ‘서두르는’ 모든 인간을 절망하게 만들지 못할 경우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 이것은 내 습관일 뿐만 아니라 취미이기도 하다. 문헌학은 깊이 생각하면서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지 않고, 섬세한 손과 눈으로, 천천히, 깊이, 전후를 고려하면서 읽을 것을 가르친다. 인내심 강한 나의 벗들이여, 이 책은 오직 완벽한 독자와 문헌학자만을 원한다. 나를 잘 읽는 것을 배우라.

This book appeals only to perfect readers and philologists: learn to read me well!

제 1 권

(Underground) 제1권에서는 니체의 방법론, 특히 계보학이란 무엇인지를 읽어낼 것이다. 이는 가치의 유래와 발생을 묻고 ‘가치의 가치’를 평가하는, 즉 ‘가치의 근거‘를 파헤치는 언더그라운드 사상이 시작된다.

1. 나중에 덧붙여진 이성-오랫동안 존속하는 모든 사물은 점차 이성에 의해 침윤되기 때문에 그것이 원래는 비이성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게 된다. 기원에 관한 정확한 역사란 거의 대부분의 경우 역설적이고 신성 모독의 감정을 일으키지 않을까? 훌륭한 역사가라면 근본적으로 끊임없이 반박하지 않을까?

(Underground) 도덕 판단은 증후학으로서는 대단히 가치가 있다. 모든 것은 하나의 기호이고 조짐이고 증상이다. 논리학에서 말하는 동일성이란 지나치게 엄격한 눈을 통해서는 파악될 수 없다. 니체는 어떤 존재가 ’환원적 추론’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자연에서 도태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3.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인간이 모든 사물에 성(性)을 부여했을 때 인간은 자신이 유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깊은 통찰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현존하는 모든 것을 도덕과 연관시켰고 세계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은 언제나 태양의 남성성이나 여성성에 대한 믿음이 오늘날 갖고 있는 정도의 가치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4. 전체가 조화롭지 않다고 몽상하는 것에 대한 대한 – 우리는 많은 그릇된 웅대한 생각들을 다시 제거해야 한다. 그것은 모든 사물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올바름과 대립되기 때문이다.

5. 감사하라! - 지금까지 인류가 거둔 위대한 성과는 우리가 야수, 야만인, 신들에 대해 품어왔던 두려움을 더 이상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6. 요술쟁이와 그의 반대-과학에서 경이로운 점은 요술쟁이의 요술에서 경이로운 점과 대립된다. 요술쟁이는 복합한 인과관계가 작용하는 사건에서 극히 단순한 인과관계만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우리를 매료시키려고 하고, 이에 비해 과학은 우리가 바보처럼 외관만 보고 모든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건에서 복잡한 인과관계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단순한 인과관계애 대한 믿음을 버리게 한다.

7. 공간에 대해 새롭게 느끼는 것을 배움-실제의 사물들이 인간의 행복에 더 많이 기여했는가? 아니면 상상의 사물들이 더 많이 기여했는가? 최고의 행복과 최고의 불행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의 넓이는 상상의 사물들을 통해 비로소 생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공간 감각은 과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갈수록 작아진다. 우리는 지구가 작다고 느끼고 태양계를 점으로 느끼는 것을 과학을 통해 배워왔다. (Underground) 우리의 감각이 하나의 해석이다. 우리는 해석된 사물을 체험하므로 우리 세계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그 무엇보다도 해석자인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낸다. 천국과 지옥이란 결국 동일한 세계에 대한 두가지 상반된 체험, 상반된 해석이 아닐까 생각한다.

8. 변용-라파엘로는 인간을 세 가지 등급으로 구분했다. 우리는 세계를 더 이상 그렇게 보지 않는다. 라파엘로 역시 이 시대에 살고 있다면 더 이상 그렇게 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새로운 변용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Underground) 라파엘로 〈그리스도의 변모〉 《마태오의 복음서》 17장 및 그 밖의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의 내용을 근거. 우리는 어떤 것을 개인적·사회적 해석 아래서 본다.

9. 풍습의 윤리라는 개념-풍습의 힘은 놀라울 정도로 약해졌고 윤리의 감정은 매우 세련되고 높아졌기 때문에 풍습의 힘이 심지어 증발해버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윤리는 어떠한 종류의 풍습이든 풍습에 대한 복종과 다름없다. 그러나 풍습은 관습적인 행위방식이며 평가방식이다. 삶이 관습을 통해 규정되는 일이 적을수록 윤리의 범위도 작아진다.

자유로운 인간은 모든 점에서 관습이 아니라 자신에 의존하고자 하기 때문에 비윤리적이다. 인류의 모든 근원적인 상태에서 ‘악하다’는 것은 ‘개인주의적이다‘, ’자유롭다’. ‘자의적이다’, ‘길들지 않았다’, ‘예측되지 않았다’,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행위가 관습이 명령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동기들 때문에 행해진다면, 그것은 비윤리적인 것으로 규정되고 그것의 행위자마저 그렇게 느낀다. 관습이란 단순히 그것이 명령한다는 이유로 우리가 복종해야 하는 좀더 높은 권위이다. 건강에 대한 전체적인 교육과 보살핌, 결혼, 의술, 경작, 전쟁, 말과 침묵 등 모든 것은 풍습이었다. 풍습을 넘어서고자 하는 사람은 입법자, 혹은 마술로 병을 고쳐주는 사람, 그리고 일종의 半神이 되어야 했다. 그들은 비윤리적인 사람들로서 공동체에서 자신을 분리하며 가장 심원한 의미에서 악한 사람들이다. 풍습의 윤리가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어떠한 독창적인 정신도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지금 이 순간까지 가장 뛰어난 사람들의 하늘은 필요 이상으로 음울한 것이다.

10. 윤리에 대한 감각과 인과관계에 대한 감각 사이의 상호작용-인과관계에 대한 감각이 증대함에 따라 윤리가 지배하는 영역의 범위가 작아진다.

11. 민간도덕과 민간의학- 공동체를 지배하는 도덕은 모든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가공된다. 사람들 대부분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 죄와 벌의 관계를 뒷받침하는 예들을 점점 덧붙여서 이러한 관계가 근거가 잘 갖춰진 관계임을 확인하고 그것에 대한 믿음을 강화한다. 그들의 수행방식은 전적으로 조야하고 비과학적이다. 민간의학의 소재와 형식처럼 무가치한 소재이며 형식이다. 두 가지 모두 가장 위험한 학문이다.

12. 부가물로서의 결과- 옛날 사람들은 어떤 행위의 성공이 그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자유로운 부가물, 신이 선사한 부가물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어떤 행위를 위해 노력할 경우와 성공을 거두기 위해 노력할 경우에 대해 각각 전혀 다른 수단과 방책을 사용해야만 했던 것이다.

13. 인류의 새로운 교육을 위해서-전세계에 만연된 형벌의 개념을 세계에서 제거하는 일에 협조하라!

단지 우리의 행동방식이 초래한 결과에 대해서만 형벌이라는 개념이 적용된 것이 아니라-그리고 원인과 결과를 원인과 형벌로 이해하는 것만 해도 이미 얼마나 섬뜩하고 반이성적인가!-형벌에 대한 잔인무도한 해석술에 의해, 사건들이 갖는 전적으로 우연한 성격은 무구함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뿐 아니라 존재 자체를 형벌로 느끼라고 명령할 정도로 광기는 극에 달하게 되었다.

14. 도덕의 역사에서 광기가 갖는 의미-인류의 모든 공동체들은 풍습의 윤리에서 비롯된 저 가공할 중압 속에서 살아왔다.거의 모든 곳에서 새로운 사상에게 길을 열어주면서, 존중되던 습관과 미신의 속박을 부수는 것은 광기다. 새로운 사상의 소유자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외경과 두려움을 갖게 하고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을 갖지 않게 하면서 그를 새로운 사상의 순교자가 되도록 몰아대는 어떤 것. 이전의 모든 인간들은 광기가 존재하는 곳에는 약간의 천재성과 지혜, 즉 사람들이 서로 속삭이는 것처럼 ‘신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사상을 훨씬 더 쉽게 받아들인다. “광기를 통해 그리스는 최대의 재산을 갖게 되었다.” 라고 플라톤은 고대의 인류 전체와 함께 말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마술사가 되기 위해, 중세 기독교인들이 성자가 되기 위해, 그린란드인들이 안게코크가 되기 위해, 브라질인들이 파헤가 되기 위해 취했던 처방은 본질적으로 같다. 모든 것들이 황홀경이나 정신의 무질서를 초래할 수 있는 처방들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믿을 수 있게만 해주소서! 의심이 나를 파먹어갑니다. 내가 당신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부디 나에게 증명해주소서. 광기만이 나에게 그것을 증명합니다. " 기독교가 성자와 황야의 은둔자들을 가장 풍부하게 배출함으로써 자기 자신(기독교)을 증명했다고 믿었던 저 시대의 예루살렘에는 자신들의 마지막 소금 한 알 마저 포기했던 저 좌절한 성자들을 위해 지어진 거대한 정신병원이 있었던 것이다.

15. 가장 오래된 위로 수단-첫번째 단계 : 인간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불운에 처할 경우, 누군가 다른 사람을 괴롭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에게 아직 힘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위로한다. 두 번째 단계 : 인간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불운에 철할 경우, 그것을 벌이라고 생각한다. 불행이 수반하는 이러한 이익을 꺠닫게 되면, 그는 더 이상 타인을 그 때문에 괴롭혀야 한다고 믿지 않게 된다. 다른 만족을 얻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만족은 버리는 것이다.

16. 문명의 최초의 명제-야만적인 민족들에게는 풍습 그 자체를 위한 풍습의 유형이 있고 지나치게 세밀하고 근본적으로 불필요한 규정들이 있다. 이러한 규정들은 풍습을 항상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의식시키며, 어떤 풍습이라도 풍습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위대한 명제를 주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러한 명제를 통해 문명이 시작된다.(Underground) 도덕의 선사적 형태인 풍습의 목표는 ‘약속 가능한 동물’, ‘약속할 수 있는 동물 기르기‘

17. 선한 자연과 악한 자연-처음에 인간들은 자연에 자신을 투영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하고 악하고 변덕스러운 성향이 구름, 폭풍, 맹수, 나무, 풀 속에 숨어있다고 보았다. 이때 인간들은 ’악한 자연‘을 고안해냈다. 그리고 나서 인간들이 자신을 자연에서 다시 분리한 시대, 즉 루소의 시대가 왔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너무 지겨워졌기 때문에, 인간들이 느끼는 고통이 전혀 없는 세계의 한 구석을 절실히 갖고 싶어한다. 이에 따라 ’선한 자연‘이 고안되었다.

18. 자기학대의 도덕-가장 엄격한 윤리가 지배하고, 항상 위험에 노출된 저 작은 공동체들이 전쟁 중일 때, 무엇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향락일까? 그것은 잔혹함의 향락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들에게 잔혹한 광경을 제공할 때 신들도 활기를 되찾고 축제 기분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자신에게 스스로 고문을 가하는 것이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는 생각이 세계 안으로 기어들게 된다. 이제 사람들은 도가 지나친 모든 쾌감을 불신하는 반면에 혹심한 모든 고통의 상태는 신뢰한다. 사람들은 신들이 인간들의 괴로움 때문에 흥겨워하고 기분이 좋아져 자비를 베풀기를 바란다. 잔혹한 사람든 힘의 감정이 가져오는 최고의 쾌감을 향유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사유와 개인적으로 형성된 삶의 영역을 걸을 경우에는 아무리 작은 발걸음 하나라도 오래전부터 정신적·육체적인 가택과 함께 싸워 얻어졌다. 단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걷는 것, 운동. 변화 그 자체가 참으로 무수한 순교자들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최근의 새로운 사건들을 둘러싼 소음인 소위 세계사에서 조차, 진창을 움직이고자 했던 순교자들의 극히 오래된 비극보다 더 중요한 주제는 없다. 지금 우리의 긍지를 형성하는 약간의 이성과 자유의 감정보다 더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얻어진 것은 없다. 주요 역사(인류의 성격을 확립한 저 진정하고 결정적인 주요역사)는 ’세계사‘에 선행하는 것으로, ’풍습의 윤리‘가 지배했던 역사다. 이 주요역사에서 괴로워하는 것과 잔혹과 위장과 복수와 이성의 부인은 덕으로 간주되었던 반면, 동정을 받는 것은 모욕으로, 광기는 신성으로, 풍습의 변경은 비윤리적이고 파멸을 잉태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19. 윤리와 어리석게 만듦-풍습은 이익이 되거나 해를 끼친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예전 사람들의 경험을 반영하지만 풍습에 대한 감정은 그러한 경험 자체가 아니라 풍습의 오래됨, 신성함, 자명함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감정은 사람들이 새로운 경험을 갖게 되고 풍습을 수정하는 것에 반발한다. 그것은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이다. 즉, 윤리는 새롭고 좀더 나은 풍습의 발생을 저해한다. 그것은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이다.

20. 자유롭게 행동하는 사람과 자유사상가-자유롭게 행동하는 사람은 자유사상가에 비해 불리하다. 이는 사람들이 사상보다 행위의 결과 때문에 더욱 현저한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두 부류 금지된 것을 건드려 만족을 얻는다는 점에서, 동기의 측면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행위를 통해 풍습의 질곡을 부순 사람들은 지금까지 항상 악한 인간으로 간주되어 결과의 측면에서 불리하다. 역사는 훗날 선한 인간이라고 불리게 되는 이러한 악한 인간들만 다룬다.

21. 법의 이행-도덕적인 규정을 따랐는데도 약속되고 기대되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빚어지고, 불행과 비참이 찾아올 경우, 양심적이고 소심한 인간들은 이렇게 변명한다. “실천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 최악의 경우 “그 규범을 훌륭하게 실천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행복과 행운을 기대할 자격조차 갖지 못한다. 도덕적인 규정과 약속들은 우리보다 더 뛰어난 존재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

22. 행위와 신앙-여전히 프로테스탄트 교사들은 모든 것은 오직 신앙에 달려 있고 신앙에서 행위가 필연적으로 비롯된다는 저 근본적인 오류를 전파하고 있다. 신앙은 어떤 것이 생각에서 행동으로 변화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저 정교하고 복잡한 메커니즘의 선행을 대체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우선 행위! 즉 실행, 실행, 실행! 그것에 어울리는 ’신앙‘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분명히!

23. 우리는 어떤 점에서 가장 섬세한가.-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사물들(자연물, 도구, 모든 종류의 소유물)에 생명과 혼이 있고, 인간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으며 인간이 뜻대로 할 수 없는 독자적인 힘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이런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무력감을 느껴왔다. 사람들은 인간과 동물을 폭력, 강제, 아첨, 계약, 희생을 통해 획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물도 그런 방식을 통해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 미신적인 관습들이 대부분 유래한다. 그러나 무력감과 공포감이 워낙 강하고, 지속적으로 불러 일으켜졌기 때문에 이제 힘의 감정은 극도로 예민한 황금저울과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고도로 섬세하게 발달했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강력한 성향이 되었다 문화의 멱사란 대부분 이러한 감정을 획득하기 위해 발견된 수단이다. (Underground) 힘의 감정에 아주 정통하게 되면 아주 예민하고 섬세해지고 고상하고 까다로워지기도 한다. 사물을 아주 예민하게 평가하는 방식이다. 강자란 바로 여기에 정통한 사람들이다.

25. 풍습과 아름다움-처음부터 풍습에 절대적으로 성심을 다해 순종하는 사람은 공격기관과 방어기관이-육체적 기관과 정신적 기관이- 제대로 자라지 않게 된다. 즉 그는 점점 더 아름답게 된다! 바비(Pavian:호색한)

26. 동물과 도덕-세련된 사회에서 요구되는 술책들은 사회적 도덕으로서 대체로 가장 저급한 동물세계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발견될 수 있다. 우리는 이 저급한 세계에서 이 상냥한 예방조치들의 배후에 있는 의도를 간취할 수 있다. 즉 사람들은 추적자들한테서 벗어나려 하는 것이며 전리품을 획득하기 위해 유리한 지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동물은 자제하는 것을 배우며 위장하는 것을 배운다.  진리에 대한 감각은 안전에 대한 감각인 바, 인간은 이러한 진리에 대한 감각마저 동물과 공통으로 갖고 있다. 현명함, 절제, 용기의 기원처럼 정의의 기원 역시 동물적이다. 우리가 소크라테스의 덕이라 부르는 모든 것의 기원은 동물적이다. 즉 먹을 것을 찾고 적한테서 도망치는 것을 가르치는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든 도덕적 현상은 동물적인 것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27. 초인적인 정열에 대한 믿음이 갖는 가치-결혼제도는 다음과 같은 믿음을 견지한다. 그것은 사랑이 정열의 일종일지라도 그러한 정열로 지속될 수 있다는 믿음, 더 나아가 전 생애에 걸친 지속적인 사랑을 성취하는 것이 인간이 실현해야 할 규범이라는 믿음이다. 그러한 믿음은 끈질기게 신봉되기 때문에 사랑에는 결혼을 통해 보다 높은 고귀함이 부여된다. 그런 개조를 통해 극히 많은 위선과 거짓이 생겨났다. 또한 그때마다 이에 대한 대가로 새로운 초인적인 즉, 인간을 고양하는 개념이 생겨난다. (Underground) 정열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생각은 정열의 본질에 반한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불합리하고 불가능한 요구이기도 하다.

28. 논거로서의 기분-즐거운 마음으로 어떤 행위를 하기로 결심하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오래 되었음에도 여전히 통상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신이 그 원인이라는 것인데, 이는 신이 이것(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기로 흔쾌히 결심하는 것)을 통해 우리의 의지에 동의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는 답이다. 좋은 기분은 논거로서 저울대 위에 올려지고 합리성보다 더 무게를 갖게 되었다. 힘을 갈망하는 현명한 사람들이 이런 선입견을 이용했고 여전히 이용하고 있다면, 이제는 이런 선입견이 초래하는 결과에 대해 숙고하라! ’고양된 기분을 만들어내라’ 그것으로 사람들은 모든 논거를 대신하고 모든 반대 논거를 이길 수 있다.

29. 덕의 배우와 죄의 배우-덕을 통해 유명해진 고대인 중에는 자신의 덕을 연기한 사람들이 무척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리스인은 태생적으로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것을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행하면서 그것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보여줄 수도 없고 보여줄 방도도 없는 덕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이 덕의 배우들을 저지한 것은 기독교였다. 그 대신 기독교가 발명한 것은 죄의 역겨운 과시와 전시였다. 기독교에 의해 기만적인 죄책감이 탄생한 것이다. (Underground) 고대인들은 삶과 세계의 순진무구함을 믿었다. 그들은 죄와 불행 사이에 아무런 상응관계를 설정하지 않았다. 기독교는 현실의 불행과 고통을 죄와 연결했다.

30. 덕으로서의 고상한 잔혹함-여기에 (다른 사람과 비교해) 우월함을 느끼고 싶어하는 충동에 전적으로 근거하는 도덕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타인에게 고통을 주고 타인의 시기심과 무력감, 몰락의 감정을 일깨우고 싶어한다. 우리는 타인의 혀 위에 우리의 꿀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는 그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불행을 기뻐하고 그의 눈을 날카롭게 응시한다. 우월의 도덕이 근본적으로 세련된 잔인성에 대한 쾌감이라는 사실은 지금도 여전히 너무도 역설적이고 거의 고통스러울 만큼 새로운 사실이다. 우월한 행동습관은 유전되지만 그것의 저의는 유전되지 않는다(오직 감정만 유전될 뿐 생각은 유전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저의가 교육을 통해 다시 배후에 삽입되지 않는다면, 두 번째 시대에서는 이미 잔혹의 쾌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습관 자체에 대해서만 쾌감이 존재한다. 그런데 바로 이 쾌감이 ‘선’의 최초의 단계이다.

31. 정신에 대한 긍지-동물에서 인간이 유래했다는 설에 저항하면서 자연과 인간 사이에 커다란 거리를 두려는 인간의 긍지-이 긍지는 정신의 본질에 대한 편견에 근거한다. 인류의 긴 선사 시대에 사람들은 정신이 모든 것들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인간의 특권으로 존중하려 하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정신적인 것은 일반적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동물이나 나무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정신을 통해 우리가 자연과 분리되지 않고 자연과 결합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사람들은 겸손하게 자신을 훈육했다. 이것 역시 편견의 결과다.

32. 제동기-도덕적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이런 종류의 괴로움의 근저에 오류가 있다는 말을 듣는 것,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분노하게 한다. 사람들은 차라리 괴로워하기를 바라며 (이와 함께 저 더욱 깊은 진리의 세계에 접근하게 되었다는 의식을 통해) 자신이 현실을 초월해 숭고해졌다고 느끼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이해에 저항하는 것은 긍지이며 이러한 긍지를 충족하는 습관적인 방식이다. 이 제동기를 위해 우리는 어떤 힘을 사용해야 할까? 더욱 많은 긍지인가? 새로운 긍지인가?

33. 원인과 결과, 그리고 현실에 대한 경멸-날씨의 갑작스러운 변화나, 흉작 혹은 전염병과 같은 재난들이 공동체를 덮칠 경우, 모든 구성원은 풍습을 위반한 것은 아니지 혹은 새로 닥쳐올 악마적인 힘과 변덕을 달랠 수 있도록 새로운 풍습이 고안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이러한 의심과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실제의 자연적인 원인을 탐구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어떤 행위의 초자연적인 결과(이른바 신의 은총과 벌)보다는 실제의 자연적 결과에 주목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목욕하는 행위에 있어 사람들은 미신적인 불안에 쫓겨 불결을 씻어내는 것에 훨씬 더 많은 의의를 두어야 한다고 잘못 추측한다. 사람들은 불결을 씻어내는 행위에 제2, 제3의 의의를 부여한다. 사람들은 현실적인 것에 대한 감각과 쾌감으 망치고, 결국 현실적인 것은 그것이 상징일 경우에만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현실적인 것은 그것이 상징일 경우에만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풍습의 윤리에 속박되어 첫째로 원인, 둘째로 결과, 셋째로 현실을 경멸하고, 그의 모든 격조 높은 감각들을 상상된 세계, 이른바 더욱 격조 높은 세계와 결부한다. 그 결과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는 인간의 감정이 고양되는 경우, 어떻게든 저 상상된 세계가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슬픈 일이다.

34. 도덕적인 감정과 도덕적인 개념-분명한 것은 도덕적 감정들이 특정 행위들에 대한 어른들의 강한 호기심과 반감을 알아챈 아이들이 타고난 원숭이처럼 이러한 호감과 반감을 모방하는 식으로 전수된다는 사실이다. 습득되고 잘 훈련된 이러한 감정들로 가득 차게 되면, 아이들은 시간이 지난 뒤 호감과 반감이 갖는 정당성의 근거를 대로 그것이 일조의 이유를 부여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이유부여는 그들이 갖게 되는 감정의 기원이나 정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따라서 도덕적 감정의 역사는 도덕적인 개념들의 역사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전자는 행위 이전에 힘을 발휘하며, 후자는 행위 이후에 행위에 대해 설명할 필요에 직면했을 때 특히 힘을 발휘한다.

35. 감정과, 감정이 판단에서 유래한다는 사실-그대의 감정을 신뢰하라!-감정의 배후에는 판단과 가치평가가 존재하며, 그러한 판단과 가치 평가는 감정(호감과 반감)의 형태로 우리에게 유전된다. 자신의 감정을 신뢰하는 것은 우리 내부에 깃든 신들보다는 우리의 조부와 조모, 더 나아가 이들의 조부모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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