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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담론속 표류하기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최근 몇 년간을 돌이켜 보면, 나의 삶에 영향을 끼쳤던 거대 담론들이 충돌하는 사회정치적 이슈가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일련의 많은 사건 들을 통과하며 살아왔다.

  나는 어떤 담론속을 살아가고 있나?

그 속에 있었는지도 몰랐고, 알아채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담론에 대해 문득 알아채고

생각해 본 결과 최근 내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가 아닐까 싶다.

사회가 규정해 놓은 어른에 대한 담론!

한국 사회는 나이대에 맞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규격화가 정해져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거기에 맞추어(또는 맞추어지길 바라며) 살아간다.

사회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과 사회가 부정해버리려는 모습이 양 극단에 존재하며, 그 사이에는 수많은 삶의 스펙트럼이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본인의 자리에 만족하기 보다는 이상을 바라보며 불행을 느끼고, 반대의 경우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미디어에서는 이상적인 모습에서 결국에 행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우리를 세뇌시킨다.

시중에 판매하는 책들도 이런 흐름에 가세한다.

사진은 우스갯소리로 첨부하는 것이지만,

20대에 반드시 해야 할 무엇무엇 이라든지, 30대에 이거 안하면 큰일난다 라든지.

40대에는 반드시 무엇무엇을 류의 책들이 꽤나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규격화와 흐름은 대체 누가 정하는 것일까? 누가 담론을 생성하려 하는가?

이런 양상은 비단, 내가 느낀 것처럼 나이에 따른 경계를 짓는것에 그치지 않고,

여성과 남성의 젠더 문제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여성적 젠더와 남성적 젠더를 양 극단으로 설정했을 때, 그 사이에

있는 다양한 젠더 스펙트럼에 위치한 이들은 사회가 설정한 이상적인 젠

더 기준에 부합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적합 판정 혹은 개선의 권고를

받을 수 있다. 여성적 젠더를 가진 남성과 남성적 젠더를 가진 여성이

부적합 판정의 대상으로 예시될 수 있으며 그들에게는 생물학적 성에 맞

는 젠더 함양이 권고된다.

*윤민영,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이론에 관한 연구」,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초등도덕교육전공,2018,32p

 또는, 몸에 대한 담론.

근육질의 몸이 각광받고, 그렇지 못한 몸은 게으른 몸으로 평가받는 등.

바디프로필이 유행처럼 번지는 현실과 근육질의 인물들이 출연하는 예능을 보며

사람들은 또 알게 모르게 그 미디어가 만들어낸 그 표상과 담론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사회의 담론속에 포섭되기 전,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회와 미디어가 심어놓은 허구의 표상이 나에게 스며들기 전,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제와서 생각해보려니, 온갖 것이 뒤범벅 된 채로 살아온 나로서는 그것을 알아내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인형과 장난감을 좋아한다.

장난을 치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서 낯선 사람들을 만날 때에는 짐짓 점잖은 척을 한다.

어른다워야 한다는 생각에 나를 검열하는 일이 잦다.

물론, 때와 장소에 따라 행동을 달리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내가 경계하는 것은 내 안으로부터의 나에 대한 검열이다.

어른스러운 것과 어른스러운 것이 아님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어떤 것이 더 좋은것인지 가치평가를 하는 태도는 그 사이 무수한 갈래로 나누어져 있는 나의 모습을 언제나 부정하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

2.담론으로부터의 탈주는 가능한가?

탈주라 함은 사전적 의미로 ‘몸을 빼쳐 달아남’ 이다.

담론 속을 빠져나가 달아남으로써 담론 밖으로 갈 수 있을까?

그곳은 또다시 새로운 담론의 내부는 아닐까.

담론에서 탈주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담론을 해체해 버린다면...

그리고! 해체후 재조립한다면?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돼” -영화 데몰리션 중.

 ‘예외’개념은 비규범이란 규범 밖에 분리되어 있는 개념이 아니라 비규범조차 규범에 비추어 결정되는 것으로써 이미 규범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윤민영,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이론에 관한 연구」,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초등도덕교육전공,2018,29p

 담론의 해체, 해체 후 재조립.

담론밖으로 탈주하였다고 해도 그 상태의 나는 담론을 통해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여전히 담론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며, 그 전의 담론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그리고 존재했던 이상, 나는 완벽한 탈주를 꿈꿀 수는 없는 것이다.

3.어떻게 살 것인가

 “어른답게 행동해야 한다! 나는 이제 어른이니까!” 라는 식으로

내가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어른과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는 나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부터 멈추어야 한다. (같은 맥락으로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그러한 사고방식-분별만이 존재하는 대상 바라봄-을 멈추어야 한다.)

그냥 나는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어른이니까 이제 인형을 좋아하는 것은 그만두자!” 라든지,

사회가 만들어놓은 규격화에 맞지 않는 나라고 해서 그 규격에 맞추려고 억지로 노력을 할 필요는 없다.(원한다면 해도 되고! “이것이 중요하다!”) 주도권을 내가 갖느냐 아니면 뺏기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집착없는 삶의 주도’ 라고 할 수 있을까?

담론이라는 틀에서 여전히 살고 있을지라도, 그 담론을 내 방식에 맞게 해체 후 재조립할 수 있다면. 일종의 맞춤 담론?

어른이라면 응당 그러하여야 한다는 사회의 관습을 혼자의 힘으로 깨부수진 못할지라도

나는 그래도 이게 좋은데? 라고 나의 담론을 만들어 작은 저항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새로운 담론으로 정착되지는 못할지언정!-

있는 그대로의 나를 ,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 그대로 인정한다면. 내가 선택한 담론이라면,

무지의 상태에 속해있던 기존의 담론과는 다른 세상을 나에게 보여주지 않을까.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지금의 나’를 사랑하기가 아닐까 싶다.외부세계(미디어를 위시하는)는 항상 더 발전하라고 채근하며, 현재의 너는 아직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한다. - 따라서 언제나 나는 부족한 사람으로 남는다.- 이러한 일종의 담론권력에 의해 휘둘리며 남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 괴로움에 빠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그러한 담론은 해체되어야 마땅하다.

사회와 미디어권력이 만들어내는 담론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지금의 나’를 사랑하기는 어려워진다고 생각한다.더 나아가 과거의 나를 용서하기 어려워지고, 미래의 나를 걱정하는데에 많은 시간을 뺏기게 될 것이다.

 담론의 해체는 어렵다. 볼트와 너트가 너무 꽉 조여있기도 하고, 드라이버가 헛돌기도 한다.

망치로 부수기에도 망치가 무거울 뿐 아니라 허리도 아파온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전진하려 했으나 장벽에 부딪혀 돌아온 허무와

애초부터 전진을 시도하지 않은 고정된 허무는 다르다."

산책자의 행복 - 조해진

 라는 소설속의 문장처럼,

그 둘은 나에게 다른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살아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란 물음은

애초에 답이 나올 수 없는 물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에 대해 답을 내리는 순간, 그 외의 수많은 삶의 방식에 대해 내가 평가를

내리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살아가면 된다.

단, 내가 둘러 쌓인 세상이 나를 어떻게 만들어가려 하는지 눈치를 챈다면

살아가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근데 사실, 글을 다 써가는 이 시점에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무려면 어때? 담론속을 무지속에 살아간다고 한 들, 그것이 꼭 고쳐야 할 것인가?

문득 세미나 시간 때 선생님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혼자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인간중심적인 사고에 대한 대화를 들으며 영화 “콘택트”가 떠올랐다.‘

’콘택트‘에는 이런 명대사가 있다.

"우주에 만약 우리만 있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이겠지.“

근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이것은 너무나 인간중심적인 생각이다. 우주는, 그리고 자연은 무심하다. 지구온난화로 지구가 아프다고 하지만, 결국 아픈건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지구는 아무 상관이 없다. 우주는 공간낭비라는 개념을 생각하지 않는다.

세미나를 하면서도 또한 , 이런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라캉,푸코,들뢰즈 너무 머리아프게 산다!‘ ’어떤 삶을 살아야 이런 생각을 시작할 수 있는걸까?‘

 

하지만 이런 생각의 끝은 결국 허무주의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의미를 향한 끝없는 탐험이야말로,- 공부하는 삶이야말로-,

정말 조심스럽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유의미한 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소설 구절로 마무리를 지어볼까 한다.

 

‘계속해서 앞으로 갑시다.“ 선장은 한계가 없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일지도 모른다는 때늦은 의구심에 압도되었다. 선장이 다시 물었다. ”언제까지 이 왕복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는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해 온 대답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콜레라 시대의 사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하여,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공부합시다!

수유너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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