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순간, 모습을 보이는 실존에 대하여
구조는 주체가 죽었다고 선언했다. 이제 주체는 구조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중심으로 설명된다. 세계와 나 자신의 관계를 자아의 이전 단계에서[자아의 바깥에서] 정립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였다. 하지만 라캉, 푸코와 들뢰즈를 공부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바는 공허(空虛)였다. 주체를 중심으로 발휘하는 힘이 없다는 사실에서 자신은 분해되어 사라졌다. 들뢰즈의 세계관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주체의 존재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일상에서도 텍스트를 읽는 동안에도 감각하고 느끼는 나는 분명하게 존재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허나 들뢰즈의 세계관에서 이것은 특정 욕망의 흐름 - 지식을 탐닉하는, 이해하고 싶은 욕망으로 - 소급되어 설명될 것이다.
들뢰즈 속에서 주체의 존재 가능성을 찾는 와중에 내가 다다른 지점은 욕망을 혁명하는 순간이었다. 탈영토화의 지점이 형성되고 재영토화가 일어나는 그곳에서 ‘행동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실존적 인간이 모습을 보이는 듯 했다. 혁명이 긍정하고 창조하는 에너지를 잘 발휘하기 위해서는 개체의 적극적인 선택과 판단 없이는 힘겹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대중의 일원으로 사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가 하루아침에 혁명의 봉화를 올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앞으로의 논의에서는 실존적 인간으로서 혁명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서술하고자 한다.
목차
- 이론적인 파트, 무엇을 ‘욕망의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다시금 검토
2. 적용하고 검증하는 파트, 들뢰즈의 세계관과 ‘실존’의 양립 가능성
- 로고스적 인간과는 다른 실존적 인간의 모습
- 혁명의 순간에 모습을 보이는 실존에 대하여
3.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혁명을 위한 윤리적 태도
-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인간과 그에 따르는 현실적 어려움
- 그럼에도 또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