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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인지15-2주차 후기] 상징계를 탈주하기

이희옥 2022.12.29 12:37 조회 수 : 71

 

  늦었지만 2주차 후기를 들고 왔습니다. 3주차 공지를 해주신 하린쌤이 지난 세미나에 대해 자세히 써주셔서 저는 단편적인 제 생각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2주차에는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에 대한 파트를 읽고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프랑스 철학은 인간의 존재와 주체에 대한 획득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이는 정신분석을 경유하는 푸코나 들뢰즈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분석하고자 인간이 지니고 있는 무의식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 프랑스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징계’에 존재하는 인간보다 ‘실재계’로 향하는 인간에 대한 분석이 우선되는 것을 고려하면 난해하고 현학적으로 느껴지는 프랑스 철학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가까이 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캉은 ‘주체’와 ‘타자’의 기준점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체는 무엇인가?’ 보다는 ‘주체는 어디에 있는가?’에 방점이 있고, 특히 ‘타자’는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동일자 외의 존재자가 아니라 상징계의 질서를 부여하는 언어이자 담지자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타자의 욕망이 정의하는 존재를 ‘나’라고 정의하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라캉이 말하는 상징계 안의 인간입니다. 이처럼 이전의 철학이 말하는 방향과 다른, 라캉식의 언어 전복은 기의가 기표 위에서 미끄러진다는 라캉의 말처럼 언어의 권력에 저항하려는 실천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라캉은 세미나를 거듭하면 같은 개념을 다른 언어로 명명하며 강의를 하였고, 자신의 저작을 남기는 것도 극도로 꺼렸습니다.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라캉의 세미나 또는 타의로 출간한 세미나 강의록에도 드러나지 않나 싶습니다.

 

  라캉에 대한 저의 짧은 이해를 덧붙이면 이렇습니다. 라캉에 따르면 무의식에서는 가부장적인 권력이 언어에 의해 작용하는데, 대타자 혹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인해 우리는 어린아이 일 때 빗금친 신체, 즉 충동을 포기하는 거세를 겪게 됩니다. 상징계에서는 이처럼 강제된 언어를 통해 강력한 규범과 억압이 뒤따르고 우리는 상징계의 체계에 적응하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상징계, 즉 대타자의 언어에 장악당하는 존재일까요? 라캉은 ‘대상a’라는 증상을 통해서 절대적인 언어와 명령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혼돈과 무질서라고 일컫는 실재계로 빠져나가는 것이 증상이라고 일컫는 정신질환의 일부일 수도 있으나, 라캉은 이를 주체적인 인간으로 보고 있으며, 정신분석의 치료에 있어서도 내담자에게 이러한 내적인 과정을 장려합니다.

 

  『철학의 외부』에서 설명하는 라캉은 저에게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라캉이 구조주의의 영향 아래 있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인 연관성을 밝힌 글을 읽지 못했는데, 이진경 선생님의 설명은 언어학적 배경이 강력해서 제가 이해하는 라캉과 다른 관점의 글처럼 느껴졌습니다. 라캉의 다른 면모를 발견한 것 같다고나 할까요? 제가 읽은 『세미나 11』은 라캉이 국제정신분석협회IPA로부터 파문당하고 난 해에 시작한 학문적 전환기의 강의라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간극을 확인하고 난 뒤 한편으로는 내가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일은 역시 불필요한 것임을 느꼈습니다. 라캉의 설명으로는 내가 읽고 터득한 언어의 체계는 상징계적 속성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강제되고 규정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이해가 라캉에 대한 편린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만, 임의적인 해석에 그친다는 불확실성은 글을 계속 파고들게 만드니까 그다지 나쁜 상황은 아닙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를 힘들게 했던 욕망의 그래프나 개념어(예를 들어 타자)등을 한 번에 다 알기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라캉이라는 낯선 강을 건넜다는 것에 우리의 당연한 세계를 탈주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자족하는 것도 라캉과의 만남에서 얻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대상 a’를 라캉으로 두고 실재계와 상상계, 상징계를 오가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서로가 이해하는 조각들을 꺼내어 맞추는 것으로 ‘억압’에서 벗어났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제 푸코가 추적하는 ‘에피스테메(epistēmē)’에 다가설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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