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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자본_에세이] SPC사건, 다시 보기

파도의 소리 2022.12.17 00:02 조회 수 : 51

SPC 사건을 다시 보기

: 맑스의 영감을 받아

이 기 헌

21세기에 자본을 읽는다는 것 

  소련의 붕괴는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영속을 확신하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로써 역사는 종말했고(프랜시스 후쿠야마), 앞으로의 세계사는 평화롭고도 지루한 나날만이 반복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거대담론은 낡은 것처럼 느껴지고 온갖 포스트모던한 것들이 세상을 요란하게 만들어 지루함을 달래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평화는 9.11 테러를 시작으로 깨졌습니다. 이후 이라크 전쟁, 2008 금융위기, 코로나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까지 이어진 흐름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미국 주도의 질서 등 기존의 세계가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결국 역사의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거대담론은 다시 부활했습니다.

  따라서 맑스의 자본은 다시 존재 의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경제 위기때마다 한 번씩 언급됩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사라집니다. 저는 그 작은 소리에 이끌렸고, 그래서 자본을 펼치게 된 것 같습니다. 왜 그런 낡은 책을 읽느냐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상상해보지도 않고,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은 거부하려 합니다. 저는 그 점에서 맑스가 선생으로 느껴집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해서 만약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말라는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이 수유너머를 넘어 널리 퍼지는 것을 상상해봅니다.

‘맑스 왈’보단 ‘내 생각에는’으로 시작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거인의 존재의의는 그의 어깨면 충분합니다. 모두가 그를 의식하지 않고, 단지 옛날 사람보다 조금 더 똑똑한 정도로, 사상사 한 켠에 나오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래서 몇 백 년 뒤의 학생들이 다음과 같이 대화하는 것을 상상해 봅니다. “옛날에는 자본주의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대.” “옛날 사람들은 바보인 것 같아.” ”맑스란 사람은 안 믿었다는데 나라도 안 믿었겠다.” “철학자들은 원래 당연한 걸 어렵게 말하는 것 같아.” 그러면 맑스도 허허 웃을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다음의 세계를 상상하는 사람이 하나 둘씩 늘어난다면 조금 덜 외로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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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라는 사건

  올해 10월 15일, 23살 여성 노동자가 SPC 계열사 파리바게뜨에 재료를 납품하는 공장에서 소스 배합기에 끼어 사망했습니다. 기계를 멈추는 장치가 있었지만 동료 직원이 거기에 없었기 때문에 조치가 늦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2인 1조로 근무를 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업무가 분담되어 있어 업무 도중 항상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지나친 근무 시간도 집중력 저하에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이후 SPC 회장의 사과가 이어졌지만 조문객 답례품 사건이 일어나 공분을 샀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SPC 계열사 제품 불매운동까지 이어졌습니다. 즉, 소비자는 비윤리적 경영을 한 SPC에 대한 응징을 요구한 것이며, 다시 말하면 이 불매운동은 소비자의 윤리적 선택입니다.

  소비자로서 SPC 물건은 사고 싶지 않습니다. ‘피 묻은 빵’을 산다는 것은 왠만한 거부감을 이겨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나쁜 기업을 잘 걸러낸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나 둘 씩 자연 환경과 동물, 여성, 노동자, 약소국의 시민들을 생각하지 않는 나쁜 기업을 혼내 주면 어느새 착한 기업만 남을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게 하면 되는 걸까요? 저는 그럴만한 자격은 없는 것 같습니다. 노동자를 그동안 억압했던 삼성 제품을 쓰고 산림을 망가뜨리는 맥도날드 햄버거는 참 많이도 먹었습니다. 물론 안 사고 싶었던 마음은 있었지요. 안타깝게도 전 인내심이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 기업들이 망한다는 소식은 들리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서 불매했으리라고 생각했는데요. 불매운동을 비난하는 의도는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에 경각심을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분명 기업들은 예전보다 조심할 것입니다. 하지만 SPC의 착취가 특별히 부도덕한 기업의 착취가 아니고, 자본주의의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 사건을 다시 한번 해석해보려 합니다.

  SPC는 과거부터 말이 많은 기업이었고 이는 SPC가 특별히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물론 최소한의 법조차도 지키지 않는 SPC 그룹이 아주 일반적인 기업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그 기업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조문객 답례품으로 자기들 회사의 빵을 줄 정도로 악독한 회장님? 만약 그렇다면 정부는 기업의 불법 행위를 열심히 감시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법망을 오밀조밀 만들어도 빠져나가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허망해 집니다. 이렇게 되면 도둑과 경찰의 무한한 실랑이가 반복될 뿐입니다. (마치 제논의 역설처럼!) 저는 여기에서 경찰이 많다는 것은 불행한 사회의 지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SPC사건, 다르게 보기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봅시다. 만약 SPC가 그렇게 한 원인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보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봅시다. 우리가 어떤 기업의 사장이라고요. 어쩌다가 사업이 잘되어서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회사 직원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호의’를 베풉니다. 야근도 적게 하고 월급도 따박따박 줍니다. 그렇게 회사 경영도 적당히 하려고 하는데, 경쟁사가 치고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고민에 빠집니다. 결국은 가격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데 현재 생산 체제로는 밀리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직원에게 야근을 시킵니다. 물론 지나치게 근무시간을 늘릴 수가 없으니 일을 빠르게 하라고 재촉합니다. 하청업체에도 최대한 원가를 낮춰서 계약합니다. 또 조금의 꼼수를 씁니다. 하지만 법을 어기지는 않았으니 괜찮습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기업이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소중한 직원들을 내쳐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 식구들의 삶도 불행해질 것입니다. 회사의 규모가 클수록 사회에 크나큰 해를 끼치게 될 것입니다. 나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본가는 그렇게 자신을 더럽혀 대의를 지키는 성인으로 둔갑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 것 같습니다. 경기도 안 좋은데 직원들 개개인을 배려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 거대한 기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유족들에게 크림빵을 준 것도 악의적인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만 이들은 거대한 이윤의 대가로 노동자에게 공감할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SPC 그룹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악한 기업일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가학적인 기업이 존립할 수 있게 하는 기반이 무엇인지 불매운동은 날카롭게 묻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작년에 유행했던 오징어게임을 보면 이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에서 참가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게임을 개최한 변태적인 부자들, 그리고 그것을 넘어 자본주의 사회가 그렇게 몰고갔음을 압니다. 그렇게 매체에서는 쉽고 간명하게 보이던 것들이 이 사회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징어 게임의 가면을 쓴 요원들이 인격이 없는 것처럼, 맑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 계급은 인격이 없습니다. 그들은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합니다. 비록 그것을 인지하더라도 우리는 그 대본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에서 개인의 운명을 직시하는 능력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악당을 원망하면서 똑같은 비극에 괴로워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불매운동은 무의미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교황을 죽인다고 해서 교회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또다른 교황을 세우면 그뿐입니다. 악독한 재벌이 감옥에 간다고 해서 그와 같은 재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다른 재벌이 그 자리를 차지하겠지요.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합니다. 이 불매운동이 성공하고, 심지어 SPC 그룹이 몰락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다른 기업이 교묘하게 따라할 것입니다. 맑스의 말처럼, 자본가에게 이윤이 보장되면 넘지 못할 법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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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을 고민해보기

  그렇다면 소비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소비자가 직접적으로 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불매운동 말고 없지 않나요? 이 답을 구하려면 기존의 불매운동을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기존의 불매운동의 성격은, 목적이 무엇인지 불분명했다는 점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나쁜 짓을 안 하는 정도의 수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뚜렷한 목적도, 정치성도 약했고 있더라도 선정적이었습니다. 제가 대안을 생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만약 뚜렷하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소비자 운동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명확한 정치적 목적, 의도: 거창한 자본주의 타도 같은 목적이 아니어도 좋을 것입니다. 다만 운동에서 지향하는 소비자의 정체성과 소비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운동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명확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조직력: 첫번째 방법이 명확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올 특징일 것입니다. 산발적인 소비자 집단은 시간이 지나면 와해되기도 쉽고 힘도 약할 것입니다. 이러한 특징들이 지향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노동자의 힘과 더불어 소비자의 힘으로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여태껏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계급이 프롤레타리아 하나였다면 이와 친근성을 가지는 계급의 힘을 이용하자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겠지만 가볍게 생각은 해볼 수 있겠습니다. 불매운동이 부정성에 근거한 운동이라면 긍정성에 근거한 운동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단순한 윤리적 소비와 차별되는 지점이 있어야 할 것이고 지역 소비 등 거대 자본에 반대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그러한 소비를 할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지 고려해봐야 할 사항일 것입니다.

   불매운동의 한계에서 보았듯이 소비자 운동이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를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는 미지수입니다. 또한 그럼 왜 그동안 노동자와 소비자의 연대가 왜 이루어지지 않았는지도 비판할 점일 것입니다. 그러한 점은 제가 더 공부를 해보야 할 문제입니다. 다만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집단 중의 하나인 소비자의 가능성을 탐구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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