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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자본_에세이]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

초보(신정수) 2022.12.12 19:25 조회 수 : 70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 

신 정 수 (수유너머 초보)

 

   프롤로그   

마르크스는 살아생전 어머어마한 저술들을 남겼다. 각종 신문과 단체에 공표한 글부터 엥겔스 및 지우들과의 서신 그리고 [헤겔 법철학 비판]부터 [자본]까지 수많은 자료들이 있다. 마르크스=엥겔스의 모든 글들을 모은 MEGA(Mark-Engels-Gesamtaugabe,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의 경우 114권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마르크스는 자신이 가장 많은 시간과 공력을 들인 [자본]을 처음 플랜대로[1] 책을 마감하지 못하고 영면에 들었다. [자본] 중 마르크스가 직접 검수와 탈고를 통해 출판된 책은 독일어로 쓰여진 1867년 [자본1]과 프랑스어판 [자본1]이 있고 [자본2], [자본3]권은 마르크스 사후 그 원고들을 엥겔스가 모아 편집하며 발행하였다. 심지어, 마르크스가 처음 기획했던 ‘정치경제학 비판’은 총 72권이라는 문헌학적 조사가 있다.

이런 배경속에 [자본]에 대한 여러 해석서들이 존재하게 된다. 더군다나, 단순한 경제학자가 아니라 철학과 사회학 그리고, 각종 자연학까지 근대로의 전복성을 지녔던 마르크스의 저술은 여러 방면으로 읽힐 수 있는 조건들이 있게 된다. 가령, 마르크스는 총 3번의 [자본]에 관한 초고를 남겼다. 1857~58년 사이 집필된 [요강], 1861~63년 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1864~65년 사이에 집필된 초고가 있다. [자본]에 대한 최고의 해설서라고 불리우는 로만 로스돌스키(R. Rosdolsky)의 [마르크스의 자본론 형성]의 경우 [요강]을 기초로 해서 [자본1]권과의 차별점과 발전성 그리고 연관성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밖에도  알튀세르와 네그리의 [자본] 분석도 [요강]과 [자본1]간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서술한다.[2]

우리가 문헌학자는 아니므로 과감히 이 정도에서 생략하고 [미지의 마크크스를 향하여]가 주목하고 있는 [63년 초고]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두셀에 따르면 1980년 독일어로 완역되어 나온 [63년 초고]야말로 마르크스의 [자본]에 대한 철학, 서술방법, 각종 범주들을 개념화하여 생산한 최초의 플랜이라고 생각한다.[3] 두셀이 [요강]보다 [63년 초고]에 더 무게중심을 두는 까닭은 시간적으로 후대에 씌여져서 더 마르크스적이다라는 사고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가 자본의 개념들을 정초한 최초의 시도이기에 [자본]에 대한 그의 철학과 윤리학을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4] 1977년부터 근 10년에 걸쳐 마르크스의 저작을 숙독한 두셀은 [요강], [63년 초고] 그리고 [65년초고]를 완독한 끝에, 라틴 아메리카 학자의 입장에서 본 자본의 해설서를 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본 책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이다.[5]

 

   자본의 외부성 ‘산노동’   

두셀이 이 책에서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은 자본의 외부성 또는 외재성으로서의 ‘산노동’이라는 개념이다. 두셀은 자본의 외부성이라는 그만의 시각을 구축하기 위해 마르크스가 [요강] 집필시 다시 읽었던 헤겔의 [대논리학]의 주된 범주인 ‘총체성’ 범주를 들여와 설명한다. 두셀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자본]은 총체성으로 덮여 있는 저술이라는 시각이다. 알튀세르의 경우 헤겔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하며 [자본]을 서술했다고 [자본론을 읽는다] 에서 주장했지만 두셀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다.

루카치, 코지크, 블로흐에 따르면 총체성은 마르크스의 사유에서 정초적 범주이다. 이것이 정초적 범주인 이유는 이것을 존재 지평으로 이해하고 현존재들이 그 내부에서 터를 잡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 자신을 가치증식하는 가치로서 자본이라는 존재는 화폐나, 상품 등등을 존재론적으로 정초한다. 총체성은 모든 존재론의 두드러진 범주인데 존재란 주어진 세계 또는 체제의 일례로 자본 총체성의 지평이라는 점에서다.[6]

[자본]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총체성’ 개념을 아주 단순하게 달리 표현하면 ‘사회성’ 의 개념으로 요약될 수 있다. 특히, 사용가치와 가치의 속성, 사회적 평균노동시간의 개념,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의 성격에서 그대로 묻어 나오게 된다. 즉, 개별적으로 정초된 범주이지만 자본의 세계에서는 이미 여러 관련성.사회성으로 묶여있는 범주라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에 서술된 세계는 ‘자본’외의 세계에 대해서는 서술하지 않고 있으며 이미 존재하고 있는 또는 구조와 전체로서 존재하고 있는 ‘자본주의’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바는 자본에 대한 존재론적 분석(그것의 토대, 그것이 표명되는 현상형태의 원천으로서 본질 혹은 존재의 정체를 발견하는일)을 즉, 저 자신을 가치증식하는 가치에 대한 분석을 보이는 것은 오직 비판적인 위치(우리가 존재론적이라기 보다는 형이상적이라고 불렀던 위치)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자본에 대한 존재론적 비판은 자본주의의 실천적 바깥으로부터 가능하다. 요컨대 (대상일 수 없으므로 내 세계의 지평이 되지 않는) 자본의 총체성을 주된 내용으로 편성함으로써 말이다.‘외재성’은 자본의 ‘총체성’이 비판 아래 놓이도록 만들어주는 실천적 조건이다. …. 이와 같은 ‘외재성’은 타자의 현실이 있는, ‘자본’ 아닌 것이 있는, 산노동자가 자본이 아직 포섭하지 않은 자기 육신으로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7]  

그렇다면, 자본의 총체성은 도대체 어디서 오게 되는 걸까? 이에 대해 두셀은 [63년 초고]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63년 초고]의 기획안은 다음과 같다.

  1. 화폐의 자본으로 전화
  2. 절대적 잉여가치
  3. 상대적 잉여가치
  4.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의 결합
  5. 잉여가치론
[8]

두셀은 ‘화페의 자본으로 전화’는 초월론적 ‘이행’ 이라는 마르크스의 의견을 차용한다. [요강]에 나온 대로 ‘상품이 화폐가 되는 것은 그저 변화이지만, 화폐가 자본이 되는 것은 형이상학적 도약이며 근본적인 전위’라고 본다. 즉, ‘자본’의 총체성은 자본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외부의 이런 초월론적 이행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이런 의미에서 두셀은 화폐도 자본의 외재성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순한 외재성이 아닌 초월론적 이행을 통해 자본을 잉태한 그런 외재성이라고 본다.  위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두셀은 자본주의 세계 너머로 나아가는 ‘이행’의 문제도 다시 ‘화폐의 자본으로의 이행’을 돌이켜보며 자본의 외부성이 이행의 근본이 될 텐데 그것이 바로 잉여가치의 개념에서 비롯된 ‘산노동’이라는 관점이다. 참고로, 마르크스에게 ‘잉여가치’라는 범주는 그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며 이전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발견할 수 없었던 한계를 넘어서는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자평한 바 있다.

대상화된 노동의 유일한 반정립은 대상화되지 않은, 산노동이다 전자는 공간에 현존하고 후자는 시간에 현존하며, 전자는 과거속에 있고 후자는 현재속에 있으며 전자는 사용가치속에 이미 구현되어 있고 후자는 과정중의 인간 활동으로서 자기 대상화 과정에 지금 참여하고 있는 상태이며 전자는 가치이고 후자는 가치를 창조하는 활동이다 (MECW 30:35 MEGA 30 [초고 1분책]60)[9]

이 시점에서 과연, “과연, ‘산노동’이 자본의 외부성인가?”라는 질문을 당연히 던지게 되는데 이에 대한 두셀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노동이 자본 자본에 포섭될 적에 그것은 자본 내부의 규정이 되며, 따라서 자본의 총체성에 근거를 둔다. 하지만 그것이 아직 총체화되지 않는 동안, 산노동은 현실성(마르크스에게 가장 절대적인 현실이자 자본의 총체성속의 모든 탈실현의 규준)이며, 외부에 있다. 노동자가 육신성(벌거벗은 몸의 가난하고 육체적인 현존)으로서, 인격으로서, 자본 아닌 존재로서 자리 잡은 이런 형이상학적 위치에 대해 우리는 이 위치를 외재성이라고 즉 자본에 대한 타자성이라고 불러왔다.[10]

두셀은 이런 ‘외부성을 통한 총체성 분석’이 [자본]에 녹아있는 마르크스적인 철학의 기초라고 주장한다. 즉, 헤겔적인 ‘총체성’을 넘어설 수 있는 ‘외부성’이라는 범주를 통한 [자본]의 분석이 바로 ‘정제경제학 비판’의 핵심이며 이를 통해 마르크스는 헤겔을 넘어설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고 본다. 덧붙여, 이런 철학적 서술이 가장 잘 서술되어 있는 원고가 바로 [63년 초고]라는 게 두셀의 입장이며 이에 기초하여 [자본]을 분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63년 초고]의 역사적 의미는 잉여가치 범주에 대한 정립과 잉여가치에 대한 논리적/역사적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잉여가치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자본의 외부성 그리고 이행에 대한 단초를 발견했다고 두셀은 주장한다.  두셀이 언급한 자본의 ‘외부성’은 바로 유일하게  ‘산노동’ 에만 존재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두셀의 논의를 다소 길게 따라가 보면 다음과 같다.

매일같이 자신의 아무것도 아님으로부터 절대적인 무로, 사회적인 비실존이자 따라서 현실적인 비실존으로 전락할지도 모를, 단순한 노동자로서 인간의 추상적 실존 (MECW 3:285:MEW1 607 [경제학철학수고] 71). 다르게 표현하자면 마르크스가 보기에 노동의 주체로서 인간은, 임노동 즉 자본에 포섭된 노동이 아닌 인간은, 자본에 자신의 노동을 판매하지 않았을 때엔 자본에 대해 현존하지 않는‘유령’의 형상이다. ………중략 ……. 몇 년전 내가 '해방철학'에서 제안했던 주체가 뚜렷하게 있다. ‘총체성’과 다른 ‘타자’. ‘외재성’속의 타자는 체제의 존재에 대해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만 그러나 여전히 현실적이다. 타자의 현실성은 총체성의 존재 너머로부터 저항한다. 총체성으로서의 자본에서 외부적인 현실적인 비임금노동이 외재성이다.[11]

이렇게 자본의 총체성과 관련한 ‘산노동’의 외부성은 마르크스 담론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제약조건이다. 두셀은 이 부분에서 부르주아적 시야를 넘어서는 마르크스의 시각을 가지게 되며 이에 기반한 [자본] 분석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노동이 갖는, 노동자 육신의 현실성이 갖는, 혹은 다른 말로 노동자의 인격 또는 주체성이 갖는 절대적 지위(마르크스 사유의 총체성에서 유일한 실제 절대성이자 마르크스의 윤리적 판단 전체의 윤리적 준칙)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부르주아 경제학(과 ‘지배철학’으로서의 부르주아 철학)은 필연적인 해석 오류에 빠지게 된다. 마르크스가 수행한 분석의 진리는 자본과는 상이한 타자의 실제적 현실에 달려 있으며 이로부터 출발한다. 여기서, 자본과 다른 타자란 현실성으로서의 산노동이며 가치의 창조자로서의 즉 자본주의적 것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부 일반의 원천으로서의 산노동이다.[12] 

 

   자본의 외부인 산노동의 철학적 의미   

그렇다면, 마르크스적 시선을 갖게 된다고 두셀이 주장하는 자본의 외부성인 ‘산노동’이 가지는 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두셀의 답은 현재적 상태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이행을 사고할 수 있는 현실태에서 출발한다. 두셀이 보기에 자본이라는 물신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실제적 인격이고 산노동이되, 자본 입장에서는 잉여주체로만 생각되는 ‘살과 피를 가진 인간’ 이 ‘철로 만든 인간’과 맺는 명시적 관계를 재확립하는 것이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산노동과 죽은 노동이 만나는 지점이 되는데, 이부분에서 두셀은 ‘노동이 전부다’라는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려온다.

노동은 교환가치의 유일한 원친이며 사용가치의 유일하게 활동적인 창조자이다. …. ‘자본은 전부다’라고 당신은 말하고, 노동자는 아무것도 아니거나 다만 자본의 생산비용이라고 말한다. 당신은 스스로를 반박해버린 것이다. 자본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이 전부다(Die Arbeit ist alles).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의 이해관계를 옹호하는 모든 저술이 가진 최종적인 의미다. (MECW 32:394:MEGA:1390)[13] 

마르크스의 이러한 입장 또는 [자본]의 서술방법이 최초로 정립된 초고가 바로 [63년 초고]이며 그러기에, [요강]보다 더 마르크스적인 시선을 가지게 된다. 또한, 두셀은 철학자답게 이러한 ‘외부성’에 입각한 마르크스의 철학이 단순히 헤겔을 우연히 넘어서는 발걸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마르크스가 주목했던 만년의 셀링 철학을 통해 헤겔주의의 전도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만년의 셀링의 계승자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적어도 1841년 베를린에서 헤겔을 비판했고, 헤겔 철학을 부정성으로 놓고 긍정적인 철학, ‘실존으로부터 출현한 철학, 실존으로부터, 말하자면 현실태, 즉 현행중임으로 출현한 철학을 단언했던 셀링의 계승자가 마르크스이다. 여기에서는 실제적 관계가 정초적이다. ‘인격은 인격을 추구하는 까닭이다.’ 개념 너머는 현실이다. 만년의 셀링에 힘입어 포이어바흐는 반헤겔주의적 비판을 개시하고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었다.[14] 

새로운 철학은 이성에 의지하여 저 자신을 지탱한다. ….그런데 인간이 본질적으로 소유한 이성에… 인간의 혈액으로 가득찬 이성에 의지한다. 요컨대, 고대 철학은 이렇게 말한다. 이성적인 것이 참이고 현실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새로운 철학은 이렇게 단언한다. 인간만이 참이고 현실이다.[15]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감각적 유물론이 갖는 직관적 혹은 인지적 의미를 비판하지만, 오직 공동체(Gemeinschaft) 가 해방이고 무한하다는 사실, 또 무엇보다 참된 것은 인간의 삶과 본질의 총제다’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했다. ...... 마르크스는 노동자로서, 즉 노동한다는 생생한 행위의 주체적 인격으로서 인간의 현실적 외재성을 긍정하고 ‘노동이 전부다’라고 쓴다. 이 문장은 그가 오래된 비판적 전통속에 , 그러나 이제는 반헤걸주의적 초월성과 더불어 있음을 전제한다. [16] 

아주 단순하게 요약하면 [자본]의 기본 범주들은 헤겔적인 철학방법을 차용하지만, 마르크스가 [자본]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잉여가치의 창조적 원천인 ‘산노동’을 강조한다는 점은 셸링의 헤겔 비판에 기초한다는 의미다. 헤겔에 따르면 ‘존재가 본질에 이르는 것은 자기 전개의 결과’이며 그 어떤 외부적 요소도 이 전개에 필요치 않다. 반면 셸링에 따르면 ‘존재의 ‘창조적 원천’은 존재보다 먼저 그 외부에 현존한다.’ 존재는 이 ‘창조적 원천’의 효과로서 설명된다. 이러한 철학적 분석은 두셀뿐만 아니라 마이클 레보위츠의 1992년 저서에서도 주장된다. 

따라서, 마르크스 이론의 핵심개념은 외재성(산노동이 있는 영역)이지 총체성이 아니다. 마이클 레보위츠의 1992년 저서([자본론은 넘어서] 1999. 홍기빈역. 백의)의 제3장 또한 두셀과 흡사한 방식으로, 자본이 헤겔식 자족성이라는 의미의 총체성이 아니며 자본은 그 현존의 조건으로서 산노동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17]

이런 철학적 분석을 통해 두셀이 철학적.윤리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해방철학’이다. 오직 '산노동'만이 자본의 외부성으로 다른 세계로의 이행을 촉진할 수 있으며 이는 기본적으로 마르크스가 사고했던 ‘프롤레타리아의 의식’의 발현이다. 이미, ‘자본’에 의해 왜곡되고 착취된 현실에서 ‘산노동’을 통한 해방만이 물질과 정신 모두에서 ‘프롤레타리아 의식’의 역사적인 실현이 된다는 주장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철학은 마르크스로부터 배울 것이 너무 많다. 마르크스의 ‘과학’은 유럽의 19세기 후반, 임금노동으로서 자본에 소외된 산노동의 ‘해방철학’이었다. 오늘날 ‘해방철학’은 저발전 주변부 민중 계급의 소외된 산노동에 대한 과학을 통해, 그리고 민중적인 변형과정 중에 중심부와 주변부의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소위 제3세계 사람들에 대한 과학을 통해 21세기의 서두에도 마찬가지로 구성되어야만 한다.[18]    

    에필로그    

이 에세이의 목적은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에 대한 독후감이다. 사회과학 서적에 대한 독후감을 쓴다는 것은 배경적 또는 전문적 지식을 아주 많이 필요로 한다. 그런 면에서, 아마츄어이고 관련학자가 아닌 필자의 입장은 다소 수세적일 수 밖에 없지만 다소 왜곡된 정리 및 오해가 있더라도 이를 무릎 쓰고 본 에세이를 감행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그것은 대부분 최초 동기로서 이해되는데, 2022년 4월부터 진행된 [북클럽 자본]이라는 수업을 하며 가졌던 [자본]에 대한 상세하고 친절한 해석을 접하며 또다른 [자본]에 대한 여러 해석서들을 독서하는 중에, 21년에 비로소 번역되어 나온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여러 책들이 있지만 관심을 가져 에세이의 주제로 선택하게 된 이유는 다소 이질적이다.

먼저, 첫번째는 마르크스에게 있어 ‘외부성’이라는 개념을 중시했던 책 소개에 따른 것이었다. ‘외부성’이라는 개념은 수유너머 공동체가 일종의 결과물로 작성한 [코뮨주의]의 주된 철학적 개념이다. 또한, 이진경 선생은 자신의 유물론 철학을 정리하며 ‘외부성에 의한 유물론’이라는 개념정의로 자신의 철학을 정리한 바 있다. 즉, 이진경 선생의 그런 개념과 [미래의 마르크스를 향하여]의 저자인 두셀의 문제의식에 교차성이 있다면 ‘외부성’을 통한 사유는 공히 ‘공식적’ 그리고 ‘글로벌적’이 될 수 있다. 사실, 사유에 있어 ‘공식적이고 글로벌적’이라는 의미는 너무 속물적이긴 하나 이 보다 더 달콤한 주변부 지식인의 자괴감 섞인 고백이 있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잠깐의 단상을 말해보면 이진경 선생이 [자본을 넘어선 자본] (2004 이진경, 그린비 출판사)에서 분석틀로 사용한 ‘외부성’ 개념은 ‘자본의 논리 내지 정치경제학의 논리로 환원 불가능한 어떤 것을 표시하는 …자본의 논리를 의미하는 공리계 외부’를 표시한다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두셀의 경우 [자본]의 내적 논리 체계에서 ‘외부성’을 발견하였다면, 이진경 선생의 ‘외부성’은 ‘자본주의’ 체계에 속하기도 하고 이탈하기도 하는, 자본의 내부성이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자본의 외부성 개념을 뜻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진경과 두셀이 공유하는 외부성의 개념은 자본의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외부성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런 부분을 통해 이행의 가능성을 사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두셀의 다른 저작을 읽지 못했기에 그가 과연 이진경 선생이 얘기하는 자본의 외부–구체적으로 지구 환경. 또 다른 공동체, 경제외적인 경제–와 동일한 평면을 공유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산노동’이라는 외부성을 통해 ‘이행’의 단초를 마련한다는 철학적 사고는 유사성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노동이 전부다’라는 두셀의 주장처럼 현대 정보주의 사회를 분석할 수 없는 의미의 ‘산노동’이라면, 이진경 선생의 그것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된다. 누구의 ‘외부성’이 옳다는 논증보다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부각하는 정도로 필자의 의견은 정리한다. 그러나, 두셀이 선보였던 해방철학의 무기로서 외부성인 ‘산노동’의 개념이 라틴아메리카 또는 주변부 자본주의의 현실인식을 밑바탕에 두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가졌던 두번째 독서 동기는 두셀이라는 저자가 갖는 소수성 또는 주변부성이었다. 한국사회에서 마르크스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마르크스학이 지닌 혁명성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여타 주류학문과 유사하게 중심부성이 있다. 그것이 서유럽이든 소련이든 상관없이 어느정도의 중심성을 띄고 모든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이런 점에서 라틴 아메리카 저자가 갖는 마르크스학은 다른 소수성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셀은 이런 면에서 알튀세르의 [자본]분석 더 나아가 ‘마르크스 분석’에 분명히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아주 단적으로 마르크스에게는 ‘심급’이라는 의미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존재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더군다나, 알튀세르가 언급한 경제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심급을 언급하며 과연 이런 구분이 어떤 타당성을 지니는지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던 기술적심급(과학기술적 심급)은 왜 언급조차 안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5개월간 [북클럽 자본]을 수업하며 가졌던 수많은 생각중 가장 떠나지 않는 것은 마르크스가 가졌던 [자본]에 대한 분명한 서술목적이다. 마르크스는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하게, 주변에 펼쳐지는 자본의 신세계에 대한 반감과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근본적인 연민을 가지고 있었다. [자본]은 그러한 마르크스의 생각을 가장 과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구현한 저술이었다. 인류가 지구에 와서 수만년에 걸쳐 누적하고 있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무한대한 창의력 그리고, 다양한 감수성이 개별적으로 펼쳐지는 자유로운 개인의 공동체가 구현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던 마르크스는 19세기 후반이라는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시대 초월적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마르크스가 문제점으로 삼았던 자본주의의 병폐들이 해소되지 않는 한, 그의 분석은 소수자의 편에서 항상 유용할 수 밖에 없다. 두셀은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의 두번째 세기(1983~2083)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번쨰 새로운 세기(Century)는 첫번째 세기(1883~1982)보다 더 자유롭고 풍요로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두번째 세기의 첫걸음로서 ‘외부성에 의한 사유’를 두셀은 제시한다. 이진경 선생에 따르면 들뢰즈와 마르크스가 만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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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본의 ‘플랜’논쟁은 ‘요강’에서 비롯되는데 최초의 '정치경제학비판'으로 기획된 [자본]이 총 6부의 목차를 가진다는것이다. 1)자본 2)토지소유 3)임금노동 4)국가 5)외국무역 6)세계시장과 공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정치경제학 비판 플랜과 ‘자본’] 김성구. 2008.02 ‘마르크스주의 연구’ 논문 참조.  그리고, 본 에세이에서는 편의상 57~58년 원고를 [요강], 61~63년 초고를 [63년초고], 그리고, 64~65년 초고를 [65년 초고]라고 명칭하겠다.

[2] 국내에 번역된 책을 중심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형성] (로만 로스돌스키, 백의, 정성진역), [맑스를 넘어선 맑스] (A.네그리, 새길, 윤수종역),  [자본론을 읽는다] (알튀세르외, 두레, 김진엽역). 이 밖에, 국내의 대표적인 마르크스 경제학자인  윤소영 교수등이 중요한 마르크스 [자본] 연구자로 소개하고 있는 헨리 그로스만의 경우, 국내에 번역된 책은 [자본주의 체계의 축적과 붕괴법칙] (실크로드 임필수역) 이 있다. ‘자본 플랜 변경설’을 채택하고 있는 그로스만의 경우 [요강]보다 [63년 초고]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그 근거를 마르크스의 문헌학적 조사를 기반으로 ‘정치경제학 비판’의 관점에서 변경설을 채택하게 된다.       

[3] [63년 초고]와 [요강]을 간단히 비교해보면 [요강]의 경우 마르크스가 런던에서 7~8년동안 연구한 결과인데, 여기에는 상품의 이중성과 노동의 이중성에 대한 분석은 있지만 가치형태에 대한 분석은 없다. 이에 반해 [63년 초고]의 경우 가장 중요한 무게중심은 ‘잉여가치’에 대한 논리적/역사적 분석이 있다는 점이다. [요강]의 경우 잉여가치에 대한 논리적 분석만 있을 뿐 역사적 분석은 결여되어 있는데 [63년 초고]에는 이에 대한 분석이 종합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에 따라 가변자본-불변자본, 고정자본-유동자본에 대한 범주 확립도 [63년 초고]에 기술되어 있다.  _[마르크스의 자본] P 45~46 요약, 윤소영저, 공감출판사

[4] 내가 보기에 두셀의 책은 로만 로스돌스키의 [마르크스 자본론의 형성]보다 더 중요하다. ….. 로스돌스키의 책은 [요강]에만 관한 것이고, 두셀의 3부작보다 훨씬 덜 정교하다. 두셀이 둘도 없이 기여한 바는, 그가 마르크스 경제학 초고들에 대해 아주 높은 수준의 철학적 이해를 쏟아 붓는 데에 있다. _[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 P16, 엔리케 두셀, 갈무리

[5] [65년 초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여기에는 [자본1권]에 대한 정서된 원고와 이후 엥겔스가 편집 발간한 [자본2권]의 최초의 원고가 있으며 이후  [자본3권]의 주된 내용들이 들어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 사후 [자본2], [자본3]을 출판하면서 2권의 경우 [‘65년 초고’+’71년 원고 2 + 81년 원고 8’]을 결합하여 발간하였고, 3권의 경우 [’65년 원고’ + 68년 원고+78년 원고]를 기초로 작성되었다. – – [마르크스의 자본] P47 요약. 또한, 두셀은 본서 말고 마르크스의 경제학 초고 전체에 대한 3부작을 썼는데, 나머지 둘은 ‘요강’에 관해 쓴 [마르크스의 이론 생산](1985)과 나머지 경제학 초고에 관해 쓴 [최종적 마르크스와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1990)이다.

[6]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 P373

[7] Ibid P374

[8] Ibid P50

[9] Ibid P58 (재인용)

[10] Ibid P59

[11] Ibid P376

[12] Ibid 60

[13] Ibid P298 (재인용) 

[14] Ibid P305 

[15] Ibid P305 (재인용. 포이어바흐 [미래철학의 근본원리] 313)

[16] Ibid P306

[17] Ibid P14

[18] Ibid P324

[19] [자본을 넘어선 자본] 2004. 이진경저,   P461

 

   참고 문헌   

[자본 1,2,3] 마르크스 저, 강신준 역. 길 출판사

[북클럽 자본] 1~12권  고병권저.  천년의 상상

[마르크스의 자본] 윤소영, 공감

[자본을 넘어선 자본] 이진경, 그린비

[맑스 너머의 맑스] 안토니어 네그리 저. 윤수종 역 새길

[자본론을 읽는다] 루이 알튀세르 저. 김진엽 역. 두레

[정치경제학 비판 플랜과 ‘자본’] 김성구.  2008.02  ‘마르크스주의 연구’

[들뢰즈의 유물론, 혹은 외부에 의한 사유] 이진경  2016. 13권 1호 마르크스주의 연구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 엔리케 두셀 저, 염인수 역.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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