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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워크와 인정투쟁의 종말

/ 정 진 영

 

왜 안티워크인가?

재취업을 위해 구직 사이트를 열심히 드나들던 올해 1월 어느 날이었다. 영어 구문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의 레딧(Reddit)을 들어갔더니 서로 안티워크(Anti Work)에 동참하겠다고 난리가 났다. 레딧(Reddit)은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커뮤니티 사이트이다.  미국 전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퇴사(the Great Resignation)와 조용한 퇴직(Quiet Quitting)의 물결에 일시에 올라탔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노동거부를 생각해 본적도 없던 내게 그들의 자발적인 퇴사 운동은 신선한 충격과 호기심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커뮤니티 내에서 다양한 업종의 생생한 직장생활 경험담이 오고 갔다. 어떤 이들은 팬더믹에 출근을 안하다보니 여유 시간이 늘어난 것이 좋아 직업적 성취 대신 자발적 게으름을 선택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떤 이들은 직장으로 복귀하라는 상사의 연락을 받았고, 연봉 인상에 대한 제의까지 받았지만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밤낮으로 매달려 프로젝트를 완수했지만 불합리한 처우를 받은 프리랜서들은 자신의 경험담을 상세하게 공유했다. 더불어 수 많은 시간제 근로자들도 자신이 겪은 부당한 대우에 대해 상술하며 차라리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경험담들은 사표 제출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특정 기업에 대한 불매를 주도하기도 했다.

레딧의 안티워크 커뮤니티는 포스트 레프트 아나키즘(post-left anarchism) 내 안티워크 사상에 대한 토론의 장에서 20013년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코로나 팬더믹의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근무 시간이 줄어 들면서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2021년 10월 창고에 근무하는 직원이 그의 상사에게 보내는 사직문자를 인증했는데, 이것이 다른 사용자들의 연쇄적인 사직문자 발송 사태를 불러 오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직장을 구하기도 힘든 시대에 왜 안티워크인가? 매사추세츠대 톰 쥬라비치 교수의 언급처럼 “코로나 때문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노동이 중단”되었다. 그리고 “이런 순간에 사람들은 반추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근무 조건에 불만이 많았지만 참고 일하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특히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코로나는 극심한 불평등을 잔인하게 드러냈다."

‘안티워크’는 단순히 일하지 않고 놀고 먹겠다는 운동은 아니다. 안티워크의 구성원들은 직업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갖고 있다. ‘안티워크’에 동조하게 된 계기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지만, 크게는 현대 직장을 지탱하는 경제 질서를 타파하려는 움직임에 가깝다. 그래서 안티워크의 지지자들은 "사람들이 초과 자본이나 상품을 만들기 위해 더 오랜 시간을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스스로 조직하고 노동해야 한다"고 믿는다. ‘안티워크’ 커뮤니티에서 내걸었던 슬로건은 ‘부의 평등’과 ‘건강한 근로조건’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노동운동이 노조지도부가 주축이 되어 파업을 이끌어내거나 임금상승 투쟁에 집중했다면, 안티워크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하여 다수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노동을 거부함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이 지닌 모순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특성상 파급력은 커지고, 집단지성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기발한 방법들이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안티워크는 창의적인 프롤레타라이트 운동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임금노동자는 프롤레타리아트인가. 그 답은 임금노동자들이 자본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잠재력을 얼마나 품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자본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자본의 기능(function)이 아니라 기능부전(malfuntion)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성을 내비칠 때 우리는 이들을 프롤레타리아트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북클럽 자본 11권 노동자의 운명/고병권)

 

인정 대신 만족

인간은 정서적인 존재로, 권리의 담지자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때 자기실현에 도달할 수 있다. 만일 이러한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이는 단지 심리적 불안이나 사소한 박탈감에 그치지 읺는다. 인정을 통해 긍정적 자기관계에 도달하지 못한 개인은 자신의 삶 전체에 대한 위협을 느낀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좋은 삶을 위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것이 호네트가 규정하는 인정을 둘러싼 투쟁이다. ([악셀 호네트에서 인정과 순응의 문제: 이데올로기적 인정 개념을 중심으로] 장성빈)

어린시절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인정욕구’는 장밋빛 미래를 견인하는 동력이 되었다. 더욱이 성인이 되어서의 ‘인정욕망’은 나를 경마장의 말처럼 달리게 했다. 그런데 짧지 않은 직장생활을 하는동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여유 시간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매번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어떻게 밑그림을 그려야할까 궁리했지만 정작 나의 미래 노동에 대한 청사진을 스스로에게 제시하지 못했다. 스스로 일이 재미있다고 생각한적도 많았지만 동료, 상사,고객에게 인정받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타부서의 무리한 요청도 거절하지 못하고 두가지 상반된 업무를 동시에 하기도 했다. 프로그램 버그로 계속 10시까지 근무해야 할 때, 연차 휴가를 모아서 사용하는 것도 눈치가 보일 때는 회의감에 시달렸지만 쉽게 직장을 떠날 수 없었다. 명함이 있다는 것이 안전하게 여겨졌고, 여유시간에 대한 목마름은 소비에 대한 탐닉으로 대체되었다. 나는 직장생활을 통해 ‘인정투쟁’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노동은 ‘인정시스템’에 ‘순응’해 나가는 과정이 되었다.

안티워크에서 나타난 중요한 지점은 자발적인 노동 거부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노동,직업에 대한 미래 계획을 사회의 기준이나 타인의 인정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조직한다는 것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과로하던 일상을 벗어나 삶과 일의 균형을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각성했고 자신을 위해 일하는 길을 선택했다. 노동하는 삶에서 줄기차게 ‘인정’을 구하는 대신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노동이 즐거울려면

노동자는 자신이 자기 몫으로 생산해낸 것을 돌려받으면서도, 게다가 자본가의 몫까지 생산해 주었는데도, 자본가에게 “내 덕분에 먹고 사는 줄 알아”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북클럽자본 10권: 자본의 재생산] 고병권)

하루 8시간 근무한다해도, 나머지 시간도 대부분 출퇴근을 위한 시간으로 쓰였다. 오후 3시쯤 10분정도 편하게 커피를 마시려 해도 왠지 눈치가 보였다. 회사대표만 “내 덕분에 먹고 사는 줄 알아”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같은 팀에서 일하는 직속 상사에게서도 들었던 말이었다. 내 시간을 투자하고, 내 신체와 정신을 소모해 일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현실은 노동을 통한 ‘자기 인식’도 사치라고 할만큼, 바깥 환경은 더욱 녹록치 않다. 우리나라 상위 10%는 전체 부의 58.5%를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자산의 격차가 낳은 불평등의 구조는 더욱 공고해져 가고 있다. 노동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 넣어도 ‘인간재료’로만 사용되는 상황도 나아지질 못했다. 우리의 노동이 즐거울 수는 없을까? 비노동이어도 잘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안팎으로 ‘자본이 만들어내는 모순’은 갈수록 우리를 압박할 것이기에, 그래서 우리에게는 ‘노동의 미래’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이 필요하다. 가령 우리 ‘노동의 미래’에 서울에서 중산층으로 살아갈 상상력만이 존재한다면 삶은 얼마나 팍팍해질까? 그래서 노동의 적절한 ‘사용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우리의 시간을 쓰고 정신과 신체를 소모하는 노동이 만들어내는 ‘사용가치’가 소비나 부동산에만 한정된다면 ‘자기착취’는 무한 반복되며, 이 대열에 낄수도 없는 사람들의 소외는 구할 수 없을 지경이 될 것이다. 더불어  안티워크 운동과 같이 기존의 구조화된 일자리를 벗어 던지는 다수의 시도가 반복되고 서로 연대할 때, 변화의 순간은 올 것이다. 과로하지 않아도 되는 적정한 일을 한다면 눈치를 보고 사용해야 했던 우리의 자유시간은 확대될 것이다.

자유시간의 확대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그것을 이들은 ‘문화사회로의 이행’이라고 부른다. ([노동거부의 정치학: 새로운 ‘구성’을 향한 투쟁] 고병권)

적정한 일을 한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고물가시대에는 ‘생존’에 직면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안티워크가 포함되는 다양한 노동대중 운동에서는 ‘기본소득’을 주장해 왔다.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임금이 적거나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므로, 더 많은 시간을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할 수 있어 ‘문화사회’로 이행할 수 있고 민주주의도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알맞은 때에 연대하는 ‘노동거부 운동’도 미래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겠지만, 공공이나 커뮤니티 주도하에 공동이 사용하는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우리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불평등이라는 괴물에 이빨을 달아주는 것은 상품화’(데이비드 그러스키)라는 말이 떠오른다.교육,건강 등 모든 서비스를 시장에서 자원과 구매력의 돈을 주고 사야 한다면 자원과 구매력의 결정력은 커지게 된다. 반면 반드시 돈을 내지 않고도 혹은 아주 적은 돈을 내고도 누릴 수 있는 양질의 서비스가 많다면 불평등의 악영향은 최소화되거나 불평등 그 자체가 축소될 수 있다. ([밀레니얼에게 가족이란] 김영미)

 

*참고문헌

북클럽자본 10권,11권/고병권/천년의 상상

노동거부의 정치학:새로운 ‘구성’을 향한 투쟁/고병권

악셀 호네트에서 인정과 순응의 문제:이데올로기적 인정 개념을 중심으로/장성빈

밀레니얼에게 가족이란/김영미/민음사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

The rise of the anti-work movement/Brian O’Conner/BBC (2022년 12월 검색)

소비에 놀아나지 말고 사용가치 중심 경제로(데이비드 하비, 자본의 17가지 모순에 대한 리뷰)/이재성/한겨레신문/2014.11.20 (2022년 12월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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