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세미나자료 :: 기획세미나의 발제ㆍ후기 게시판입니다. 첨부파일보다 텍스트로 올려주세요!


철학의 모험과 나의 모험

 

[철학의 모험] 책 표지는 돈키호테처럼 보이는 창을 든 기사가 말을 타고 절벽 끝에 서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듯한 파도의 물결은 기사를 덮치고 있다. 정말 벼랑 끝에 나와 있는 것이다. 이 기사는 무슨 생각으로 이 위험해 보이는 위치에 있는 것일까? 부제목인 “피할 수 없는 질문, 철학자들이 펼치는 사유의 격돌”로 봐서는 기사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불가피한 대결을 앞두고 다짐하러 온 것처럼 보인다. 오랫동안 편안히 머물던 집을 떠나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낯선 땅으로 전장을 나갈 마지막 채비를 한 것이다. 한번 가면 다시 같은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는 길에 들어서려는 저 기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책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청인지를 신청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철학의 모험]이라는 제목이었던 거 같다. 내가 어려서 희망한 직업이 모험가였기 때문이다. 숨겨진 비밀을 찾아 정글을 누비는 인디아나 존스 같은 모험가 말이다. 초등학교때 내 장래희망에 대해 묘사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내가 꿈꾸는 모험가를 그리고 있었는데 이때 내 짝꿍이 그림을 보더니 이건 이미 사라진 직업이라고 말해서 기분이 상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원피스, 포켓몬스터, 디지몬 어드벤처와 같은 당시 만화영화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탐험하고 비밀을 밝히고 싶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들이 아서 도난 코일의 셜록 홈즈와 아가서 크리스티의 탐정소설들이었기 때문이다. 범죄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이를 수수께끼와 같은 모험에 도전한다고 생각했다. 또 노스페이스의 Never Stop Exploring이라는 슬로건이 마음에 들어서 해당 문구가 쓰여진 티셔츠를 구매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작년까지도 나는 모험가를 꿈꾸었다. 꼭 인디아나 존스나 셜록 홈즈가 될 필요는 없었다. 내가 스스로 정의한 모험가는 새로움에 도전하고 참신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인생의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철학의 모험]을 통해서도 이런 모험을 하길 바랐다. 책에서 표현하는 철학의 모험은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땅을 탐색하고, 무엇을 얻을지 모르는 채 미지의 세계에 들어가며, 보장된 성공을 등지고 어떤 보장도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26). 그리고 지금까지 어느정도 이런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새 들어서는 이런 모험의 끝을 생각하고 있다. 예전에는 현재의 나이까지 이것저것 다 해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먹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지금 나이 정도가 되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명확해질 것이라는 암묵적인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스스로도 기한을 잡았었다. 현재 나이까지 이것저것 해보고도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잘 모르겠으면 여태까지 한 것 중에 가장 마음에 맞는 것을 하자고 말이다. 하지만 스스로 정한 기한이 얼마 안 남은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될 지 가닥이 잡히지 않고 있다. 이전에는 잘못된 방향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어려운 길로 빠질 것 같아 앞으로 나가기 무섭다. 이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가라앉고 있고 안전한 길, 앞이 보이는 길, 정체된 길을 찾고 있다. 스스로 헤쳐 나가야하는 다음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그려진 컴컴한 모험의 지도가 아닌 나의 불안감을 떨칠 수 있는 빛이 모든 것을 환하게 밝혀주는 그림자 없는 지도를 가지고 싶다. 그런 지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철학과 모험]은 나의 이런 상황에서 모험가의 기초를 다잡으라고 한다. 무모함을 벗으로 삼아 개념의 칼을 들고 어둠 속으로 뛰어들라고 말이다(31). 그리고 돈키호테처럼 풍차로만 보이는 것에서 다른 무언가를 감지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돈키호테가 될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있다. 책 표지의 기사처럼 벼랑 끝에서 다짐하고 모험을 떠날 힘이 꺼져간다. 왜냐고 물어보면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잘 몰라 상황파악이 안되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답이 없어 보이는 것을 향해 절실하게 물음을 던지는 자와 치명적인 위험의 괴물에 매혹되어 거침없이 달려갈 줄 아는 자의 사이에 있는 수많은 길 중 어느 길을 선택할지 묻는다(573). 우리는 언제나 길을 선택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걸까? 후설의 현상학처럼 괄호를 치고 있는 그대로 보면 안 되는 것일까? 상황을 모르겠다는 내 생각은 어떤 의지일까?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감각, 사유와 삶을 고치고 바꾸는 초인이 되지 못해서 일까? 아니면 제대로 된 실천을 하지 못했기에 올바른 지식을 얻지 못한 것일까? 혹은 이것도 절대정신을 향한 과정일까? 중세로 되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어차피 나는 존재하지도 않고 인상들만 존재하는데 굳이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있을까? 내 맘대로 책에서 배운 사유를 나한테 적용해보지만 답을 찾기란 어렵다. 혹은 이진경 선생님이 말하는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태의 절박성’에서 연유하는 절실함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566).

질문을 조금 바꾸어 나는 애초에 모험에 적합한 사람인지 생각해보았다. 책에서는 치명적인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 모험에 삶을 걸 줄 아는 자, 미리 답을 준비해두고 질문하는 자, 안전을 보장해두고 매혹의 ‘맛’만 보려고 하는 자를 얘기한다(573). 나는 어떤 사람인가? 치명적인 위험에 삶을 거는 사람인가? 미리 답을 정해 놓을까 혹은 맛만 보려고 하는 걸까? 돌아보면 내 인생은 다양한 모험의 맛을 조금씩 보면서 내가 떠나고 싶은 모험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떠나고 싶은 모험을 찾고 있다.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던져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래야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모험을 정하지도 못하고 안전을 내려놓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진정한 모험을 못 떠나는 걸까? 그렇다고 무엇인지도 모르고 삶을 거는 모험이 진정한 모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던져야 모험일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어딜 가야할지도 모르고 모든 것을 던져야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모험이 아닌 어리석음이지 않을까? 모비딕을 찾은 에이햅을 우리가 진정한 승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를 들으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목숨을 거는 대신 본인을 밧줄에 묶어서 맛을 보고자 했다. 이것이 왜 비겁함일까? 목숨을 잃는 모험만이 용감하고 가치있다고 할 수 있을까?

 “시작부터 사람들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철학의 모험]은 끝난다. 사람들이 다른 길을 가는 것은 당연한 말 같다. 사람들이 처음부터 같은 위치에 있지 않는 것은 물론이며 길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다르게 해석해보자면 작가가 독자에게 제안하는 길이 있지만 결론은 모두가 다른 길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그 위 문장(우리는 어떤 교차로에서 어떤 식으로 만날 것인가?)을 다시 해석하자면 우리는 길을 가면서 어떤 교차로에서 만날 것이고 다시 헤어질 것이다. 다음 교차로로 출발하기 전에 나는 사유의 모험으로 떠날 준비가 되었는지 다시 한번 스스로 묻는다. 나의 모험은 어디서 시작됬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나의 모험을 위한 하나의 질문은 무엇일까? 나는 절벽에서 모험을 떠날 다짐을 하는 돈키호테가 될 수 있을까?

 

<참고문헌>

-이진경, 2021, 『철학의 모험』, 생각을 말하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4철학에세이_니체 :: 니체와 함께 아모르파티 [1] oracle 2024.06.01 110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2북클럽자본 :: 자유의 파토스,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 [1] oracle 2022.12.22 243
공지 [에세이자료집] 2020니체세미나 :: 비극의 파토스, 디오니소스 찬가 [2] oracle 2020.12.21 393
공지 [에세이자료집] 2019니체세미나 :: 더 아름답게! 거리의 파토스 [2] oracle 2019.12.19 718
957 [청인지15-2주차 후기] 상징계를 탈주하기 [2] 이희옥 2022.12.29 99
956 청인지 2강 발제 (무의식의 이중구조와 주체화) file 초보(신정수) 2022.12.23 72
955 [청인지15 - 1주차 후기] 라캉으로 시작! [2] 경덕 2022.12.20 191
954 [북클럽 자본_에세이] 포겔프라이(vogelfrei) file 손현숙 2022.12.19 90
953 [북클럽자본_에세이] SPC사건, 다시 보기 file 파도의 소리 2022.12.17 76
952 [북클럽자본_에세이] 인공지능의 침묵 file 사이 2022.12.16 91
951 [북클럽자본_ 에세이] 옥수수 연대기, 비누연습 file 용아 2022.12.15 80
950 [북클럽자본_에세이] 괴물 씨앗 file 에이허브 2022.12.15 129
949 [청인지 15] 1강 발제 file 감쟈 2022.12.14 189
948 [북클럽자본_에세이]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 [1] file 초보(신정수) 2022.12.12 193
947 [북클럽자본_에세이] 안티워크와 인정투쟁의 종말 드넓은 2022.12.08 178
946 [북클럽자본_토론] 12권(4~6장) 포겔프라이 oracle 2022.12.08 51
945 [북클럽자본_토론] 12권(1~3장)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 oracle 2022.11.30 82
944 [북클럽자본_후기] 11권(5~7장) 우리들의 죽음 에이허브 2022.11.29 103
943 [청인지14] 에세이 file 이희옥 2022.11.28 64
942 [청인지14] 에세이는 아니고요... file 낙타 2022.11.25 63
» [청인지14 에세이] 철학의 모험과 나의 모험 네오 2022.11.25 56
940 청인지 에세이_멍게는 멍게다_권경덕 [2] file 경덕 2022.11.25 78
939 [청인지14 에세이] 초인이 되는 세 가지 방법 - 윤시원 file 시원 2022.11.25 6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