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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를 준비하다가 좀 재미가 없는 것 같아서 쓰다 보니 콩트형식의 글이 되어가고 있네요. 

발제(콩트형식의 글)는 수업 직전에 올리겠습니다.

정리가 아직 덜 되었고, 각자 미리 읽으면 함께 읽는 재미가 덜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양해바랍니다.^^ 

 

 

실업자 구보씨의 일일

 

꼬르르륵-

한강대교에서 몸을 던진 구보씨가 물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아 결국 이렇게 죽는구나! 총각귀신이 돼서 영원히 구천을 떠돌겠지. 아흑, 불쌍한 인생!’

 

구보씨는 삼년 전, 자동차 도장공으로 일하다가 공장주가 최신식 도장기계를 들여오면서 해고를 당했다. 그와 동료들을 받아주는 사업장은 없었다. 사업장마다 기계가 사람을 대신해 24시간 가동됐다. 구보씨는 공사판 잡부로 근근이 생활을 하다가 삼 개월 전 낙상사고를 당했다. 산재처리는커녕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한 그에게 남은 거라곤 수시로 시큰거리는 허리통증과 주민등록증, 잔액 8천 원이 남아있는 직불카드. 그리고 쓸모를 잃은 몸뚱이.

그는 남은 전부를 한강에 던졌던 것인데......

 

구보씨 망막에 희미한 형체 하나가 비친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이 어깨까지 자란 데다 지저분한 수염까지 뒤덮은 60대 영감 얼굴.

“컥! 누 누구세요? 사 사람 살려!”

“이미 살려줬는데 뭘 또 살려 달래?”

“아니 그럼 선생님이 저를.....”

“낚싯대로 건졌지. 숨을 안 쉬길래 인공호흡까지 했지 클클클-”

노숙자가 지저분하게 자란 수염사이로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 더러운 입을 내 입술에 댔다고? 우엑 우에엑-”

“흐흐흐- 잘하고 있군. 싹 다 비우라고. 위장도 비우고 마음도 비워야 무병장수하지.”

구보씨가 노숙자의 멱살을 잡는다.

“당신 뭐야? 당신이 뭔데 40년 간직한 내 순결한 입술을.....”

노숙자의 손이 구보씨의 겨드랑이로 파고들어 혈자리 세 군데를 세차게 누른다.

“컥, 흑, 크헉!”

바닥에 고꾸라진 채 숨을 헐떡이는 구보씨 눈앞에 잉어비늘이 잔뜩 붙은 식칼이 어른거렸다. “생명의 은인 멱살을 잡아? 아예 경동맥을 끊어주지. 뭐 어차피 죽은 목숨이었으니까.”

구보씨가 노숙자 발아래 납작 엎드린 채 양손을 싹싹 비벼댔다.

“사 살려 주십쇼! 제발- 도사님 뭐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클클클 이젠 살고 싶은 모양이지? 얼른 소주나 두어병 사와. 안주는 내가 준비할 테니까”

 

구보씨는 노숙자가 요리한 이어찜을 게걸스럽게 먹어댄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봅니다.”

“마음만 내려놓으면 매일 먹을 수 있어. 근데 술이 부족한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소주 세 병 값이 전 재산이었어요.”

“잘 됐어. 이제 무일푼이 됐으니 자유롭고 한가한 인생이 되겠군. 축하해. 흐흐흐-”

“속으론 한심한 놈이라고 비웃는 거죠?”

“정말로 한심한 인생은 평생 노예의 삶을 살기로 작정한 인간들이야”

구보씨가 노숙자의 빈 잔에 술을 채웠다.

“세상에 노예의 삶을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어딨어요?”

노숙자가 황금빛으로 빛나는 63빌딩을 가리켰다

“저 빌딩 하나에도 수 천 명의 노예들이 득시글거리지.”

“직장인들이 노예란 말입니까?”

“누가 강제로 끌어가는 것도 아니고. 법률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노예의 길을 선택했으니 더 한심한 종족들이지.”

“아, 먹고 살자면 일을 해야죠!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요?”“온전히 자신을 위한 일을 하면서도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남에게 고용되는 처지를 선택하는 건 자기 자유의 9할을 포기하는 거야. 인생 전부를 남의 손에 빼앗기는 건데도 기를 쓰고 직장엘 들어가려고 박 터지게들 싸워요. 기껏 직장에 들어가서는 자본가에게 피를 다 빨려서 과로사를 당하거나 덜컥 해고되면 기껏해야 소주 세병 살 돈을 주머니에 품고 한강에 몸을 던지는 거지 풍덩! 어푸어푸 꼴까닥!”

구보씨가 술잔을 집어던졌다.

“이런 젠장! 노숙자 주제에 되는대로 지껄여대는군.”

“오호, 좋았어! 싸나이가 패기가 있어야지. 근데 노숙자 보단 자유인이라 불러주면 좋겠어.”

“당신이 뭘 알아? 노동은 신성한 거라고!”

“흠, 그 말을 누가 만들어냈을까? 자본가들이 만들어 내고 자네에게 주입시켰다는 생각은 안 해봤겠지? 그랬을 거야. 원래 노예들은 생각하길 싫어하니까.”

“무슨 말 같잖은 소리를 하는 거요?”

“한 시대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그 시대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다. 내가 존경하는 마선생의 말씀이지. 자넨 지배 계급이 주입한 이념을 자기 생각이라고 착각하고 있어.”

“천만에요! 저도 정규교육 제대로 받고 대학물도 조금 먹은 놈임다. 집안이 어려워서 중퇴했지만. 이래봬도 내 철학과 가치관이 있다고요!”

“학교야말로 자본의 이념을 주입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노예 양성소지. 자본가들 배불리느라 허덕대다가 그들이 들여온 기계에 밀려나서 실업자로 아등바등 어찌어찌 버텼겠지. 바닥까지 내려가서는 에라 자살해버리자 하는 게 자네 철학이고 가치관이여? 그럼 자넬 구한 나는 자네 가치관을 훼손시킨 행위를 한 건가? 거참 미안하게 됐군.”

“비아냥거리지 마세요! 실직 후에 제가 겪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상상이나 해봤어요?”

“자유인이 노예의 처지를 왜 상상해야 하지? 굳이? 왜? 뭣땀시?”

점점 약이 오른 구보씨가 입술을 깨물었다.

‘오냐, 이 꼴같잖은 노숙자 놈 코를 납작하게 만들자. 내 모든 지성과 논리를 동원해서 깔아뭉개버리는 거야. 그래, 그래야 등록금 내느라 허리가 휜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거다. 평생 염색공장 노동자로 살다 곰팡이 핀 셋방에서 가신 아버지- 아 씨바, 눈물이.....’

노숙자가 눈을 찡긋, 했다.

“눈가에 물기가 맺히는 걸 보니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난 모양이지?”

‘이런 우라질! 뭐지? 이 인간 이거 사람 마음까지 들여다보네. 진짜 도사 아녀?’

“보나마나 자네 부모님도 평생 뼈 빠지게 일하면서 자본가들 배에 기름만 채워주다 돌아가셨겠지. 노동자의 불운은 개인적 불운이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의 성격인 거야. 아버지의 불운과 아들의 불운은 독립적 사건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운명이란 알아야 해.”

“웃기는 소리! 운명은 개척하는 거라고요!”

“개척 좋아하시네. 개헤엄이겠지. 어푸어푸 꼬륵 꼬르륵!”

“어휴 진짜 짜증나네.”

“오늘 노동자는 내일도 노동력을 팔 것이며, 그 자녀도 노동력을 팔 것이다. 이건 예언이 아니라 현재 작동하고 있는 사회적 배치야.”

‘사회적 배치? 저건 또 뭔 소리랴? 뭘 좀 아는 눈치긴 한데......’

“술도 깰 겸 산책이나 하지.”

 

둘은 남산도서관으로 들어갔다. 노숙자가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커피를 뽑았다.

“오늘도 만석이군. 이 넓은 도서관에 꽉 들어찬 사람들 팔할이 구직자야. 산업예비군들이지.”

“향토예비군은 들어봤어도 산업예비군은 처음 들어요.”

노숙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구보씨를 건너다보고는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를 노예 부리듯 부려야 돈을 벌어. 그들은 합법적으로 노동자들을 노예 취급할 방법을 찾아야 했어. 그게 바로 실업이지. 실직상태에 몰린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그 어떤 부당하고 가혹한 요구도 거절하기 어려워졌어. 왜지?”

“일자리를 잃으면 죽으니까요!”

“그래. 한쪽은 일감이 없어 굶어 죽게 만들고 다른 한쪽은 일이 넘쳐 과로로 죽게 만드는 것, 바로 이런 미친 짓을 꾸며내는 곳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야. 일자리를 얻지 못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내모는 노동자들이 득실거려야 자본은 노동을 통제할 수 있어. 자본가들은 노동력의 저수지를 만들어내는 거야. 마르크스는 이렇게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실업층을 산업예비군이라 칭했지.”

“하지만 사장 입장에서 일을 못하는 놈 해고하고, 기계 들여와서 사람 대신에 일하면 남아도는 인력들 자르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오호라, 원수를 사랑하시겠다? 할렐루야! 사람들아 여기 예수가 환생하셨소!”

“비꼬지 말고 내 말에 반박을 해 보라고요! 그리고 실업자가 늘어나는 건 인구가 자꾸 늘어나니까 그런 거 아니냐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들은 실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하지만 인류 7,000년 문명의 역사를 돌이켜봐. 자본주의 시대를 빼면, 실업이 지금처럼 광범위하게 존재했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

“아따, 70년도 아직 못 살아봤는데 칠천년 역사를 제가 어떻게 알아요?”

“잘났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후 일자리가 없어서 죽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야. 산업혁명 시기 노동자들이 하루 일당 1,000원에 18시간씩 살인적인 노동을 하는 계약을 맺었어. 노동자들이 그 계약을 받아들인 이유가 뭘까? 그 일조차 못하면 런던 거리에서 나뒹구는 산업예비군에게 일자리를 빼앗겼기 때문이야.”

“아 그 때야 그랬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단언컨대 실업은 자본주의가 탄생시킨 새로운 괴물이야. 자네나 도서관에 처박혀 수험서에 밑줄을 긋고 있는 저들이나 자본주의라는 괴물 아가리 속에서 숨만 붙어서 깔딱대고 있는 거지. 언젠가 자본가가 피를 쪽쪽 빨다가 다 빨아먹었다 싶으면 퉤- 내뱉어서 하루아침에 산업예비군이 되지. 빈곤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산업예비군이 존재하는 한 어떤 노동자도 자본에 대한 복종을 거부하는 삶을 산다는 건 불가능해.”

“자본가를 무슨 흡혈귀처럼 얘기하는데 오래 근무할수록 임금은 더 오르잖아요. 나도 잘리지만 않았으면 지금쯤 월 삼 백 오십은 너끈히.....”

“어떤 경우에도 착취가 사라지는 수준까지 임금이 오르진 않아. 그렇게 된다면 노동력이란 상품을 자본가가 왜 사겠어? 착취가 없으면 이익도 없는데 그걸 뭐 하러 사지? 노동자인 한 이 잔인한 착취구조를 벗어날 수 없어. 그러니 우리에게 정당한 임금을 달라는 구호 대신에 임금 폐지라는 구호를 외쳐야 돼.”

“임금을 없애라고 외쳐요? 말도 안 돼. 아, 그리고 사장도 사업하느라 여기저기 돈 끌어 모아서 시설에 투자하고 경쟁사들끼리 싸움에서 이기려고 헐떡거려요. 지들도 돈 투자하고, 고생하니까 돈 많이 챙겨가는 건 당연한 거지!”

노숙자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구보씨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버나드 맨더빌 같은 놈은 노동자에게 임금은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만 주고, 교육은 최소 수준에 머물게 해야 한다고 했어. 하층계급이 아는 게 많아지면 불평이 늘어나고 요구사항도 많아지니까 부려먹기 어렵거든. 가난은 빈민들을 일하게 만들고 무지는 고생을 고생으로 느끼지 않게 해준다고 했어. 딱 너를 두고 하는 소리군.”

“흥, 내가 무식해도 선생님이 비판하는 자본주의는 절대 망하지 않을 거란 건 알아요.”

“자본주의는 영원하다? 과연 그럴까?”

“당연하죠! 사람은 저마다 원하는 게 있잖아요. 그 욕망을 가장 잘 실현시켜줄 수 있는 체제가 자본주의라는 거 아닙니까? 저도 앞으로 잘만 풀리면 건물주가 돼서 벤츠 몰고”

“꿈 깨! 그런 신기루같은 생각도 자본가들이 주입한 망상이야. 자넨 무식한 게 문제가 아니라 생각을 안 하려고 하는 게 문제인 것 같군.”

“그럼 생각 많이 하시는 선생님은 자본주의가 망한다고 확신하세요?”

“종교에서 인간은 자기 두뇌가 만들어 낸 것에 지배받듯이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자기 손으로 만들어낸 것에 지배를 받는다. 마르크스의 말이야. 자본가들은 경쟁적으로 눈앞의 이익만을 쫓지. 자신들의 행동으로 사회가 어디로 가게 되는지도 알지도 못하고 애초에 관심도 없어. 일이 터져도 누구도 책임지려하지 않아. 자본주의의 운명은 이런 맹목과 무책임 속에서 관철되는 거야.”

“아따, 철학자 나셨네. 잘난 척 하지 말고 좀 쉽게 얘기해 보라고요!”

“자본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할 노동인구를 만들어내지. 노동하는 빈민이야말로 자본가가 부를 캐내는 보물광산이었으니까. 그러다가 자본은 더 많은 부를 캐내는 과정에서 잉여노동자더미를 밖으로 쏟아내지. 경쟁적으로 땅을 파는 거야 자신들이 딛고 선 바닥이 무너지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자본가는 자기 자신의 매장인을 만들어내는 거야. 결국, 지인지조! 지 인생 지가 조진다! 자기 무덤 파느라 오늘도 등골이 무너지누나! 자본주의 화이팅!”

노숙자가 한강 너머로 지는 해를 가리켰다.

“저기 저무는 해처럼 기세등등했던 자본주의도 얼마 안가 저 노을처럼 붉은 피를 뿌리며 고꾸라질 거야. 난 그 날을 기다리고 있지.”

구보씨가 석양에 물든 노숙자의 옆모습을 쳐다본다.

‘뭐지? 이 노숙자. 아니 이 자유인의 아우라는? 확실히 이 분에겐 뭔가 있어!’

구보씨가 노숙자 앞에 무릎을 팍 꿇었다.

“스승님.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놀구있네.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저 진심이라고요. 그리고 당장 어디 갈 데도 없어요. 부디 불쌍한 생명 하나 아니, 두 번 살리는 셈 치고 제자로 거둬주세요! 아흐흑-”

“문제를 하나 내지. 고두심, 고무신, 고릴라, 고량주, 고추씨, 고구마의 공통점은?”

“고로 시작합니다.”

“포겔프라이가 무슨 뜻인지 아나?”

“처음 듣는 말인데요.” 노숙자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당장 도서관에 달려가서 고씨 집안이 배출한 걸출한 철학자 고병권의 저작 북클럽 자본을 읽어! 다 읽고 나서 날 찾아와. 그 때 포겔프라이에 대해 밤새 얘기해보자고.”

축지법이라도 하는 듯이 노숙자는 표표히 멀어지고 있었다.

구보씨는 멀어지는 노숙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포겔프라이 포겔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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