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장에서는 잉여가치란 잉여노동이며, 잉여노동이 없다면 잉여가치도 없고 자본도 불가하다(p120)는 내용에 대해서 다뤘는데요, 저는 이번 장을 읽으면서 ‘자유’와 ‘그림자노동’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왜 공부하냐라고 물어보면 ‘자유롭고 싶어서요’라고 대답을 했었는데요. 저에게 자유란 ‘내가 만든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싶다, 편안한 마음으로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살고싶다’는 이런 의미였습니다. 긍정적인 상황에서만 쓸수있는 그런 단어였습니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노동력과 관련하여 ‘자유’를 운운할 때 뜨악했었죠.
마르크스는 노동력 상품화의 전제조건으로서 ‘이중적 의미에서의 자유’를 말하면서 이것은 “한편으로 노동자는 자유로운 인격체로서 노동력을 자신의 상품으로 마음대로 처분한다는 의미이며, 다른 한편으로 판매할 다른 상품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노동력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건으로부터도 분리되고 풀려나 자유롭다는 의미다.”(p124)라고 말합니다.
‘자유로운’ 인격체, 생산수단에서 분리된 ‘자유’… 차근차근 보지 않으면 너무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내가 다른사람들과 인격과 능력에서 완전히 동등하다는 것, 나를 얽매고 있던 생산수단에서 분리되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생각되지만, 사실상 노동자들에게는 말뿐인 것들이었죠. 그리고 서양 언어에서 ‘자유’는 ‘무엇이 없는 상태(결핍)’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저는 ‘자유’라는 단어에서 ‘결핍’을 넘어선 ‘엄청난 속박’을 보았습니다.
저는 월급노동자인데요. 20대 처음으로 회사에 들어갔을 때에는 회사와 나는 일정한 부분은 동등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싫으면 그만두면 되니깐요. 다른 일을 할수도 있구요. 하지만 아니더라고요. 나이가 들수록 회사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회사를 그만두면 당장 생계가 막막한데, 또 다른 곳에 입사하기는 더 힘드니깐요. 이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를 하는 건 더더욱 힘든 일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회에서 속박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아니면 그저 지금처럼 지내면서 소소한 재미를 만들면서 살아가는게 더 편할까요. 저는 후자를 선택하겠지만 왜 자꾸 미련이 남는지 모르겠습니다.
두번째로, 마르크스는 노동력의 가치는 한 개인이 그 사회에서 자신을 재생산하고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량인데, 이때 노동력 생산에 필요한 수단들은 포함되지만 이를 위한 별도의 노동력 투입은 고려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즉 임금을 줄 때 쌀값은 포함하지만, 밥을 짓고 차리는 수고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말인데요….(요즘에는 직접 주유를 하는 셀프 주유소, 모바일 뱅킹, 매장내 키오스크 주문까지 그림자 노동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그림자노동이 노동력 투입에 고려가 되어야 할까? 역사적으로도 그랬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밥을 짓고, 자신의 집을 청소를 하는 것. 이런것들은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선 그 사람이 노동을 하건 안하건 해야하는 것이니깐요. 그런 것들까지 노동력 투입에 고려한다면 너무 과한건 아닌지 생각해봤습니다.
"밥을 짓고, 자신의 집을 청소를 하는 것. 이런 것들은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선, 그 사람이 노동을 하건 안하건 해야 하는 것이니깐요." 맞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노동자로 고용되든 아니든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노동자로 고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의식주는 우리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지만, 노동자로 고용된 상태에서는 이 모든 것이 노동력 재생산비용으로 계산되어야 한다는 거지요. ㅎㅎ 노동자의 모든 의식주가 다 그래요. 심지어 자녀교육비 같은 것도 마찬가지로, 노동자로 고용된 상태에서는 임금에 포함되어 있지요. 노동자로 고용되든 아니든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데, 왜 임금에 자녀교육비가 포함되어 있을까요? ㅎㅎ (대기업에서는 대부분 자녀의 대학교 학비까지 지원되지요.)
저는 오히려 바다님의 후기를 읽으니 '그림자노동'에 대한 고병권샘의 문제의식이 더 선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림자노동은 어떤 맥락에서 제기된 것인가부터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림자노동은 노동력의 가치(임금)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임금에는 어떤 항목이 들어가야 하는가를 따지면서 나온 이야기지요.
저자는 노동력상품의 가치를 계산하기 위해(노동자의 임금을 책정하기 위해), 다른 상품들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가를 참조합니다. 노동력도 하나의 상품으로 다루기 때문이지요. 다른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량으로, 직접 계산하지요. 그런데 노동력상품은 직접 생산할 수 없으니, 노동력생산에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로 간접 계산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차이에서 '그림자노동'의 개념을 도출해냅니다. 즉 일반 상품을 생산할 때는 생산수단(원료와 도구)만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도 필요하지요. 책상을 만들 때, 목재와 톱만이 아니라 가구노동자의 노동이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노동력상품도 생활수단(쌀....)만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쌀을 씻고 밥을 짓는)이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임금에는 이 노동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하는 겁니다. 즉 이 노동도 임금에 추가되어야 한다는 거지요. 사실 이 부분은 노동자가 자신이 직접하거나, 결혼을 하게 되면 가사노동의 형태로 가족이 담당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가사노동을 부불노동(지불되지 않는 노동)이라고 하는 거지요.
이것이 노동자의 관점에서 그림자노동이었다면, 소비자의 위치에서 그림자노동는 훨씬 더 선명하지요. 우리는 전 사회적 자동화를 통해 이런 그림자노동을 점점 더많이 하고 있지요. 바다님이 사례로 든 것처럼, 직접 주유를 하는 셀프주유소, 모바일뱅킹, 매장내 키오스크주문까지, 그리고 훨씬 이전에 은행직원의 일들, 버스안내양의 일들.... 까지 모두 자동화시켜버렸지요. 그래서 이전에는 서비스직원이 하던 일을 이제 소비자가 직접하지요. 그렇게 자동화를 하면서 자본가는 인원을 줄이고 인건비를 줄여나가지요. 이렇게 서비스직원이 하던 일을 우리가 직접 하면서(직접 은행업무를 처리하거나 직접 물건주문을 하면서), 우리 신체는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강도와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나이많은 분들 중에는 아직도 이런 일을 직접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지요. 그렇다고 은행고객에게 이자를 더주거나, 소비자에게 물건값을 깎아주지도 않습니다. 그대로 우리의 노동을 무상으로 착취하는 거지요. 전사회적 차원으로다가.... !!
저는 바다님이 이 그림자노동을 주제로 에세이를 써도 재미있을 거같은 생각이 듭니다~~~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