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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인지13몸페미니즘_에세이_하얀

하얀 2022.05.28 12:40 조회 수 : 30

 

에세이 올립니당. 다들 화이팅!!!

 

유체로서의 몸

-최승자 초기시에서 신체 훼손 이미지 분석

 

송하얀

 

한국 시단에서 최승자의 등장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최승자는 기존에 시적 언어로 통용되지 않던 말들을 사용하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언어 충격이 아니었다. 시적 세계를 통해 인간과 순수한 자연이라는 이분법을 깼으며, ‘인간’, ‘자연’의 위치 그 자체에 물음을 던진다. 과연 자연이란 오염되지 않는 원형인가? 또한 인간은 자연과 어떤 관계를 갖는가?

이번 에세이에서는 최승자의 초기 시 「일찌기 나는」(『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81) 과「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즐거운 일기』, 문학과지성사, 1984)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최승자의 시에서는 ‘배설물’, ‘신체 훼손’ ‘전염’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단지 세계에 대한 부정의 글쓰기만이 아닌 몸의 글쓰기로서 인간과 자연의 통념을 벗어나 흐름을 생산하는 과정으로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기워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일찌기 나는」전문

 

이 시는 최승자의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에서 첫 시이다. 첫 시집의 첫 시에서 화자는 자신을 ‘곰팡이’. ‘오줌 자국’, 그리고 ‘시체’로 변주한다. 이 셋은 분명 현재 존재하지만 그 존재적 가치가 중심적 사물, ‘빵’, ‘벽’을 오염시키거나 훼손하고 ‘인간’-이때의 인간은 살아있는 인간을 전제한다-을 공포로 몰고 간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배설물, 폐기물, 육체적 부산물 등을 크리스테바는 비체abjection라 지칭한다. 비체는 몸에서 분리된 것이지만 주체/객체, /안/밖의 이항대립에 환원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런 물음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곰팡이가 핀 빵은 빵이 아닌가? 오줌 자국이 남은 벽은 벽이 아닌가? 죽은 혹은 죽어 가는 몸은 몸이 아닌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말하기 곤란해진다.

그 이유는 곰팡이, 오줌 자국, 시체가 빵, 벽, 인간을 무규정성으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는 단지 희망 없음의 니힐리즘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의미 없음’이 아닌 의미와 무의미의 교란 지점으로, 규정과 무규정의 “뫼비우스 띠”이다.

그로스는 마음과 몸 사이의 이분법을 벗어나 그 둘 사이의 운동성으로서 몸을 “뫼비우스 띠로서의 몸”으로 모델화한 바 있다. 위의 시에서는 ‘곰팡이’, ‘오줌 자국’, ‘시체’가 규정성으로서의 몸을 회전시키는 축으로서 등장한다.

자연 역시 인간과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와 더불어 혹은 신체로서 존재한다.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매독 같은 가을./그르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개 같은 가을이」부분, 『이 시대의 사랑』) 여기에 순수한 이상향으로서의 자연이란 없다. 한 시대 안에, 모든 관계 안에서 작동하는 몸-기계가 있을 뿐이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나라는 규정성은 ‘영원한 루머’로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와 관계하는 너, 당신, 그대, 행복, 사랑 역시 기존의 관념과 다르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쳐라 쳐라 내 목을 쳐라./내 모가지가 땅바닥에 덩그렁/떨어지는 소리를, 땅바닥에 떨어진/내 모가지의 귀로 듣고 싶고/그리고서야 땅바닥에 떨어진/나의 눈은 눈감을 것이다.” 이는 「사랑 혹은 살의랄까 자폭」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화자에게 한밤중에 송곳이, 칼날이 날아온다. 그리고서 내 목을 분해한다. 이것이 왜 사랑인가. 우리는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신체 훼손의 방식은 다음 시에서 전면적으로 등장한다. 다음 시를 통해 신체를 훼손 이미지와 사랑의 고리를 살펴보려 한다.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서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도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전문

 

우리는 사랑을 마음의 일로 생각한다. 하지만 화자는 생활-“오늘의 닭고기”,“오늘의 눈물”-로 사랑을 말한다. 마음의 일이 몸의 일과 엮여있음을 시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화자에게 “사랑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팔과 다리를 꺾어, 몸을 분질러 꽃병에 꽂히는 일이다. 이 신체 훼손 이미지는 최승자의 초기 시에 전면 등장하며 우리에게 강렬한 감응을 남긴다. 먼저 우리는 꽃병에 꽃을 보며 아름답다 느낀다. 하지만 시에서 꽃이 사람의 부러진 몸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한 번의 충격이 오는 것이다. 이 감응이 꺾인, 잘린, 부러진, 결국 훼손된 꽃이 꽃병이 꽂히는 구나 하는 우리의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며 또 한 번 묻게 한다.

왜 이것이 화자에게 사랑하는 일인가. 사랑은 몸과 몸이 지난한 삶을 서로를 위한 희생의 이름으로 견디는 일이 아니다. 사랑은 오히려 관계를 분리하며 자신마저 해체하는 작업이다. 이것을 우리는 이별이라 부르겠지만 이별은 신체적으로 분리를 겪으며 몸의 부분들이 나라는 주체와 달리 살아있음-고통일지라도-을 소리치는 일이다. 그러므로 최승자의 시에서 사랑이란 몸의 구체적 작업이고, 몸의 부분들의 자유를 느끼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꽃병에 꽂힌 분리된 몸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부분들로서 몸은 앞서 「일찌기 나는」에서 나타난바 있듯이 ‘구더기’와 같은 다른 부분들과 연결된다. 이 부분들의 연결은「산산(散散)하게, 선(仙)에게」(『즐거운 일기』)에서는 “깊이와 넓이와 길이로 동시에 흐르기 위”한 일이며, 「무제‧1」(『즐거운 일기』)에서는 “노예선의 북소리를 울리고/까마귀들”을 부른다. 「겨울에 바다에 갔었다」(『즐거운 일기』) 죽은 여자의 신체로부터 나온 아이들이 바다로 퍼져 세계 전체에 “질긴 거미집을 치고”, “땅 속에다 알을 까놓고” “야밤을 틈타 매독을 퍼뜨리고 사생아를 낳”는다.

그로스는 점액의 분석을 통해 유체로서의 몸을 사유한 바 있듯이 최승자 시에서 유체로서의 몸은 부분들의 몸의 배치, 즉 몸-기계이다. 몸-기계는 공간과 시간에 한하면서도 다시 넘어선다. 몸-기계는 흐름을 생산한다. 그러므로 “불발된 혁명”일지라도 사회적‧문화적‧정치적 가치 판단의 전도를 요구한다. 매번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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